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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질풍 경초(疾風勁草) >(7)

문장/중팡츙(钟芳琼)
【명혜망 2004년 7월 22일】

제6부 대법 중에서의 바른 믿음

머리말: 정법 중 나는 대법의 신기함을 몸소 체험했다.

제1장 도깨비 세상

-경찰과 강도

요즘 민간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 옛날 도적떼(土匪)는 심산 속에 있었는데 지금 도적떼는 공안내부에 있다. 십악(十惡)에 독해된 이 세상은 정말 너무나 엉망진창이다.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나누어 주다가 잡혔는데 나도 말려들었다. 2002년 4월 2일 오전, 호적관리경찰(戶警) 웨이다핑(魏大平)이 내가 파출소에 도착 신고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출소에 데려다 놓고 전화를 걸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때 청화(成華)구 610, 완낸창(萬年場)파출소, 사무소와 젠양(簡陽)시 610, 국안대(國安隊), 윈룽전(雲龍鎭) 파출소 등 10여 명이 우리 집을 벌컥 뒤집어 놓았는데 심지어 베란다에 놓아둔 타구[역자주: 가래나 침을 뱉도록 만든 그릇]도 뒤져 보았다.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집안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영화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어떤 경찰은 계속 트렁크와 옷장을 뒤집으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기회를 타 이득을 보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먼저 번에 집을 수색하면서 집수리하고 남은 에어콘선 한 묶음을 가져갔다.) 갑자기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떤 사람은 못 봤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 전에 확실히 보았으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은 웨이다핑과 다른 한 경찰에게 억지로 나를 3층에서 끌어 내리라고 하였는데 나의 두 무릎과 발등이 계단에 긁혀 피가 났다. 끌려가면서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경찰이 좋은 사람을 붙잡아 가요. 경찰이 좋은 사람을 붙잡아 갑니다… …”

우리 집 아래층에는 찻집이 있는데 그때 진상을 모르는 군중들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고 천안문 분신사건, 쓰촨(四川)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나를 모함한 사실, 경찰들이 집 수색하는 기회를 틈타 나의 핸드폰을 훔친 사실 등을 이야기 했다…

호적 경찰 웨이다핑 등은 내가 진상 이야기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다. 사악은 워낙 노출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억지로 나를 경찰차에 밀어 넣으려 했다. 내가 단호히 협조하지 않고 계속 진상을 이야기하며 밀고 당기는 와중에 원피스 옷깃 단추까지 떨어졌다. 나중에 경찰은 나의 핸드폰을 몰래 다른 방에 갖다 놓았다. 핸드폰은 못 가져 가고 11살 나는 아들의 세뱃돈 570원을 훔쳐가 버렸다. 그들은 다시 나를 억지로 젠양시 간수소에 보냈다.

-개가 여동빈(吕洞宾)을 물다

나는 집에서 젠양시 간수소로 끌려갔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것이 죄가 없고 간수소에 감금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여 단호히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윈룽진 파출소의 현 소장 정융창(郑永强)이 한발로 나의 등허리를 밟고 있다가 (당시 나는 원피스만 입고 있었다.) 발로 감방에 차 넣었다.

