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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연좌(連坐)제, 국가 공포주의 망령(陰魂)

글/대륙 대법제자 중옌(仲彦)

【명혜망 2004년 10월 1일】현재 중국은 50여 년 동안 정치운동이 끊이지 않았으며 특히 현존하는 “연좌(連坐)제”는 피비린내를 몰고 다니는 제도이다. 가족을 비롯하여 친척 중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적대적 대상인 수감자, 살인자, 지주, 부농, 반혁명, 우파분자가 있다면 그의 자녀, 친척들은 물론 심지어 먼 친척, 가까운 이웃, 친구, 동료들까지도 모두 연좌제로 인해 피해를 당한다. 연좌되는 자는 반드시 이 “독재의 대상”과 경계를 갈라야 하고, 정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려야 하며 자신의 분명한 태도를 표시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연좌제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부모나 친척을 팔아먹고, 헛된 꿈을 쫒아 친인척을 검거적발하며 자신의 친구, 동료도 팔아먹는데…… 이러한 연좌제 실시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하고 있다. 1999년 7월부터 장쩌민은 파룬궁을 공개적으로 잔혹하게 탄압하는 동시에 전국적으로 “연좌제”를 실시하였다. 각계 지도층을 핍박하여 각 계층마다 파룬궁을 박해하는 각서(責任狀)에 서명하게 하고, 서명 결과에 따라 직장 책임자 승진자격, 경제적 이익 등에 반영하였다. 만약 직장 내에서 연공을 하거나 청원하러 가는 사람이 있으면 상급자의 직위가 위태로워지고, 수련자가 소속된 직장도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주장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직장의 압력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1년 2월, 허베이(河北)성 신지(辛集)시에서 발생한, 성위(省委)서기 왕쉬둥(王旭東)을 “놀라게 하고” 전 성(省)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천레이사건(陳蕾事件)”이 바로 그 중 한 예이다.

파룬궁 수련생 천레이(陳蕾,여)는 허베이성 신지시 중학교 교사였다. 2001년 정월 초하루 날에 불법 체포되어 정월 초닷새까지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가족들이 3천 위안을 벌금으로 내고서야 그녀를 내보냈다. 개학 후, 일부 학생에게 천레이가 구치소에서 설을 보냈다는 것이 알려져 이 사건에 대해 학생들 사이에 의론이 자자했다. 그래서 천레이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녀가 가르치는 4개 학급에서 자신이 박해받은 과정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이 일이 한 학부형에 의해 “610 사무실”에 밀고 되어 허베이 성위 서기 왕쉬둥은 이 일에 대해 직접 조사지시를 내렸다. “천레이사건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므로 철저히 조사하라.”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연좌”에 걸려 고통 받게 되었다.

2월 23일 천레이는 불법으로 체포된 후 신지구치소에 갇혀 잔혹한 박해를 받았으며, 천레이가 가르치고 있던 4개 학급의 학생들 중 절반이 조사를 받았다. 천레이가 소속되어 있는 학교 교장 미리쥔(米立軍, 파룬궁 수련생임)이 면직됨과 더불어 불법으로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신지시 교육국장 팡위쒀(龐玉鎖)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업무상 중과실이 기록되는 처분(記大過)을 받았다. 그리하여 팡위쒀는 강도 높게 각 학교 교장들을 핍박하여 “각서(責任狀)”를 쓰게 하였으며, 만약 또 이와 유사한 “파룬궁 사건”이 발생하면 일률적으로 교장직위를 면직처분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사건 후 부시장 자오보(趙泊)가 직접 지휘 감독하여, 각 초, 중등학교에서 위세가 대단한 “파룬궁을 적발 비판하는 대서명” 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운동을 벌였다. 무릇 서명을 거절하는 자가 학생이면 학업을 중단 시키고, 선생이면 강제로 세뇌반에 보내어 “전화(轉化)”하게 하는데 “전화(轉化)”하지 않는 사람은 직장에서 제명했다.

가족 중 연공하거나, 청원하러 간 사람이 있으면 그 집은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할 뿐만 아니라 가족은 학교나 군대, 직장에 걸쳐서 모두 생계에도 위협을 받는다. 일부 파룬궁 수련생의 배우자는 사악한 국가공포주의가 가져온 거대한 압력과 공포 하에 핍박으로 배우자와 이혼해야 했으며 어떤 이는 심지어 인간성을 잃어 잔인하게 자신의 수련생 아내를 살해하기도 했다. 수련자의 자녀들도 물론 거대한 고난을 받아야 했다.

