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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사막의 영단묘약: 덕으로 심성을 수양하고 덕으로 몸을 수양하다

글/ 중국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손사막(孫思邈)은 산시(陝西)성 요(耀)현 손가원촌(孫家原村) 사람이며, 중국 역사상 유명한 대의학자이자 약학자다. 그는 141세까지 산 후에 신선이 됐다고 전해진다.

손사막은 세 개의 조대(朝代)를 경험했고, 명리(名利)를 담담히 보았으며, 벼슬을 동경하지 않았다. 후주(後周)의 선제(宣帝)와 정제(靜帝)가 그를 등용하려 했고, 이후에 수(隋)의 문제(文帝)도 국자박사(國子博士)로 삼으려 했으나 그는 모두 사양했다. 그는 늘 가까운 사람에게 말했다. “50년이 지나면 성인이 나타나는데,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그를 도와 세인을 구제할 수 있다.”

당태종이 즉위해 손사막을 초빙하는 조서를 내렸다. 태종은 범인을 초월한 그의 풍격과 젊은 용모를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이래서 도를 얻은 사람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하는군요! 선문(羨門)이나 광성자(廣成子)같은 신선이 원래 세상에 있었거늘, 어떻게 빈말이라 하겠습니까?” 당태종이 그에게 작위를 주려 했지만 그는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았고 자신을 수양하며 창생을 구제하기만을 바랐다.

손사막은 일생 덕을 쌓는 것을 기본으로 창생을 구제했다. 그는 ‘천금요방(千金要方)’에 이렇게 썼다. “덕행이 모자라면 옥액금단(玉液金丹)을 먹어도 장수할 수 없다.” “도덕이 날로 온전해지면 빌지 않아도 복이 있고,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장수하게 된다.” 뜻인즉, 만약 사람의 도덕이 좋지 않으면 곧 선단묘약(仙丹妙藥)을 먹어도 장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도덕이 고상하고 훌륭하면 장수를 빌지 않아도 많은 복을 누리고 장수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진리다.

난세에 의술을 펼치고, 무상 진료로 인삼을 얻다

수나라 말기에 천하가 혼란했지만 손사막은 여전히 도처에서 의술을 펼쳤다.

손사막이 의술을 펼치며 산시성 주장(九江) 경계에 도달한 어느 날, 뜻밖에도 산 하나를 점령하고 왕 행세를 하던 도적에게 ‘첩자’로 오해받는 일이 생겼다. 당시 손사막은 이미 70세였으나 젊은 사람으로 보여 첩자가 됐고 산채(山寨)로 납치됐다.

누군가가 산의 왕에게 이 사람은 첩자라고 했다. 손사막은 산의 왕에게 말했다. “저는 첩자가 아닌 의원입니다. 이미 70세인데 어떻게 첩자가 되겠습니까?” 보기에는 겨우 30~40세였으므로 도적떼는 기이하게 생각했다. “설마 당신이 신선이란 말이요?”

산의 왕이 보니 과연 의원이었으므로 그를 머무르게 하고 산에 있던 사람들을 치료하게 했다.

산의 왕은 원래 의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본 대왕이 이렇게 튼튼한데 어떻게 그런 많은 병에 걸릴 수 있겠소?” 그러나 손사막이 말했다. “가슴과 배가 부풀고 건조하며, 소변이 잦고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고, 일찍 일어나면 입이 쓰고, 잇몸에 출혈이 있지 않습니까?” 산의 왕이 듣고는 놀라서 손사막이 보통 의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산의 왕과 의형제를 맺은 한 사람은 중병을 앓고 있었지만 핵심 약재인 인삼이 산채에 없어 하산해 사와야 했다. 손사막이 왕에게 설명하자 그가 말했다. “빼앗으라, 가서 빼앗아 오라.” 손사막이 황급히 그런 방법은 부당하다며, 병을 고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 그릇된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채에는 비싼 인삼을 사러 갈 만한 은전이 없었다. 손사막은 만약 하산을 허락해 준다면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의 왕은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우려해 한 사람을 붙여 보내면서 6일의 시간을 주었다. 손사막은 환자를 구하기 위해 산채로 돌아올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산 아래 인삼이 있는 약방에 도착한 손사막은 3일간 진료를 해줄 테니 처방에 필요한 인삼 3냥을 보수로 달라고 제안했다. 주인은 점원 한 명을 불러 그의 의술을 시험했다. 손사막은 진찰 후에 위가 차고 복부가 팽창해 있으며, 이미 3년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은 놀라워하며 다른 조건을 제시했는데, 8일간 약방을 운영해달라며 그렇지 않으면 인삼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손사막은 6일이라는 약속 시간과 부가 조건을 제시했다. 6일 동안 하되, 일을 서두르면 하루에 이틀치 일을 할 수 있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오겠다며 군자의 말이니 다시 거둘 수 없다고 했다.

