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예언에 대한 단상
글/ 문이명(聞以明)
[명혜망] 2003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이 영국 과학자 뉴턴의 신학연구 자필 원고를 세상에 최초로 공개했다.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이 원고에는 성경에 대한 뉴턴의 인식과 감상이 빼곡히 적혀 있다.
뉴턴은 저명한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생전에 발표한 저서 중, 수학과 물리학 분야의 저서는 16%에 불과하고, 나머지 80% 이상은 신학 분야의 저서다. 뉴턴은 자필 원고에서 성경이 예언한 종말의 시점을 21세기로 지목했으며, 이때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올 것이고, 자신은 다시 성도(聖徒)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년기가 끝나는 때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성경 문화는 서방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올해 초 열린 취임식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성경과 60년 전 모친으로부터 받은 성경을 같이 사용해 취임 선서를 했다.
성경 예언은 그 어떤 예언들보다 권위가 있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은 특정한 시기에 인류가 직면하게 될 천재지변, 역병, 전쟁, 선악의 대결, 최후의 심판, 그리고 사람들의 근본적인 귀결을 예언했다.
성경 예언에 따르면, 구세주의 강림이 가까워졌을 때 여러 가지 징후가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스라엘의 국가 재건이다. 2,000여 년 전 고대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은, 1948년 마침내 국가를 재건했다. 이 사건은 서구 사회에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으며, 선악의 최후 대결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또 ‘요한계시록’에는 사탄이 깊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봉인되어, 천년이 찰 때까지 지상의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했지만, 그 후에는 잠시 풀려나게 된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해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蔣介石)는 1961년 미국 ‘크리스천 헤럴드’에 발표한 기고문 ‘공산당은 인류 최대의 적’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조용히 자문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말하는 ‘천년기가 끝나는 때’에 이른 것은 아닌가? ‘그 천년이 끝나면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을 유혹하고, 곡(Gog)과 마곡(Magog)을 불러 모아 전쟁을 일으키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으리라.’ 성경 학자들은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면 엄청난 권세를 가질 것이라고 본다. 사탄의 화신인 공산주의는 하느님과 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농락하려고 들 것이다.”
이 기고문에서 장제스는 공산당을 따르는 것은 출로가 없다고 단언했다. “어떤 형태로든 공산당과 타협하는 것은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것이며, 강도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자유세계가 이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자멸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들과 타협하는 것은 사탄이 세상에서 군림하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중국공산당의 굴기
1989년 11월, 소련과 동유럽 공산 진영이 붕괴하면서 서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고 여겼고, 당시 허약했던 중공(중국공산당)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그러나 2001년 중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한 후,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밀물처럼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이는 중국이 지난 30년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근본 원인이었다.
그동안 중공은 값싼 상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한편, 공자학원, 서방언론, 경제협력기구 등을 통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돈과 여색을 이용해 서방 사회에 깊이 침투했다. 최근 수십 년의 변화를 살펴보면, 소련은 붉은 마귀가 잠복해 있던 중공 유령을 부활시키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장치였다.
중공은 100년간의 쇠약으로 서방의 동정을 얻었고, 인민의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서방의 자본과 과학기술을 얻었다.
중공은 또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으로 서방을 미혹시켰고, 다양한 염가 상품으로 서방을 유혹했다.
하지만 중공은 결국 늑대 전사의 날카로운 발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큰 붉은 용이 하나 있는데,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그 일곱 머리 위에 일곱 개의 왕관이 있더라.”
“큰 용은 옛 뱀이요, 마귀 또는 사탄이라고 하며, 온 세상을 미혹하는 자이니라.”
“음녀는 땅의 임금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진노의 포도주를 먹여 만국을 무너뜨렸다.”
