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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여행기(사진)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집 어린 대법제자는 다른 대법제자들을 본적이 드물었기에 직접 눈으로 대법제자들이 진상하고 연공하는 모습을 매우 보고 싶어했다. 나는 딸을 데리고 대만 여행을 떠났다. 대만 대법제자들은 매우 잘했으며 곳곳마다에서 모두 진상했는데 지금 나는 나의 보고 들은 일들을 기록해 동수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비행기가 타이베이 도원공항에 착륙하자 우리는 여행사에서 배치한 대만 가이드를 만났다. 예전에 밍후이왕에서 현지가이드에 대한 진상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보도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가이드를 만난 후 바로 발정념을 했다. 승차 후 가이드는 대만 관광에서의 일부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가이드는 파룬궁에 대해 기본상 긍정적으로 인식했고 파룬궁이 대만에서는 합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한 구이저우(貴州)의 망당석(亡黨石)은 미신이며 삼퇴(三退)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당시 나는 가이드가 한 마지막 몇 마디는 본심에 어긋나다는 것을 느꼈는데 바로 배후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한 말이라고 느꼈고 그 후 나는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 사실을 증명했다.

그날 밤 우리는 사림(士林) 야시장을 구경했는데 나는 야시장에서 나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에게 다가가 “우리 회사의 아주 많은 사람들도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으며 당신이 말한 그런 CD와 자료를 우리는 다 보았어요”라고 말하자 가이드는 “파룬궁은 사실 중공이 보도한 그런 것이 아니며 병원에 병을 치료하러 가지 않는다는 것도 거짓임을 알아요. 그러나 위에서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중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 의견만 고집해 선전하고 있지만 오늘에 와서 보면 이미 효과를 보지 못하며 또한 민중들을 강박해 언어상에서 그와 일치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움을 사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날 우리는 고궁박물관을 참관했다. 나와 딸은 줄곧 동수들이 어디에 있는지만 살폈다. 그날은 아주 더웠다. 고궁에서 나온 후 패방(牌坊)밑에 잠깐 서있었는데 더위를 참을 수 없었다. 딸이 대만에 온 후 줄곧 대법제자들을 보지 못해 실망을 느끼고 있을 때 한 중년 여성이 손에 책을 들고 우리를 향해 걸어오더니 “이 책을 보세요”하고 말했다. 바로 ‘9평 공산당’이었다. 나는 즉시 받았고 높은 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이때 나는 우리의 왼쪽 앞 방면에 몇 명의 동수들이 ‘파룬따파(法輪大法) 쩐싼런(眞善忍)’현수막 밑에 가부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른 쪽 앞에는 각종 진상 전시판과 책상 위에 진상자료들이 놓여있었으며 작은 스피커에서는 진상을 방송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 그들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관광객 신분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이야기 나누었고 딸은 한편으로는 진상자료를 수집했고 한 편으로는 사진을 찍으며 “자유 사회에 왔는데 진상자료 한 부를 받을 자유는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희망하건데 다른 관광객들도 연동해 진상전시판을 보고 진상자료를 받아 가길 바랐고 구도되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랐다.

法轮功学员在故宫博物馆前炼静功
고궁 박물관 앞에서 정공(靜功)을 연마하는 파룬궁수련생들

오후 2시 경, 우리는 예류(野柳) 풍경구에서 하차 하자 진상전시판을 볼 수 있었고 한 명의 여 수련생을 보았는데 가슴 앞에 “중공, 파룬궁박해를 즉각 정지하라”는 패를 걸고 뙤약볕에서 진지하게 ‘전법륜’을 읽었다. 나는 매우 감동됐다. 대륙에서 나도 각종 진상행사에 참여하긴 하지만 그러나 줄곧 안일함을 추구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했고 새벽 연공에도 아주 적게 참여했다. 나는 풍경을 구경할 생각이 거의 없어서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광주설법을 들었다. 관광지 오른쪽에는 한 특산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몇 명 동수들이 특산품 가게 출구 쪽 빈터에서 발정념을 했는데 나는 이 귀중한 장면을 사진 찍었다.

