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희월(袁熙月)
[명혜망]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한 이래, 중국에서는 대학 입학, 기업 채용, 직장 승진 때 파룬궁 수련 여부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해왔다.
특히 서북(西北)공업대학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예민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학 측은 대학원 면접에서 뜬금없이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합니까?”라고 질문하여 응시자의 반응을 살피거나, 파룬궁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룬궁 박해는 장쩌민이 파룬궁 창시자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국가기구를 이용해 일으킨 비극이다. 그런데 서북공대는 이 비인간적인 박해를 장쩌민의 ‘정치 유산’으로 받들어 계승하고 있다. ‘진선인’을 따르는 수련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한 대학의 전통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가? 오히려 무지와 수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북공대는 왜 이처럼 장쩌민에게 미련이 있는 것일까?
서북공대는 근면하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학풍으로 인재를 많이 배출하여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특히 항공우주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속에서 볼 때 이 대학은 확실히 학술 수준이 높은 대학이다. 그러나 신이 볼 때 훌륭한 대학은 높은 학술 수준과 동시에 선악을 정확하게 가려, 사악한 자의 위선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덕과 재능을 동시에 갖춰야만 훌륭한 대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항공우주 산업을 사유화한 장쩌민
장쩌민은 1989년 6·4 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중공 총서기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자질은 떨어져 중공 내부에서조차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장쩌민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군부 장악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그는 군부를 통제했던 20년간, 중국 항공우주 산업을 장씨 가문의 사업으로 사유화했다.
2003년 ‘선저우(神州) 5호’ 발사 당시,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江綿恒)은 ‘광명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중국 유인우주선 프로젝트의 부 총지휘관직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공식 발표로는 나오지 않았고, 당 기관지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그는 2년 후 ‘선저우 6호’ 발사 때는 중국과학원 부원장직도 맡았다. 2008년 ‘선저우 7호’ 발사 당시 중국 관영언론 보도를 보면, 위험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우주비행사나 항공우주 산업을 이끈 젊은 리더 마싱루이(馬興瑞)에 대한 소개는 없었지만, 장몐헝은 소개하고 있다.
장쩌민 부자는 항공우주 분야에 대한 외부인의 개입을 절대 불허했다. 이 때문에 후진타오 주석은 국제적 망신까지 당했다. 2011년 1월, 중국 군부는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에 맞춰 젠-20 스텔스 전투기의 첫 시험비행을 감행했다.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당시 게이츠 장관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꺼냈는데, 젠-20 시험비행 사실을 감감 모르고 있던 후진타오 주석과 측근들은 모두 깜짝 놀라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북공대는 중국 전자공업부 산하 대학으로, 중국 항공우주 산업의 산실이다.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서북공대는 선저우 우주선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며, 최초 유인우주선 비행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서북공대는 또 중국에서 유일하게 우주선 실험실을 운영하는 대학이다. 전투기 개발에서도 서북공대를 따라올 대학이 없다. JH-7 전투폭격기 개발자 천이젠(陳一堅), 젠-20 스텔스전투기 개발자 양웨이(楊威), 윈(運)-20 전략수송기와 훙(轟)-20 전략폭격기 개발자인 탕창훙(唐長紅)은 모두 서북공대 출신이다.
장쩌민과 화웨이 ‘황금방패공정’
장쩌민은 한편으로는 서북공대를 통해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을 감시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인터넷 ‘방화벽’을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된 초기만 해도 중국인들은 구글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었고, 천안문사태와 관련된 해외 보도도 열람할 수 있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장쩌민은 즉시 ‘방화벽’ 구축에 착수했다. 1994년, 장쩌민은 화웨이에 ‘황금방패(진둔)공정’을 위탁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이 지휘했으며, 장쩌민 파벌이 장악한 사법기관의 횡포에 편의를 제공했다.
장쩌민 세력을 등에 업은 화웨이는 이때부터 사업이 급격하게 확장됐다. 화웨이는 1996년 장쩌민이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이듬해, 러시아 군수산업 중심지 우파시와 협약을 체결했다. 1997년 10월, 장쩌민이 미국을 다녀온 직후에는 IBM 등 미국 유명 IT기업을 방문했다. 1998년 6월, 클린턴 대통령 방중 후에는 미국 댈러스에 연구소와 자회사를 설립해 미국 시장 진출에 나섰다.
