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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610’, 파룬궁 수련생 장례 독단으로 치르다

글 / 윈판(雲帆)

【밍후이왕 2009년 10월 20일】 사람이 죽으면 가족이 후사를 처리하는 것은 상식적인 이치이다. 물론 일정한 등급의 중공관원이 사망하면 후사는 중공이 직접 나서서 치르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사망 후에 누리는 대우도 더 높다.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중공이 한 평범한 백성의 장례를 치러줬다는 것이다. 지금 중공 후베이(湖北)성 610 사무실에서 직접 나서서 노동교양소에서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의 장례를 전부 도맡아 치렀다. 전문적으로 파룬궁만을 박해하고 있는 ‘610’이 파룬궁 수련자의 장례를 도맡아 치렀다는 데는 반드시 알릴 수 없는 내막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사실은 이러하다. 후베이성 츠비(赤壁)시 상업국의 정위링(鄭玉玲, 57)은 2009년 8월 6일 저녁에 파룬궁 수련생을 구하기 위한 전단지를 붙이다가 공안에 잡혀 노동교양 2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8월 25일에 후베이성 여자 노동교양소에 갇힌 후, 한 달 좀 더 지난 9월 28일에 사망했다.

정위링의 남편이 9월 29일 노동교양소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시신은 이미 얼굴 화장을 다 마치고 옷이 정갈하게 입혀진 채로 관 속에 눕혀 있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한 것은, 아내의 코가 뚜렷하게 변형되어 있었고 손에는 주사바늘 자리가 가득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같이 많은 의문점에 대해 질문하자 노동교양소 인원은 “정위링은 9월 9일부터 단식을 하여 28일 점심에 죽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노동교양소의 대답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정위링이 정말로 단식을 했는가? 이건 노동교양소 한쪽만의 말이다. 정말로 단식을 했다 해도 노동교양소는 왜 정위링이 ‘단식’으로 죽는 것을 눈을 뜨고 보고만 있었는가? ‘단식’하는 상황에서 노동교양소는 무슨 조치를 취했는가? 위급한 상황임에도 왜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는가? 더욱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한 것은, 그녀의 코가 왜 변형 되었는가 이다. 손 등의 바늘 자리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갖가지 의문점에 대해 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히 한 가정의 대사로서 그 슬픔과 괴로움은 오직 가족만이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도리어 후베이성 ‘610’이 정위링의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유골도 고향에 묻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다.

9월 30일, 정위링의 시신은 우한(武漢)의 어느 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후베이성 610은 정위링의 유골을 츠비 화장터에 보내어 묻게 하였는데, 그 과정에 가족이 전혀 개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후베이성 610과 후베이성 여자 노동교양소는 왜 한 파룬궁 수련자의 장례를 전부 도맡아 치렀는가? 심지어 사망자의 유골마저도 납치하는가? 정부의 직책을 다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의 죄악을 덮어 감추기 위해서인가? 610의 파격적인 거동은 그들이 온 힘을 다해 죄악을 덮어 감추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였다.

정위링의 코는 왜 변형되었는가? 노동교양소에서 그녀에게 화장을 해 준 것은 가족을 위안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사망자를 위안하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정갈한 옷을 입혔다 해도 방금 사용한 혹형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며, 그건 다만 살인한 후에 설치한 가상에 불과하다. 노동교양소에 갇힌 사망자에게 얼굴 화장을 해주는 것을 누가 본 적이 있는가? 중공의 노동교양소가 정말로 인성화로 변했는가? 범이 사람을 잡아먹고 버린 뼈다귀에 비석을 세워 줄 수 있겠는가?

정위링 손의 바늘구멍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경찰이 갖은 노력을 다해 그녀를 구급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녀 손에 웬 바늘구멍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몇 가지 예를 들어 주면 이 바늘구멍이 어떻게 온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한 대법제자가 《나는 후베이성 사양(沙洋) 노동교양소에서 쓴 독약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문장을 써 냈다.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처음으로 사양 노동교양소 여자 9대대에 수감되었다. 대략 2001년 5, 6월 달로 기억한다. 사양 악경은 ‘감기 예방’이란 구실로 나를 억지로 끌고 가서 주사 한 대를 놓았다. 그러나 나를 감시하는 마약죄수들에게는 한 사람도 주사를 놓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후에 나의 몸이 야위기 시작했는데, 전신이 무기력하고 반응이 늦었으며 손발이 굼뜨고 늘 공포심을 느꼈다. 이듬 해 봄에 석방되어 집에 와서도 여전히 이런 상태였다. 진상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여 이 모양이 되었다고 여겼다. 악인들이 약물로 대법 수련생에게 피해를 주는 이 절묘한 수는 얼마나 음험한가! 가장 가증스러운 것은 법공부, 연공을 통해 심신이 건강해진 좋은 사람을 그들은 의식적으로 박해하고는 다시 파룬궁에 그 죄를 덮어씌우는 것이다. 9대대에서 약물박해를 실시하는 의사는 주로 류추훙(劉秋紅)이다.

