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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는 선한 보응이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다’라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밍후이왕] ‘선에는 선한 보응이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다’라는 것은 옛 선조가 남긴 한 마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가 많은 노인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젊은이는 오히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은 장수하지 못하고 나쁜 사람은 천년을 산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늘 좋은 일을 하지만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만, 오히려 매우 윤택하게 살고 있습니다. 정말 이럴까요? ‘선에는 선한 보응이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다’라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졌을까요?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우리는 먼저 두 가지 전해져 내려오는 짧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리를 놓고 도로를 보수하는 두 눈이 먼 아이”, 북송시대, 어느 마을에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다리에 장애가 있고 부모가 모두 돌아가셔서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매우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마을 앞에 강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강을 건너기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해가 지나도 아무도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아이만이 매일 돌을 주워와 강가에 쌓아둘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무엇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이웃들이 걷기에 편리하도록 다리를 놓으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왁자지껄 한바탕 웃다가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해마다 계속 돌을 줍는 일을 견지해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에 감동하여 돈을 기부하고 힘을 보태어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석공을 데려와 돌을 다듬었고 아이는 돌을 옮기는 것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아 다듬던 돌이 날아와 아이는 두 눈을 다쳐 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불공평하다며 마음속으로 분개했습니다. 눈이 먼 아이는 여전히 매일 자신이 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해왔습니다. 노력은 뜻이 있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았고 마침내 다리가 건설되려고 했습니다.

마치 돌다리의 먼지를 씻어내려는 듯 하늘에서 큰비가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경축했습니다. 이때, 천둥과 번개가 크게 내리쳤습니다. 한 차례의 천둥과 번개가 내리친 후 사람들은 이 아이가 벼락에 맞아 이미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 비통한 나머지 대성통곡했습니다. 이때, 포청천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왜 하늘은 불공평하게 좋은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포청천은 왜 그런지는 말할 것도 없이 붓을 휘둘러 ‘녕행악 물행선(寧行惡 勿行善, 악을 행할지언정 선을 행하지는 말라)’이라는 글을 남긴 후 자리를 떴습니다.

도성으로 돌아온 뒤 포청천은 길에서 만난 일을 황제에게 아뢰었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마음을 여기에 두지 않고 서둘러 조정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조정에서 나온 후, 유독 포청천만 남아 있도록 했습니다. 알고 보니 황후가 황태자를 낳았습니다. 황태자는 울음을 그치지 않아 아무도 방법이 없어 황제는 어쩔 수 없이 포청천을 후궁으로 불러와 포청천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살피게 하였습니다.

포청천이 살펴보니 황태자의 팔에 반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반점으로 보였지만 포청천에게는 오히려 여섯 글자 ‘녕행악 물행선’으로 보였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자신의 필적이었습니다. 포청천은 몹시 송구하여 작은 팔을 문질러 한 번 닦으니 글씨의 흔적이 전부 사라졌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반점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황제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포청천에게 음양침을 써서 저승으로 가 내막을 알아오라고 명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는 전생에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그 일생에 지은 죄업을 세 번의 생에 나누어 갚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늘은 그에게 첫 번째 생에는 장애가 있는 고아로 자라서 외롭게 살아가고, 두 번째 생에서는 두 눈이 먼 채로 살아가게 하며, 세 번째 생에서는 벼락에 맞아 죽도록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장애를 갖고 의지할 데 없는 아이로 태어났지만 오로지 다리를 놓는 좋은 일을 하는 데만 삶을 바쳐 하늘은 그에게 이번 일생에 두 번의 생의 죄업을 모두 갚게 하였습니다. 그에게 두 눈을 멀게 하였지만 아이는 아무런 원망 없이 눈이 멀었음에도 다리를 놓는 일을 찾아서 도왔습니다. 하늘은 그가 선한 마음을 내는 것을 보고 그에게 한 생에 세 번의 생의 죄업을 모두 갚게 하여 벼락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고생을 낙으로 삼고 덕을 쌓아 선을 행하며 죄업을 모두 갚은 후 황태자로 환생하여 천자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는 ‘변방 노인이 말을 잃은 것이 화인지 복인지 어찌 알겠는가?’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이 일어나는 것이 복인지 화인지는 표면적으로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나아가 한 가지 일이 일어나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배후의 더 깊은 내재적 함의야말로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사실 바로 이렇습니다.

또 한 가지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곱 번 오고 간 원한”, 옛날, 집안의 재산이 무척 많지만, 아이가 없어 고민이 많은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자는 어쩔 수 없이 첩을 한 명 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첩은 살결이 새하얀 통통한 아들을 한 명 나았습니다. 부자는 매우 기뻐했고 첩과 그의 아들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질투심이 생겨 겉으로는 아이를 좋아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딴생각을 했습니다.