비록 몸은 감옥에 있어도 나는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간수소에서 범인들에게 규정한 모든 것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 점호하고 숫자를 보고하며 감옥규칙 외우는 것을 거절하고 평시대로 연공하고 법을 외우고 입장하여 정념을 내보내었다. 이로 인하여 황씨 경찰이 원씨 보안을 시켜 억지로 나에게 차가운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나는 의연하게 선의로써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내가 연공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에는 죄가 없다. 당신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라도 파룬궁 수련생들을 잘 대우해야 한다.” 황씨 경찰은 “아직도 감히 씨부렁거리다니” 하면서 원씨더러 큰 자물통을 가져다 나의 수갑과 족쇄를 한데 잠궈 내가 허리도 펼 수 없고 밥도 못 먹게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사회에서 접촉한 일체 사람은 모두 진상을 똑바로 밝혀줄 대상이므로 진상을 똑바로 밝히는 가운데 체현해 낸 것은 대법제자의 자비요 세상 사람의 구도(救度)이다.” 라고 하셨다.(『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 진상을 똑똑히 밝히는 이 문제에서 여러분은 아주 잘 하였다. 동시에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일 역시 위대한 것이며 자비로운 것이다. 보건대는 우리가 한 장의 전단지를 한 속인에게 주었고 보건대는 우리가 진상을 속인에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주겠다. 만약 법을 바로잡는 일이 결속된 후에 인류는 곧 다음 장의 일로 진입할 것인데 머리 속에 “우주대법은 나쁘다”는 것을 지닌 이 사람, 이 생명은 첫 번째로 도태될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주 중에서 더없이 나쁜 생명보다도 더 나쁘며 그가 반대하는 것은 우주의 법이기 때문이다.”(『북아메리카 대호구법회에서 하신 설법))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내가 수련한 후 몸에 나타난 기적과 이 몇 년간 무단히 받은 박해를 써내어 직접 황씨 경찰에게 주면서 소장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정면으로 파룬궁을 이해하고 대법제자를 잘 대해 줄 것을 요구 하였다. 그들은 본 후 선량한 마음과 동정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오히려 위협하면서 “당신이 전에 십 여일 구류 당했었는데 그래 또 단식해서 나가겠다는 말인가? 이번에는 다를 걸. 두고 봐.”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장기간 나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핍박하여 나는 단식하고 단수하면서 박해에 저항하였다. 나흘 후 그들은 나에게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투입하기 시작하였다. 원씨 보안은 나를 침대에서 억지로 끌어내린 후 7~8 명이나 달려들어 나를 사형침대(死刑床)에 올려놓고 머리, 손, 발을 눌러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한편 또 목을 조이고 코를 비틀면서 새끼손가락만큼 굵은 비닐호스를 나의 콧구멍으로부터 나의 위에까지 억지로 꽂아 넣었다. 호스가 너무 굵어서 오랫동안 애써도 호스가 들어가지 않아 콧구멍의 피와 입안의 거품을 잔뜩 토하게 되었는데 눈물이 나도록 아팠다. 겨우겨우 들어가면 그들은 혹독하게 강냉이 죽을 부어 넣어 나중에 강냉이 죽이 호스로 도로 흘러나올 때에야 멈추고는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왜 그렇게 어리석은가? 대법제자들은 세인들을 구도하기 위해 왔는데 도리어 당신들에게 이렇게 박해를 받고 있다니? 당신들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 아는가? 여동빈이 오죽하면 짐승을 구도하지 사람을 구도하지 않겠다고 했겠는가. 사람은 정말 구도하기 어렵다.

-모두 장쩌민이 해친 것이다.

윈룽진 파출소의 경찰은 내 집에 있는 대법 자료의 출처와 유통경로를 알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썼다. 그는 나의 첫사랑 옛 친구를 데리고 왔다. 친구는 전화를 받자 나는 듯이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평소 그렇게 선량하고 바르게 살던 내가 족쇄와 수갑을 차고 절뚝거리면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보안에게 책망하듯 물었다. “저 사람이 무슨 죄를 범했기에 저 모양이 되었소? 수갑의 녹이 손목에 묻도록 끄르지 않는단 말이요?” 경찰이 말했다. “저 사람은 감옥규칙을 지키지 않고 안에서 입장(立掌)하고 연공하였으며 다른 수련생에게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또 금식하였소.” 친구는 내가 이 정도로 박해받은 것을 보고 매우 괴로워하고 가슴 아파하면서 “당신이 연공하지 않겠다는 말만하면 내가 금방 데려나갈 수 있소. 이 경찰들은 모두 나의 친구들이요. 하필 여기서 이 고생을 할게 뭐요?” 라고 말하였다. 나는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나는 나의 양심을 배반하기 싫었다.

코로 음식물을 투입할 때 원씨 경찰은 위협조로 말했다. “밥을 먹지 않으면 너의 친구더러 돈을 지불하게 하겠다. 한번 투입하는데 50원씩 말이야. 그래도 안 먹으면 너의 외사촌 오빠더러 직접 투입하게 하겠다.” 외사촌 오빠는 전에 윈룽진 경찰이었는데 젠양시로 전근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점검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서있는 사람들이 숫자를 보고하자 감방장이 감방 검사를 나온 경찰에게 “침대에 한 사람 앉아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경찰은 “당신은 왜 내려가서 인원 점검을 안 하는 거요?” 하고 물었다. “나는 죄인이 아니오.” 라고 대답하면서 경찰을 보는 순간 나도 몰래 “오빠”하고 외쳤다. 본래 외사촌 오빠가 간수소로 전근하여 온 것이다.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이곳에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면담할 때 나는 시간을 틀어쥐고 외사촌 오빠한테 진상을 알렸다. 오빠가 내게 말했다. “네가 여기에 있어도 나는 조금도 도와 줄 수가 없구나. 파룬궁은 일반 안건과 달리 그들이 모든 걸 주관하니 말이다. 나는 정말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너 같은 여걸이 오늘 이 지경에 이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모든 것은 장쩌민 때문이에요.” 라고 내가 대답했다.

