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부님의 말씀은 정념의 원천이다

글/ 서북대법제자 서련

[명혜망 2005년 11월 15일]

경애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동수님들 안녕하세요!

몇 년 간의 수련노정을 돌이켜보면 떠들썩하게 기세 드높은 적은 없었지만 대법제자로서 응당 해야 할 그런 평화적인 것만이 있었다. 그 무슨 떠나갈듯한 기쁨은 없었지만 사부님의 신경문을 읽어보는 그런 희멸은 있었다.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여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집착을 내려놓아 정념을 세운 후의 승화도 있었다.

기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제자들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수련하기에 더욱이 물질 욕구화한 세계에서 몇년 동안 형성된 관념으로 정법과 중생 구도의 어려움을 더해 주었다. 이는 바로 매개 동수들마다 정법의 기초 위에 서서 사람의 관념을 벗어나 진정으로 사부님의 매 한마디 말씀을 파악하고 철저하게 사람으로부터 걸어나올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사부님께서 부여해 주신 세 가지 일을 진정으로 잘 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나의 체험은 환경이 얼마나 험악하고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어떠한 좋지 않은 관념이 있든 지간에 오로지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생각하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하기만 하면 정념은 저절로 생겨나온다는 것이다. 그처럼 순정하고 밝은 정념이 가져온 승화는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 사부님이 계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7.20 이후 사악은 미친듯이 탄압했다. 직장에 파룬궁수련생이라고 이름이 적혀있기 때문에 때로는 두려운 마음이 솟아오르곤 했다. 이런 때에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넌 도대체 뭘 두려워하는가, 잡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너는 결국 사람이다. 정법시기 대법자자가 이렇게 커다란 사심을 안고 원만할 수 있겠는가? 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모두 버릴 수 있고 생명마저 버릴 수 있다. 생명마저 버릴 수 있는데 또 무엇이 두려운가? 사부님께서는 정법을 위해 층층으로 내려오시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으셨던가, 대법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죄를 감당하셨던가, 우리를 하나하나 지옥에서 구해주셨는데 내가 그래 아직도 무엇을 버리지 못한단 말인가? 내가 무서워하는 것 역시 구하는 것이 아닌가? ”

(연공인으로서 당신이 늘 그것을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적으로 당신은 구한 것이다. 네가 병 얻기를 구하였기 때문에 그 병은 짓눌려 들어갈 수 있다.) <<전법륜>>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면 사악은 곧 그것으로부터 손을 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자고로 가장 큰 영예인데 사부님의 제자로 되었다는 것 역시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나 많은 연분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대법을 얻지 못하고 있던가. 너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할 것이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자 두려운 마음이 해체되었다. 기실 내가 느끼건대 정념은 일순간에 수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쓴 진상자료를 거리에 붙일 때는 새벽 세시 반 쯤이었다. 두려움 때문에 어느 곳이나 모두 눈이 있는 것 같았고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조금만 동정이 있어도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는 사부님의 정법구결이 없었는데, 나는 <<전법륜>> 중의 이런 한 단락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뿌리는 우주에 박혀 있다.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바로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인데 말하자면 이 우주를 움직인 것과 같다.” (기실 나는 그때 곧 사부님의 말씀하신 이 말의 뜻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 나에겐 사부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념이 나오니 마음도 가라앉았고 하늘도 넓고 땅도 광할한 것이 사악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신 결과였다.

한 동수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자료를 배포할 때 두려운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아닙니다. 두려운 마음이 어떤 때는 뛰쳐나옵니다. 관건은 두려운 마음이 나올 때 어떻게 하는 것인데, 이때 당신이 나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세인을 구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면 두렵지 않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정법구결이 있는데 무서울게 뭐가 있습니까, 정념이 나오면 두려운 마음이 자연히 헤체됩니다. 두려운 마음이 비집고 나올 때면 또 그것을 해체시킵니다. 이것이 곧 수련이 아닙니까?”

