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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속의 시공 (2)

글/ 아르노 H.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공간 인지의 상대성

여러분은 앞의 내용에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을 것이다. 바로 관찰자의 시각적 기준점이 다르면 우주 공간에서 상하좌우 방위의 구별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불가(佛家)의 만(卍) 자 부호처럼 안쪽 획을 이렇게 보면 가로이고, 저렇게 보면 세로이지만, 돌리면 가로획이 세로가 되고, 세로가 가로로 변하는데, 그래도 만 자는 만 자다. 간단히 말해 만 자 부호의 형태에 있어 각 부분의 구조적 상대성이 도형의 불변성을 뒷받침한다.

아마 어떤 사람은 만 자 부호가 심오하고 비범한 것 같지만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불국(佛國) 세계와 우주 시방(十方)의 수많은 단계의 법리를 마음으로 깨달을 수는 있어도 말로는 조금도 표현할 수 없다. 이는 인류의 사고 구조와 언어 용량에 기인한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도 최대한 쉬운 언어 수준으로 약간의 기초적인 예술 이론을 간단히 설명할 수밖에 없다.

소식(蘇軾, 소동파)은 ‘제서림벽(題西林壁)’에 이렇게 썼다. “가로로 보면 고개요, 비스듬히 보면 봉우리라. 원근 고저에 따라 제각각이로다.”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사실 항상 일종 상대성을 갖고 있다.

이는 흡사 남극에 서 있는 사람이 말하는 위쪽과 북극에 서 있는 사람이 말하는 위쪽이 완전히 반대인 것과 같다. 같은 이치로 가령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다면 각자의 왼손이 상대방에게는 오른쪽에 있는 손으로 보이고, 오른손은 반대편에서 봤을 때 왼쪽 손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대성을 이해하는 것은 회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형 회화 중 가장 흔히 보이는 천장화는 다양한 시각 구도를 기반으로 한 예술 형식이다. 대형 천장화의 경우 만약 가시 범위에 진입하는 각도로 열려 있다면 동서남북 각 방향의 관람객들은 당연히 거꾸로 된 그림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원근법 구도를 적용할 때, 반드시 모든 방향의 관객을 고려해야 하며, 각기 다른 방향에 있는 사람들이 작품을 명확히 볼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图例:意大利画家科雷吉欧(Antonio da Correggio)为帕尔马主教座堂(Duomo di Parma)创作的天顶画《圣母升天图》(Assunzione della Vergine),作于1526年~ 1530年。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다 코레조, 파르마 대성당을 위해 그린 천장화 ‘성모 승천’, 1526~1530년 작품

원근법은 시각 공간의 상대성을 기반으로 하며 어떤 물체가 사람과 아주 가까이 있으면 아주 작은 잎사귀일지라도 아주 크게 보이고, 물체가 멀리 있으면 산이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이른바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가까우면 크고, 멀면 작다’는 원근법 규칙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이 원근법의 기본 원리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원리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그것들은 인류가 처한 환경에서의 원근 법칙일 뿐이며 일단 이 범위를 초과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이 아침에 크게 보이고 정오에 작게 보이는 것은 가까우면 크고 멀면 작다는 원근법 규칙에 조금도 맞지 않는다. 다시 예를 들어 시공의 휘어짐과 빛의 운행 상태 등 많은 원인으로 인해 멀리 있는 천체를 천체 망원경으로 봤을 때, 가까운 것이 작고 먼 것이 크게 보이는 허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이론은 단지 사람의 수준에서만 유효하며 그 수준을 넘어섰을 때는 곧 다른 상태가 펼쳐지게 된다.

