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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대퇴골 괴사 환자가 대법을 수련하여 죽을 고비에서 소생하다.

글/헤이룽장 빈현(賓縣) 마중보(馬忠波)

【명혜망 2004년 12월 4일】우리 마을 사람들은 전에 우리 집이 나의 병 치료 때문에 궁지에 몰려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내 병이 파룬궁을 수련하여 낫게 되었는데, 내가 “대법이 좋다”는 진실을 말했다고 하여 구류하여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고, 박해로 목숨이 위태로워 졌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내가 집으로 돌아온 후 연공을 하여 신체가 회복되면 또 다시 나를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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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마중보로서 올해 32세인데, 1998년 다리가 너무 아파 성립(省立)병원과 하얼빈 의과대학에 가서 검진한 결과 디스크(요추간판 헤르니아) 및 좌측 대퇴골 철결핍성 괴사였다. 그 당시 약을 한 번 짓는데 약 2천 위안이 들었으며, 게다가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 오진으로 인해 병 치료에 만 위안(元)이나 썼다. 그 때부터 나는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는데, 약을 반년이나 먹었지만 치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병은 더욱 심해졌다. 연말이 되어 두 다리는 더욱 아팠으며 쌍지팡이를 짚어도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1999년 2월, 어떤 사람의 소개로 하얼빈 북방 대퇴골괴사연구소 장롄시(張連喜) 의사를 찾아갔을 때 나는 걸을 수가 없어서 언니가 나를 업고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2층에 올라갔을 때도 너무 아파 바닥에서 막 기어 다녀야 했다. 그 곳 병원에서 검진해보니 양측 대퇴골괴사 2기라는 결과가 나와 약을 한 첩 짓는 것에만 2천 여 위안이 들었다. 의사는 말하기를, 8개월 후에야 사진을 찍어 그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싸늘해 졌다. 이 한 장의 진단서는 나를 놓고 말하면 그야말로 사망 진단서였다. 8개월 약값만 해도 만 위안이 넘는데 어디 가서 그 많은 돈을 빌린단 말인가?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지쳤으며 온 종일 눈물만 흘리며 살았다. 여러모로 수소문 해 보았지만 모두 나의 병은 불치병이라고 했다. 가령 치료한다고 해도 10만 위안을 써야 한다는 소리에 나는 너무나도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나의 병 치료에 빚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집까지 팔았는데 어떻게 또 돈을 빌린단 말인가? 우선 6살 되는 딸을 친정집으로 보내 키우게 했다. 나는 절망 속에서 마지막으로 친정집에 가서 부모님, 딸과 함께 단란하게 설을 쇠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는……

친정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매일 나를 이 방에서 저 방, 저 방에 이 방으로 업고 다니면서 시중을 들었다. 예전에 나는 늑막염, 담낭염, 심근염, 견주염(肩周炎)등 10여 가지 병이 있었다. 게다가 온 몸의 혈맥이 잘 통하지 않아 더욱 심각한 병증세로 변하였다. 병통은 나로 하여금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으며, 매일 밤 나는 이불을 쓰고 울었는데 죽고 싶어도 어린 딸을 내버려 두고 죽을 수 없었다. 이런 나의 처지야말로 하늘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땅을 불러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의 상태가 이렇듯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80세의 외할머니께서 사촌동생을 데리고 나를 보러 오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외할머니 댁에 가서 파룬궁(法輪功)을 배우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파룬궁이 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다만 내가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 곁에서 자랐기 때문에 죽기 전에 외할머니와 한동안 생활하고 싶은 마음으로 외할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다. 정월 21일, 외할머니는 나에게 『전법륜』을 읽으라고 주셨는데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법리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한 부의 천서(天書)인데 여태까지 왜 나에게 알려 준 사람이 없었는가? 인간 세상에 이렇게 귀중한 책도 있단 말인가? 이틀 반의 시간에 나는 『전법륜』을 한 번 읽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사촌 남동생이 휠체어로 나를 연공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한지 사흘째 되는 날 저녁부터 닷새째 날 아침, 나는 마치 병이 없는 듯 하였다. 나는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걸을 수 있어서 흥분하여 “다리가 나았습니다! 나는 걸을 수 있어요!”라고 고함쳤다. 나는 한편으로는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한 편으로는 걷잡을 수 없이 웃었더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남편이 나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고, 우리는 다시 가정을 이루고 온 가족이 이때로부터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1999년 7월 20일, 장(江)씨 망나니 집단이 정부를 조종하여 파룬궁을 탄압하였으며 사악한 거짓말은 천지를 뒤덮어 많은 세인들을 속였다. 2000년 4월, 나는 하얼빈시 북방 대퇴골괴사연구소에 사진을 찾으러 갔다. 의사는 나의 걸음걸이가 정상인 것을 보고 의아해 하며 물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업혀온 그 대퇴골괴사 2기 환자가 아닙니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나의 진료기록을 보더니 약을 한 첩만 지어주며 말하기를. “이것은 약을 먹고 나은 것이 아닌데 빨리 말해 봐요, 당신은 어떤 “엉뚱한 짓”을 했어요?” 라고 하였다. 나는 “엉뚱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여 나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 의사가 말했다. “이러한 기적이 나타났는데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도 당신은 왜 일어나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가? ” 나는 의사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으며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CT사진과 진단서를 가지고 아청(阿城)시 민원 사무실로 갔다. 나는 정부가 왜 파룬궁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는지 물으면서,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에 나타난 기적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한 후, 나는 악인에 의해 시(市) 610 사무실에 보내졌으며 이어서 시 공안국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난 기적이 변하지 않는 철과 같기에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다만 나에게 청원하러 가지 말라고 경고만 했다. 나는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공법(功法)을 사람들이 함부로 모욕하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나는 북경에 청원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북경에 청원하러 간다고 하자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가지 않아도 되지만 너는 가야한다. 너의 생명은 대법이 준 것이다. 네가 북경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 식구들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그저 네가 마비되었을 때 죽었다고 생각하겠다.” 집에서는 또 나에게 줄 여비를 빌려오기도 했다.

