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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지 않았다면

후신위 사건에서 생각난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후신위(胡鑫宇: 실종돼 장기가 적출됐다고 알려진 중학생) 사건이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공식적으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중공은 또다시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 나는 옛일이 떠올랐다.

1998년과 1999년에 나는 베이징에서 일했는데 직장에서 멀지 않은 한 중학교에서 학생을 상로 한 장기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또 그사이 인근 공원 등에서도 젊은이를 상대로 한 장기 절도가 잇따랐다. 직장 상사는 회의에서 공안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길이나 공원에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뭔가에 뒤집어씌워져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공원 근처에 버려져 있었으며, 몸에 봉합된 수술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후 병원 검사 결과 장기가 적출된 것이 확인됐다. 상사는 직장 내 젊은이들에게 사람이 적은 곳에는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당시 동료들은 공포에 질렸다. 누가 이렇게 잔인하냐며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장기를 훔치는 솜씨가 능란하고 수술을 전문적으로 한 것을 보면 조직폭력배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장기 매매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또한 장기 절도가 발생한 학교와 공원이 베이징 중심가인 댜오위타이(釣魚台) 국빈관 근처에 있었지만 공안이 사건을 해결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특히 2000년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장기 도난에 관해 거의 듣지 못했다. 2000년 하순, 나는 구치소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대법제자들(청장년)이 번호가 매겨지며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이 확고한 대법제자들이 동북 지역으로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에도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던 대법제자들이 주소나 이름을 알리지 않자 경찰에게 온갖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고 어디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대법제자들은 용감히 베이징에 가서 대법이 정법(正法)임을 실증했다. 어떤 대법제자는 구치소에 끌려가 단식했다. 수련함은 죄가 없으니 구치소 같은 곳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밝힌 수련생도 있었고, 대법을 실증한 수련생도 있었다. 보통 사람은 일주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 견딜 수 없으나 대법제자는 1~2주간 먹지 않고도 여전히 혈색이 좋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었다.

베이징의 한 여성 수련생은 톈안먼에 현수막을 걸러 갔다가 구치소에 갇힌 뒤 30일이나 단식했는데, 단지 대법이 좋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치소 경찰이나 수감자들도 모두 감동했다. 그녀의 석방을 배웅하던 한 경찰관이 그녀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당신 같은 제자를 두신 사부님은 기쁨과 위안을 느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제자의 신기한 신체적 변화는 구치소에 있던 610(파룬궁 박해 기구) 직원의 눈에도 띄었을 것이고 그들은 장쩌민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그 사악한 악마는 결코 정상인의 사고가 아니다. 대법제자의 변치 않는 마음과 수련 후 몸에서 나타난 신기한 변화에 장쩌민은 질투와 광기를 부리며 더욱 사악하게 탄압했다. 2000년 이후 단식하던 제자들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한 것은 중공이 흑심을 품고 수련으로 좋아진 대법제자의 몸을 노렸기 때문일 것이다.

첫머리에 언급한 90년대 말 베이징 중심가의 장기 도난 사건처럼, 그때나 그 이전부터 암암리에 장기매매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기시장을 조직한 사람은 누구일까? 당국은 3년간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면서 특별히 그들의 ‘보호 우산’을 쳐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조직폭력배들의 배후가 모두 중공 관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8~1999년에 발생한 장기 절도 사건이 누구의 소행인지는 매우 명백하다. 오늘날 후신위의 가족들도 자신의 자녀가 장기와 생명을 잃은 고통을 호소하고 나서야 중공 고위층이 장기적출 사건의 배후임을 알게 됐다.

몇 년 전 장쩌민이 온몸의 피를 젊은이의 것으로 바꿔 젊음과 장수를 유지한다는 말이 전해졌다.(이렇게 피를 바꿔도 장쩌민은 여전히 백혈병에 걸려 죽지 않았는가?) 한 의료진은 “좋은 인체 자원(혈액·장기)을 먼저 301병원(중공 고위층 지정병원)으로 보낸다”라고 말했다. 중공 고위층은 몇 년이라도 더 살고 싶어 했기에 인체 자원에 대한 수요도 상당했을 것이다.

​또한 중공은 국제사회의 이식용 장기 수요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장쩌민이 사람들에게 “조용히 큰돈을 벌라”고 호소한 것이다. 그들이 이런 황금 같은 시장을 포기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장쩌민은 수련인의 장기를 적출하라는 또 다른 사악한 명령을 내렸다. 결국 정부와 조직폭력배가 결탁해 인체 장기를 판매하는 검은 사슬이 등장한 것이다.

​2005년 내가 아는 한 수련생의 남편이 구치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수련생은 내게 남편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처음에는 듣다가 나중에는 듣기 싫어했다고 했다. 이유는 공산당이 그에게 많은 돈을 줬고 임금과 상여금이 해마다 올랐기 때문이다. 그해는 2005년이었고, 수련생의 남편은 월 보너스가 1만 위안(약 200만 원)에 달했다. 그녀의 남편은 단지 구치소의 평범한 간수였을 뿐이다. 그 당시 일반 근로자라면 매달 3천 위안(75만 원) 정도의 보너스도 아주 높은 편이었다. 그 수련생이 왜 이렇게 보너스를 많이 받는지 물어보자 남편은 “위에서 주는 거니 묻지 마”라고 했다.

구치소 같은 곳에서 무슨 수익이 생겨 두둑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곳 사람들 말로는 수감자를 보내면 보너스를 받는다고 한다. 수감자를 감옥에 보내면 감옥에서 인원수대로 구치소에 돈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감자를 감옥으로 보내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그렇게 큰돈을 받을 수 없다. 당시 구치소는 수감자를 감옥이 아닌 높은 금액을 쳐주는 곳으로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선양시 쑤자툰(蘇家屯: 파룬궁 수련자 대상 장기적출이 처음 폭로된 곳) 같은 곳으로 대법제자들을 보냈기에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중공은 국가 재력의 4분의 1을 파룬궁 문제 해결에 썼는데, 중공의 습성상 반드시 국민에게서 그 돈을 다시 얻어낼 것이다. 3년간 방역 정책처럼 겉으로는 국민에게 무료 백신접종과 핵산검사를 해준다며 자신들이 얼마나 국민을 위하는지 선전했지만, 나중에 의료보조금을 폐지하고 장례비 지원을 줄이는 등등이다. 사악한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 단체를 박해하기 위해 공안국, 검찰원, 법원, 사법국, 노동수용소, 외교부, 선전부 등 기관에 대량의 자금을 뿌려 대법과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하도록 전 국민을 선동했으며, 또한 확고한 수련자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한 후 그들 자신을 위해 쓰거나 매매해 외화를 벌었다.

​파룬궁수련자의 장기를 적출하도록 명령한 자는 장쩌민이고, 그를 지탱해준 악마는 중국공산당이다.

​만약 대법제자가 수련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베이징에 용감히 청원하러 가지 않았다면, 잔혹한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중공이 선량한 사람을 박해하고 장기를 적출한 죄악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중국 사회에는 더 많은 후신위와 파멸된 가정이 있었을 것이다. 대법제자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고난을 겪고 있다.

 

원문발표: 2023년 4월 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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