-사형상(死刑床)

젠양시 간수소에서 나는 오래 동안 사형침대(死刑床)에 묶여 있었다.

형틀침대는 철판으로 만들어 졌는데 작은 구멍 몇 개는 밧줄을 매기 위해 뚫어 놓은 것이었다. 한사람이 누워서 겨우 손을 놓을 수 있게 만들었으며 엉덩이 부위에 큰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대소변을 보면 이 큰 구멍으로 흘러내려가게 되어있다. 그들은 나를 반듯이 눕혀 사형 침대에 묶어 놓았다. 밧줄은 젓가락만큼 굵은 삼바였는데 두 사람이 목에서 두 팔을 비끌어 맨 후 한바퀴 돌려 침대에 홀쳐 매놓고 다시 위에서 아래로 침대에 꽁꽁 묶어 놓아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턱 아래의 밧줄이 파고들어 몹시 아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두 팔이 아프기 시작했고 연이어 목, 잔등이 몹시 아파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가 마치 일년처럼 지루하였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가는 시간외에 하루 종일 침대에 묶어 놓았다. 나는 발정념하고 사부님 경문을 외우면서 아픔을 참았다. 사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곧 어려운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든지 간에,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고 생사에 관계되거나 할 때, 당신이 여전히 수련의 이 한 갈래 길에서 확고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어려운 것이며, 인류사회 중의 어떠한 일도 수련 길에서의 행보를 교란할 수 없게끔 하기란 어렵다.”(《길))

나중에 그들은 나에게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시키고는 오히려 화장실에 못 가게 하면서 나에게 고통을 가했다. 방광에 소변이 가득 차서 극한에 이르렀는데 어떤 방법을 써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이마에는 땀이 났고 속옷이 다 젖었다. 이런 고통은 정말 일각이 삼추 같았다. 부득이 한 상황이라 나는 다른 사람들보고 나의 밧줄을 풀어 달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나의 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마저 혹독한 물매를 면치 못했다.

범인의 두목 리잉(黎英)이 주먹으로 나의 가슴을 쥐어박았고 사형수 마약범은 자신의 수갑으로 나의 머리를 내려 쳤다. 나는 발정념으로 그들 배후의 사악들을 제거한 후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래도 덕은 남겨 두라.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대한 것을 장래에 꼭 받아낼 것이다.” 두 사람은 한쪽으로 나를 때리면서 한편으로 욕하는 것이었다. “너는 真、善、忍(전,싼,런)을 수련하니까 참을 수 있겠지.” 결국 나의 머리가 수갑에 맞아 두 곳에 구멍이 뚫어져 선혈이 목을 타고 흘러 내려 옷깃을 적셨고 베개를 적셔 놓았다. 판씨 경찰이 들어오면서 “싸다. 누가 너더러 밥을 먹지 말라고 했나.”라고 말했다.

원래 이 모든 것은 경찰이 범인들에게 지시하여 제멋대로 하게 한 것이다.

바로 그날 낮 한시가 넘자 지난날 살인마같이 기세가 당당하던 원씨 보안이 갑자기 애처로운 모습을 해가지고 범인 두목 리밍에게 “나 곧 갈 겁니다.”라고 말하였다. “어디로 가는데?” “나도 잘 몰라. 친구를 찾아보고 직장이 나면 당신 보러 올거요.” 분명한 것은 그가 현세현보를 받아 해고당한 것이다.

내가 단식, 단수한지 반달이 되었고 또 상처가 엄중하여 생명이 위기에 처했다. 간수소에서는 내가 그곳에서 죽으면 책임을 질것이 두려워 먼저 젠양시 법원과 국안대에 알렸다. 여러 사람이 내 신체가 정말 허약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청두시 완낸장 파출소의 경찰과 판공실의 리챵쥔(李强軍) 등에게 나를 청두로 데려가라고 통지하였다.

