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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분석하여 신화사방송의 거짓을 증명한다.

【명혜망 2005년 1월 19일】(명혜평론원 페이밍[飛鸣]글)2001년 1월 23일 톈안먼 광장의’분신자살 사건’은 신화사가 파룬궁을 모함하는 최후의 한 줄기 구명초가 되었다. 올해 1월 23일이 되기 전, 신화사는 이 한가닥의 풀을 잡고 한바탕의 연극을 진행하였다.

분신 자살자의 조우는 그 자신과 그의 가족을 놓고 말할 때 모두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나는 그들을 아주 동정한다. 이번 분신자살 사건의 진실한 내막은 중공 당국이 사실을 은폐하고 봉쇄하여 지금까지도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신화사와 중앙 TV가 보도한 판본은 오히려 곳곳마다 거짓이 폭로된 가짜극이었음이 드러났다. 명혜망은 이에 대하여 이미 대량으로 분석한 바가 있는데, 내가 가장 깊이 기억하고 있는 몇몇 장면이 있다. 이미 후두를 잘린 가련한 어린 아이 류스잉이 병원에서 아주 똑똑하게 말하고 노래하는 의학 기적을 창조하는 장면과, 그리고 심각하게 화상을 입은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단단하게 붕대로 감겨져 있는 모습은 완전히 의학적인 상식을 위반한 것이었다. 이 가짜극의 주역인 왕진둥은 분신 자살할 때의 옷은 이미 새까맣게 탔지만, 그의 다리 사이에 있던 휘발유가 가득 담긴 초록색 플라스틱병은 오히려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가 구호같기도 하고, 구호같지도 않은 한 마디 말을 외치기 전에, 경찰의 손에 들린 불을 끄는 탄자가 그의 머리에서 한가롭게 아주 오랫동안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불을 꺼야 하다는 긴박감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이렇듯 선명하게 폭로된 세부적인 부분들을 더는 중복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실들은 파룬궁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해외와 대륙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점들이다. 본 문은 단지 더 넓은 시각에서 신화사가 분신 자살에 대하여 보도하는 방식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나는 이 사건이 장래에 ‘반우양모’ ‘모산량이 만근이다’ ‘배신자, 내신, 노동자의 도둑’ ‘사스’등의 보도와 같이, 신화사란 이 가짜 매스컴이 가짜 뉴스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연구하는 하나의 표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증위(证伪)1:중공 당국은 왜 명혜 기자는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가?

이 일이 있기전에 신화사가 보도에서 내세운 명목은 ‘중외기자 인터뷰’였는데 인터뷰한 시간, 지점, 인물, 대사는 완전히 중공에 의해 조종되었으며, 이런 인터뷰는 그 당시의 나치집중영이 각 국의 매스컴을 요청하여 진행한 인터뷰와 유사하며, 또 소련 대기근 기간에 서방의 좌파 기자들을 요청하여 진행한 인터뷰와 아주 유사한 즉, 이런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진실한 사실이 아니라 위조한 가상이었다.

만약 중공 당국이 마음 속에 꿍꿍이가 없었다면 왜 감히 서방 기자에게 제한을 받지 않고 대륙의 광대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인터뷰하지 못하게 하며, 그들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몸을 건강히 하고 도덕이 승화한 체험을 듣게 하지 않는가? 그들이 신앙과 언론의 권리를 견지하기 위하여 받은 잔혹한 경력을 듣게 하지 않는가?

만약 중공 당국의 마음 속에 꿍꿍이가 없다면, 왜 파룬궁을 정면적으로 보도하는 명혜망을 봉쇄하는가? 왜 명혜망 기자가 중국 대륙에 들어가 대륙의 감옥 노교소를 포함하여 제한받지 않고 취재하도록 하지 않는가? 아울러 대륙에서 공개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가?

아주 명확한 것은 이는 중공 당국과 신화사가 진상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들이 위조한 거짓말이 독립적인 조사와 대조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증위 2:왜 타이완과 유럽 미국에는 분신자살 사건이 없는가?

신화사는 분신자살 사건이 파룬궁이 만든 것이라고 한사코 주장하고 있는데, 똑같은 중화 문화를 토대로 한 타이완에는 수십 만 명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있음에도 왜 그 곳에서는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유럽, 미국, 호주 등 지역에도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있지만 왜 그 곳에도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가? 대륙에도 수천 만 명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있지만 왜 신화사가 보도한 그 몇 사람 이외에 기타 수천 만 명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은 모두 분신자살하지 않는가? 이것은 파룬궁이 전혀 사람들에게 분신자살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알려준다. 그 몇몇 사람의 분신자살의 개인 행위가 조성한 비극이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던지 간에 모두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없다.

