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좋음과 나쁨, 정(正)과 사(邪)의 선택 속에 놓여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선(善)을 선택하느냐 악(惡)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관건이자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아래에 필자가 사는 지역의 두 마을 간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어쩌면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깨우침을 주고, 광명으로 향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하도록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양광(楊光, 가명)은 촌민위원회에서 30여 년간 일했다. 그는 성품이 충직하고 타인을 선하게 대해 인의지사(仁義之士)라 불릴 만했다.
1999년 7월, 중공 악당 우두머리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한 박해를 시작한 후, 이 마을의 수련자 몇 명이 마을 정부에 불법 감금됐다. 양광은 이 선량한 사람들을 매우 동정했고, 그녀들이 애를 태울까 봐 걱정돼 여러 차례 수련자들과 함께하면서 힘닿는 대로 위로를 건넸다. 그가 당직을 설 때 한 수련자가 집에 가서 잠을 푹 자고 싶어 하자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당시 그는 마을 정부에서 가장 말단 간부였는데 용기를 내 약자를 도운 것이었다.
이후 양광은 마을 치안 주임으로 승진했다. 중공 악당의 파룬궁 박해 정책이 끊임없이 고조됨에 따라 그가 직면한 압력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도 파출소 경찰에게 협조해 수련자들을 찾아가 교란하기도 했다. 그러다 수련자들이 파룬궁이 무엇인지 진상을 명확히 알려주자, 그는 진상을 깨달은 뒤 박해에 가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련자들을 보호했다. 매년 상부에서 박해 지시가 내려올 때마다 그는 중점 관리 대상인 수련자들을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보증을 섰고, 사악의 엄중한 압박을 막아내면서 수련자 본인은 모르게 했다.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때는 사람을 보내 전갈을 전하며 수련자들에게 물건을 잘 숨겨서 번거로운 일을 피하라고 알려주었다.
어느 해, 현지의 사악 세력이 중점 관리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가택수색과 납치를 실시했다. 양광은 소식을 접한 뒤 사람을 찾아 즉시 마을의 한 수련자에게 대법의 모든 물건을 숨기라고 귀띔했다. 그의 도움 덕분에 해당 수련자들은 컴퓨터와 프린터를 모두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의 형은 그가 대법 수련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을 알고 중공의 적색 테러 앞에 겁을 먹고는, 그를 꾸짖으며 파룬궁 편에 서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 깊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감복했고 마을 수련자들을 존경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이미 선택한 올바른 길을 계속해서 나아갔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20여 년 동안, 파룬궁 문제에 있어 양광은 ‘상부에는 정책이 있고 하부에는 대책이 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마을 수련자들이 박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많은 마음을 쓰고 노력을 기울였다. 변함없이 수련자들을 위해 비바람을 막아주었으니 그 공덕이 무량하다.
이 때문에 양광 역시 대법의 보호를 받았고, 그와 그의 가족 모두 복을 받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그는 마을 서기(1인자)로 승진했고, 손주까지 보았으니 그야말로 경사가 겹쳤다. 그의 아내는 안팎으로 살림꾼이라 농사도 짓고 일도 다니며 가세가 번창하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는 대학 졸업 후 나란히 한 기업에 배치돼 업무가 매우 순탄하다. 마을 사람들 모두 양광의 가족을 부러워하며 “저 집은 사람도 잘되고 재물도 넘친다”라고 말한다.
이상은 한 선량한 마을 간부의 이야기였다. 아래에서는 그렇지 못한 마을 간부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두밍(杜明, 가명)은 위선적이고 오만방자한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평범한 서민이었는데, 파룬궁 진상을 받아들인 덕분에 운이 트여 마을 간부로 승진했다. 하지만 그는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며 직속 상사에게 뇌물을 바쳤고, 결국 촌민위원회 최고 자리에 올랐다. 두밍은 부임하자마자 중공의 사악한 파룬궁 탄압 정책을 전력을 다해 집행했다. 파출소 경찰에 적극 협조해 몇 번이고 수련자들을 찾아가 전향 보증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수련자들이 협조하지 않고 한 수련자가 그에게 진상을 알렸으나, 그는 듣지 않고 오히려 위협하며 소리쳤다. “정말 서명 안 해서 공무를 방해한다면 위로 넘겨버리겠다. 내가 관여 못 하면 윗선(박해 기구)에서 관리하게 하겠다” 결국, 그는 수련자의 가족을 속여 서명하게 했다. 훗날 그 수련자가 일부러 찾아가 진상을 알리며 엄정성명을 쓰라고 권유하자, 말로는 아주 잘 알겠다고 했지만 행동으로는 협조하지 않았다.
어느 해 중공 악당 창건일 전날, 두밍은 파출소 경찰과 함께 마을의 중점 관리 수련자를 찾아가 괴롭혔다. 수련자가 진상을 알리자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역시 기가 꺾여 풀이 죽은 채 돌아갔다.
전염병 기간에 두밍은 상부의 ‘코로나 제로화(淸零)’ 정책에 적극 협조하며, 백신을 맞지 않은 수련자를 끝까지 추적했다. 그는 한 고령 수련자를 꾀어 세 차례나 백신을 맞게 했고, 그 후유증으로 해당 수련자는 그해 연말에 세상을 떠났다. 그 수련자의 자손들은 백신 때문이라며 사람을 해친 중공을 욕했고, 좋은 일을 하지 않는 두밍도 욕했다.
두밍의 재임 기간 중, 대학에 다니던 그의 아들은 학업은 뒷전이고 사회의 건달들과 어울려 도둑질을 하다가 구류됐다. 그는 인맥을 동원하고 수만 위안의 돈을 써서 겨우 아들을 빼냈다.
3년 뒤, 두밍은 공금 횡령과 뇌물 수수 혐의로 면직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패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선을 버리고 악을 따르며 중공 악당을 바짝 추종하다가 불러들인 화근이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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