시각적인 원근과 대소는 공간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시간, 속도 등에 대한 사람의 감각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의 시각 메커니즘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넓은 시야를 가질 때는 멀리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느리게 보이고, 사람이 가까이 있거나 그 속에 있으면 눈에 보이는 움직임이 더욱더 빠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교적 느린 권총의 탄환 속도는 대략 초당 300m이지만 인간의 눈은 이 속도를 전혀 따라갈 수 없다. 한편 탑재 로켓이 날아오른 후의 속도는 초속 1000m 단위로 계산되지만, 사람의 눈은 총알보다 10여 배나 빠른 로켓의 비행 속도를 쉽게 따라잡을 수 있으며, 심지어 로켓이 아주 느리게 날아간다고 느끼게 된다. 여기에는 다른 공간 범위 내에서 시간 인식의 상대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

서로 다른 범위의 시야는 또 인지상 차이를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지상에서 직선으로 걸으면 갈수록 멀리 간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위성을 이용해 지상으로부터 먼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계속 직선으로 걷다 보면 결국 원을 그리며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비록 생활하면서 발밑의 땅이 둥글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광활한 지면에서 직선은 실제로 일종 곡선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특정 지역 안에 있을 때는 전체를 볼 때와 인지 개념에 큰 차이가 있다.

위상기하학에는 ‘뫼비우스의 띠’라는 표본적 구조가 있는데, 이것은 종이띠 하나를 반만 비틀어 두 끝을 붙이면 만들 수 있다. 만약 이런 고리가 너무 길어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고 부분만 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사람들은 관찰한 상황에 근거해 앞면과 뒷면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두 개의 면이 곧 하나임을 알 것이다! 여기에서 ‘둘’이 ‘하나’의 일부라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지 않은가?

图例:莫比乌斯环,是一种只有一个表面和一条边界的曲面。
뫼비우스의 띠는 하나의 표면과 하나의 경계선만 있는 곡면이다.

물론 여기서 ‘하나’는 일반적인 개념의 ‘하나’가 아니다. 이 고리(뫼비우스의 띠)는 2차원이었던 평면이 비틀어져 3차원 공간에 나타난 것이다. 2차원 개념만 가진 생물이 이 고리를 따라 끝없이 걸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설령 전체 거리를 걷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경로의 구조에 대해 온갖 추측만 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내 몸이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겠지(역주: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건 내 몸이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겠지-소식의 시 제서림벽 중에서)’라고 할 것이다.

이 ‘하나의 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하려면 반드시 3차원의 개념이 있어야 하며 전체를 입체적으로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전통문화에서 말하는 음양처럼 원래부터 하나이며, 대중이 습관적이고 단편적으로 인식하는 양면이 절대 아니다. 다시 말해 더욱더 높은 수준에 있어야만 낮은 수준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하나의 수준에서 같은 수준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마치 장자(莊子)가 말한 것과 같다. “나의 삶은 유한하나 지식은 무한하다. 유한으로 무한을 쫓으면 위태로울 뿐이다.”

원근법과 상대성 문제는 전문가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과 작업자들은 학교에서 원근법을 배웠는데 대략 말하자면 소실점까지 뻗어 있는 직선들을 이용해 입체적인 형상을 그리는 방법이다. 청소년들도 그림 수업에서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조금 배운다고 하니 본문에서는 이쯤에서 생략한다.

图例:常规透视法示意图,学校里教的透视法一般都是这样的。
일반적인 원근법 개념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원근법은 일반적으로 이와 같다.
图例:意大利画家皮萨内洛(Pisanello)所绘的透视图,25厘米 × 17.5厘米,作于十五世纪。
이탈리아 화가 피사넬로의 투시도, 25cm x 17.5cm, 15세기 그림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이런 원근법이 인간의 시야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색과 모양에 대한 눈의 감각이 시야 중앙에 집중되기 때문에 중심에서 멀어지면 보이는 이미지가 왜곡된다. 현재의 시각 이론에서는 사람의 안구가 움직이지 않을 때, 시야의 상하 60도 범위를 시야의 중심으로 정하고 있는데 사람은 좌우 두 개의 눈이 있으므로 수평 방향의 각도가 조금 넓어진다.

다시 말해 만약 관찰 대상이 시야의 중심에서 벗어난다면 이에 상응하는 왜곡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학교에서 가르치는 직선의 원근법은 부정확하다. 이것이 바로 미술 선생님이 학생에게 스케치를 가르칠 때 모델이나 정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라고 하는 이유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필연적으로 물체의 이미지 중에서 시야의 중심을 넘어서는 부분이 많아지고 그림에 왜곡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회화에서는 모든 장면을 작가의 시야 중심에 놓고 통제할 수 없으며 그중 일부는 아래 사진과 같이 필연적으로 시야의 가장자리에 놓일 것이다.