신화사 우편 신문 기자가 분신자살 이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분신자살 중 사망한 류춘링 여사는 카이펑(開封)의 한 접대부였으며 그녀의 이웃은 그녀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기타 일부 사람들의 신분도 신화사 스스로 말한 것으로써 독립적인 조사를 거친 것이 아니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말한다면 비록 이 사람들이 전에 파룬궁을 며칠 배웠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극단적인 행위로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겠는가?

파룬궁은 자살과 살생을 할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준수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 자신이 파룬궁 수련생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비이성적인 행위로 조성된 비극이 파룬궁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마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교통 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음주 후 운전하다가 차 사고를 냈다. 그럼 이것이 교통 규칙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럼 이것을 자동차를 생산해 낸 공장의 잘못이라고 하겠는가?

웬남에서 전에 불교를 믿던 스님이 정부의 폭정에 항의하기 위하여 분신자살을 하였다. 한국에서도 학생이 민주운동 중에 분신자살로 독재 통치에 항의한 적이 있었다. 타이완 민중이 건핵사에 반대할 때에도 분신자살로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분신자살을 불교, 민주, 반핵단체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신화사가 극력으로 분신자살 사건을 파룬궁과 연결을 지으려고 하는데 바로 이번 비극을 이용하여 민중의 미움을 선동함으로써 피비린내나는 박해를 하기 위해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번 비극이 중공 장씨 집단의 야만적인 박해로 조성된 것이라면 만약 이번 박해가 없었다면 분신자살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증위 3:신화사는 왜 요즘에 일어난,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의 분신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가?

신화사는 매 년마다 한 번씩 4년 전의 분신자살 비극을 떠들썩하게 들먹였는데 요즘 연속 발생한, 살길이 없고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베이징에서 분신자살한 사건에 대해서는 오히려 은폐하고 있다.

중앙사는 2004년 1월 18일 전보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명절을 보낼 준비를 즐겁게 하고 있을 무렵 중국에서는 민공이 월급을 받지 못하여 스스로 불구가 된 사건이 있었다. 한 민공이 베이징 서객참 광장 주변의 한 빌딩안에서 불을 질러 분신자살을 하였는데 응급처치를 한 후 생명을 보존하였지만 전신의 피부가 거의 화상을 입어 중상이라고 한다.

2004년 5월 21일 자유아시아 방송의 보도에 의하면 두 명의 노인이 화요일 베이징 중난하이 부근에서 분신자살한 후 외부의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하여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2004년 5월 21일 중앙사 보도에 의하면 비록 베이징을 중국의 ‘수선(首善)의 지역’이라고 하지만 요즘에 한 부녀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또한 저소득층 가정에 대한 보조를 얻지 못하자 절망하여 분신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유의 분신자살 사건이 대륙에서 매 번 발생하고 베이징을 제외한 기타 지역에서도 궁지에 몰린 민중들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런 사건은 소외 계층이 중공의 ‘정치 성적’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나타낸다. 신화사는 왜 이런 억울한 사람들의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떠들썩하게 보도하지 않는가?

사건의 진실 즉, 백성들이 편히 생활할 수 없어 발생한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신화사는 적극 덮어 감춰 집권자의 이른 바 정치 성적을 위조한다. 아울러 중공 당국이 오도하고 연출한 거짓이 폭로된 분신자살 가짜 사건에 대해서는 신화사가 오히려 제멋대로 들볶으며 파룬궁에 고스란히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다. 신화사는 하나의 뉴스 매스컴이 아니라 집권자의 정치도구로써 사기와 오도가 신화사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임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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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종사하는 일은 바쁘지만 시간을 짜내어 명혜 평론을 하는 양심 자원봉사자(良心義工)이다. 하지만 신화사의 기자 ‘톈위(田雨)’등과 같은 사람들처럼 민중을 속이고 오도하는 짓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여기서 마친다. 필자는 ‘톈위’ 등 기자들에게 경고하고자 하는데 자신의 양심을 찾아서 민간의 고통스런 생활고와, 관리들의 탐오를 보도하고 집권자를 위해 공덕을 찬양하지 말며 무고한 이를 모함하고 민중을 우롱하지 말라. 아마도 당신은 양심이 몇 푼도 안된다고 느끼겠지만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도리를 잊지 말라. 언젠가 어느 날, 당신들의 필로 사람을 속이고 필로 사람을 해친 악행이 당신들에게 거대한 재난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절벽에서 말의 고삐를 잡으라.

멕쑹똑暠튬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사건 중, 분신 자살하는 왕진둥


왕진둥 두 다리 사이에 있는 휘발유가 가득 담긴 초록색 병은 전혀 손상이 없었다

멕쑹똑暠튬


화상 환자는 공기 중에서 말려야 하고 간호사는 간호 복장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하여 감염을 방지해야 한다.

문장완성:2005년 01월 18일

문장발표:2005년 01월 19일
문장갱신:2005년 01월 19일 04:34:00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19/9381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