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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혹형 문제” 특별보고자가 중국 사찰을 끝내다 (사진)

글 / 리즈

[명혜망]

배경

유엔 “혹형 문제” 특별보고자 판무실은 유엔 인권위원회 산하의 인권기관이다.

유엔의 >의 정신에 기초하여, 유엔은 혹형 문제와 관련하여 인권방면의 많은 공약과 선언을 통과시켜왔다. 이러한 공약에 의거하여, 유엔은 세계의 각국의 정부들이 이러한 공약이 지시하는 인권조약과 표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위원회를 설립하고 특별조사자를 임명하였다. 이러한 조사단과 업무위원들은 유엔 인권조직 산하에 있다.

대부분의 이 특별 조사자들과 위원들은 인권과 법률 분야에서 존경받는 전문가로서, 유엔에서는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직장은 외부에 있다. 그들은 정상적인 일을 하는 한편 유엔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독립적으로 일하며 어느 정부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전문적이며 또한 자원봉사자들이기 때문에, 정부와 인권단체들은 그들의 업무를 높이 평가한다. 지역 당국이 그들의 조사에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찾아낸 것은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유엔 “혹형 문제” 특별보고자는 대체로 여러 나라의 혹형 문제를 조사할 책임이 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보통, 세계 각국의 저명한 인권활동가들이 이 특별 임무를 맡을 사람들을 추천한다. 특별 보고자는 4년의 임기가 있고 한 번 이상 일할 수 있다.

중공이 많은 정부에 뇌물을 썼기 때문에 중공의 인권기록이 유엔 인권위원회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피면해 왔지만, 인권 특별보고자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많은 특별보고자들의 연례 보고서에는 중공의 인권위반에 대한 비판이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보고가 보고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들의 보고에서, 세 명의 보고자들은 각기 중공의 만연된 고문사용을 엄중하게 비난했다.

10년이나 지연되다

1995년에, 중공의 혹형 사용빈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조사자 니겔 로드니 (Nigel Rodney)씨가 중국에서 조사를 해야 할 것을 요청했다. 유엔 특별조사자들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세계의 많은 정부에서는 어느 때라도 그들이 조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중공은, 그들의 행적을 덮어 감추려는 의도에서 조사자들이 자유롭게 조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은 요구를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중공은 최선을 다했다. 이것은 끊임없이 방문을 거절하거나 지연시킬 만한 일부 “특별 상황”을 중국에서 조작해내었다.

처음 중공이 채용한 수단은 조사자들에게 방문의 선행조건으로 비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예를 들면, 조사자들은 다만 몇 개의 지정된 감옥만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 정책에 따르면, 조사자는 어느 나라에서든 인권을 조사하는데 있어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다. 그는 정부에 알리지 않고 어느 감옥에나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정부관리가 참석하지 않고도 고문받는 사람 누구와도 인터뷰할 수 있고, 인터뷰를 받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보복을 받을 수 없다. 특별조사자들은 중공이 무리하게 제안한 요구를 단연 거절했다. 위원회는 국제표준을 견지하고 중공의 무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여행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나는 국제표준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공 관리들과 논쟁하던, 전임 조사자, 테오 반 보벤 (Theo Van Boven)을 직접 목격했었다.

해가 거듭되었지만, 유엔 조사자들은 원칙을 견지했다. 오랫동안 지연시키면서, 중공은 굉장한 국제적 압력을 이끌어냈는데, 모든 사람들이 중공이 왜 유엔 조사단 방문을 지연시키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이 없게 되자, 중공은 마침내 조사자가 국제표준에 따라 조사를 할 수 있다는데 동의했지만, 중공은 방문을 더욱 지연시키기 위한 장애를 배치했다. 예를 들면, 2003년 중공이 처음에는 SARS 전염병을 덮어 감추려고 최대의 노력을 했고, 그 다음에는 조사자가 중국에 오는 것을 막는데 SARS 문제를 이용했다. 작년, 중공은 테오 반 보벤씨의 방문을 의도적으로 7월 1일로 배치했다. 보벤씨가 떠나기 바로 직전, 중공은 그에게, “미안합니다, 전국이 지금 명절을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오라고 할 수가 없군요.”

