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가치’ 고찰

글/ 린다스(林大勢)

[명혜망] 중국 본토의 몇 세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본가’는 부정적인 어휘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학교 선생님들이 항상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르쳤는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의 노동은 두 부분, 즉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으로 나뉜다고 했다. 필요 노동은 자신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것이고, 잉여 노동이 창조한 그 부분의 가치가 바로 잉여가치라는 것이다. 자본가가 노동자의 잉여가치를 ‘무상으로 점유’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착취를 소멸하려면 자본가를 소멸해야 하고 자본가를 보호하는 자산계급 정권을 소멸해야 하므로 반드시 혁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 그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다.

우선 ‘혁명’이라는 이 개념이 지극히 폭력적이고 피비린내가 난다는 점은 차치하고, 이 ‘잉여가치’ 이론을 자세히 분석해보자.

첫째, ‘필요 노동’이 차지하는 것은 ‘자본가’ 사유의 공장 건물, 설비와 도구, 원료와 부자재, 수도와 전기, 인적 및 물적 관리, 기술 교육, 건물 보험, 인력 보험 등 일련의 비용 투입이다. 반면 노동자에게는 이런 지출이 없다. 이에 반해 ‘노동자’가 다른 사람의 재물과 물건을 차지해 생산하지 않고 자신의 사유재산을 사용한다면, 이 사람 자체가 바로 중국공산당(중공)이 말하는 ‘업주’, 즉 ‘자본가’가 된다. 자금과 재산의 규모를 불문하고 혁명(소멸) 대상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서 바로 ‘이윤’이다. 투입하면 반드시 이윤을 창출해야 기업이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밑지는 장사’인데 누가 사업을 경영하겠는가? 차라리 돈과 설비를 직접 버리는 편이 낫다. 마르크스가 굳이 ‘이윤’을 ‘잉여가치’라고 부른 것은 고의로 인류의 정상적인 개념과 논리를 어지럽히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기업은 경영 과정에서 이익이 날 때도 있고 손실이 날 때도 있다. 손실이 날 때 이윤은 적자로 표시되며, 이는 즉 잉여가치가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이때 자본가는 자신의 돈을 꺼내어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에 따르면 이때는 노동자가 자본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자본가가 ‘착취’라는 악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돈을 들여 노동자 대신 로봇을 산다면 역시 잉여가치(이윤)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그것은 자본가가 로봇의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로봇은 자본가가 산 도구 혹은 설비이니 이렇게 되면 또 자본가가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 된다. 이 착취 이론은 아주 황당하지 않은가? 대립을 조장하고 증오를 조장할 뿐이다.

각도를 바꿔서 다 함께 생각해보자. 만약 한 명의 노동자나 농민이 ‘잉여가치’ 이론을 신봉한다면 그가 마음 편히 노동할 수 있겠는가? 만약 모든 노동자나 농민이 자신의 일이 상호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착취당하는 것이라고 믿고 마음속에 증오와 폭력을 품는다면 그것은 어떤 상태가 되겠는가? 끔찍하지 않은가?

그는 악을 선동하고 증오를 선동하며 폭력을 선동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가 이르는 곳은 반드시 전란과 기근이 뒤따랐다. 그러니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교)’는 사이비 종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회주의 국가는 반드시 빈곤하고 낙후된다.

어떤 사람은 중국이 아주 부강하지 않냐고 말한다. 사실 중국의 부강은 마르크스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정반대로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결과다.