내가 두 번째로 사양 노동교양소에 불법 수감 되었을 때, 그들은 신체검사를 한다는 명의로 나를 억지로 사양 치리후(七里湖) 병원에 끌고 가서 검사를 하고는 신체가 합격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럿이 나를 누르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커다란 주사기에 가득 채운 이름 모를 약물을 나에게 주사하였다. 이후에 소변이 남색으로 나왔다. 나는 2월 달에 사양에 갇혔는데, 3월 달에 와서는 이미 정신이 똑똑하지 못했다. 어떤 땐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고, 정신 분열증 상태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간혹 가다 나타났다. 5월 달이 되자 그들은 나를 자지 못하게 하고 과중한 일을 하게 하였으며 저녁이면 나 혼자 서있게 하였는데, 나는 밤까지 서 있다가 다른 사람의 침대 앞에 가서 뭐라고 말하였으나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옷을 벗어 버렸다. 여름이면 ‘더위 예방’을 한다면서 나에게 억지로 약물을 관장해 나의 정신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옌훙(嚴紅)이라는 나쁜 의사가 주로 시행하였다.

이는 단지 한 대법제자가 겪은 약물박해 사례일 뿐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정위링의 손에 있는 바늘구멍의 내원을 보아낼 수 있다. 이 사양 노동교양소가 바로 후베이 여자 노동교양소의 전신으로서, 모든 죄악은 모두 일맥상통한 것이다.

또 한 수련생이 서술한 것은 대법제자 쩡셴어(曾憲娥)가 박해로 사망한 진상인데, 정위링이 사망한 후에 가족더러 손을 대지 못하게 한 원인을 더욱 명백히 밝힐 수 있다.

그녀는 문장에 이렇게 서술하였다. 이튿날 쩡셴어가 사망했다. 우리가 경찰에게 쩡셴어가 어떤지 물었으나 경찰은 전혀 정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줄곧 소식을 봉쇄하고 있다가 반 달 후에야 쩡셴어는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법의가 해부를 통해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확진’했다는 것이다. 나는 노동교양소에서 이 일을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다만 직장 지도부와 가족이 원인을 조사하였으므로 해부했다고 짐작을 했었는데, 지금에서야 나는 인체 장기를 적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에 이 쩡셴어는 후베이성 스옌(十堰)시 구자강(顧家崗) 공상은행 여직원으로서 36살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녀의 남편은 쩡셴어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가서 쩡셴어의 시신을 보았는데, 새 옷이 입혀져 있었고 머리는 아주 크게 부어 있었으며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몸은 나른한 상태였다. 남편은 옷을 다시 갈아입히면서 몸을 검사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쩡셴어의 남동생이 법의학자를 데려가 검사하려 했지만 역시 거절당했고, 사진을 찍으려 해도 스옌에 가져가려 해도 계속 거절당했다. 시신을 화장할 때에도 가족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면서 추도회를 열어서도 이 일을 유포해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가족이 죽으면 그의 가족만이 장례를 치를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중공 지방 당국은 이토록 인정이 메마른 결정을 하였는가? 사진도 못 찍고 옷도 갈아입히지 못한다. 심지어 화장할 때도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가족이 그의 몸에 가득한 상처를 볼까봐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장기를 적출한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인가? 이 가운데의 비밀은 다만 사건에 연루된 중공경찰과 관련된 중공 관원들만이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 것이다. 화장한 후의 한 줌의 유골은 또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 많은 경우에 그 한 줌의 유골은 확실히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유골은 도리어 악한 짓을 행한 자의 죄악을 기재하고 있는데, 이는 정위링이 사망한 후에 유골마저 가족이 가져가지 못하게 한 이유일 것이다.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여러 증인이 공개적으로 실증하였다. 랴오닝(遼寧)성 후루다오(葫蘆島)시 쑤이중(綏中)현 첸쒀(前所)진 구청(古城) 대법제자 쑤쥐전(蘇菊珍)은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서 신경중추를 파괴하는 약물을 강제로 투약당한 적이 있다. 2006년 4월 8일 아침 8시 30분, 잔혹한 피해로 정신이상에 걸린 쑤쥐전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49세였다. 4월 9일 아침, 쑤이중현 첸쒀에 있는 화장터에서 화장할 때, 두개골, 다리뼈, 늑골이 모두 검은 것을 발견하였는데 태울 수가 없었다. 전문가에게 자문하여 알아보니 이는 약물중독의 결과였다. 현장에 있던 화장터의 사업 일꾼과 친구, 그리고 그날 화장하러 갔던 기타 사망자 가족들이 모두 이 검은 뼈를 검증하였고, 아울러 현장에서 기타 사망자의 유골과 대조해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이 뼈는 정상이 아니다.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고 했다.

