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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신 아버지의 기사회생

글/ 쓰촨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버지는 82세이며 쓰촨성 쑤이닝(遂寧)시 출신이시다. 11년 전부터 여동생들과 함께 윈난에서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고 계셨다.

아버지는 몇 년에 한번 씩 고향에 다녀가시는데 나는 그때마다 감히 아버지와 만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파룬따파 수련으로 2007년부터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 동짓달 초에 나는 연속 6번이나 꿈속에서 아버지와 만났다. 나는 사부님께서 어떤 점화를 주시는 것이라 짐작했고 아버지에게 혹시 큰 난이 온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문화대혁명 초기에 나는 13살이었다. 아버지는 집권파로 붙잡혀 판결을 받았다. 그때 뤄이중(羅益中, 재작년 8월 2일 자기 집 화장실에서 사망)은 큰 소리로 외쳤다. “뤄순성(羅順生)을 압송해오라!” 그러자 두 명의 홍위병이 아버지를 투쟁대로 올려 세웠다. 뤄이중은 아버지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머리 숙여!” 아버지는 온순하게 투쟁대에 서 계셨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왔다. 6명 자매 중 내가 가장 커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999년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했다. 2000년 나는 베이징으로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 그때 아버지는 나의 보서(寶書) 10여 권을 불태웠고 여러 차례 욕을 하셨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투쟁 역사를 겪은 터라 두려워했다. 그러나 대법 경서를 소각하면 얼마나 큰 죄인가!

동짓달 초여드레 밤, 아버지는 화장실로 가는 입구에서 크게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생명을 잃을 뻔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가짜 틀니를 다 걷어내고 신발도 태웠다. 병원에 가도 의사는 치료하지 않았으며 어서 집으로 모셔가라고 했다. 10여 명이서 차 두 대를 번갈아가며 운전해 밤새워 아버지를 고향에 모셔왔다. 초열흘에 집에 도착했으나 아직 숨이 남아있어 또 병원에 갔다. 의사는 “10일내로 묻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10일 정도 살 것이라는 뜻)

나는 붙잡힐 위험성이 있었으나 12일 밤 11시경에 걸어서 고향에 도착했다. 모든 사람이 잠들었다. 장거리를 운전해서 모두들 너무 지쳐있었고 오직 아버지만 임시로 만든 침대에 누워계셨으며 어머니가 옆에서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요 며칠 모두 너무 힘들었다, 쟤들 좀 자게 놔둬라.” 아버지는 두 눈을 굳게 감으셨고 입술마저 줄어들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정말로 뼈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세 번 염했다. 아버지는 인기척을 하셨고 나는 아버지를 불렀다. “만만(滿滿, 만만은 지방 방언이며 아버지라는 뜻), 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세요.” 나는 사부님의 설법 mp3를 귀에 꽂아드렸다. 5분 뒤 입술이 움직였고 무엇을 말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안 될 것 같다. 죽을 것 같다”라고 하셔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돌아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세요. 리 대사님께 구해달라고 청하세요.”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만만, 2000년에 제 대법 책을 태우셨으니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세요. 제가 성명서를 써서 사부님께 보낼 것입니다. 사부님은 자비로우셔서 반드시 아버지를 구하실 것입니다. 만약 잘못을 시인한다면 머리를 끄덕이세요.”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리 대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어서 떠나거라. 그렇지 않으면 저것들이(현지의 파룬궁을 전문 박해하는 사람) 나에게 찾아와널 내놓으라 할 거야.”

아버지의 정신은 여전히 또렷했다. 이렇게 수년간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 반시간도 안 되게 만나 뵙고 떠났다. 아쉬운 것은 여동생과 남동생들이 모두 위층에서 자고 있어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수년간 동생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나는 집을 떠나 칠흑 같은 밤길을 걸어 겨우 내가 사는 곳에 도착했다. 나는 즉시 사부님 법상 앞에 합장하고 말씀을 올렸다. “사부님, 제 아버지가 11일 동안 살 수 있음은 모두 사부님의 자비이십니다. 대법의 신적(神跡)입니다!” 나는 즉시 컴퓨터를 켜고 아버지를 대신해 정중성명을 작성해 밍후이왕에 투고했다.

동짓달 초열흘, 10여 명이 차 두 대로 비통한 심정으로 아버지를 고향에 묻으려 함께 왔고 18일 후 이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윈난으로 돌아갔다. 지금 1년이 지났고 아버지는 돌아가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혼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셨다.

아버지가 오늘까지 살 수 있음은 사부님께서 구해주셨기 때문이며 대법이 신적을 펼쳐낸 것이다. 우리 온 가족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하며 파룬따파가 아버지를 구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아버지가 고향에 18일간 머무르는 사이 많은 사람이 문안을 다녀갔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지었다. 그 뒤 무릇 아버지를 알고 문안 다녀갔던 사람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버지의 기사회생에 놀라워했다. 그들이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기 바라며 대 재난을 무사히 지나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1월 13일

문장분류: 천인지간(天人之間)>인과>선에 대한 보답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3/3220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