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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신도들이 ‘정치’를 했는가? (2)

글/ 어우양페이(歐陽非)

(전편에서 계속)

3. 조기 기독교 신도는 어떻게 거짓말을 폭로하고 교를 보호했는가

비방과 박해를 당한 조기 기독교 신도들의 반항과 거짓말 폭로, 전향을 거부함과 로마 종교에 대한 도전, 심지어 마귀로부터 온 로마황제 배후의 힘 등은 오늘날 파룬궁수련생들이 직면한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사진설명: 중국중앙TV(CCTV)에서 만들어낸 분신 장면에서 연기자 왕진둥(王進東)의 두 다리 사이에 휘발유를 담은 플라스틱병은 큰 불에서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뒤에 서있는 경찰은 불을 끄는 모포를 들고 흔들거리다가 왕진둥이 대사를 다 말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몸에 모포를 덮었다.

(1) 박해는 늘 거짓말부터 시작된다

네로 재위기간인 서기 64년 7월 18일, 로마의 원형경기장 인근에서 갑자기 큰불이 나면서 연속 5일간 불탔으며 이 재난으로 로마시의 4분의 3이 불탔다. 네로는 이 기회를 이용해 폐허 속에 호화로운 ‘황금 궁전’을 만들었으며 민간에서는 이 대 화재가 네로의 음모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화재 이후 네로는 민중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기독교 신도들이 불을 질렀다고 모함하며 정식으로 기독교 신도를 박해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었다.

역사는 늘 놀랍게도 반복된다. 2천년 후 장쩌민 집단과 중국공산당은 천안문광장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분신자살 사건 속임수를 만들어 증오를 선동해 진일보로 파룬궁 박해를 승급시켰다. 파룬궁 수련자가 천안문광장에서 분신자살 했다는 중공의 이런 거짓말은 온 천하에 전해졌다. 거짓으로 진실을 숨기는 생생한 TV화면의 풍부한 자극성은 잔혹한 로마 황제들조차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외 파룬궁수련생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위화(僞火)’는 중국중앙TV 방송국 장면을 슬로루 모션으로 분석해 현장에서 사망한 류춘링(劉春玲)은 분신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한 사복경찰의 구타로 사망했음을 밝혀냈다. 또 소위 ‘주모자’ 왕진둥은 온 몸의 옷이 불에 타버렸는데 그의 양다리 사이에 있는 휘발유가 담긴 플라스틱병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흠이 많은 졸렬한 희극의 진상이 정보 통제로 인해 밝혀지지 못하자 중국인 속에서 거대한 증오를 부추겼다.

로마에서는 민중들의 기독교 반대 정서를 충동시키기 위해 어떤 사람은 기독교 경서를 제멋대로 잘라 붙여 유언비어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한 “구세주의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신다”고 한 말은 그들 자신의 정신신앙적 측면에서 관련된 이치를 말한 것인데 기독교 신도들이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또 기독교 신도들이 습관적으로 같은 신도들을 형제와 자매라고 호칭하는데 대해 반대자는 그들이 난잡한 성관계를 맺는다는 등등으로 묘사하며 백성들 속에서 각종 유언비어를 만들어냈다. 기독교 신도들이 또 ‘다른 한 왕국’을 언급하자 역시 제멋대로 로마에 대해 충성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일부 기독교 신도들이 기꺼이 순교하는 행위에 대해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신도들의 행위는 용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종 악명(惡名)을 추구하는 부당한 욕망이라고 간주했다.

로버트 윌켄(Robert Wilken)은 로마인은 어떻게 기독교 신도를 보았는지 옛 로마의 일부 문화 및 정치계 인사들의 사례를 들었다. 예를 들면 플리니(Pliny), 갈렌(Galen), 셀수스(Celsus)와 포르피리(Porphyry) 등 이런 사람들은 모두 그들 스스로의 배경에서 기독교를 비판했다. 플리니는 로마 동부 도시의 총독이었는데 그는 기독교가 정치적 소란을 피운다고 보았다. 의사인 갈렌은 기독교에서 신앙하는 신은 그리스와 로마 전통이 알고 있는 자연법칙을 위반한다고 보았다. 셀수스는 기독교를 공격한 첫 번째 학자인데 그는 기독교를 유태교의 반역자라고 보았다. 철학자 포르피리는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이라고 단정했다. 총적으로 말하면 이 같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옛 로마 인사들은 기독교는 다만 일종 가난한 사람들을 흡인하기 좋아하는 맹목적인 신앙이라고 간주했다.