젠양시 간수소에서는 그들의 죄증을 덮어 감추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청도의 경찰이 나를 데리러 왔을 때 나에게 목이 낮은 티셔츠를 입게 한 후(내게는 겉옷이 없다.) 부축하여 데리고 나갔다. 완낸창 호적경찰 웨이다핑이 나를 데려 가려고 하다가 나의 머리와 목에 많은 핏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찌된 일이요?” 나는 “범인들이 때린 거예요.”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소장 중xx가 “누가 감히 당신을 때릴 수 있소?”하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서 나는 그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이미 발생한 이 일체를 감히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웨이 경찰은 나를 때린 두 사람의 이름을 적은 후에야 나를 데려갔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내가 젠양 간수소에서 나올 때 파출소에서는 나더러 서명하라고 하였다. 나는 형사 구류 통지서에 “체포”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7시 전후에 그들은 또 나를 진(進)시 6병원에 보냈다. 나는 그들의 위선을 보아냈다. 그들은 나를 치료한 후 계속하여 박해하려 한다.나는 단호하게 그들과 협조하지 않고 정념으로 제지하여 퇴원을 요구했다. 퇴원 후 파출소에서는 사무실의 황xx더러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면서 24시간 감시하게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치사(致詞)』 중에서 “대법제자로서, 지금 한 일체는 모두 대법과 제자들에 대한 박해를 제압시키는 것이다. 진상을 똑바로 알림은 사악에 대한 폭로인 동시에 사악을 억제하는 것이자, 박해를 감소하는 것이고, 사악을 폭로하는 동시에 민중 두뇌 속의 사악에 의한 유언비어와 가상(假象)의 독해(毒害)를 깨끗이 제거하는 것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는 최대의 자비이다. 왜냐하면 미래에는 몇 십억 사람이 법을 얻게 되는데, 만약 사람의 두뇌 속에 대법을 저촉하는 사상이 담겨 있다면, 이 한차례 사악이 지나가면, 인류는 큰 도태가 시작될 것이고, 아마 법을 얻을 인연이 있는 사람 또는 더욱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체는 모두 위대하고 자비로운 것이며 자신의 최후의 길을 원만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이 박해를 받는 진상을 요해하게 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나는 정념으로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기를 바랐고 그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진상을 말하고 중생을 구도하게 해 주시며 절대로 그들이 계속 박해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기회가 왔다. 나를 감시하는 황xx가 나보고 같이 시장에 가서 채소를 사오자고 하였다. 나는 계속하여 발정념을 하면서 황xx 배후의 일체 사악을 청리한 후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 달라고 빌었다. 채소 살 때 그를 그곳에 멈춰 세워 주시고 내가 빠져 나가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세가지 일을 잘할 것이라고 맹세하였다. 결국 진짜로 내가 원하던 대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쓰라린 가슴을 안고 마음속 고통을 참으면서 70세 나는 노모와 11살 나는 아들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였다.

제2장 혹형과 학살

-특무와 조우하다

떠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임시 청두시 광룽시루(光榮西路) 시장 아파트 6층 22호를 세 얻어 살게 되였다. 2002년 12월 9일, 나는 다시 불법적으로 납치를 당했다. 사실은 이러하였다.

오후 2시 30분경, 나는 역전에 가서 화물을 부치고 나서 임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 보따리를 맨 사람이 차고 앞에 앉아 있었는데 낮 익어 보였다. 수련하기 전에 주식시장에서 만났던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나는 자전거를 세워놓고 멜빵을 메고 채소 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따라 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손에 든 채소를 땅에 내려놓고 신발 끈을 묶으면서 그가 앞서 가길 바랐다. 그는 뒤에 멈추어 서서 더 나가지 않았다. 나는 걸으면서 발정념을 하였는데 그는 줄곧 나의 뒤를 따랐다. 6층까지 올라온 후 멈춰 서서 그가 앞서 가길 기다렸다. 그는 다가오더니 나더러 방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나는 ”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문을 열어요?” 하고 물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경찰증을 꺼내 보였다. 이때에야 나는 똑바로 그를 쳐다 보았다. 갑자기 한사람이 뇌리를 스쳤다.–샤오위 (小雨)

며칠 전 동교(東郊)의 수련생이 샤오위라는 “동수”를 내게 소개하여 CD만드는 방법을 배워 주었는데 내가 배운 후에 그는 씨디 라이트(刻錄機)를 나한테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그때 샤오위는 겨우 몇 분밖에 이야기 하지 못하고 일이 있다고 하면서 급히 가버렸다.

