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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지창(明慧之窗)에 참여한 수련 심득

글/ 타이완(台灣)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이 찾아와 밍후이지창에 참여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던 기억이 난다. 과장이 아니라 내가 22년간 수련하면서 밍후이왕은 줄곧 정신적 기둥이자 가장 참여하고 싶은 항목이었다. 그래서 신중히 고민하고 참여에 동의하면서 새로운 수련의 길이 열렸다.

처음 밍후이왕에 합류했을 때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분야인 평론을 다뤘다. 그러나, 이내 곧 알게 됐다. 밍후이왕은 기준이 매우 엄격하고 요구되는 점도 대중매체와 아주 달랐다. 나는 문장에서 표현하려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한 번은 중국 수련생이 기고한 평론을 수정했는데, 원고는 1만9천 자로 상당히 길었지만, 나는 논리에 맞게 며칠에 걸쳐 자신만만하게 고쳤다.

편집하는 수련생도 아주 정성껏 수정했고, 우리 두 사람은 글이 그런대로 괜찮다며 중생을 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글은 순조롭게 사이트에 게재됐다. 그런데, 결국 날벼락을 맞고 마지막에는 글을 내려야 했다. 우리는 적잖이 실망했다.

순선(純善)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고려하다

나중에 수련생이 전해주었는데, 문장이 아직 속인의 정치적인 요소가 있어서 순수한 선(善)이 부족해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순수한 선(善)의 경지가 될 수 있는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래서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안으로 찾아 들어갔다.

하루는 사부님께서 한 단락 법으로 점화(點化)해 주셨다.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1]

매번 이 단락을 외울 때면 항상 나도 모르게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라는 구절을 빼먹었었다. 나는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항상 제멋대로 한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인식했다. 글을 쓸 때도 독자를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붓 가는 대로 쓰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확실히 선량하지 않았다. 어떤 단어는 중공에 세뇌당한 중국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데, 쓰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써버리면 중생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부족함을 깨달았으니 기쁘기도 했다. 앞으로 좋게 될 수 있는 방향을 찾은 것도 좋은 일이다.

또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밍후이왕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진상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속인의 여러 가지 현란한 정치 사회적 상황은 세상 사람들이 대법의 진상에 관심을 보이지 못하게 교란하기 위해 구세력이 배치한 것으로서, 밍후이왕이 꼭 다뤄야 하는 소재가 아니다. 또, 수련인이 진정 관심을 가져야 할 일도 아니다.

박해받는 수련생과 함께 중생을 구도하다

한번은 박해를 심하게 받은 수련생에 관한 문장을 넘겨받아 수정했는데, 처음에는 수련생의 이야기를 차마 읽을 수 없었고 읽고 난 후 눈물이 흘렀다. 게다가 원문이 아주 길고 세부 사항이 자세하고 많아서, 수정하려면 큰 작업이 될 것 같아 번거롭고 골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가지해 주신 사부님과 수련생의 도움에 감사했다. 우연히 다른 수련생이 이미 편집한 또 다른 문장을 보았는데, 마침 내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박해받는 수련생의 현재 상황과 중공이 지식인을 박해한 상황을 종합해 다시 써서 비교적 순조롭게 원고를 완성했다.

박해받는 수련생의 글을 개작할 때, 어떤 경우는 당사자인 수련생이 이미 참혹한 박해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그 수련생이 세상에 있건 없건, 그들의 이야기를 쓸 때면 나는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그와 내가 함께 중생을 구하는 동시에 각자의 업력을 없애고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수련생에 대한 관념을 없애다

온라인으로 작업하다 보니 항목 팀 내 수련생들과는 직접 만난 적이 없어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다른 항목에서 함께 작업했던 일부 수련생에 대해 관념이 있었다. 이번에 익숙한 이름을 다시 보니 정말이지 여러 감정이 들끓었다.

처음에 안으로 찾아보니 확실히 질투심 같은 것이 있었다. 내 관념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 잠재의식 속에서 수련생을 배척하고 무시했다. 집착의 뿌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법을 배울 때 사부님께서 직접 점화해 주셨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1]

누가 좋고 나쁜지 보는 것은 정(情)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라 이기적이다. 수련자는 정(情)과 사(私)를 버리고 선타후아(先他後我) 하는 자비심으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한다.

나는 내가 대법제자이지 구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할 때 조건 없이 자비를 베풀 수 있고 상대방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 바라는데, 더욱이 대법을 수련하는 소중한 수련생이 아닌가? 수련생끼리는 더욱더 조건 없이 서로 도와야 한다. 나는 수련생이 성취하게 하고 싶고 수련생을 성취하게 하려 한다. 그것이 사부님께서 요구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기준이다.

맺음말

이 심득 원고를 쓰고 나니 온종일 ‘선(善)’한 상태에서 ‘자아’의 물질은 억제되고 대법의 자비로운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매우 편안했다. 원고를 쓰도록 격려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수련생과 함께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노력해 마지막 길을 잘 걷고 싶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9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2/4303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