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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雪害)와 자성(自省)

글 / 정의의 검

[명혜망 2004년 2월 4일] 현재 국내 매체들에서는 중국 대륙의 절반을 휩쓸고 있는 대 설해에 대해 장황하게 추적 보도하고 있다. 우리는 중공의 매체들이 많은 것들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종래로 중공 매체는 천재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두려워 하지 않아 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천재는 ‘자연요소’로 인해 조성된 것이므로 그것은 중공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천재는 어쨌든 지나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후에 전반 선전보도 과정에서 ‘당과 정부’의 ‘영명한 영도’ 그리고 ‘하늘 땅과 싸워 이긴 위대한 승리’를 체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중공이 보기에 천재는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다. 엄동설한속에 빠진 수천 만 이재민에 대해서 그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참으로 납세인들의 돈을 옳게 이용하여 구제사업을 하겠는가? 하늘땅과 싸운다는데 그에게 참으로 이런 재간이 있는가? 사실 중공에게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중앙TV에서 ‘폭풍설(雪)과 싸우다’란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데, 제목만 봐도 그 배후의 ‘하늘과 싸운다’는 당문화 정신을 곧 알 수 있다. 이는 1998년 대홍수 때 제출했던 ‘항홍정신(抗洪精神)’과 일치하는 것으로 그 실질은 모두 공산당의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며 사람과 싸운다’는 ‘투쟁정신’이다. 그러므로 공산당으로 말하자면, 이번 선전 역시 당문화를 선양하는 기회로써 은연 중에 중국인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아울러 최종에는 당의 영도하에 자연재해를 전승하였다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국인의 사상은 바로 이렇게 ‘당의 후설, 여론 목탁’에 흔들린다. 잘못은 하늘에 있고 공은 중공에 있다.

그렇다면 왜 이번 설해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나는 몇 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대략 80년대 이었던 것 같다. 어느 해 미국에 큰 홍수가 있었는데, 수재가 아주 심했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보도중에 제기된 물음에 대한 조사 결과였다. 미국의 상당 비율의 사람들은, 이번 수재는 미국이 좋지 못한 일을 하여 받은 징벌이라고 여겼다. 이 보도는 나를 아주 놀라게 하였다. 과학 기술이 그렇듯 발전한 미국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봉건 미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물론 지금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비로소 사람의 정상적인 정확한 사상이란 것을. 미국은 종교성이 아주 짙은 나라이므로 이런 관점을 가지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다. 얼마전에 한 미국 주지사가 가뭄 때문에 하늘에 비를 기원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사상은 역시 사실 중화 전통 문화 중에 있는 고유의 사상이다. ‘상림 비 기원’의 이야기가 바로 하나의 예증이다. 은상사기(殷商史书)에 기재된데 의하면, 성탕(成汤)이 재위에 있을 때 비가 내리지 않아 오래 동안 가물었다. 성탕은 목욕재계(沐浴斋戒)를 하고 뽕나무 숲 광야에서 신에게 기도하였다. 아울러 여섯 가지 일에 대해 자아반성을 하였다. “나의 정령(政令)이 부당하거나 나의 관리가 불선한 탓으로 신하들이 실직하고 백성들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나이다. 아니면 나의 궁실을 너무 높게 너무 사치하게 만들었거나, 내가 첩의 말을 곧이 듣고 권력으로 세도를 부렸습니다. 나의 법령이 엄하지 못해 탐오 수뢰가 공공연히 행해진 것 같습이다. 내가 사람을 잘못 썼기에 아첨쟁이들이 득세한 것 같습니다.” 성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 수천 리에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은 임재자성( 临灾自省)의 문화는 중국에서 몇 천 년을 이어져 내려 왔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인들은 당문화의 세뇌로 이미 자아반성하는 이런 사상과 능력을 잃어버렸다.

