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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봉투를 받지 않는 의사

글/ 칭인

[미후이왕] 중공의 높고 낮은 관리들이 앞장서서 부정부패함에 따라 현재 ‘돈 봉투’가 중국의 모든 업종을 침식하고 있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의사마저 예외가 아니다. 환자와 가족은 의사들에게 ‘돈 봉투’를 주지 않으면 병을 착실하게 봐주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또 많은 의사들은 돈 봉투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심지어 돈 봉투를 주지 않으면 착실하게 봐주지 않는 의사도 있다.

현재 중국대륙에서의 의료행위를 둘러싸고 이런 난맥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속에 물들지 않고 돈 봉투를 받지 않으면서 환자를 진심으로 보살피는 의사가 있다. 그들은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성품이 고상하여 환자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또 사회에도 희망을 가져다준다.

환자 “병원 의사들이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면 좋겠다.”

첸허우민(钱厚民)은 다칭시 직업의대를 졸업했다. 원래 헤이룽장성 다칭관리국 싸중2병원(油田 내 병원) 외과 의사였다. 그러나 의사인 그는 자신의 병은 치료하지 못해 신장결석, 신장 낭종, 간장 낭종, 고혈압, 심장병, 관상 동맥질환, 경추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면서 항상 화를 냈다. 사회도덕의 추락에 따라 그도 직무상의 편리를 이용해 환자가족의 식사초대를 받았고, 돈 봉투를 받았으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 불량한 취미에 물들어 있었다.

1996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첸허우민의 모든 질병이 신기하게 나았다. 몸이 건강해 졌을 뿐만 아니라 성질도 좋아져 선량하고 너그럽게 변했으며 참고 양보할 줄 알게 되었다. 또 업무에 성실하고 부지런했으며, 의술에 관한 실력배양에 노력하고, 직업윤리를 지키면서 더는 뇌물을 받지 않았고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환자를 위해 봉사했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병원 청소를 하고 매일 바닥을 닦았다.(예전에는 책임자가 눈을 치우라고 해도 업무 밖의 일이라며 치우지 않았다.)

매번 환자들이 수술이 끝난 후 음식을 대접하고 뇌물을 주려고 하는 것을 모두 사절했다. 한 번은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의 가족이 그에게 감사하다며 두 차례나 사례금 500위안과 옷을 보내왔지만 그는 진심으로 사절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는 파룬따파 수련자입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신들의 사례금과 물건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병원의 책임자와 동료들은 늘 말한다. “첸 의사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환자들은 말했다. “병원의 의사들이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첸허우민은 직장에서 연속 모범인물로 선정된바 있다.

명의사의 수련 후 변화

금년에 75세인 황리핑(黄利平)은 후베이성 우한시 중의(中醫)와 양의(洋醫)를 겸한 주임의사이고 교수이다. 황리핑은 중서(동서양)의 부인과 임상, 교학, 과학연구에 장기적으로 종사하였으며, 특히 ‘불임’치료에 깊은 조예가 있다. 수년간 전국 각지와 외국에 있는 화교로부터 1,000여명의 환자가 왔었다. 치료효과가 현저하여 환자로부터 자주 칭찬편지와 감사편지, 편액 등을 받았다. 여러 성, 시의 라디오 방송국과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도 이를 보도한 적이 있다.

환자가 갈수록 많아지면서 장기간 연장 근무를 하게 된데다, 또 다년간 책상 앞에서 근무하다보니 의사 황씨는 경추질환, 두통, 백내장, 축농증, 방광염, 관절염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1995년 12월,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었다. 수련한지 3개월 만에 노안인데도 신문을 볼 수 있었고, 바늘에 실을 꿸 수도 있었으며 또 전신의 모든 통증도 사라졌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연공하여 건강한 몸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법리는 대법수련생들에게 우주의 근본 법리인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수련하여 도덕이 고상하고, 사회에 유익한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황 의사는 수련한 후 인생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수련하기 전 황 씨는 환자들이 보내온 기념 페넌트와 현판을 진찰실 사방 벽에 걸어 놓았고, 불임환자들이 치료받은 후 태어난 아이들의 사진을 사진 판 2개에 가득 붙여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수련한 후부터 그녀는 모든 페넌트와 현판을 걷어 내리고 다른 의사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왜냐하면 환자들은 황의사만 찾게 되어 다른 의사들은 찬밥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등 많은 것을 보내온다. 농촌 환자는 지방 특산품을 보내오는데 신장에서는 좋은 건포도를(남자 아이를 낳았다.) 보내오고, 산둥에서는 대추를 보내왔으며, 아이에게 이름까지 지어 줄 것을 요구했다. 허난에서는 계란 한 광주리를 메고 왔다. 황 의사는 수련 전에는 이런 것을 모두 받았었다.