또 한 가지 사례도 이 문제를 설명해 준다. 약물피해로 사망한 사람의 유골과 정상적으로 사망한 사람은 차이가 있다. 정상적 골회는 검은 회색이지만 약물피해로 사망한 사람의 골회는 검은색을 띈다.

지린(吉林)성 둥펑(東豐)현 제4중학교 교사 웨이펑쥐(魏鳳舉)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8년 동안 세 차례나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는데, 매번 모두 지린성 창춘(長春)시 헤이쭈이쯔(黑嘴子) 여자 노동교양소 1대대 3소대에 수감되었다. 2007년 4월 13일, 웨이펑쥐는 마지막으로 노동교양소에서 나왔는데, 그때는 이미 박해로 뼈만 앙상했다. 하지만 그 때는 억지로라도 밥을 작은 한 사발은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후부터는 갑자기 밥을 먹지 못하였는데, 먹기만 하면 아프고 먹지 않으면 아프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먹기만 하면 끊임없이 설사를 하였다. 한두 주일이 지나자 사람이 마르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으며, 체중이 급감하여 나중에는 24~30kg밖에 되지 않았다. 온 몸에 동통이 심했고 먹기만 하면 참을 수 없이 아팠으며, 소변은 모두 붉은색이었다.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고 머리는 한 동안 또렷하다가도 한 동안은 멍했다. 사망할 때까지 줄곧 눈을 감지 못하였다. 마지막 열흘 동안은 줄곧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였고. 마지막 며칠은 물도 넘기지 못하였다. 그녀는 “난 나을 수 없어. 그들(창춘 헤이쭈이쯔 여자 노동교양소 악경)은 나에게 주사를 놓았어.”라고 하였다. 그녀의 시신을 화장한 후의 유골이 바로 검은색이었다.

이런 사례는 많고도 많다. 밍후이왕에는 이러한 보도가 아주 많은데 모두 이름, 주소가 있다. 진상이 보도되면 밍후이왕에 유포된 박해진상을 늘 중시하고 있는 중공 각급 관원들은 속으로 두려워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행을 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워하고 있으며, 더욱이는 청산당할 날이 올까봐 두려워서 이처럼 괴상하게 노는 것이다.

정위링은 사망하였다. 중공이 그녀의 장례를 도맡아 치러주고 화장하기 전에 그녀의 얼굴을 치장해 주었는데, 마치 그녀더러 체면 있게 인간세상을 떠나가게 하려는 듯했다. 납치부터 단식에 이르기까지, 주사를 맞고 사망하기까지, 얼굴화장을 해주고 옷을 입혀주며 화장과 매장을 할 때까지, 그 중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얼마나 많은 박해 줄거리가 있을 것인가! 어떤 것은 그녀가 알고 있지만 어떤 것은 그녀조차 알지 못한다. 납치하고 단식을 강요하며 주사를 놓아 죽이고는 얼굴 화장을 해주고 옷을 입혀주며, 화장시켜 그녀를 묻어 주었던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서였는가? 참여자 모두가 그녀를 박해하여 죽인 주범과 공범자가 아닌가?

정위링이 얼굴 화장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박해로 변형된 코만은 화장사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법수련자로서의 그녀의 성결한 형상에 추호의 영향도 주지 못하였다. 반대로 오관(귀, 눈, 입, 코, 혀)이 제대로 다 있고 그녀를 위해 장례를 치러준 중공관원 및 그 졸개들은 얼굴은 저마다 더럽기 그지없다.

정위링은 갔다. 죄악으로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녀의 유감이라면 자신의 자비로 자신을 박해한 중공 경찰을 깨우쳐 주지 못한 것이리라. 내막을 아는 중공의 인사라면 긍정적으로 그녀를 두려워했을 것이며,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여전히 공포 속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녀의 유골마저 납치했겠는가?

중공의 이런 당도들은 정말로 이렇게 한 발작 한 발작씩 죄악의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도 회개할 줄 모른단 말인가? 당신들이 직면할 결말은 또 무엇이겠는가? 한사코 지옥에 가서 자신이 양심에 어떤 미안한 일을 했는가를 구별해 볼 작정인가?

문장발표 : 2009년 10월 20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0/20/2107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