왜 재난이 있는가? 죄가 있기 때문이다. 왜 대면적으로 재난이 있는가? 대면적으로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타락과 죄악은 일체 재난의 근원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중국 사람은 이미 더이상 믿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우연’일 뿐이라고 여긴다. 중국인들은 중공 당문화의 교육 하에 이미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눈에는 오직 이익만 있을 뿐, 마음속에는 오직 돈만 있을 뿐, 천리를 믿지 않으며 보응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어떠한 경고도 오늘의 중국 사람들에게서는 효력을 잃었으니 그 누가 하늘로 올라가는 고심과 가엾음을 체험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쓰고 있는 일체는 모두 천지 만물에서 오고 얻는 것인데, 우리가 의지하고 생존하는 이 환경, 이곳에 순서있게 존재하는 만사만물은 모두 신의 안배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는 도리를 분명히 알고 시비를 똑똑히 가려야 하며 더욱이는 신의 가르침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때문에 우리 매개인은 모두 마땅히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재난 역시 신의 안배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신의 죄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하늘에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는데, 어찌 아무 연고 없이 재난을 인간에 내리겠는가? 그러므로 재난 앞에서 우리는 일심협력 하여 난관을 이겨나가야 하거니와, 더욱이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하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비난하지 말아야 하며, ‘하늘땅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이 이러해야 하며 한 국가는 더욱 이러해야 한다. 만약 국가가 천재를 만났다면 집권자는 마땅히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바로 성탕이 상림기우할 때의 자아반성처럼 말이다. 이러한 말을 공산당에게 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당은 종래로 반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종래로 반성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번연히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르고 있다. 일부러 저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일종의 ‘죄악을 끝까지 진행한다’는 사악한 기염이 있다. 자신이 반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누가 말하면 누구를 타격한다. 이렇듯 죄업은 쌓을수록 나날이 더 많아지고 하늘의 질책도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완전히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것이다.

죄가 있으면 재난이 있기 마련이다. 재난을 피하려면 먼저 재난의 근원을 찾아내야 한다. 중국의 재난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러자면 죄악의 발원지가 어디에 있는가부터 보아야 한다.

오늘의 중국에 얼마나 되는 죄악이 지금 바로 발생하고 있는가? 너무도 많다! 중공이 앞장서서 군중을 이끌고 모범을 보여주고 있어 전반 사회가 사악하고 타락한 방향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전반 사회가 흑백이 전도되고 시비가 뒤섞이고 물욕이 판을 치고 도덕이 타락되었다. 중공은 겉으로 보기에 좋게 치장하고 덮어 감춘다. 역사적인 것이든 지금의 죄악이든 모두 한사코 덮어 감춘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중국 공산당은 일체 죄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일체는 모두 그것이 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 역시 중국의 일체 재난의 근원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왜 중국에 이 따위 사당(邪黨)을 수호하는 사람이 있는지? 왜 그것의 틀려먹은 이론을 믿는지? 몇 십 년 동안의 피비린내나는 비바람 속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중국에 ‘중사(中邪)’라는 말이 있는데, 사령부체로써 자주적으로 할 줄 모른다. 아마도 이 원인일까?

우리는 길이 막히고 기차, 집이 무너지고, 정전으로 물 공급이 끊어진 이재민을 볼 때 생각해 보았는가? 날씨가 좋고 국태민안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것은 천리(天理)를 따르는 양심에서 오며 천지와 자연의 조화로움에서 온다. 우리는 대관절 어떻게 했는가? 중공은 또 어떻게 했는가? 중공이 할 수 있는가? 중공이 우리에게 하게 할 수 있겠는가?

설해는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재난은 계속하여 나타날 것이며 심지어 날마다 커질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재난의 근원인 중공이 여전히 작용을 발휘할 것이므로 타락과 몰락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난의 계속도 일종의 필연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무릇 일에는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중공이 심은 것이 어떤 것이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며, 중공이 걷는 길이 어떤 길이면 어떤 결말이 있을 것이다. 하늘과 싸워 무슨 결과가 있겠는가? 천재(天災)를 받는 외에 또 무슨 결과가 있겠는가? 중공은 심지어 공공연히 “쩐(眞), 싼(善), 런(忍)”과 원수가 되었는데, 그 사악한 본질이 그래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중공은 거짓말을 만들어 세인을 기만하고 암암리에 사악한 수단을 다하여 기타 범죄 활동에 종사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거짓말과 범죄를 유지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사악이 있는가? 역사상의 그 어느 범죄인들, 그가 회개한 적이 있었는가? 잘못을 승인한 적이 있었는가? 죄를 사과한 적이 있었는가?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심지어 시비를 전도하는데, 이는 중화민족을 심연속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중국에서 허다한 사람들이 중공사령의 인도하에 돌아갈 수 없는 무서운 길로 가고 있는데, 얼마나 되는 사람이 깨어날 수 있겠는가? 얼마나 되는 사람이 돌아설 수 있겠는가?

설해(雪害), 사스, 황사는 다만 조그마한 경고에 불과할 따름이다. 어서 깨어나라! 이 사악한 악당을 벗어나 더는 악당(惡黨)을 도와 나쁜 짓을 하지 말라.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2월 4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2/4/1716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