图例:日本大阪市天王寺公园内一景。
일본 오사카시 덴노지공원 풍경

원근법의 규칙과 미세하게 다른 부분은 잠시 제쳐두고 사진 가장 아래쪽의 수평 타일을 자세히 관찰하면 실제로 약간 원호 모양임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기존의 직선 원근법에 따른다면 사람들은 그것들을 평행 직선으로 그릴 것이다.

여기에서는 곡선 원근법이라는 비교적 보기 드문 원근법 용어를 인용한다. 인간의 망막 자체가 반구형이기에 이런 원근법이 인간의 눈으로 보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특히 시야의 중심을 벗어난 물체를 묘사할 때 직선 원근법보다 더 정확하다. 역사상 적지 않은 화가들이 이것을 발견했고 그들의 작품에서도 이와 관련한 시도를 했다.

图例:法国画家富盖(Jean Fouquet)的小彩画《查理四世抵达圣德尼大教堂》(Arrival of Charles IV at the Basilica Saint-Denis),约作于1455年~1460年间。画家对前景的地板和其它一些地方采用了类似曲线透视的画法,只是略显夸张。
프랑스 화가 장 푸케의 작은 채색화 ‘샤를 4세의 생드니 대성당 도착(Arrival of Charles IV at Basilica Saint-Denis)’, 1455~1460년 작. 화가는 전경의 바닥과 일부 다른 장소에 대해 곡선 원근법과 유사한 화법을 사용했는데, 다만 약간 과장됐다.

이런 상황에도 하나의 이치가 반영되어 있는데 바로 설령 같은 수준에 있다고 해도 서로 다른 학술 이론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일단 이 범위를 넘어서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다양한 범위의 이론을 적용해 그것을 대체하거나 보충해야만 인위적으로 특정한 틀 안에 갇혀 돌파하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회화와 관련해 또 다른 상대적인 상황이 있는데 바로 사람들이 흔히 회화를 2차원 예술로 분류하지만,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3차원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부분 그림에는 일종의 ‘얕은 3차원’ 특성이 있으며, 길이와 너비 외에 얕은 깊이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깊이는 단순히 물감 자체의 두께가 아닌 색깔 층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예로 들면, 어떤 화가는 인물을 그릴 때 먼저 사람을 알몸으로 그린 ​​다음 반투명 색상을 사용해 가볍고 부드러운 옷으로 사람을 덮어 옷을 몸에 맞춘다. 이처럼 의복을 묘사하는 물감은 실제로 인물의 피부를 그린 물감 바깥층에 전후 공간의 깊이를 두고 칠해진다. 물감의 투명도 덕분에 관객도 내외 색깔 층의 차이를 동시에 볼 수 있다.

图例:意大利画家波提切利(Botticelli)的作品《春》(Primavera),203厘米 × 314厘米,木板坦培拉,约作于1478年~1482年间。作品描绘了神话时代里的几位神祇,画中几位女神身上透明的白色轻纱薄衣就是用透明和半透明色描绘在皮肤色层之上的。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 ‘봄’, 203cm × 314cm, 목판에 템페라, 1478~1482년 사이 작품. 이 작품은 신화시대의 여러 신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림 속 여신들이 몸에 걸친 투명한 흰색 베일은 피부색 층 위에 투명과 반투명 색으로 칠해졌다.

또한 안개와 비를 표현하는 일부 풍경화에도 유사한 화법이 사용된다. 이런 기교를 사용하면 실제 두께가 0.5mm 미만인 경우에도 내외의 깊이감을 화면에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일부 화가들은 얕은 3차원이 인간의 시각에도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았기에, 대량의 물감을 두껍게 겹쳐 유화와 과슈(불투명 수채화) 같은 일부 작품을 얇은 부조로 그렸다. 어떤 사람은 입체감과 공간감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그릴 때 코처럼 튀어나온 부분을 너무 두껍게 칠하는 바람에 결국 화면이 심하게 갈라지고 물감이 떨어져 오히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예술 이론의 적용에서도 반드시 재료의 성능과 결합해야만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12월 13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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