“세상의 상인들은 음녀의 사치와 방탕으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
“내가 보매, 그 여자는 성도들의 피와 순교자들의 피에 취해 있었다.”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 그리고 ‘피에 취한 음녀’
신의 계시는 심오하다.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짐승’이 중공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중공 휘장을 보면 낫과 망치의 윤곽이 숫자 ‘칠(七)’과 비슷하고, 두 개의 별이 겹친 주변 장식은 정확히 각이 10개다. 또 중남해(中南海, 자금성 서쪽 중공 고위층 집거지)에 있는 중공 최고 지도부는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역시 바다에서 올라왔다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머리 짐승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이제 ‘피에 취한 음녀’에 대해 알아보자. 중공은 정권을 찬탈한 1949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중국 전통문화를 파괴했고 거짓과 폭력으로 중국 사회를 통제했다. 그들은 10년을 주기로 삼반(三反), 오반(五反), 반우파, 대약진, 문화대혁명, 천안문 민주화운동 진압, 파룬궁 박해 등 정치운동을 벌여 중국인 총 8천만 명을 살해했다. 사악한 공산당은 ‘성도들의 피와 순교자들의 피에 취해 있었다’라는 표현에 정확히 부합하지만, 그동안 거짓말로 진실을 덮고 세상을 속여 왔다.
이는 중공이 1949년부터 1980년까지 나라 문을 꽁꽁 걸어 잠근 덕분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지금도 중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그 폐쇄적인 사회에서 인민이 자유, 민주, 인권을 누린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공은 ‘공산주의’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티베트인, 신장 위구르인, 기독교 신도와 파룬궁수련자들을 은밀하게 박해해 왔다. 그들은 비밀경찰에게 소리 없이 납치돼 박해받거나 생명을 잃기도 했다.
세계 각국 국민들은 드러나지 않은 이런 악행은 볼 수 없고, 중국의 화려한 경제 발전, 고속철과 마천루, 대형마트 상품들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국도 서방처럼 번영하고 있는 줄 알며, 그런 잔혹한 일들은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선량한 사람들은 중공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지 못한다. 1999년 이후 20여 년간, 중공은 파룬궁수련자들에게 100가지가 넘는 고문을 사용하며 비인간적인 박해를 자행해 왔다. 중범죄자 심문에 쓰는 수갑, 밧줄, 호랑이 의자, 시체 침대, 속박 옷 등 고문 도구는 물론, 교도관이 사적으로 고안해낸 각종 고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기에는 몸에 끓는 물 붓기, 담뱃불로 지지기, 몸을 말아서 결박하기, 수면 박탈, 이쑤시개로 손톱 찌르기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가장 극악한 만행은 생체 장기적출이다. 중국에서는 건강한 간이나 안구를 얻는 것이 명품을 사는 것보다 더 쉽다. 장기이식이 필요할 때 전화 한 통이면 죄악의 공급망이 바로 가동하면서 단기간 내에 수술대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다른 한 명의 건강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중공은 범죄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넓은 시장과 값싼 노동력으로 탐욕스러운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들을 중국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는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 국내 산업 희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대가도 있었지만 중공은 개의치 않았다. 중공이 던져주는 거대한 이익 앞에서 각국 정치인들은 신앙과 인권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포기하고 그들의 죄악에 침묵했다. 이 더러운 거래를 주도한 중공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음녀다. “음녀는 땅의 임금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진노의 포도주를 먹여 만국을 무너뜨렸다.” “세상의 상인들은 음녀의 사치와 방탕함으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
많은 중국인들은 아직도 공산당을 찬양하는 ‘홍가(紅歌)’를 부르며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가사에 심취해 있다. ‘성도들의 피’, ‘순교자들의 피’로 붉게 물든 중국 땅에서 진실은 철저히 가려지고 거짓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백마 탄 정복자’와 ‘공산주의 이전의 중국’
‘요한계시록’ 제19장에는 최후의 전쟁을 위해 등장하는 ‘백마 탄 정복자’를 이렇게 묘사한 부분이 있다. “내가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니, 거기에는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정의로 심판하고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이 있었다. 그에게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이름이 있었다. 또 그는 피가 뿌려진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이름은 신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그의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쓰여 있더라.”