이 몇 년동안 나는 동수들이 걸어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들의 두려운 마음을 버리게 하려고 그녀들을 데리고 자료를 배포하였으며 발정념을 하면서 배포하는 것과 여러 가지 주의할 점들을 알려주며 걸어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 자료점은 사부님의 보호하에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었다

정법 노정의 추진에 따라 2001년 아들(동수)은 컴퓨터와 복사기를 샀다. 갓 시작했을 때는 스스로 진상자료를 써서 배포했다. 편지를 써서 타 지역, 각 관련회사에 보냈으며 잇달아 명혜망의 전단지를 배포했다. 후에 아들은 스스로 편집한 진상자료를 명혜망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명혜 동수가 교정한 후 올리면 그것을 다시 복사하였다. 몇 년 래 대법을 위해 책임지는 각도에서 배포하는 자료선택을 아주 엄격하게 요구하였다. 어떤 때 어떤 동수들이 여러 가지 자료를 가져오지만 우리의 원칙은 명혜망의 자료가 아니면 우리는 채납하지 않으며 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명혜망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어지러운 물건들은 절대 전하지 말 것을 동수에게 경고했으며 자료점에서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온 자료이든 인쇄하지 않아 난법 행위를 유력하게 제지할 수 있었다. 객관 형세가 어떻게 험악하든 지간에 사부님에 대한 옳바른 믿음으로 하나 또 하나의 난관을 정념으로 넘길 수 있었고, 그리하여 몇년 동안 자료점을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몇 년간 우리 지역은 사악의 박해가 부단히 가중되어 자료점들이 잇따라 파괴를 당했다.집을 수색 당하고 컴퓨터 복사기를 빼앗기고 동수들이 잡혀서 노교소에 들어 갔다는 소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그리하여 한동안 다른 지방에는 자료점이 없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자료를 넘겨주는 동수가 잡혔고 연계가 있는 동수도 잡혔거나, 세뇌반에 들어갔으며 자료 내원에 대해 심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자료점을 찾는다는 소식도 여러 번 들려왔다.

이러한 정황 하에서 법공부를 하면서 안으로 찾았는데, 잘못된 곳을 찾으며 발정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또한 ‘우리는 대법 제자이고 그 누구의 배치도 승인하지 않으며 누구도 우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는 변함없는 그 한마디로 정념을 보냈다. 정념을 단호히 하고 환희심.두려운 마음 등을 버리면서 곳곳마다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고 태만하지 않았다. 동수들의 견정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들이 꼭 난관을 넘길 거라고 믿었다. 그들의 견정함으로 인하여 자료점은 굳건하게 보호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기타의 동수들은 자료점의 안전에 대하여 몹시 걱정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다.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생각에는 에너지가 있다.당신들의 걱정은 거대한 집착을 형성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로부터 사악이 틈을 탈 수 있다. 일제히 함께 발정념을 하여 사악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없게 되면 그들은 자연히 실패할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자료를 넘겨 주는 기회를 이용하여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생각과 방법들을 돌려 세우면서 서로 토론하고 공부와 수련을 비기었다.

이 기간에 한 가지 이런 일이 발생했다. 어느 부문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직장에 알려서 나더러 세뇌반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사가 거절을 했다고 하는데, 후에서야 나는 이 일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임을 깨달았다. 이로부터 “제자들 정념이 강하거늘 사부는 회천력이 있노라” <<사도은>>에 대하여 더욱 깊은 이해가 있게 되었다. 오로지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있으며 법을 실증하는 일을 더 잘 할수 있다.나와 아들은 서로 일깨워주고 서로 감독하면서 대법공부를 잘하여 누락이 생기지 않도록 힘썼다. 하여 사악이 틈탈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몇 년 동안 사부님의 보호 아래에서 걸어 왔었다.

* 이때로부터 발정념을 중시하게 되었다

발정념을 갓 시작했을 때는 시간이 되면 하곤 했는데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발정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중시하지 않았는데 진상전단지를 복사하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발정념의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었고 정념구결의 강대한 위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복사를 갓 배울 때 아들은 꼭 발정념을 하라고 나에게 알려 주었는데도 나는 대수로워하지 않고 복사를 시작했다.