그는 다리 후리치기로 나를 땅에 넘어뜨리고 나의 두 손을 등 뒤로 비틀어 올린 후 한쪽 무릎으로 나의 등을 눌렀다. 나는 큰소리로 “사악이 좋은 사람을 잡아가요!”하고 외쳤다. 이때 아래서 많은 경찰들이 뛰어 올라왔고 나의 손에서 키를 빼앗았다. 나는 또 큰 소리로 “문을 열지 못한다.”하고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한참 애쓰더니 끝내 문을 열었다. 이리 하여 실내에 있던 한 동수-단식 3개월 하다가 집에 돌아 온지 한주도 안 되는 동수마저도 납치되었다.

그들은 나의 두 손을 뒤로 틀어서 밧줄로 묶은 후 객실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또 밧줄로 두 발을 묶었다. 어떤 사람이 샤오위(가명. 실명은 모름)에게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요?”하고 묻자 그는 “바로 그야. 틀림없어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집을 수색할 때 나는 샤오위가 혼자말로 “씨디 라이트는 왜 없지? 옮겨 갔나?”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말 속에서 나는 이 사람이 바로 며칠 전 내게 CD를 배워주던 샤오위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와 소개 해주던 동수 외에 아무도 그 일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나에게 씨디 라이트 조작 방법을 배워주고 돌아 간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기계가 고장이 났다. 호출해도 회답이 없었고 전화를 해도 집에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기계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며칠 뒤에 찾아오려고 했는데 소개한 동수만 알고 있었다. 기계 고장은 샤오위가 간 뒤의 일이라 그는 내가 그날 씨디 라이트를 집에 가져 온 걸로 생각하고 나의 방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때, 나는 그를 내게 소개해주던 동수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요. 동문의 동수들이 자료를 만들기 위해 아껴먹고 아껴 쓴 돈을 모두 그가 관리하게 하고 있소. 또한 자료를 사이트에 올리고 다운받는 일들을 모두 그가 책임지고 있어요.” 맙소사! 본래 그가 공안의 밀정이었단 말인가? 한때 11개의 자료실이 파괴되더니 정말 그와 다 연결이 되어 있단 말인가? 며칠 전 나에게 조작 방법을 배워준 후 그냥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감히 더 생각해 내려 갈수 없었다… …내가 이번에 납치당한 것은 특무 샤오위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몇 년 이래 샤오위는 청두 및 외지의 많은 대법 제자들과 자료 때문에 연결이 되어 있고 많은 동수들과 (특히 자료실의 동수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나온 후 샤오위의 추격을 받아 납치까지 당한 사실을 동수들에게 이야기 하였을 때 모두들 샤오위가 당시 특무였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동수들이여! 피의 교훈을 잊지 말자!

경찰 장즈융(張智用)이 한 치 넓이 테이프로 머리를 몇 바퀴 돌려가면서 나의 입을 봉했다. 비닐 주머니를 머리에 씌워서 경찰 몇 사람이 억지로 나를 6층에서 끌어내려 쌀자루를 던지듯 차에 던져 버리더니 나를 광룽(光榮) 소구(小區) 파출소에 끌고 갔다. 한 경찰이 혹독하게 나의 뺨을 한대 쥐어박더니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이었다. 나의 온몸은 진흙 투성이었고 얼굴은 꼭 코크스를 줍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또 나를 바이푸룽진(白芙蓉鎭) 호텔 4층으로 옮겨 불법 감금하기 시작하였다.

-정념의 위력

바이푸룽진 호텔에 도착하자 610의 일당은 경찰에게 ‘창턱 이쪽은 바깥이 큰길과 연결돼 있어 안전하지 못하오. 이 사람이 이리로 뛰어내리지 못하게 감시를 잘해야겠소.”하고 말했다.