野柳风景区前的真相展板
예류 풍경구 앞 진상 전시판

野柳风景区前的真相展板
예류 풍경구 앞 진상 전시판

오후 5시경, 우리는 국부(國父)기념관에 도착했는데 귀에 익은 연공음악이 들려오는 것을 들었고 ‘파룬따파 쩐싼런’이 씌어져있는 노란 티셔츠를 입은 약 10여 명의 동수들이 정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딸은 이 장면을 사진 찍었는데 다른 일행들도 잇달아 사진을 찍었고 어떤 이들은 “파룬궁이 맞아요. 파룬따파 쩐싼런”이라고 말했다. 한 젊은 수련생이 나를 향해 걸어왔는데 나도 그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녀는 “동수님 맞죠?”하고 물었다. 나는 “네”하고 대답했는데 그녀는 “우리 모두 공동으로 정진해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대륙 동수들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때 나는 딸과 함께 온 중학생 친구가 삼퇴를 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 ‘다쯔(達智)’라는 가명으로 단원에서 퇴출시켰다.

구경을 마친 후 우리는 버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관광버스들이 반드시 경유하는 주차장 정면에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라고 씌어져 있었고 대형 현수막 밑에는 많은 진상전시판을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걸으며 방금 단원에서 탈퇴한 그 중학생 친구에게 전시판 내용을 소개했다. 예를 들면 ‘혹형’, ‘장자석(藏字石)’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중학생은 또한 일부 전단지를 받아갔다.

法轮功学员在国父纪念馆前炼功

국부 기념관 앞에서 연공하는 수련생들

이어서 우리는 101빌딩에 도착했는데 역시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그곳에서 진상을 알리고 있었고 101빌딩에서 나올 때 나는 정면 맞은편의 건물에 ‘파룬따파 하오’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이미 오후 6시가 됐는데 진상하는 동수들은 모두 가부좌하고 꽃밭 옆에서 발정념을 했다. 나는 다른 관광객들이 “파룬궁은 진짜 대단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01大楼前的真相展板
101빌딩 앞 진상 전시판

101大楼前的真相展板

101大楼前的真相展板
101빌딩 앞 진상 전시판

3일 째 되던 날 일월담(日月潭)을 참관했다. 우리 단체에는 여러 명 학생들이 있었는데 딸은 친화력이 있어 그 학생들도 딸과 함께 모두 뒤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진상을 알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사진기를 들고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들에게 사진을 돌려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사진을 보았다. 내가 찍었던 전시판들도 모두 아주 자세히 보았고 어떤 사진들은 확대해 보기까지 했다. 나는 또한 자료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아주 신기해하며 다가와 보았고 그들에게 전달해주었는데 마침 ‘무술 대사에서 보통 제자로’라는 리유푸(李有甫)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진지하게 보았다.

일월담에도 적지 않은 동수들이 연공하고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이어서 문무묘(文武廟)에 갔다. 그 중 어느 한 전(殿)은 악비를 공양했다. 나는 덩달아 진상을 했는데 ‘우리는 모두 악비가 충성하는 충신임을 알고 있으며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했지만 오히려 간신의 모함으로 송고종(宋高宗)에 의해 박해당하고 사망했다’고 알려주었다. 과거로부터 충신들이 많이 살해당했는데 파룬궁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박해 당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네 번째 날은 아리산(阿裏山)을 유람했는데 아리산의 지세는 비교적 험했다. 산을 오르내리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는데 2차선 도로였고 비교적 좁았으며 도로 변은 깊은 산골짜기였고 산에 오르려면 한 시간 넘게 걸렸다. 그날은 큰비가 왔기에 수련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큰비만 내리지 않으면 수련생들은 진상하러 나온다고 이야기 했다. 산에 오르내리고 하려면 모두 이 길로 다닐 것인데 수련생들은 매일같이 이 위험한 산길을 이용해 산을 오르내리고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교통이 불편한 원인으로 수련생들은 한번 산에 올랐다면 하루 종일 머물고 점심밥은 자신이 갖고 간 음식으로 대처할 것이며 매일같이 견지하는 그들의 노고는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에 나와 딸은 경건하게 경의를 표했다.