발정념을 하지 않으니 전단지에 제대로 인쇄가 되지 않았고, 복사기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나를 곤경에 빠지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서야 발정념할 생각을 가졌는데 정념을 발하기만 하면 일이 아주 순조롭게 되었다. 이후로부터 나는 복사를 시작할 때면 곧 발정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줄곧 발하였다. 만일 중간에 정지하면 즉시 교란이 생겼다.나는 갑자기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대법을 전하던 초기에 세인들이 대법을 인식하게 하기 위하여 사부님께서 병치료를 해주셨다. 이때 낡은 세력(고층생명)들은 병조(병 있는 부분) 주위에 막아서서 사부님의 병치료를 저애하였는데 한 무리를 없애면 또 한 무리가 왔다.비록 무모한 짓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정법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나는 진상 전단지를 찍는 것은 세인 구도의 비교적 중요한 한 갈래 관으로써 사악은 긍정코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것이며 복사기 이곳을 ‘애써’막음으로써 기계를 못쓰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미칠 정도에 달하였고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으며 틈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간다. 그 후부터 발정념을 중시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사부님이 우리를 구도하는 어려움의 정도를 심심히 느끼게 되었으며 정법구결의 홍대한 위력을 체험하게 되었다.

* 진상 전단지 편집을 배우다

아들은 몹시 바빴다. 게다가 속인의 사업까지 해야 하기에 나는 전단지를 편집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말하기는 쉽지만 우선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배워야 했고 손녀가 병음을 배우면 나도 따라 배웠으며 배워낸 후에는 또 타자를 배워야 했다. 진상 전단지를 편집하자면 자료를 선택하고 조판을 해야 했는데 조판은 또 기술이 있어야 하지만 나는 한 가지도 몰랐다. 아들의 지도 하에서, 사부님이 주신 지혜로 편집작업을 진행하였다. 편집 과정에 늘상 교란을 받았지만 마음은 조급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문장이 틀리거나 빠지곤 했다. 나는 이것이 하나는 경험이 없는 것이고 제일 주요하게는 사악의 교란이란 것을 알았다.

이럴 때면 발정념을 강화하였다. 이렇게 전단지를 편집한 후 명혜망에 보내고 다시 실린 것을 보면 문장이 거의 전부가 바뀌어 있었다. 나의 두려운 정서가 한꺼번에 올라오면서 더는 편집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심지어는 원망하는 마음마저 일어났다. 선택한 자료들은 우리 이곳 정황에 비교적 적합한 것들인데 어째서 쓰지 않는가? 총적으로 그 때는 사심이 몽땅 뛰어 나왔다. 이때 나는 즉각 경각성을 높였다. 체면을 보고 원망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모두가 일종의 낡은 관념으로서 바로 우리가 닦아 버려야 할 집착이다. 부족한 점은 보았고 명혜 동수와의 차이점을 보아냈다.

진상 전단지를 있어서 우선 판면에서부터 독자들을 끌어 당길 수 있어야 하며 사진과 글이 풍부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소재의 선택이 지금의 정법 형세와 꼭 맞물려야만 세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 중생 구도의 목적에 충분히 이를 수 있다. 명혜 동수는 나를 도와 집착심을 버리게 했는데 이 기회에 당신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부족점을 찾아내니 정념이 있게 되어 다시 편집을 할 때에는 다른 성에서 만든 전단지 모양을 진지하게 배웠고 명혜주보, 명혜주간을 자세히 참조 하였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서 다시 편집해낸 진상 전단지는 매우 큰 진보가 있었다. 비록 많은 부족점이 있었고 많은 기술들을 아직 장악하지 못했지만 그건 이후의 편집 과정에서 천천히 장악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이 사업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 사부님은 바로 내 곁에 계신다

