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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의 우한 폐렴 예방 통제에 대한 ‘팔대 기만술’

글/ 산허칭(山河清)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신종코로나 폐렴 예방 통제 중에서도 여전히 역사상 언제나 효과를 본 기만술을 썼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이 중공이 전염병 예방 통제보다 사람과 정보 통제를 더 중히 여기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기만술 1: 전염병 발생 정황을 속이고 안정 수호를 우선으로 하다

이미 2019년 12월 8일 이전에 우한에서 첫 번째 ‘원인불명 폐렴’ 환자가 나타났다. 우한 진인탄(金銀潭)병원 황차오린(黃朝林) 부원장 등은 ‘란셋(The Lancet)’에 발표한 논문에서 진인탄병원에서 첫 번째 감염환자 발병 날짜는 12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중국 ‘차이신왕(財新網)’은 일찍이 12월 말 이전에 우한의 여러 병원에 적어도 9명의 불명 폐렴 견본을 유전자배열분석회사에 보내 검사한 사실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얻은 결론은 SARS와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를 발견해 이 결과를 즉시 위생건강위원회와 질병예방통제센터에 보고했다.

수상한 것은 2020년 1월 초, 후베이(湖北)성 위생건강위원회,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각기 검사, 측정을 더 하지 말라는 통지를 내렸다. 이미 있는 바이러스 견본을 일률로 소각하고 대외에 관련 논문과 데이트를 발표하지 말라고 했다.

12월 31일, 현지 정부는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우한으로 온 전문가 역시 “예방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1월 6일~1월 10일, 우한시에서 ‘양회(兩會)’를 열었는데 당국은 전염병 발생 정황을 통보하지 않았고 우한에서 대형 모임을 했다.

1월 20일, 중공 방역 대변인 중난산이 CCTV 인터뷰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수 있다고 말했을 때는, 귀성 인파가 움직이기 시작해 전염병이 우한에서 전국으로 확산했고, 감염자 수가 1월 21일에 갑자기 300명이 넘어 긴급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이미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지 40일이 넘었다.

17년 전(2002년) SARS 역시 중공이 속일 수 없게 되자 그제야 전염병 정황을 공개했다.

17년 후 2019년에서 해가 바뀌는 2020년까지 중공은 어떤 변화도 없었다. 생명과 ‘안정 수호’ 중에서 중공의 크고 작은 공무원의 안중에는 ‘안정 수호’밖에 없다. ‘안정 수호’는 그들의 벼슬자리와 관련되지만, 만민의 생명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기만술 2: 사망 숫자

우한 폐렴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지금까지도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우한 장례 부문은 병원에서 온 시체는 38%이고, 기타는 지역사회 등에서 직접 싣고 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많은 환자가 핵산 검사를 받지 못한 채 이미 사망했다. 그런데 중공은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 심지어 핵산 검사 시약마저 통제했다.

우한 장례식장 관계자는 우한 화장터는 예전에 아침에 4시간만 일하면 충분했는데 2020년 1월 하순부터 24시간 가동했다면서 평소 6배나 되었고 시체 소각로 1대에 시체 여러 구를 소각하는 정황이 나타났다고 반영했다.

중공은 정권 생존만 중시할 뿐 한 사람이 죽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고 몇십만 명이 죽어도 숫자로 볼 뿐이다. 중공이 생명을 무시한 데는 유래가 깊다. 삼반(三反), 오반(五反), 3년 대기근, 문화대혁명, 6·4, 파룬궁(法輪功) 박해, 중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을 해쳤다.

기만술 3: 소식을 봉쇄하고 민심을 압살

전염병 확산 초기 8명이 ‘사스(SARS)가 나타났다.’라고 말해 우한시 공안국은 ‘확실하지 않은 소식을 퍼뜨렸다.’라는 이유로 그들을 훈계했다. 최근 이 8명은 모두 의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잇따라 끊임없이 전염병 발생 진상을 내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중공 국내안정보위국의 협박을 받았거나 구류되었다. 현장에 가 인터뷰하고 보도한 국민기자 여러 명이 실종됐고, 문을 부수고 돌진해 들어와 납치해 갔다. 공식 계정, 블로그, 위챗 등이 대량 봉쇄됐다.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하자 진상을 전한 사람을 통제했다. 문화대혁명 중에 완곡하게 비판한 사람, 20년 이래 감히 진상을 말한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공개 비판·투쟁 당하고, 입을 다물게 했으며, 징역형 선고, 노동교양시켰다.