어린 아들이 한 살이 되었고 가족들은 아무도 부인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가족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부인은 가는 바늘로 어린 아들의 머리 위, 바로 백회혈을 힘껏 한 번 찔렀습니다. 어린 아들은 말을 할 수 없어 계속 울 뿐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속수무책이었고 7일 이후 어린 아들은 죽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첩은 부인의 잔혹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고 슬픔에 잠겨 죽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은 임신하게 되어 온 가족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부자는 자식과 첩을 잃은 슬픔도 많이 덜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스러운 딸을 낳아 밤낮으로 보살피면서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러나 딸은 한 살 때 갑자기 죽었습니다. 부자의 부인은 아이를 잃은 크나큰 슬픔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1년 후, 부인은 또 임신하게 되었고 아이가 두 살이 되었을 무렵 죽었습니다. 이렇게 모두 7명의 딸은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세 살, 네 살로 명이 길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막내딸은 14살까지 자라서 이미 약혼했지만, 출가 전날 밤 아무 이유 없이 죽었습니다. 부자의 아내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고 슬픔이 극에 달했습니다.

고난으로부터 중생을 구도하러 가던 아라한이 지나가다가 부잣집에 들러서 부인을 만나려 했습니다. 부인은 이미 마지막 남은 숨을 고르고 있어 이 승려를 만날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라한이 만날 것을 고집하여 다른 사람이 부축해주었고 부인은 아라한에게 일곱 딸을 잃게 된 비할 바 없는 슬픔을 하소연했습니다.

아라한이 물었습니다. “당신 집에 살던 첩은 어디에 있어요? 그녀는 어떻게 죽은 건가요?” 부인은 내심 놀랐습니다. ‘이 출가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아는가?’ 그리하여 하인에게 차를 드리게 하고, 승려에게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이때 부인은 묵묵히 말을 하지 않았고 마음은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아라한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죽인 그녀의 아들은 그녀를 슬픔에 잠겨 죽게 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아, 연이어 일곱 번 와서 당신의 딸로 환생하여 당신도 자녀를 잃는 고통을 겪도록 한 것입니다.”

부인은 20년간의 일을 단번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몰래 살해했지만 죽은 첩은 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으로 일을 매듭짓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매번 딸로 태어난 후 딸의 운명을 수시로 걱정하게 하여 극도의 고통 속에서 그녀의 일생을 보내게 하였습니다.

부인은 또 아라한에게 참회하기를 애원하면서 불문에 귀의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아라한은 부인의 액운이 이미 지나갔고 20년 동안 죽은 것만도 못한 삶을 지내온 것을 알고 그녀에게 선악에는 응보가 따른다는 이치를 알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고개를 끄덕여 구도하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세상사는 수수께끼와 같다는 말이 있는데 확실히 이렇습니다. 세상사를 몇 사람이나 꿰뚫어 볼 수 있을까요. 명리를 다투고 싸우면서 일생을 보냅니다. 삶 속에서 사람마다 또 매 한 가지 우연한 일로 번뇌하지 않을 때가 언제인가요? 그러나 사실 또 어떤 일이 우연인가요? 어떤 사람은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다고 하고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며 어디에 신이 있고 어디에 부처가 있는가?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결코 누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보기에는 좋은 일인 것 같지만 그것은 반드시 좋은 일인 것은 아니며 보기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진정한 복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1949년부터 시작하여 사람들이 갓 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중학교, 대학, 직장에 이르기까지 일생의 과정에 모두 무신론의 사상을 주입했습니다. 문화대혁명 10년의 재난, 4개의 낡은 악(惡)의 타파(문화대혁명 초기에, 혁명의 주요 목표로 내건 4개의 낡은 악, 즉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을 가리킴), 사찰 훼손은 중국인과 전통문화의 연결 관계를 철저히 끊어버렸습니다. 그 후, 또 금전만능으로 모든 사람이 이익 속에서 바쁘게 보내게 하고 무슨 선, 무슨 악이든 일절 머리 뒷전으로 놓게 했으며 ‘도덕은 몇 푼의 가치가 있는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무신론의 해악을 가장 깊게 받은 사람은 바로 소위 국가나 공공단체의 사람들입니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 집단은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발한 이래에 파룬궁 수련인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선악에는 응보가 따른다는 하늘의 이치를 알려줄 때 그들은 모두 “저는 공산당원이며 신을 믿지 않고 응보가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했는데 왜 저에게는 응보가 없는가요?” 등을 말합니다.