2000년 6월, 나는 북경에 청원하러 가서 대법을 위해 바른 말을 하였는데 아선허(阿什河)파출소 사람에 의해 압송되어 아청시 제2구치소에 감금되었다. 감금되어 있는 기간, 나는 단식을 하면서 무죄석방 할 것을 요구했다. 교도원은 아청시 병원의 의사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투입하였다. 호스를 콧구멍에 꽂아 넣었는데 몇 번 넣어도 들어가지 않고 입으로 나왔다. 한 번은 호스를 일곱 번이나 꽂았다. 매번 꽂을 때마다 콧물, 눈물이 흘러나왔는데 정말 고통스럽기가 그지없었다. 그들이 부어넣은 음식물에는 고의적으로 소금과 술을 넣었다. 술을 넣은 목적은 나에게 마시도록 하여 공을 녹여버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마지막 한 차례 음식물 투입은 시립병원의 의사가 술을 넣은 음식물을 부어넣었는데, 호스를 뽑자마자 음식물이 뿜어져 나와 그 의사의 온 몸에 튀었다. 그들은 일이 생기면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황급히 도망갔다. 이렇게 나는 두 달간 갇혀 있다가 비로소 석방되어 나왔다. 악경(惡警)은 기회를 노려 우리 가족들에게 3,500위안을 갈취하였다.

2000년 10월, 나는 재차 북경에 청원하러 갔다. 중남해 경비서(警衛署)에서 악경은 전기봉으로 나를 때렸지만 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아선허 파출소에서는 재차 나를 압송하여 아청시 제1구치소에 가두어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법으로 노동교양 1년이란 판결을 한 뒤 하얼빈시 완쟈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냈다. 3대대에서 나는 3일 동안 쇠 의자에 앉혀 있었으며 악경은 나에게 밤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또 나를 남자 대대에다 가두기도 해서 나는 단식을 하면서 항의하였다.