중공은 자신이 선수를 썼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세계 각국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3월 제네바에서 인권회의 기간에, 보벤씨가 그에게 아직 비자와 비행기표가 가방 속에 있지만 여행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국 대표가 대답했다. “2003년에는 우리에게 SARS 문제가 있었고, 작년에는, 명절을 지내야 했습니다.” 방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굉장한 국제적 압력하에, 중공은 올해 미국이 중국의 인권기록 비난을 발의하지 않겠다고 동의한 대가로 조사자가 중국에서 현지조사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멤버들이 중국에서 실시한 인권과 혹형에 대한 첫 현지조사였다.

준비

오스트리아의 법률교수인, 맨프레드 노와크 (Manfred Nowak)가 올해 “혹형 문제”의 새 특별보고자가 되었다. 그는 유엔 역사상 첫 번째로 중국의 엄중한 인권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갔던 독립적 조사자였다. 주요 매체와 정치전문가들은 이것은 역사적으로 주요한 의미가 있는 사찰이라고 칭했다.

중공은 물론 이의 책략이 있었다. 유엔 조사자를 중국에서 조사하게 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기꺼이 협조”하는 것처럼 가장했다. 이것은 제네바에 있는 유엔본부를 부추기고 압력을 넣었으며, 조심스럽게 여행을 계획했다. 이것은 노와크 교수가 새로 임명된 조사자이고 유엔 사무실 내의 상호관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노와크 교수가 중국에 도착한 후 자신이 진행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와크 교수는 중공관리들과 논의하는 동안 친절하고 외교적이었다. 그는 중국정부를 향해 이해와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것은 그의 전임인, 반 보벤 교수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중공은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고 생각했다.

중공은 이것을 약점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질렀다.

조사와 방해

노와크 교수는 11월 21일 그의 공식적인 방문을 시작했다. 중공은 그의 호텔을 국가안전요원들로 채워놓았다. 그들은 노와크와 그의 대표자들의 전화선에 도청장치를 하고 그들의 일거일동을 감시했다. 중공은 조사자들이 가는 곳을 미리 알았다. 그들은 조사자들이 조사하려 했던 혹형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협하고 협박했다. 그들은 조사자들의 일부 계획에 혼란을 주려 했고 노와크 교수에게 조사할 시간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많은 공식적인 회의를 배치해놓았다.

노와크 교수는 중국과 유엔 내부 양쪽으로부터 오는 교란으로 조사를 방해받았다. 심지어는 지난시와 이닝시로 갈 그의 여행을 부득불 취소해야 했다. 하지만, 노와크 교수는 불리한 조건하에서 그의 조사 실행을 버텨나갔고 중공의 책략을 주목했다. 그리고 2주 후 세계를 향해 중공의 인권남용과 혹형을 폭로했다.

폭로

노와크 교수는 12월 2일 중국에서의 2주간의 조사를 끝냈다. 그는 같은 날 베이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계 각처에서 온 수백의 매체에서 이 사건을 보도했다.

기자회견에서, 노와크 교수는 그의 조사를 방해하려 했던 중공의 각종 교란을 일일이 폭로했다. 특히, 중국 국가안전부와 공안부 관리들이 그가 방문하고 있는 동안 그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제한했다. 노와크 교수는 어떤 형태의 교란도 규정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공은 사람들을 보내 위원회 멤버들을 따르고, 감시하고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한 조사팀에게 증거를 마련해주려고 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협박하고 위협했다.

특별조사자는 중공 당국이 다른 정부들과는 달리 그가 원하는 감옥에 가려는 그의 시도를 허락하지 않았고 완강히 거절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외무부의 한 관리를 그와 “동행”시켰다. 방문자들은 미리 알리지 않고 실행해야 했지만, 조사팀은 방문하기 한 시간 전까지는 외무부에 알려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고, 그런 다음에 관리가 이런 방문이 있게 될 감옥과 노동수용소에 알렸다.

특별보고자들은 그들이 여행하기 전에 국제표준을 따르겠다는 중공이 했던 거짓 약속을 폭로했다. 그들은 또 방문을 방해하려고 중공이 채용했던 책략들도 폭로했다.