현재 중국의 GDP는 기본적으로 민영기업이 제공한다. 즉 사유제와 착취제도에서 발생한 것인데 중공은 오히려 이를 강력히 제창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중공은 일찍이 사유제를 소멸하고 공유제를 건립해 인민들이 이른바 ‘주인’의 마음가짐으로 노동에 참여하게 했다. 그러나 오히려 보편적으로 ‘출근은 하되 힘은 쓰지 않고, 일할 때 여지를 남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기관에서는 또 해고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의 주인’이고 명예상으로 비할 바 없이 고상한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 계급)’이었기 때문에 기관 책임자들도 그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 사람이 이러니 나머지 사람들도 잇따라 모방하여 전국적으로 이런 게으르고 탐욕스러우며 차지하려는 나쁜 풍조가 형성됐다. 공유제가 수많은 게으름뱅이를 배양해낸 것이다. 반면 당에 충성하고 당성이 모든 것보다 높으며 아부와 영합에 능하고 형식주의를 잘하는 사람들이 당 체계 내에서 가장 전도가 유망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나라의 시민이라면 이런 방식과 상태에 대해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덩샤오핑의 개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민들이 의식주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자 부득이하게 진영을 포기하고 사유제, 노사 쌍방향 선택제, 양로 보험제, 민선제 등 자본주의의 요소들을 일부 도입했다. 이렇게 해서야 비로소 중국이 부유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은 더 이상 표면적인 현상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이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마도 사상 속에서는 여전히 사회주의에 미련을 두고 있을 수 있으며, 특히 중국의 부강은 더욱 당신들을 의아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미련의 콤플렉스가 중공의 자기도취를 강화했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사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단지 ‘공산당의 영도 견지’만이 여전히 사회주의의 작풍을 보존하고 있을 뿐인데, 이것이 오히려 사회 발전의 거대한 장애가 됐다.

공산당은 ‘자본론’을 붉은 보전(寶典)으로 받들고, ‘잉여가치’ 이론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비밀을 폭로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착취제도를 보호하는 모든 제도를 소멸하고 낡은 세계를 박살 내어 새로운 세계를 세우려 했다. 전 세계적으로 무산계급 혁명 운동을 맹렬히 일으켜 1억 명 이상을 사망케 했고 파괴된 물질적 생산품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공산당이 사악한 이론과 억지 논리를 신봉하면서 인류의 재난은 이렇게 시작됐다.

‘문화혁명’ 이전까지 중국의 자본가는 이미 기본적으로 소멸됐고 중국에는 착취가 없었다. 그렇다면 개혁개방 이전 중국인들의 생활 수준은 어떠했는가? 찢어지게 가난했다! 심지어 수천만 명이 산채로 굶어 죽기도 했다. 이후 개혁개방을 하면서 민영기업이 많아졌고 착취가 발생했는데,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기이하지 않은가! 왜 착취가 없으면 가난해지고 착취가 있으면 사람들이 오히려 부유해지는가? 마르크스주의의 착취 이론이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세계적으로 공산당이 집권한 국가는 보편적으로 모두 빈곤한 반면 서방 자본주의 국가는 오히려 매우 부유하다는 이 사실들이 바로 마르크스와 공산당이 사람을 속인 명백한 증거다.

우리는 다시 각도를 바꿔서 전통문화의 측면에서 한 가지 문제를 고찰해 볼 수 있다. 사람의 빈곤이 착취를 당해서 생긴 것인가? 공산당이 일으킨 무산계급 혁명 운동이 걸은 것은 정도(正道)인가?

사실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와 농민의 관계는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 억압하고 억압당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하고 서로 윈윈하는 상호 이익의 관계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왜 그것을 착취와 피착취,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로 보았는가? 사람의 관념은 사실 사람의 경지를 반영한 것이다. 공산당은 왜 마르크스처럼 인격이 저급하고 증오로 가득 찬 자를 교주로 받들었는가? 공산당은 바로 그의 이 이론을 사용해 모두를 이끌어 공산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여러분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폭력 혁명을 써야만 해결할 수 있는가? 전통문화에서 중국인은 ‘화위귀(和爲貴, 화합을 귀하게 여김)’를 말한다! 그러나 폭력 혁명은 피를 흘리고 사람이 죽게 하며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니 인류에게 아무런 이로움이 없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의 잉여가치 이론은 실질적으로 공산당이 폭력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간판이자 핑계일 뿐이다. 그것은 중공의 ‘계급투쟁’ 학설에 봉사하기 위한 것으로서 인간 세상의 정도에 부합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억지 논리이자 사악한 이론일 뿐, 인류 사회 발전에 이로운 탁견이 결코 아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2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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