호텔 4층의 한 방에서 그들은 수갑으로 나를 의자에 묶어 놓고 광룽소구 파출소 경찰들이 24시간 교대로 나를 감시하면서 자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기를 빌면서 발정념을 하였다. 대법의 자료실이 더 파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동수들의 안전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의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라도, 층집에서 뛰어내려서라도 나는 여기에서 빠져 나갈 것이다. 그 샤오위라는 자를 폭로하여 그가 더 나쁜 일을 못하게 할 것이다.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라고 강요하면서 경찰 셰한성(谢寒生 남 30살 좌우)은 주먹으로 마구 쥐어박았다. 손으로 때리다가 지치자 발로 찼고 나중에는 칼자루로 나의 손등을 마구 때렸고 나중엔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아 나의 신발을 벗기더니 신바닥으로 혹독하게 때리는 것이었다. 그는 때리면서 욕하였다. “말 할 거야, 말거야? 말 할래 안 할래? 말 안하면 죽여 버릴 거다. 때려 죽여도 자살이라 할 수 있어. 직접 화장해 버리면 넌 끝장이야. 너… 너 …도대체 말 할 거야 말거야? ” 내가 의연히 말을 안 하자 계속 악담을 퍼부었고 우리 사부님을 공격하였다. 나의 온몸은 퍼렇게 멍이 들었고 화장실도 겨우 벽을 짚고 다녀야 했고 허리도 펼 수 없었다.

그때 사부님께서 『정념으로 사악을 제지하자』는 경문을 발표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대법제자가 사악의 이런 박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해 달라고 빌면서 발정념으로 셰한성 뒤에 있는 사악을 제거한 후 모든 아픔을 그의 몸으로 전환 시켰다. 정념의 작용 하에 그도 아픔을 느꼈는지 자꾸 방법을 바꾸더니 반나절 안에 폭행을 멈추었다. 나중엔 나를 보면 피했고 경찰이 그더러 들어와 과일을 먹으라고 하자 과일을 들고 밖에 나가면서 나를 감히 정시하지도 못했다.

사부님이 『추풍량』에서 “사악한 무리들아 난폭함을 멈추거라, 천지가 다시 밝아오면 끓는 물에 떨어지리라. 주먹과 발로 인심을 흔들기 어렵거늘, 광풍이 불어오니 가을은 더욱 차갑구나.” 라고 하신 법을 생각하자 나는 악도들은 필연코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반죽음이 되다

그날 내가 또 달거리가 생겨 나이 젊은 여경 차이츙(蔡琼)에게 생리대를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이 집을 수색할 때 가져간 3,000위안에서 계산하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차이츙이 생리대를 사온 후 나더러 이름과 주소, 집에 있는 모든 자료의 출처와 배포경로를 말한 다음에야 쓸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단호하게 협조하지 않자 그녀는 나에게 생리대를 건네주지 않았다. 나의 바지 몇 개가 모두 피투성이 되어 사람들 보기가 민망스럽게 되어도 시종 입을 다물고 있자 비로소 할 수없이 생리대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경찰은 장시간 나를 의자에 묶어 놓고 잠을 못 자게 하였다. 눈만 감으면 경찰은 무정하게 냉수를 퍼부었다. 실습경찰 뚱보(루저우 사람, 泸洲人)가 새로운 도구(사람을 때리는 전문 도구임. 딱딱한 비닐로 만들었는데 두 치 가량 넓고 한 자 가량 길다.)로 심하게 때리면서 연기를 콧구멍에 쏘이고 술을 얼굴에 퍼부었다. 나는 술이 눈에 들어가 눈물을 흘렸다. 뚱보 경찰은 루저우에 돌아가기 전 다른 경찰에게 “그녀가 타협하기만 하면 당장 나에게 전화를 해주오. 이 기쁜 소식을 기다릴 것이요. 그녀가 얼마나 오래 버티는가봅시다 “하고 말했다.