조사자는 또 감옥당국이 제한된 작업시간을 핑계로 인터뷰할 시간을 제한했고, 그래서 방문할 장소의 숫자와 조사자가 인터뷰할 수 있는 재소자들의 숫자를 줄였다는 것을 지적했다. 노와크 교수는 반복해서 그의 여권을 제시하고 모든 전자제품들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조사하는데 사진 찍는 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임무임에도, 그는 감옥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노와크 교수는 그가 재소자들과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의로 감방 안으로 들어가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때로는,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이 보복과 박해가 두려워 그를 만나기를 거절했다. 여러 다른 재소자들은 그들의 대화를 비밀로 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재소자들과의 대화와 관련하여, 노와크 교수는 분명한 두려움과 자아-구속을 보았는데, 이것은 그가 다른 나라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와크씨는 이것은 “공포문화”라고 불렀고 그는 다른 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진상

중공이 조사자들과 위원회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제한하는데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조사자들은 여전히 중공이 널리 사용하고 있는 혹형의 중대한 증거를 보았다. 12월 2일 베이징에서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노와크 교수는 혹형은, 사람들에게 “행정법”이 다른 곳보다 좋다고 고려되는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사법제도는 넓은 범위에서 아직도 자백을 강제로 받아내는데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제도를 가지고 있다. 고문은 자백을 받아내고, 사람들을 벌주거나 사람들을 세뇌시키는데 사용되었다. 노와크씨는 중국에는 희생자들이 청원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고 말했다. 소위 감시제도의 관리들은 감시원과 경찰을 감시하는데 적합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정부의 명령을 따르고 경찰과 감시원들처럼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문은 중국노동수용소에 만연되고 있으며, 감시원들은 거의 체크를 받지 않고 그러한 고문을 관리하고 있다.

노와크씨는 그의 전임자들이 중국에서의 고문과 다른 형태의 학대와 관련된 많은 불평을 받아왔으며 중국정부에, 이에 대한 조사와 의견을 달라고 자료를 넘겨주었다고 말했다. 혹형은 조직적이며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들과, 티베트 사람들, 신장에 있는 위구르 소수민족, 정치범들, 인권 활동가들, 그리고 하우스 교회의 멤버들을 표적으로 한다.

노와크 교수는 일부 고문방법들을 열거했는데, 구타, 전기봉 충격, 담뱃불로 지지기, 장기간 수갑이나 족쇄를 채워 독방에 가두기, 물이나 하수구물에 억류자들을 잠겨있게 하거나, 극심한 열 또는 추위에 노출시키고, 억류자들을 장기간 강제로 불편한 자세로 있게 하는 것 중에는 앉거나, 쭈그리고 있거나, 눕거나, 서 있거나, 또는 그의 몸을 팔로 지탱하게 하거나 하는 것이다. 억류자들의 신체 밑에 물건을 놓고 그에게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하게 한다. 장기간 독방에 가두어 두고 병을 치료하지도 약도 먹지 못하게 하고, 중노동, 그리고 수갑으로 매달아 둔다. 때로는 특별 고문방법으로 호랑이 의자와 같은 것이 있다. 작고, 등성이 있는 몇 인치 높은 걸상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 “나는 비행기”는 억류자에게 강제로 앞으로 굽히게 해서 그의 다리와 함께 단단히 묶고는 그의 팔을 몸 위로 높이 들게 한다. “독수리 끓이기”에서는, 억류자를 강제로 높은 의자 위에 서 있게 하고 감시원이 지칠 때까지 구타하는 것이다. 조사 동안에 모은 정보에 따르면, 노와크씨는 이 모든 방법들이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노와크씨는 중공이 견정하게 불복하는 사람들을 고문하여 그들의 마음과 위엄에 손상을 주기 위해 심리적 요법 시설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 정신적 쇼크나 육체적인 상처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특히 당국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따로 가장 잔혹하게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종종 재판 없이 그들을 노동수용소에 가두고 그들을 세뇌시키려고 한다. 파룬궁 수련생들을 강제로 오랜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자세에 머물러 있게 한다. 이 고문으로 고통을 받았던 한 민주주의 인사가 노와크씨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을 “부드러운 칼로 죽이기”라고 불렀다.