며칠 전, 랴오닝(遼寧)성 위생건강위원회 내부 문서로 하급 부문에 신종코로나 폐렴에 관련된 데이터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산둥(山東)성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전성(全省) 통계 일보에 나타난 숫자는 내부에서 보고한 ‘당일 견본 검사 양성 숫자’, 즉 확진자 수가 정부 측에서 발표한 새로 추가된 확진자 수의 몇 배 심지어 수십 배가 됐다.

기만술 4: 정보를 속이고 밝은 분위기를 꾸며내다

전염병이 확산한 초기 우한시 바이부팅(百步亭) 아파트 단지에는 여전히 4만여 가구가 정부에 협조해 쇼를 연기한 ‘만가연회(萬家宴)’를 열렸다. 어떤 거주민이 만가연회 취소 신청을 했는데 소용없었다.

잇따라 전염병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확산했다. 바이부팅은 바로 봉쇄됐는데 하루에 확진자 수를 1명밖에 주지 않았다. 중공은 아파트 단지 거주민을 포기한 것이다.

2월 들어 전염병이 여전히 확산하고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끊임없이 급증했으며, 중공 고위층도 전환점을 아직 맞이하지 않았다고 승인하면서도 정권 붕괴를 막기 위해 강제로 ‘대약진’식의 업무 복귀 생산 재개를 추진했다. 정부 매체는 전염병 숫자 곡선을 미화하고 끊임없이 좋아진다는 가상을 꾸며냈다.

베이징, 상하이 등 지역의 관광 명소 혹은 시장에 고밀도로 사람이 모이는 장면이 나타났는데 바로 CCTV 뉴스 연합보도를 본 결과다. 2월 10일 중공이 업무 복귀 강제령을 내린 후 베이징, 충칭, 광둥, 산둥 등 지역에 이미 집단 감염 사건이 14건 발생했다. 중공은 서민의 목숨으로 도박하고 있다. 사정을 모르는 민중은 전염병 대세가 지나간 줄 알고 비통한 생명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전염병이 엄중한 한국은 정부에서 자택 격리 대상에게 보조금을 준다고 선포했고, 일본은 기금을 모으고 집에서 수업 중단된 자녀를 돌보는 직장인에게 보조금을 준다고 했으며, 타이완 정부는 10억 타이완 달러를 지출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보조금을 준다고 했는데, 최대 3개월까지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봉급을 못 받은 직원이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했고, 도시로 돌아오는 농민공은 격리 비용을 스스로 내야 한다.

기만술 5: 시선을 돌리기 위해 민족주의 정서를 선동

큰 전염병을 빚어낸 후 중공 고위층, 위생건강위원회, 전문가, 지방 공무원은 서로 책임을 전가했고 내부투쟁이 격렬했다. 최근 대변인 중난산은 또 당을 대표해 책임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려고 “병의 원인이 중국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있다.”라고 하면서 다른 나라에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중공은 또 민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국외 ‘반중국 세력’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민족주의 ‘애국’ 정서를 선동하는 속임수를 썼다.

기만술 6: 기부를 거절하고 물자를 탐오

많은 회사와 개인이 우한에 기부한 긴급 물자는 중국 적십자회를 통해야만 보낼 수 있다. 기부 자체는 사회의 힘으로 서로 돕고 자구하는 것이다. 왜 국가가 독점하는가? 공익 봉사라 할지라도 중공은 근본적으로 민간의 힘이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중공은 대내적으로 통제하고 대외적으로는 배척했다.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1월 6일, 27일, 28일에 미국이 중국에 세 차례 의료진을 지원하겠다고 제기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고 시사했다.

60년대 대기근 때 소련에서 양식 지원을 제기했을 때도 마오쩌둥은 “전 중국인이 다 굶어 죽더라도 흐루쇼프의 양식 한 알 먹지 않겠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기개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인도적인 지원 앞에서 중공은 자기 체면 때문에 사람 목숨을 초개로 여겼다.