수련 후 황 의사는 환자들의 모든 선물을 거절했고, 정말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영아실이나 각 과실의 의료인들에게 보냈고, 또 환자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수련 전에 한 환자는 두 차례나 무릎을 꿇고 황 의사에게 팔찌를 받을 것을 간청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저를 다시 낳은 어머니입니다. 저의 불임이 치료되지 않았다면 저의 가정은 파탄 났을 것입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황 의사는 이 귀중한 물품을 어떻게 원 주인에게 돌려줄지 생각했다.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졌다. 그 환자가 딸을 데리고 와서 진찰을 받았다. 황 의사는 곧 팔찌를 벗어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환자를 차별 없이 대하다

왕옌(王炎)은 스자좡 의대를 졸업했고, 허베이 만청현 타이싱 감옥의 의사였다. 그의 의술이 매우 뛰어나 뇌혈관, 뇌출혈 등 난치병에 대해 큰 성과가 있다.

다년간 반신불수로 앓던 중풍환자가 그에게 치료를 받고 기본적으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왕옌은 맥을 아주 정확하게 짚는다. 40세가 넘는 부녀가 일 년 내내 월경이 멈추지 않아 용하다는 양의에게 다 가봤고 진귀한 약을 수없이 많이 먹었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이 환자가 왕옌을 찾아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왕옌은 맥만 짚어본 후 병 증세를 말했다. 이 부녀는 아주 놀라면서 말했다. “젊은 나이에 이런 의술을 갖고 있습니까!” 그 환자는 아주 간단한 한약 몇 첩을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

왕옌은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의사로서의 돋보이는 품성에 사람들은 탄복했다. 그는 환자를 대함에 종업원 가족이든 범죄자이든 차별하지 않았다. 밤이나 낮이나 부르면 찾아갔고 환자에게서 돈 한 푼도 뇌물도 받지 않았다. 그가 타이싱 감옥으로 출근한 뒤 이 감옥에서 범인들의 사망률이 크게 떨어졌다. 한 남자 범인이 추운날씨에 독방에 갇혀 있다가 두 발이 동상에 걸려 곪아 걸을 수 없었다. 이것을 알게 된 왕옌은 자신의 집에서 산초나무 끓인 물을 갖다가 그 범인을 치료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이런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다. 왕옌은 말했다. “그는 범인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고통을 압니다.”

한 흑사회(조폭) 두목이 일하러 가기 싫어 꾀병을 부리면서 3일을 쉬게 해달라고 왕옌에게 청했다. 왕옌은 그를 찾아 속마음을 털어 놓으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사람은 왜 사람이 되었는지 파룬따파의 도리를 알려주었다. 마침내 이 두목은 울면서 꼭 개과천선하여 좋은 사람이 되겠으며 ‘진선인(真善忍)’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상냥한 ‘파룬궁 의사’

루위잉(路玉英)은 화상(火傷)전문의이고, 집은 간쑤성 란저우시 안닝구 안닝바오 제다오쥐민로에 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그녀는 성격이 무척 급하고 털털했다. 그녀의 화상 전담 진료실에는 매일 화상의 정도가 각기 다른 환자들이 있다. 화상부위가 크고, 화상정도가 깊은 환자에게 매일 약을 바꾸어 주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다. 심한 통증으로 상처를 만지지 못하게 하며 울며 소리치기도 한다. 그녀는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껏 상처의 붕대를 벗겨낸다. 환자는 너무 아파 한참을 숨도 쉬지 못하며, 머리에는 콩알 같은 구슬땀이 솟아난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루위잉은 부드럽고 정숙한 여자가 되리라 결심했다. 그녀는 늘 말한다. “의사로서 단정한 성품이 있어야하며, 의료인으로서의 도덕과 윤리를 갖춰야하고, 환자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어야한다.” 그 후부터 그녀는 환자들에게 약을 갈아 줄 때 먼저 약물로 붕대를 적신 후 집게로 조금씩 벗겨낸다. 한 쪽으로 벗겨내면서 환자를 위로했고 경우에 따라 환자에게 자연의 소리와 같은 가곡을 들려주면서 환자의 아픔을 덜어주었다. 환자들은 항상 환자를 위해 생각하는 진지하고 싹싹한 이 의사를 친절하게 ‘파룬궁 의사’라고 불렀다.