2004년, 중국 국가개발은행은 화웨이의 해외 확장을 위해 100억 달러를 대출해 줬다. 당시 화웨이는 이 같은 혜택을 받은 유일한 ‘민영기업’이었고 금액도 이례적으로 많았다. 이를 두고 중국 관영 언론들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5년 후인 2009년, 이 금액은 300억 달러로 급증했다. 화웨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장쩌민 일가에 얼마나 많은 돈이 흘러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인들은 모두 장멘헝이 ‘중국 제일의 탐관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아이들 동요에도 이 말이 등장했다. 화웨이가 장쩌민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황금방패공정과 빅데이터 시스템을 이용하면 중국 13억 인구 정보를 확인하는 데 12분, 전국 수배범 정보를 확인하는 데 4분, 전국 운전기사 정보를 확인하는 데 3분 30초 걸린다고 한다. 중국 공안부는 7부류의 중점 감시 대상을 골라내고 분류하는 데 2분, 모든 정보를 대조하는 데 40초가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중국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공안의 실시간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다. 최근 수년간 중국 공안은 처우 문제에 항의하는 퇴역 군인들의 시위, P2P 금융 피해자 시위 등 대규모 시위를 진압하면서, 매번 주도자를 정확히 잡아내 ‘표적 제거’할 수 있었는데, 모두 화웨이가 개발한 감시 시스템 덕분이었다.
2020년 7월, 중국 언론들은 화웨이가 중요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최고의 명문대 칭화대 대신 서북공대와 협력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서북공대도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확인하며, 서북공대가 화웨이의 훙멍 운영체제(OS) 개발을 위해 ‘인재반’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서북공대는 장쩌민의 ‘사유지’였으며, 화웨이 역시 장쩌민의 ‘사기업’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션윈에 협박 이메일을 보내나
최근 션윈예술단이 전 세계 순회공연에 나선 가운데, 대만의 42개 극장과 다수 정부 기관에 총기나 폭탄 테러를 위협하는 협박성 이메일이 발송됐다.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대만 경찰은 해당 이메일이 중국 시안(西安)의 화웨이연구소 인근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중국 사이버부대 소행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수 개월간 뉴욕 용천사 션윈 본부에는 거의 매일 살해 협박 이메일이 발송되고 있으며, 파룬궁과 관련된 개인 및 단체(파룬따파정보센터 등)도 이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서북공대는 그동안 댓글 알바를 대량 운영해 왔는데, 이 대학 당위원회 선전부 명의로 지급된 일당 영수증이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되기도 했다. 서북공대는 디도스 공격을 주도한 전과도 있다.
화웨이 시안연구소는 2000년에 설립됐다. 화웨이와 중국 군부의 긴밀한 연관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0년간 화웨이는 군부와 협력해 인공지능과 무선통신을 포함한 최소 10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화웨이는 또 군부를 도와 인터넷 댓글을 분석하고, 국방과학기술대학과 협력해 위성으로 이미지와 지리 좌표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화웨이 시안연구소와 서북공대도 협력 관계다. 화웨이는 서북공대와 함께 데이터베이스, 최첨단 냉각기술 등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칭화대가 아닌 서북공대를 주요 협력 파트너로 지정했다.
2006년에 설립된 션윈예술단은 5천년 중화문명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하며, 공산주의 이전의 중국을 재현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 20년간 션윈은 전 세계 200여 개 도시에서 총 1만여 회 공연을 펼치며 지속적으로 명품 공연으로서의 인지도를 높였다. 션윈 공연을 관람한 세계 각국 예술가, 지식인, 정치인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선량함과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느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예술단체에 살해 협박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며 위대한 것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려주고, 악한 자에게는 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슬픈 일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모르거나, 악행을 보고도 무감각하거나, 악한 자를 돕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도 “하늘이 다 보고 있어 지은 죄는 감출 수 없다”고 했다. 나쁜 수단으로 뭔가를 얻으면 반드시 응보를 받게 된다. 중국 옛사람들도 ‘선은 그에 대한 보답을 받고, 악은 그에 대한 응보를 받는다. 응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했다. 션윈예술단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충고한다. 마지막 살길이라도 남기려면 당장 악행을 멈춰야 한다.
맺음말
중국에서 미사일, 핵무기, 인공위성 개발을 이끌었던 원로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은 서북공대를 매우 신뢰했다. 그는 선저우 우주선 발사 프로젝트와 관련된 다수의 연구를 서북공대에 위탁했다. 그런데 서북공대 학자들은 첸쉐썬이 인체과학 분야에서도 큰 성과가 있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중국 언론들이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에 첸쉐썬은 기공을 반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최고 지도부에 서신을 보내 특이공능(초능력)과 기공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첸쉐썬의 이 같은 태도에 후야오방 당시 총서기도 기공에 대해 “선전하지 않고, 소개하지 않으며, 비판하지 않는다”는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첸쉐썬은 중국인체과학학회를 창립하고 중국 인체과학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인체과학이 21세기 새로운 과학혁명이 될 것이며, 20세기의 양자역학, 상대성이론보다 더 큰 과학혁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장쩌민은 대중의 환영을 받는 파룬궁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다. 결국 1999년,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장쩌민은 그 후 여러 차례 병상에 누워 있었던 첸쉐썬을 찾아가 파룬궁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첸쉐썬은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서북공대는 첸쉐썬의 이 같은 기개를 보고 깊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파룬궁을 적대시하는 것은 장쩌민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더 깊이 빠져들기 전에 발을 빼야 한다. 20년이 지났으니 깨어날 때가 됐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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