손사막이 진료를 시작하자 날마다 환자가 많아졌다. 3일이 지나자 진찰한 사람 수가 그 약방이 개업 후 반년 동안 받은 사람 수를 초과했다. 환자는 계속 밀려왔고 문을 닫는 시간이 아주 늦어졌다. 손사막은 몹시 피로했지만 버텨냈다. 주인은 받은 돈이 너무 많아 마대에 담았다.

6일 후, 마침내 인삼 3냥을 받았다. 그가 산채에 돌아오자 이미 상황을 알고 있던 왕이 감격해 상을 주겠다고 했다. 산채의 환자는 약을 먹은 후 즉시 증상이 호전됐다. 왕의 호의를 들은 손사막은 오히려 상을 정중히 거절하고, 하산해 주장(九江)의 원래 태수를 만나달라는 부탁만 했다. 산의 왕은 손사막의 일언천금같은 품성에 감동해 시원스럽게 승낙했다.

수나라 말년에 아둔한 군주인 양광(楊廣)이 정권을 잡으니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가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손사막은 동요 없이 죽을 사람을 구하고 부상자를 돌봤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순수하게 선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고, 빈부귀천을 조금도 가리지 않았으며, 그와 만난 모든 사람을 지극한 선함으로 감동시켰다. 이른바 ‘의술을 행하는 사람의 어진 마음을 갖고 인명을 가장 귀중하게’ 여겼으며, 난세 속에서 자신의 본분에 맞는 모습을 체현했다.

고대인은 어떤 것이 고상한 경지인지 이야기할 때 ‘진선진미(盡善盡美)’라는 말을 썼다. 다시 말해 하나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든 개의치 않고 진심으로 성의를 다해 진력하며, 자신을 잊는 정도에 도달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사람들을 찬탄하게 하는 미덕이라고 했다!

덕으로 심성을 수양하고 덕으로 몸을 수양하다

손사막이 중원의 초작(焦作) 일대에서 의술을 펼친 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는 작은 산촌의 한 집에서 살며 문 앞에 작은 탁자를 놓고 환자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진료했고, 환자와의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했다.

손사막은 환자를 보면서 원가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약값만 받았다.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약간의 돈도 받지 않았으며 사실상 무료 진료를 했다.

손사막은 환자에게서 적은 비용을 받거나 받지 않는 것을 견지했고, 다른 의원들이 떠들썩하게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거워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했다. 손사막은 이렇게 썼다. “(환자가) 혼자 고립되어 있고 온 집안이 침울한 데다 환자가 고통을 받고 있으니 모두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원이 태평하게 즐거워하고 잘난 체를 한다면 사람과 귀신이 모두 부끄러워하고, 성인이 하지 않는 일이자 의원의 본분을 저버리는 짓이다.”

시골에서 의술을 펼치는 손사막의 명성은 날로 퍼져나갔고 진찰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다. 그는 환자가 너무 멀리서 달려오지 않도록 ‘순회 진료’ 방식을 도입했다. 즉, 한 곳에서 일정한 시간을 머무르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 될수록 넓은 지역의 환자를 고루 돌봤다.

그는 ‘대의정성(大醫精誠)’에서 “무릇 큰 의사는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정신을 안정시키고 의지를 굳게 하며 욕심이나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먼저 큰 자비와 측은지심을 낼 것이며, 인간의 고통을 널리 구하겠다는 서원을 가져야 한다. 빈부귀천, 나이와 외모, 원한과 친분, 민족과 지적 수준을 따지지 말고 똑같이 대하며, 모두 육친으로 여겨야 한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사람의 목숨은 천금만큼 귀하다. 한 사람을 도우면 덕이 그것을 능가한다.” 그래서 자신의 저서에 모두 ‘천금(千金)’이라는 두 글자를 써넣었다. 그는 덕으로 수양하고 스스로 모범이 됐으며, 흔한 질병에 대한 처방을 비석에 새기고 길에 세워 사람들이 스스로 처방에 따라 치료하게 했으며, 적은 돈도 받지 않았다.

손사막은 덕으로 심성을 수양하고 덕으로 몸을 수양[以德養性, 以德養身]했으며, 중화 5천 년 전통 문명 속 ‘천도를 경외하고, 덕을 근본으로 삼는다[敬畏天道,以德爲本]’는 말의 깊은 의미를 펼쳐 보임으로써 후세인들이 중국의 도덕 전통을 이해하는 데 본보기가 되고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0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3/10/4219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