비난

노와크 교수는 중국에 “노동재교육”제도를 철회하고, 모든 노동수용소를 폐지하며 고문방법으로 정신병치료 사용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정부는 혐의자가 침묵할 권리를 주어야 하고 고문을 통한 자백 받아내기를 폐지해야 한다. 중국정부는 기본 국제인권 원칙과 유엔 헌장을 따라야 한다. 중국정부가 중대한 법제개혁을 실행하고 독립적인 사법제도 건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중국에서의 혹형은 효과적으로 통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노와크씨가 말했다.

그는 “공포문화”가 널리 실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판공실에 고문 진술서를 썼던, 일부 죄수들조차도, 조사 동안에는 그들이 고문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또는 그들이 고문의 상세한 것을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와크씨는 그들에게서 두려움과 자아-구속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와크씨는 또 중국은 “국가안전을 위험하게 한다”, “사회안전을 혼란하게 한다”라는 죄목은 중국정부가 해석할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정치범의 개념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옥, 간수소, 정신병원과 다른 장소에서 강제노동이나 다른 형태를 통해 세뇌시키는 것을 철폐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인권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다만 어떤 행동이 미움과 폭력을 선동하거나 직접 국가나 공안을 위협할 때에만 정치적 의견, 종교적 믿음, 도덕의 가치, 또는 소수의 의견을 발표하는데 개입할 수 있다.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국가 위주의 감시나 “노동 재교육”을 통해 시민들을 혹독하게 벌을 주는 것은 인류문화 위에 만들어진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감시는 두려움, 복종, 자아-구속과 “공포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것은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대우나 벌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피하는 권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매 사회는 > 제10조를 지키고 실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즉, “자유를 빼앗긴 모든 사람들도 인간애와 인간의 존엄성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예외적인 환경을 제외하고, 고발당한 사람들은 유죄가 입증된 사람들과는 분리되며 유죄가 입증되지 않은 사람들로서의 상태에 적합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교도소 제도의 필수적인 목적인 그들이 개선되어 사회로 복귀한다는 목적에서 취급되어야 한다.”

중국의 “노동 재교육” 제도와 감옥과 간수소의 정책은 억류된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범죄를 뉘우치게 하는 조치와는 상반되어 있다. 왜냐하면 제도의 목적이 억류된 사람들의 의지를 파괴하고 그들의 인격을 개변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치는 > 제7조와 제10조 및 > 제1조와 제16조의 인격의 보호를 위반하는 것이다. 강제노동 자체는 인신의 자유, 기본인권을 엄중하게 침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조직적으로 비인간적인 처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비슷한 조치가 노동수용소, 감옥, 간수소와 정신병원으로부터 폐지되어야 한다.

노와크 교수는 내년에 중국사찰보고서를 유엔인권위원회에 정식으로 제출할 계획이다.

반향

기자회견 후, 베이징의 많은 매체는 서둘러 조사결과를 각종 언어로 발표했다. 이런 기사들의 일부 제목에는 “유엔: 혹형은 중국에서 여전히 만연되고 있다.”, “유엔이 중국에서 만연되고 있는 혹형 사용을 맹렬히 공격하다,” “중국은 혹형을 중지시킬 중대 개혁이 필요하다.” 각국의 라디오와 TV방송에서는 노와크 교수의 연설을 방송하고 혹형 사진과 중국의 노동수용소의 사진들을 내보냈다. 유엔의 중국에서의 혹형 조사는 많은 웹 사이트의 톱뉴스가 되었다. 지금 중공은 혹형과 연결되어 있다.

* 기대

혹독한 비판을 마주하고, 중공은 처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것은 톈안먼 광장에서의 분신-자살극 사건이 있은 후의 재빠른 반응과는 뚜렷이 대조되었다.

물론, 중공은 사실을 부인하고 노와크가 중국에서의 혹형 문제에 관한 지식이 제한되었다고 주장했다. 중공은 특별보고자의 결과보고를 맹렬히 부정했는데, 이것은 다만 자체에 더 많은 압력을 가져올 뿐이다. 만약 중공이 노와크 교수가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의 조사를 막고 방해했는가?

발표일자: 2005년 12월 18일
원문일자: 2005년 12월 18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12/8/116107.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12/18/680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