2001년 6월, 노동교양소에서는 대법 수련생을 핍박하여 보증서를 쓰게 하였고, 여자 대법 수련생을 남자 대대에 보내어 박해하였다. 대법제자가 이런 행위는 국가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즉시 지적하였더니, 소장인 스잉바이(史英白)는 손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누가 법인가? 대문을 닫으면 내가 바로 법이다.“ 고 했다. 그 당시 4명의 남자 경찰과 1명의 여자 경찰이 나의 머리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끌고 다니며 발로 차고 때려서 나의 뒷잔등과 두 다리는 끌려서 상하고, 발뒤축에는 피가 났다. 나는 남자 대대에 9일간 갇혀 있으면서 쪼그리고 앉아 있기를 2박 1일 동안이나 하였다. 나의 오른쪽 발은 고름이 생겨 썩기 시작했으며 신발보다 더 크게 부어서 그들은 나에게 남자 교도관의 낡은 신발을 신겼다. 내가 쪼그리고 앉아있지 조차 못하자 그들은 나의 두 팔을 2층 침대에 달아매었는데, 아파서 정신을 잃으면 풀어주고 깨어나면 또 쪼그리고 앉게 했다. 그들은 또 나를 딴딴한 쪽걸상에 며칠 동안이나 그대로 앉아있게 하여 엉덩이가 다 썩었으며 피고름이 바지에 달라붙었어도 씻지 못하게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남자대대에서 나오자 나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발이 썩어 20여 일간을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으므로 날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밥 심부름을 하였다. 또 발길질에 차여서인지 유방도 붓기 시작했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구토까지 하였다. 또 온 몸에는 옴이 생겨 가렵고 아파서 밤새 자지 못했다. 낮에 나는 또 악경의 핍박에 의해 일을 해야 했는데 마대를 짜고 이쑤시개를 골랐다. 이렇게 나는 20여 일간 시달림을 받았다. 어느 날 유방에 큰 구멍이 생겨 피고름이 반 대야나 흘렀으며 온 유방이 썩어서 텅 비게 되자 노동수용소에서는 나를 하얼빈시 모 병원에 보내어 진단을 하였다. 진단 결과는 유선암이었다. 그날 밤, 노동 수용소에서는 아청시 610과 공안국에 전화를 해서 나를 데려가게 하여 이튿날 나는 가족들에 의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시달림을 받아 피골이 상접하였으며 온 몸에는 힘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는 모두 나를 보고 살 희망이 없다고 했다. 이웃집 언니는 말하기를 “당신은 대퇴골 괴사가 연공하여 나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당신이 이 유방도 연공을 하여 낫게 하면 우리 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을 믿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한 수련생은 나를 보러왔다가 나의 이런 상황을 보고는 나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동수 집으로 간 그날, 수련생은 나보고 연공을 하겠는지를 물었다. 당시 나는 서 있어도 막 떨렸으며 허약하기가 말이 아니었다. 유방은 벌겋게 부어 고름이 흘렀고 겨드랑이 아래와 팔에는 큰 혹들이 기득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나는 연공인이며 사부님께서 관여하고 계시는데 뭐가 두려운가? 나는 연공을 하겠다고 했다. 4장 공법을 하고나자 원래 허약하던 내가 뜻밖에도 온 몸이 가볍고 힘이 있었으며 유방의 붓기도 갑자기 빠졌다. 동수의 남편이 이 신기한 변화를 목격하고는 연신 말했다. “ 내가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누가 말해도 나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동수의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거의 20일간 하였는데 나의 신체는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동수 집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은 마침 나의 시아버지 66세 되는 생신이어서 친지, 친구들이 모두 왔다. 그들은 내가 불그래하고 윤기 있는 얼굴로 돌아온 것을 보자 모두 놀라워했다. 이웃 언니는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말하기를 “ 파룬궁은 정말 좋습니다. 우리 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탄복합니다.” 연말이 되어 아청시 610과 공안국에서 또 구실을 만들어 나를 잡아갔다. 나를 잡아갈 때, 8세인 딸은 한사코 차 문을 쥐고 놓지 않으며 큰 소리로 울면서 자기도 잡아가 엄마와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악경들이 이유 없이 무고한 사람을 잡아간다고 질책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이전에 여러 가지 병이 있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우리 집이 이미 궁지에 빠져있었는데 마침 파룬궁을 수련하여 병이 다 나았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그저 “대법이 좋다”는 말을 하였다고 하여 오늘 감옥에 보내지 않으면 내일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고, 사람이 죽어갈 때에야 돌려보내며 집에 돌아와서 수련하여 나으면 또 잡아가는데, 이것이 무슨 세상이란 말인가? 나는 재차 아청시 제1구치소에 감금되었다. 그 곳의 열악한 환경으로 나의 몸에 다시 옴이 번졌고 유방도 다시 썩기 시작했다. 소장은 내가 구치소 안에서 죽을 까봐 두려워 나에게 보석하여 치료할 수 있게 조치를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여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 낫게 되었다.

선량한 사람들이여! 나는 다만 천천만만 파룬궁 수련자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나의 신체 변화만 보더라도 파룬궁이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튼튼히 하는 신기한 효과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가? 또 파룬궁은 나라와 인민에게 유익한 고덕대법(高德大法)이라는 것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가? 당신이 도리를 따져 생각해 보라. 내가《헌법》이 부여한 공민의 권리에 따라 청원을 하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법을 어겼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잔인무도한 박해를 받아야 하는가?

문장 완성: 2004년 12월 3일
문장 발표: 2004년 12월 4일
문장 갱신: 2004년 12월 4일 18:33:52
문장 분류: [천인사이]
원문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2/4/906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