중공도 파룬궁 비방을 통해 탄압을 유지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중공은 파룬궁을 비방하는 거짓말을 다수 만들어냈으며 파룬궁 서적에 대해 제멋대고 분석했다. 예를 들면 약을 먹지 않는다, 100가지 사망 사례, 재물을 착취한다는 등등 요사스러운 것으로 대중을 현혹한다고 주장했다. 한 무리 과학자, 문학가들을 이용해 제멋대로 거짓말을 발산했다. 중공은 전국 수천 개의 신문 잡지, 수백 개의 TV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 헤아릴 수 없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제해 온 천하에 거짓말을 퍼뜨리고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을 총동원했다. 마치 문화대혁명이 다시 나타난 것처럼 파룬궁에게 변호할 작은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는 중공이 민중을 현혹하는 유언비어임을 증명했으며, 아울러 상대방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은 더욱 거리낌 없이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공은 파룬궁을 모함할 때 잘 쓰는 몽둥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소위 ‘미신’이다. 옛 로마 역시 그러했다. 조기 로마 작가는 기독교를 일종 신의 대한 신앙으로 보지 않고 ‘미신’이라고 주장했다. 로마총독 플리니는 기독교를 ‘과분한 미신’이라고 했고, 역사학자 타키투스(Tacitus)는 기독교 신도를 못된 짓을 하고 미신을 믿는 한 무리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로마인들은 새로 나타난 것에 대해 그들 자신의 의식상태와 부합되지 않으면 ‘미신’이라고 말했다. 이 점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할 때 중공의 의식형태와 부합되지 않으면 ‘미신’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방식과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미신’이란 몽둥이를 휘둘러 공격하는 방법은 누구도 중공을 초과할 수 없다. 옛 로마는 글을 써서 군사를 운용하는 것을 이야기 했으나 중공은 그것 특유의 전 국민 총동원 체제를 이용해 소위 미신을 비판하는 운동을 사회의 매 구석으로 확대시켰으며 초등학생들도 가만두지 않았다.

(2) 거짓말을 폭로하고 ‘호교(護敎)론자’를 보호

각종 비방에 직면한 조기기독교 신도 중 일부학자는 예를 들면 저스틴(Justin), 익나티우스(Igantius), 폴리캅(Polycap) 등은 저서를 써서 반(反)기독교 언론에 반박했다. 이들을 ‘호교(護敎)론자(Apologist)’라고 하는데 주요하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은 허위적이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일부러 거짓을 조작해 교회를 모함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말로 말하면 파룬궁 수련생들의 청원이나 진상을 알리는 활동과 유사하다.

이런 ‘호교론자’들 중 가장 유명한 저스틴(Justin 103-165년)은 이후 순교해 ‘순교자 저스틴’으로 불리게 된다. 저스틴의 첫번째 ‘호교사(護教辭)’는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138- 161년 재위)와 그 자손, 나아가서 정치계 인사들에게 쓴 공개편지로, 기독교는 정부와 교외(敎外) 인사들의 비평을 마땅히 받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스틴의 두 번째 호교사는 로마 원로원에 보낸 우편물로 그는 만약 기독교 신도가 죄가 있으면 마땅히 공개 재판을 해서 죄가 있음을 실증해야만 비로소 안건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기독교 신도들이 좋은 국민이 아니라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미치광이라는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로마 황제에게 설명했다. 이 글을 본 피우스 황제는 기독교 신도는 사회의 좋은 국민의 본보기 일뿐만 아니라 일정액 세금을 납부했고 더욱이 사회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중요한 힘이라고 말했다.

테르툴리아노(Tertuliano 150-230년)는 조기 기독교의 유명한 신학자이자 철학가이며 교회 학설을 위해 적극 변호했다. 자신의 신앙을 그리스 철학과 로마 변론 형식으로 표현했는데 ‘호교사(護教辭)’라는 저작이 있다. ‘호교사’는 주요하게 기독교 신도의 무고함을 위해 변호했고 기독교 신도 박해를 반대하는 언론이며 내용과 용어는 완전히 변호사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밖에 기독교 신도의 생활, 경배와 신념을 철저히 해석했다.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약 130-190년)는 2세기 후반경의 기독교 보호자다. 그가 쓴 ‘변호문’은 철학가로서 철학적인 근거로 기독교 신도의 공정함을 위해 쓴 서면 청원이다. 이 청원서는 기독교 신도가 당한 괄시와 비방에 항의하고 무신론을 질책하고 고발한 내용이 담겨 있다.(이것은 당시 기독교 신도들의 피해에 대한 주요한 지적 고발서로 로마인들은 로마 신을 믿지 않은 기독교 신도들을 무신론자로 여겼다). 그는 기독교 신도가 로마교 신의 제사를 지내지 않음에 대해 변호했으며 그는 이 같은 제사 강요를 터무니없고 추잡하다고 여겼다. 최후 기독교 제자의 도덕성에 대한 질책과 고발에 대해 그는 기독교 신자는 순결한 꿈, 평등한 사상을 믿고 혼인의 신성함을 갖고 있다고 변호했다. 그는 기독교에서 낙태를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기독교 제자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유언비어를 반박했다.

파룬궁이 중공의 비방과 잔혹한 박해를 당한 후 파룬따파를 수호하고 실증하고 거짓을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도 파룬따파 제자의 도의상 거절할 수 없는 책임이 됐다. 베이징에 가서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펼치고 진상 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는……파룬궁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역량은 분명히 당시 기독교 신도들을 훨씬 초과했다. 이것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직면한 것은 로마제국보다 훨씬 강대한 중공 강권이기 때문이다. 중공의 철저한 언론 봉쇄는 사회 매 계층 각 구석까지 통제하고 붓대와 총대 운용에 대해 세계 정상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 거짓말을 전파하고 원한을 국내로부터 해외까지 뒤덮는 능력, 경제적 이익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회유하며 인류도덕과 양심을 팔고 짓밟는 불량한 행태는 2천년 전 로마황제들이 전혀 따라올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문장발표: 2011년 1월 2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문장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98/A03/81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