경찰 단쉐쥔(旦学军)이 당직 설 때면 나는 여전히 경찰에게 진상을 얘기하였다. 그는 “우리가 당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당신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요.”하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암만 그렇게 하여도 그건 헛수고이고 아무런 작용도 못 일으킬 것이요.” 하고 말했다. 그는 실습경찰 앤루(彦露)와 궈칭(國慶) 두 사람을 시켜 갖은 수단으로 나를 구타하였다. 단식, 단수 5일 만에 나는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였다. 며칠동안 나의 머리 속에는 가끔 경문 [정념 정행>>이 떠오를 뿐이었다. “대각자는 고달픔을 두려워하지 않거늘,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어졌네. 생사의 집착이 없거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구나.” 많은 시간은 경찰들에게 진상을 말하느라 머리를 쉴 새가 없었다. 혼미 상태에서 나는 실내의 모든 가구가 우리 집의 가구와 똑 같아 보였고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었다.이렇게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모진 마음을 먹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때 그들은 미친 듯이 번갈아 나를 흔들면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렸고 냉수를 머리에 쏟아 부었다(때는 12월이었음). 나는 경찰 단쉐쥔이 명령하는 소리를 들었다. “흔들어, 계속 흔들어, 힘껏 흔들어. 냉수 한 대야를 가져와. 또 가져 와. 계속 퍼오란 말이야. 힘껏 해봐. 깨어나나 안나나 보자.” 계속하여 그들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를 들었고 물을 나의 몸과 머리에 퍼 붓는 소리를 들었으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내 몸을 때리는 짝짝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들이 헐떡이는 소리도 들었다. 그 뒤로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나는 추위를 느끼며 깨어났다. 온몸은 흠뻑 젖어 있었고 손목은 붉은색 스웨터에서 빠진 물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침에 교대하러 온 여경찰은 이 광경을 보고 또 마구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자 경찰 리커(李科. 발음 데로 적은 것임)가 형사 구류 통지서를 보내왔다. 나는 단호하게 이 일체를 부정하였다. 관리쯤 되어 보이는 경찰이 나에게 물었다. “중팡츙,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봐.” 나는 단호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는 화가나 이를 갈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게 물어도 대답을 안 하더니 집에 가고 싶다고? 오늘 밤엔 내가 당직 설 차례인데 다시 한번 너를 혼내 줄 거야. 기다려봐.” 나는 발정념을 하였다. 네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밤 꼭 나갈 것이다. 나중에 그 경찰은 당직 서러 오지 않았다.

나는 발정념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그냥 이렇게 박해를 받을 수 없습니다.층집에서 뛰어 내려서라도 나는 오늘 나가서 “동수”라는 샤오위를 폭로하여 다른 동수들이 모두 그를 알게 하여 더는 우리 대법 제자들 속에서 계속 나쁜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장시간 견정히 발정념을 하자 오른쪽 수갑이 열렸고 조금 후에 왼쪽의 수갑도 열렸다. 나는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침 5시, 경찰들이 교대시간이 되자 실습 경찰 궈칭이 근무하게 되였다. 나는 계속 발정념을 하여 두 경찰이 깊이 잠들라고 하였다. 7시쯤 되자 그들은 끝내 잠들었다. 나는 지금 방문을 연다면 그들이 문소리에 놀라 깰 것이다. 하물며 나의 신이 방 저쪽 창문아래에 있음에랴. 나는 층집에서 뛰어 내려야 나갈 수 있는 희망이 크고 빠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벽 모서리를 짚고 하리를 구부리고 방을 지나 신을 신고 창문턱에 올라서서 아무 주저심도 없이 몸을 던져 4층에서 뛰어내렸다. 혼미 중에 나는 어떤 사람이 “인중을 눌러.”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후로 인사불성이 되었다.

오후 5시쯤 되어 깨어났는데 내가 승용차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차에는 경찰이 지키고 있었는데 아무런 구급 처치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층집에서 뛰어 내린 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9시간 동안이나 내가 차에 누워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내가 죽은 후 몰래 화장해 버리려고 했단 말인가? 내가 살아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들은 할 수없이 오후 6시경에 나를 병원으로 실어 갔다.

병세가 너무 중하여 병원에서 접수하지 않자 그들은 나를 이환루(一環路) 시싼돤(西三段) 골상(骨傷)병원 입원처 11호에 보내 주었다. 나중에 실습경찰의 말에 의하면 둘러서서 구경하던 군중이 120에 전화를 걸었기에 그나마 병원에 실려 왔다고 말했다.

-백가지 고생이 한번에 들이 닥치다

골상 병원의 검사 결과는 골반 삼각구(三角區) 골절, 오른 다리 골절, 왼쪽 발 손상, 하반신 완전 마비상태였다. 병원의 양(楊) 주임은 “당신 복부에 이미 피가 가득하므로 수술을 해야 하오.” 하고 말했다. 나는 “수술하지 않을래요. 나는 돈이 없어요.”라고 했다. 양주임은 “당신이 감금되어 있는 기간에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경찰이 이미 2만원을 지불했소.”하고 알려 주었다. 나는 이 모든 돈이 인민들의 피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후에 수술 마취사가 “수술하면 위험하니 하지 마세요.”하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줄곧 수술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서 그들에게 진상을 얘기하는 외에는 언제나 발정념을 하였다. 법을 암기하는 시간도 적었다. 한사람이 나의 호실에 들어 올적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나 때문에 오므로) 나는 즉시 그한테 발정념을 하였다. 그들이 링거 병을 들고 들어오면 나는 이렇게 발정념하였다. ‘모든 약물이 나한테는 무효다. 대법제자는 단호히 승낙하지 않는다. 사부님 가지하여 주십시오. 모든 약물은 다시 뿜어나가 나를 박해하는 모든 악인, 악경과 사악한 낡은 세력들한테로 가라.’ 결국 약물이 나한테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한번은 그들이 다리의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는데 오히려 다리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상처가 화농하여 고름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다시는 약을 바르지 못했다. 지금도 나의 오른쪽 무릎 아래에 엄지손가락만큼 큰 허물이 나 있다. 또 한 번은 양주임이 “다른 병자는 이 약물 링거를 맞으면 모두 살이 찌는데 이 사람은 왜 아무 반응이 없지?”하고 놀래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이야기 하였다. 한번은 나를 감시하는 사람한테 텔레비전이나 매스컴이 보도한 파룬궁 기사는 모두 가짜이므로 쉽게 요언을 믿지 말라. 당신에게 해롭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단도직입적으로 나한테 “지금의 매스컴은 오직 년 월일만이 진짜일 뿐이요.”하고 대답했다.