파룬궁 수련생은 악보(惡報)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일어서 나와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도(天道)의 진실 앞에서 중국공산당 언론은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절대 일반 대중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공안, 사법부로 놓고 말하면 더욱 봉쇄되어 금지 구역이며 그들이 이런 진실한 소식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판스(潘石)는 랴오닝성 차오양(省朝陽)현 류청(柳城)파출소 소장입니다. 판스는 파룬궁 수련생을 광적으로 박해했고 누가 말려도 듣지 않았으며 차오양시 ‘610’(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적인 전문기구)으로부터 ‘전형적인 선진 모범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도시와 농촌에서 20회 연설했고 연설할 때 그는 큰소리로 아우성쳤습니다. “저는 응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로 때리고, 바로 붙잡으며(파룬궁 수련생) 저는 공산당을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2010년 11월 판스는 연설이 끝난 지 겨우 2개월 후,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41세의 나이로 다롄(大連) 길거리에서 돌연사했습니다.

장펑(張峯)은 원산(陝西)시성 리취안(禮泉)현 공안국 경찰관입니다. 장펑은 젠링(建陵) 파출소 재직 기간 동안 장쩌민 깡패집단을 따르며 불법(佛法)을 적대시하고 여러 차례 파룬궁 수련생을 광적으로 박해했습니다. 여러 명의 파룬궁 제자가 장펑으로부터 위협, 혹독한 구타, 불법적인 노동교화를 당했습니다. 장펑은 호언장담했습니다. “저는 응보가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지의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을 승진하는 정책으로 삼았습니다. 2012년 10월 12일, 장펑은 38세 나이로 리취안현 공안국에서 급사했습니다.

위안궈펑(袁國峯)은 광둥성 포산(佛山)시 난하이(南海)구 리수(裏水)진 허순(和順)현 같은 마을 치안 주임으로 호언장담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박해한 지 10년이 되어도 몸이 갈수록 좋아집니다. 파룬궁이 저를 어떻게 하겠어요? 저는 응보가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응보를 믿지도 않습니다.” 2018년 5월 1일 오후, 위안궈펑은 갑자기 몸이 불편하여 병원의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4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전에는 호언장담하다가 응보를 받기 직전에 마음으로 알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린성 여자 감옥 형사범 쉬옌후이(徐豔輝)는 파룬궁 수련생 겅지펑(耿繼峯)을 바오자(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로 관리할 때 대법 사부님을 욕한 적이 있었습니다. 겅지펑은 욕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권했지만 쉬옌후이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응보가 두렵지 않다며 호언장담했습니다. 결국, 그녀가 밥을 먹으려고 입을 벌리자마자 양 볼의 턱뼈가 ‘뚝’하는 소리와 함께 탈골되어 사흘 동안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쉬옌후이는 겅지펑에게 자신은 대법 사부님을 욕해서 응보를 받게 된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뤄둥성(羅東昇, 남)은 허베이(河北)성 라이위안(淶源)현 정치보위부문(政保股, 나중에 국보대대로 명칭이 변경됨) 공안국 계장이었습니다. 1999년부터 시작하여 뤄둥성은 파룬궁 수련생을 크게 때리고 돈과 재물을 협박하여 갈취했으며 박해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2005년, 뤄둥성의 아내의 심장병이 악화하여 베이징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돈을 들였습니다. 뤄둥성은 1년 가까이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생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의 부친은 손을 내저으며 듣지 않았다가 나중에 암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뤄둥성은 다소 깨달음을 얻어 출근한 후 사직서를 내고 일을 그만두었으며 나중에 국보대대를 떠났습니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고 여전히 중국공산당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는 그런 610, 국보대대, 경찰관, 판사, 검사 등 여러분들에게 권고합니다. 아마도 당신 자신이나 당신 주변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고도 최후의 결과가 없다면 그것은 하늘이 당신에게 기회를 남겨준 것입니다. 만약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반드시 음울한 그늘이 걷힐 것이고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좋은 사람을 박해한다면 음덕(陰德)이 다해질 때이며 악보가 곧 찾아올 때이기도 합니다.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에 중국공산당이 납치한 파룬궁 수련생이 최소 2014명이고, 335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억울하게 판결 당했으며, 45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를 당하여 사망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여전히 지속하고 있고 상당수의 공안국, 검찰원, 법원 관계자들이 여전히 중국공산당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사람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러한 악보의 사례를 차마 보거나 듣지 못합니다. 밍후이왕이 파룬궁을 박해하여 응보를 받게 된 사례를 자주 게재하는 것은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런 생명이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듣고 기만당하여 악인(惡人)을 도와 나쁜 일을 하는 공범자가 되는 것에 깊이 애석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술한 인과응보의 분명한 실제 사례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원문발표: 2019년 7월 2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3/3900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