나는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사부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시어 한걸음 한걸음 오늘까지 걸어왔다. 한 번은 신체를 정화할 때 였다. 오후 3시부터 시작하여 설사를 했는데 저녁 10시까지 일곱시간 내내 쉴새 없이 화장실을 몇 십 번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마신 물까지도 죄다 배출했다. 만약 속인이라면 진작 속이 허하였을 것이다. 이튿날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지체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열이 났는데 저녁에 열이 나다가도 이튿날 아침이면 다 나았다. 오직 정념만 있으면(병이 아니라고 인정해야 한다)사부님께서 모두 배치해 주신다. 몇 년 래 무릇 내가 잘 정진하지 않았을 때, 무슨 문제가 나타나려 할 때(내가 주의하지 못할 때)무슨 위험이 숨어 있을 때(깨우침이 수요된다.) 사부님께서 꿈으로 점화해 주셨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대략 2004년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는 한 산마루에 서있었는데 산은 좀 경사졌고, 발 아래는 축축하고 미끄러운 돌들이 있어서 한 발자국도 걷기가 아주 어려웠다. 참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었다. 이렇게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데 때때로 뱀처럼 생긴 작은 괴물이 굴에서 대가리를 내밀어서 나는 좀 무서웠다.(나에게는 아직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갑자기 나에게 알려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기슭의 작은 강을 건너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그 강은 매우 가까운데 있었고 옅었다. 이때 마차 한 대가 산으로부터 달려오고 있었는데 한 젊은이가 고삐를 잡고 마차위에 서서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다음 보니 흙탕물이 괴여 올랐다. 원래는 이렇게 얕은 강물이었구나. 깨어난 후 나는 깨우쳤다. 정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 주신 것이었다. 즉 더는 미혹되지 말며 곤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용맹정진하며, 그 젊은이처럼 곤란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언덕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매 관건적인 시각마다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는데 사부님은 제자에게 그토록 자비하시고 수고스러웠다. 제자는 오로지 용맹정진 하야 만이 비로소 가장 좋은 보답을 할 수 있다.

* 자신의 부족점

지금의 나로 놓고 보면 많은 집착심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다만 정도가 부동할 따름이다. 평상시에 매우 바쁘기 때문에 또한 집안 일도 해야 하고 손녀의 학교 뒷바라지도 해야 한다는 구실을 만들어 법공부를 적게 하고 연공하는 것도 게으름을 부렸다.(더우기 동공에 대하여)또한 쟁투심을 버리는 것은 아주 더디다. 예를 들면 손녀가 성격을 부려 떼를 쓸때면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큰소리로 욕하거나 심지어는 손녀를 때리지 않으면 자신을 호되게 때리면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어떤 때는 이렇게 하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안 되었다. 어떤 땐 울면서 외치기도 한다. “사부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생각을 하면 낯을 들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성을 내고 있는데 손녀가 나의 아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할머니가 수련인 인지 의심이 가요.” 손녀가 이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부님이 나를 점화하신다는 것이 분명했다. (손녀는 파룬따파를 견정하게 믿는다. 20여 수의<<홍음>> 속의 시를 외웠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자녀를 단속하는 데도 화를 내며 그야말로 떠들썩하다. 당신이 자녀를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자신은 진정으로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좀 이지적으로 자녀를 교육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녀를 교육할 수 있다.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또 공이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 《전법륜, 512쪽》

수련인은 까닭없는 일에 부딪히지 않는다. 내가 늘상 성질이 나쁜 집착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손녀가 늘 성을 내고 성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나는 안으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 보니 이게 어디 수련인이 있어야 할 상태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평시에 상화한 심태를 가지고 있다면 일에 부딪혀도 보완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오로지 시시각각 자신을 대법제자라고 경고 하면서 대법을 잘 배우고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 해야만 잘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말씀을 우리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러므로 한 수련인으로서 말한다면 자신을 견정히 할수 있고, 그러므로 모두 동요할 수 없는 하나의 견정한 정념이 있다면 그것은 비로소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금강과도 같이 반석과도 같이 견고하다면 누구도 움직이지 못한다. 사악이 보기만 해도 무서워 한다.’ <<미국 서부 법회에서의 설법>>

개인 체험이므로 틀린 곳은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란다.

문장완성: 2005년11월10일
문장발표: 2005년11월15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11/15/1142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