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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일을 바르게 했다

글/ 이옌(一言)

하랄트 제이거(Harald Jaeger)는 동독 국경의 충실한 위병으로서 많은 칭찬과 신임을 받았다. 그는 보른홀머(Bornholmer) 거리에서 서방으로 통하는 국경초소의 장교였다.

1989년 11월 9월 저녁 동독 당국에서 28년간 봉쇄했던 동서독(東西德) 국경 개방을 선포하여 많은 민중들이 그의 초소에 밀려들었다. 그는 통행명령을 내릴 때 아주 수치스럽게 느꼈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주 괴로웠다. 당과 정부에서 나를 저버렸다고 생각되어 나의 의식형태는 철저히 붕괴되었다.”고 했다.

국경초소 장교로서 하랄트 제이거는 공산당의 정치세뇌를 깊이 받았기에 당시의 표면감각은 이러했다. 하지만 인류의 공유의 양심이 심령 깊은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작용을 하였는지 그날 저녁 그의 초소를 제일 먼저 열어놓았다.

하랄트 제이거는 계급이 중령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근무 교대하고 퇴근하여 음식점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는 동독 정치국위원 귄터 샤보프스키(Guenter Schabowski)가 TV에서 동독 민중들이 서방으로 관광하는 것을 허용하는 새로운 규정이 즉시 효력을 발생한다고 선포하자 그는 멍해졌다. 그와 함께 TV를 보던 장교도 멍해졌다. 전화를 걸어 상부에 물어 보았으나 더 자세히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함구무언도 당시 상급들의 일종 선택이었고 이 선택은 베를린 장벽을 지키는 위병들로 하여금 정확한 선택을 하도록 했다.

반시간 후 사람들이 계속해서 밀려들어 보초막 안팎을 무너뜨렸다. 하랄트 제이거는 당시 국경 경계를 완전히 열어 놓기로 결정했다.

다른 많은 위병들도 아예 수위를 포기하고 한쪽에 서서 상대하지 않고 하늘의 뜻에 따랐다. 결국 수십만 명의 민중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리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20년 후 66세가 된 하랄트 제이거는 1989년에 민중들을 통과하게 한 이 일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감회가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사실 그것은 정확할 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추세이고 시기는 완전히 정확했다.”고 했다.

하랄트 제이거는 말했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나는 다만 그날 저녁에 올바른 일을 했을 뿐이다.”

다른 한 동독 위병 헨리히(Henrich)는 당시 다른 선택을 하여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1989년 2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9달 전 20세인 크리시와 친구 고우딩은 함께 베를린 장벽을 몰래 넘어 자유를 찾아 달아나려고 했다. 총소리가 나더니 크리시는 가슴에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고 고우딩은 복사뼈에 탄알을 맞았다. 그는 이 장벽 아래에서 최후의 희생자라는 것을 모른다. 그를 사살한 동독병사 헨리히는 1992년 베를린법정에서 3년 반의 징역형을 선고 받아 가석방되지 못했다.

법관은 헨리히에게 그에 대한 판결을 해석하기를 “동독 법률은 당신에게 살인하라고 했지만, 당신은 폭정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 무고한 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죽였으니 곧 죄가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법률 이외에 또 ‘양심’이 있는 것이다. 법률이 양심과 충돌할 때 양심이 최고의 행위 준칙이지 법률이 아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전 세계에 알려진 원칙이다. 당신은 마땅히 장벽을 지키는 위병이 되기로 결정하기 전에 이미 알았어야 했다.”고 했다.

중국 문화는 인과보응을 이야기한다. 옳은 일을 했을 때 다만 한 순간의 선택이라고 보지만 순간의 선택은 마찬가지로 자신과 타인에게 후과를 가져다 주며 심지어 자신과 타인의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인생은 세상에서 옳은 일을 선택하여야 할 때 아마도 아주 힘들지만 경계를 벗어나면 옳은 일을 선택하여 한 것은 영원히 가장 할만한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9월 1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80/A03/75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