화상은 아주 갑자기 발생하므로 사람들이 손을 쓸 사이가 없고, 외지에서 온 노동자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이런 정황에서 루 의사는 “먼저 치료하고 환자가 좋아진 후 다시 봅시다.”라고 말한다. 지금 의료비용도 높아 화상부위가 조금만 커도 병원에서 치료하려면 2, 3만 위안이 들게 되고, 또 흉터가 남게 된다. 그러나 루 의사에게서 치료받으면 1, 2천 위안이 들면 되고 흉터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1, 2천 위안도 지불하지 못하는 환자가 있는데 루 의사는 자주 무료로 진료해준다. 환자들이 거듭 사례하면 그녀는 항상 진지하게 말한다. “파룬궁이 저를 변하게 했어요. 만약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자를 속이지 않다

디진핑(翟金萍)은 1989년 2위의 성적으로 타이산 의대를 졸업하고, 우수생으로 산둥성 타이산 요양원 내과의사로 배치되었다. 디진핑은 페니실린 주사 과민으로 우울증, 심혈관 기능장애, 늑연골 염증, 관절염, 담낭염과 기능성 월경 폐지 등 질병이 발생하여 한약과 양약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1997년 1월, 디진핑은 파룬궁을 수련한지 20일 후 모든 증상이 사라졌고, 3개월 후에는 업무에 복귀했다. 수련 후 그녀는 약품 판매업체로부터 사례금을 받지 않았다. 한 번은 정말 거절할 수 없어 받은 돈을 농촌에서 온 노년 부부에게 주어 할머니가 병이 난 할아버지에게 영양식품을 사서 몸보신을 하게했다. 그녀가 도와주었던 한 여자 환자는 그해부터 지금까지 근 20년 동안 해마다 병원으로 찾아와 디 의사의 정황을 알아본다.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강행한 후 디진핑은 무리하게 공직에서 해임 당했고, 의사자격증과 의사 개업 면허증, 부동산 소유증서를 몰수당해 지금까지도 의료 사업에 종사할 수 없어 생활이 곤란하다. 한 가정의 생계를 위해 그녀는 가정교사, 가정부, 시간제 아르바이트, 마트와 병원의 청소 노동자로 일했고, 어린이집에서 밥도 해보고, 노점을 차려도 보았으며, 콩나물도 길러보았다.

디진핑에 대해 말하자면 쉽고 수입이 높은 직업을 선택할 기회도 있었다. 보건식품을 파는 두 사람이 선물을 사가지고 디진핑을 찾아와 1주일에 3번만 강의하면 가정부 할 때의 3배되는 월급을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건강식품은 거짓홍보가 많다는 것을 알기에 수련인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곧 거절했다. 또 그녀를 초빙하는 진료소도 있었고, 한 개인 병원에서는 그녀의 ‘세계위생조직 재활의사 훈련’(타이안시에서 오직 그녀 한 명만 이 훈련에 참가했다.)에 참가했다는 명분만으로 그녀에게 괜찮은 수입을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거절하면서 말했다. “원래 저도 승부욕과 명리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승낙했을 것입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저에게 양심을 지키고 ‘진선인(真善忍)’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병을 치료하지 않고 환자를 속여 돈만 벌려는 진료소로 갈 수 없으며, 다단계는 더욱 할 수 없습니다.”

결어

사람이 병이 나면 불행인데 만약 의사가 돈 봉투를 요구하고, 사익을 위해 불필요한 약을 처방하고, 검사 항목을 증가한다면 환자와 그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다. 만일 진심으로 책임지고, 돈 봉투를 요구하지 않고 진심으로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를 만난다면 환자와 가족에게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이런 의사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의사들 중에는 무척 많다. ‘진선인’ 신앙은 그들로 하여금 명예와 이익의 유혹을 막아내고 선량하고 사심이 없게 한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이런 의료의 난맥상황에서도 의료인으로서의 도덕을 지키는, 오히려 응당 표창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다. 그들의 ‘진선인’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당국은 그들의 의료 행위자격을 취소하거나 심지어 불법감금하고, 폭력적으로 세뇌를 시킨다. 본문에서 열거한 몇몇 의사들은 모두 서로 다른 정도의 박해를 당했다. 그중 첸허우민 의사는 불법적으로 7년 형을 선고받은 후 잔혹한 박해를 당하다 2014년 10월 2일 억울하게 60세에 사망했다. 디진핑 의사는 잇따라 두 차례 합계 6년 동안의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당하면서 매달고, 구타하고, 전기충격을 가하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하는 등 잔인한 박해를 당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오늘 우리들이 돈 봉투를 받지 않는 이 몇 명의 백의천사들의 이야기를 써내게 된 것은 당신에게 만약 그들이 박해당하지 않고, 의사의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았을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또 그들의 고상한 의사 윤리관이 같은 업종의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임으로써 전체 의료계 풍조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고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박해 중지를 호소하고, 선량을 수호하고 지켜내자! 무고하게 박해 받는 그 좋은 의사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고 전체 사회를 위해서다.

문장발표: 2017년 3월 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2/34372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