5일 째 오후에는 컨딩(墾丁)을 구경했다. 가장 남단의 어롼비(鵝鑾鼻) 등대를 둘러보았는데 예전과 같이 노란 티셔츠를 입은 익숙한 그림자들이 보였다. 대만 동수들은 아주 영리했다. 자유로이 한 명 혹은 두 명의 대륙 관광객이 따로 있을 때 대만 동수들은 그들에게 다가가 삼퇴를 권했으며 돌아와서 한 장의 종이에 뭔가를 메모했는데 나는 또 한명의 귀한 생명이 구도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法轮功学员在垦丁公园讲真相

法轮功学员在垦丁公园讲真相
컨딩 공원에서 진상을 알리는 파룬궁수련생들

오후에 시즈(西子)호수가의 다거우(打狗) 영사관을 참관했다. 이번은 내가 보았던 가장 격동되는 장면이었다. 입구 맞은편에 있는 한 대의 차량에 ‘공산당은 곧 해체될 것이다’, ‘7800만 명의 중공 탈퇴를 성원한다’ 등 진상 현수막이 승용차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차 위의 3개 스피커에서는 동시에 진상 방송이 울려 퍼졌다. 오른쪽에는 ‘파룬따파 하오’와 기타 진상자료들로 전체 벽면을 가득 메웠으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또 대량의 진상 전시판과 진상자료를 배포하며 진상하는 수련생들이 있었다. 작은 스피커에서는 은은한 대법음악 ‘제세(濟世)’가 들려왔고 젊은 남자 수련생이 2006년 션윈 CD를 나누어주었는데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장의 CD를 받았다.(지금 내 생각에 대만에서 션윈 CD를 나누어 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밍후이왕에서 일찍이 보도한 적이 있는데 션윈CD는 오직 대륙에서만 배포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륙에서는 현재 이미 2010년의 션윈 CD를 배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거우 영사관 앞의 진상 자료

打狗领事馆前的真相资料

打狗领事馆前的真相资料
다거우 영사관 앞의 진상 자료

여섯 째 날은 대륙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공항에서 우리는 가이드와 일일이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와 딸은 가장 마지막에 섰으며 딸 뒤에는 대륙에서 온 가이드였고 나는 대만 가이드에게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삼퇴를 했다고 알려주며 그에게 파룬따파를 지지하라고 하자 가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꼭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기에서 나는 나의 옆 좌석에 앉은 한 명의 남성에게 진상을 알려주며 그에게 작년 대만에서 열린 세계 운동회의 개막식에서(가이드가 우리에게 세계운동회를 이야기 해주었다.) 바로 파룬따파의 천국악단이 대만 대표단을 이끌고 입장했다고 알려주었다. 또한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불법이며 중공이 대학생들에 대한 박해 등도 이야기 했는데 그녀는 비교적 모두 찬성했다.

随处可见的真相横幅
곳곳마다에서 볼 수 있는 진상 현수막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대만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모에게 보여주었는데 보모는 우리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줄곧 파룬따파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진상 CD를 틀어주었지만 그녀는 보기 싫어했다. 사진을 본 후 그녀는 말하기를 대만에서도 파룬궁을 수련하냐고 물었는데 마치 그녀는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전파된 것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또 대만에서 가지고온 션윈CD를 그녀에게 틀어주며 다시 중점적으로 홍안석사(紅眼石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이튿날에는 또 ‘예언과 인생’ 및 2009년 션윈CD 등을 다시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이해됐다고 말했다.

회사에 출근한 후 대만 여행 정황을 회사의 아직 진상을 알리지 못한 몇몇 신입사원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그들에게 대만에는 60만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으며 파룬따파는 전 세계에 전파됐다고 알려줬다.

문장발표: 2010년 08월 20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0/2285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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