예를 들면, 허베이성 바오딩(保定)지구 딩저우(定州)시 파룬궁 수련생 양리룽(楊麗榮)은 신념을 지켜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다. 현지 경찰이 여러 차례에 걸쳐 그녀의 집에 가서 교란하고 공갈협박을 하니, 양리룽의 남편은 연좌되어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 여러 번이나 양리룽을 때렸다. 견인불굴한 양리룽은 3차례나 세뇌반에 보내져 집안 분위기는 더욱 긴장되었다.

2002년 2월 어느 날(2001년 섣달 27일 밤), 악경이 또 집에 와 불법수색하고 공갈하였다. 양리룽의 남편은 국가공포주의가 조성한 공포심으로 심령이 심하게 뒤틀리고 인간성을 잃어 다음날 새벽 노인이 외출한 틈을 타 잔인하게 양리룽을 목 졸라 질식사시켰는데 당시 그들의 아이는 겨우 10세였다.

또 한 가지 예는 중국과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발생한 이야기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한 중국인은 중국 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와 박사학위를 딴 후 미국에 남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수입이 톡톡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파룬궁 수련생이며 그와 함께 지냈는데 그는 효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 중국 대륙에서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한 후, 갈수록 많은 대륙의 매체들이 파룬궁에 대해 비방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니 그의 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그에게 불리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어머니께 “쩐,싼,런(眞,善,忍)”신념을 포기하라고 여러 번 요구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자, 드디어 그는 어머니를 집에서 나가라고 했지만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말자 그는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통곡을 하면서 어머니께 사과하였다. 그러면서 또 1년이 지났다. 중국 대륙에서 파룬궁 박해가 한층 강화되고 있을 때, 그는 그에게 초래될 불이익에 대한 심리적 공포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 영어를 조금도 모르는 연로한 어머니를 문밖으로 내 쫓아 버렸다.

“연좌제”로 인해 사람들은 위험을 자초하기도 했는데 이는 연좌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영혼을 이익에 팔아 탄압자와 타협했을 뿐만 아니라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하며 “쩐,싼,런(眞,善,忍)”을 수련하는 민중들을 잔혹하게 박해하고 있다. 어떤 이는 친척, 친구의 약점을 틀어쥐고 괴롭히며 심지어 살인까지 한다. 또 양심을 어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어 침묵을 선택하였다. “연좌제” 하에 사람들은 정의, 양심, 도덕을 흘낏 볼 가치마저도 없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양심 말입니까? 양심이 몇 푼어치나 됩니까! ?”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장쩌민은 잔혹하게 파룬궁 박해 정치운동을 벌이며, 중앙의 이름으로 각 급 지도부에 중앙정책과 일치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그 “연좌제”로 각급 정부를 연좌시키고 가장 기층인 향과 진(鄕鎭), 가도(街道, 역주: 도시의 ‘區’ 하위 행정단위 )에까지 연좌시켰다. 장(江)씨 집단은 전국의 선전도구를 움직여 거짓말을 만들고 퍼뜨려 파룬궁을 모함함으로써 원한과 공포심을 전 국민의 마음속에 심어주었다. 중요한 도로 입구에는 파룬궁 창시자의 사진을 땅바닥에 놓고 밟지 않고는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으며, 관광객이 천안문 성루에 오를 때, 파룬궁을 욕하지 않으면 올라가지 못하게 하였다. 초등학생을 포함하여 많은 학생들을 핍박하여 파룬궁 반대 서명을 하게 하였다. 감옥, 노동 수용소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잔혹하게 폭행한 악경에게 고액의 보너스를 주며 심지어 “인민대표”의 칭호까지 수여한다…. .
장쩌민의 사용한 사악한 “연좌제”는 전 중국인민을 연좌시켜 사람들에게 막심한 공포심리를 조성하였다.

더욱 엄중한 것은 장(江)씨 집단이 경제적 이익을 무기로 삼아 연좌제를 국외에까지 적용하여 여러 나라로 하여금 파룬궁 수련생의 합법적인 활동을 제한하게 하였다. “연좌제” 국가공포주의의 망령은 인류의 신념과 인권을 짓밟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의, 양심, 도덕에 대한 파괴이기도 하다. 몇 천 년의 전통이 있는 중화문명이 바로 이러한 국가 공포주의 정책 중에서 무참히 짓밟히며 파괴되고 있다.

문장완성: 2004년 9월 30일
문장발표: 2004년 10월 1일
문장갱신: 2004년 10월 1일 04:40:19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0/1/855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