매일 광룽소구 파출소의 경찰들이 교대로 나를 감시하였고 24시간을 침대에 묶어 놓았다. 나에 대한 계속되는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나는 또 병원에서 단식, 단수를 24일간 하였다. 코로 음식을 투입하기 위해 위에 호스를 꽂아 놓아 아주 고통스러웠다. 후에 나는 발정념을 하였다. “사부님 가지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제자는 이런 박해를 단호히 감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념의 작용 하에 나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당신의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 견딜 수가 없구먼.”하고 말하였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냄새가 난다고 접근하기를 꺼렸다. 경찰은 하는 수없이 나더러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으라고 하여 호스를 뽑을 수 있었다. 나는 위에서 뽑아낸 호스가 이미 검은 색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때 간호사가 “당신은 식사를 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또 호스로 투입할 것이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발정념을 하였다. 네 말은 소용없다. 그는 내가 의연히 단식하자 의사를 불러와 계속 호스를 꽂아 나를 박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의사는 오히려 “이 사람의 위가 이미 수축되어 있으므로 호스를 꽂으면 위험하오. 꽂지 마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때 나는 이미 몹시 여위여 뼈밖에 남지 않았고 사람 모양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본래 110근 정도 나가던 체중이 겨우 60여근밖에 남지 않았다. 전신(얼굴을 포함해)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고 입술은 갈라 터져 딱지가 일어났고 두 다리는 자줏빛이 나고 몹시 부어있어 바지를 입을 수없게 되었고 오랫동안 바로 누워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두 발꿈치가 썩으면서 고름이 흘렀다. 근육이 위축되어 수혈할 때 혈관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손목 정맥혈관을 세 바늘 꿰맬 정도로 베었어도 혈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엔 새해 휴가를 낸 간호장을 병원으로 불러 한참 고생을 한 끝에 겨우 혈관 하나를 찾아 수혈한 뒤 다시는 침을 빼지 못하고 장장 24시간을 유지하였다.

광룽소구 파출소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진뉴(金牛)구 610에 통지하였다. 610은 몇 사람이 보고 확실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확인하고 나서 2003년 1월 10일 오전에 병원 구급차로 실고 온 다음 관룽소구 파출소의 경찰들이 들것에 담아 나를 집에 들여왔다.

집으로 돌아올 때 나의 하반신은 이미 벌써 완전 마비상태였고 자활능력이 없었다. 병원에서 도뇨관으로 소변을 보았고 단식하여 대변도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 온 후 음식을 조금씩 먹어도 대 소변을 배출할 수가 없었다. 배가 공처럼 부풀어 올라도 오줌을 눌 수가 없었고 그 고통을 참기가 너무 어려웠다. 10일, 보름이 지나도 대변을 보지 못해 배가 아파 작은 공기로 밥을 먹어도 몇 번씩 쉬어가며 먹어야 했다. 집식구들은 내가 아파하는 모양과 이마에 솟은 땀을 보면서 모두 나 몰래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오랫동안 한 가지 자세로 반듯이 누워 있었으므로 나의 등은 말할 수 없이 아팠고 두 발꿈치도 그냥 고름이 흐르면서 좀처럼 낫지를 않았다….
(다음에 계속)

문장완성: 2004년 7월 16일
문장발표: 2004년 7월 22일
문장갱신: 2004년 7월 24일
문장분류: [인심과 인과]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7/22/795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