서방에서 순백의 백마는 용맹과 승리를 상징하며, 고전 유화나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로마에 입성할 때 네 필의 백마가 끄는 전차를 탔고, 콘스탄티누스는 황금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탔으며, 조지 워싱턴 역시 전쟁 중에 백마를 탔고, 취임식에 갈 때 여섯 필의 백마가 끄는 마차에 탔다.
2007년 션윈 공연을 보면 첫 무용에 창세주가 백마가 끄는 마차에 타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장엄하고도 성스러운 천상 세계가 펼쳐지고, 신과 부처들은 창세주의 부름을 듣는다. “누가 나와 함께 세상에 내려가 중생을 구하겠는가!” 그때 우주 높은 곳에서 하얀 날개가 달린 백마들이 화려한 마차에 창세주를 태우고 멀리서부터 가까이로 달려온다. 이후 창세주는 신들을 이끌고 지구를 향해 날아가, 휘황찬란한 5천년 신의 문화를 개창한다. 이는 인류 역사의 서막을 여는 장면으로, 관객들은 순식간에 그 웅장하고 장엄한 광경에 압도되어 공연에 몰입하게 된다.
2006년 뉴욕에서 설립된 션윈예술단은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 세계 20여 개국 200개 도시에서 총 1만여 회의 공연을 펼쳤다. 2025년 시즌에는 전 세계 26개국에서 800여 회의 공연을 펼쳤고, 관객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션윈은 ‘공산주의 이전의 중국’을 무대 위에 재현한다. 중공에 의해 파괴된 전통 중화문화와 인간의 미덕을 예술의 형식으로 되살린 것이다. 션윈은 또 오늘날 중공의 신앙 박해도 함께 조명하여, 전 세계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진상을 보여주는 자들에 대한 협박과 폭력
션윈이 펼쳐 보여주는 진실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중공은 작년 하반기부터 지난 5월까지, 불과 1년 남짓한 기간 션윈 공연이 열리는 극장을 상대로 110회나 폭탄과 총기 위협을 가했고, ‘여론전’과 ‘법률전’에도 나섰다. 2024년 8월 이후 ‘뉴욕타임스’는 12편의 션윈 비방 기사를 게재했는데, 모두 진실을 왜곡하거나 단편적인 정보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많은 일은 너무 평범해서 자신과 무관해 보인다. 이런 일은 커피 한 잔 마시며 신문에서 보았거나, 동료에게서 우연히 전해들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해 보이는 일의 배후에서 선악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악을 선택할 것인가? 정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사악한 자들과 타협할 것인가? 모든 사람은 역사의 한 배역을 맡고 있으므로 누구나 이런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의 선택이 최후에 미치는 영향
26년래 국제사회는 중공의 잔혹한 파룬궁 박해를 인지하고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아 최악의 인도주의 재앙이 됐다. 이런 가운데 파룬궁 박해 중단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옮긴 극소수의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영국 독립법정 인사들, 미국 하원 의원들, 그리고 몇몇 캐나다 정치인들이다.
역사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가 ‘최후의 심판’을 예언해 왔다. 그리고 이 예언은 이미 눈앞에 다가왔다. 이 심판은 법정의 조사도, 재판도 필요치 않고, 오직 사람들이 선과 악 중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렸으며, 신께서는 그 선택을 보고 남겨둘 사람들을 선별하시고 있다.
신께서는 사람의 마음만 보신다. 최후의 심판은 이제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사람마다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있는 동시에 역사적 사명과 책임이 있다. 사악한 중공 앞에서 진상을 직시할 의지만 있다면 선악을 분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선택이 하나둘 모여, 최후 순간의 최종적인 선택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매 사람의 선택은 개인의 미래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책임지는 집단(가정, 독자, 관객,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1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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