국가가 재난을 겪고 있는데 중공 정부 관리들은 전염병의 어수선한 틈을 타 많은 재산을 벌어들이고 있다. 우한 적십자회는 민간에서 기부한 많은 N95 마스크를 쌓아두었다. 기부자는 6~8% 수수료(역자 주: 중국 적십자는 기부 물품을 배급하기 위한 비용을 기부자에게 요구한다. 이 때문에 해외 기부 물품은 세관에 쌓여있다)를 지불할 여력이 없어 마스크를 병원에 나누어주었다. 각 지역에서 서로 의료 물자를 가로채는 사건이 빈번히 나타났다. 기부한 신선한 채소를 쏟아버리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포됐는데, 네티즌은 ‘부족하게 만들어야 배달되는 채소를 고가에 팔 수 있다.’라고 평론했다.

기만술 7: ‘국가 시스템’, ‘중국 속도’

중공은 전염병 때문에 국민이 도탄에 빠졌는데도 무감각했고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이 오히려 여력을 다해 며칠 사이에 훠선산(火神山), 러이선산(雷神山)병원을 지었다고 자랑하면서, 소위 ‘국가 시스템’의 우세를 보여주었다. 역량을 집중해 큰일을 할 수 있고 ‘중국 속도’를 창조했다면서 다른 나라를 비웃었다. 행패를 부리는 데 습관이 된 중공은 일관적으로 흉사(喪事)를 경사(喜事)로 만들었고, 국민의 재난을 본인의 공로를 축하하는 일로 만들었다. 얼마나 후안무치해야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정보를 봉쇄해 전염병이 유행한 것은 바로 중공의 ‘국가 시스템’ 때문에 조성된 것이 아니냐고 질문했다.

중공은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 그러나 독재정권은 봉쇄하는 데는 ‘중국 속도’가 있다. 도시 봉쇄, 도로 봉쇄, 마을 봉쇄, 집 봉쇄 등 극단적이고 강제적인 격리, 우한을 도망쳐 나온 많은 시민은 다른 성(省)에서 포위되고, 쫓기고 붙잡혔다. 병 걸린 사람이 있으면 나무판자, L형강으로 문을 막아버렸다. 우한에 일하러 온 외지인은 도시 봉쇄로 거리에서 노숙하면서 음식을 줍고 남은 밥을 먹으면서 살았다. 마스크가 없는 사람이 거리에 나가면 땅에 넘어뜨리고 끌고 다니며 조리돌림을 했다. 지적 장애 아동은 부모가 격리되어 눈을 뻔히 뜨고 굶어 죽었다. 거주민은 장기간 수감되어 붕괴하였고 치료받지 못해 절망으로 자살한 사람도 있다. 이 한 장면 한 장면의 인간 참사, 인륜 재난이 ‘국가 시스템’ 아래에서 발생했다.

역사상 중공은 역량을 집중해 적지 않은 ‘큰일’을 치렀다. 1960년대의 대약진, 인민공사화,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일, 1966~1976년 온 나라의 힘을 다한 ‘문화대혁명’ 10년 큰 재난을 만들어냈다. 1999년 중공 당서기 장쩌민이 힘을 다한 제일 큰일이 바로 파룬궁 박해다. 수백만 명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존엄을 잃었고 심지어 생명을 잃었다. 오늘날 중공은 또 ‘인류 운명의 공동체’에 성공적으로 전례 없는 바이러스를 수출했다.

기만술 8: 바이러스로 공산당을 위해 ‘따뜻한 뉴스’와 ‘긍정에너지’를 조작

예상한 대로 중공은 예전과 다름없이 ‘전염병에 대항한 이야기’를 선전했다. 소위 ‘따뜻한 뉴스’, ‘긍정에너지’로 여론을 통제하고 국민을 세뇌했다. 이번 국가 재난을 위대한 승리를 거둔 또 하나의 전설로 부각시켰다. 한 차례 비통한 전염병이 또 공산당 얼굴에 분칠하는 도구가 되었다. 전염병이 목숨을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라 공산당을 위해 온 것 같다.

1998년 대홍수에서 원촨(汶川) 지진, 이번 우한 폐렴에 이르기까지 매번 재난은 중공의 ‘위광정(偉光正-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하다)’의 배경과 돋보이는 장식으로 되어 거짓말이 크게 유행해 10억 중국인을 계속 납치하고 있다.

전염병을 둘러싼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에서 중공은 계통적으로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수출하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선량함, 도덕성은 이 불량한 독재 체제와는 물과 불처럼 서로 어울리기 어렵다. 중공이 하루라도 존재하는 한 민중이 중공을 대신해 희생양이 되는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원문발표: 2020년 3월 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3/4019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