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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 주장시 판루제, 3차례 노동교양처분 받고, 또 2년의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장시 보도) 장시(江西) 주장(九江)시 파룬궁 수련생 판루제(范路傑)는 2019년 7월에 롄시(濂溪)구 공안 분국 경찰에게 납치돼, 계속 주장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었다. 최근 전해진 소식에 의하면 판루제는 확실하지 않은 감시 영상을 근거로 2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올해 65세인 판루제는 예전에 세 차례 노동교양 박해를 당해 학대를 심하게 당했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놀라 슬픔을 안고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강제적이고 두려운 박해 중에서 놀라움과 분하고 원망이 겹쳐 우울증에 걸렸다.

판루제는 장시 주장시 쉰양(潯陽)구에서 거주한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에 몸에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는데 민감성 비염, 중이염이다. 이로 인해 고막이 안으로 움푹 들어가 청력이 극히 나빠졌고, 시력은 몇 개월 사이에 1.5에서 갑자기 0.8로 떨어졌다가 그 후에 또 0.6으로 떨어졌는데,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위출혈 증상이 나타나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도 오히려 호전되지 않았다.

1995년 11월, 판루제는 기쁘게 고덕 대법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었다. 수련한 후, 판루제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도덕이 신속하게 제고됐다. 일할 때는 참고 양보했으며 선의로 남을 도왔다. 그리고 타인과 모순이 발생할 때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찾았다. 이익에서 충돌을 마주할 때면 먼저 다른 사람을 고려해 주었다. 예를 들면 1996년에 직장에서 집을 나누어 줬다. 그의 가정환경에 따라 직장에서는 이미 그에게 한 세트의 좋은 집을 주었는데 회사의 모순을 완화하기 위해 판루제는 주동적으로 좋은 집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 주었다. 1996년, 회사 직공 숙소 밖의 노선과 창고 노선을 개조해야 했으므로, 당시 회사는 파산에 직면해 돈을 낼 수 없었다. 판루제는 주동적으로 이 일을 맡아 했지만, 직장에 한 푼의 보수도 요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 방면의 전문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 측에 노선을 개조할 원자재를 사고 몇 명의 노동력만 요구하여 단 몇천 위안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수련 중에서 판루제의 사상 중의 좋지 않은 것이 천천히 제거되고 심령이 정화되었다. 몸 위의 모든 병은 모두 매우 빨리 사라져 진정하게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운 상태에 이르렀다.

세 차례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아 심한 학대를 당하다

1999년 7월 20일 후부터 판루제는 쉰양구 공안 분국에 의해 불법으로 세 차례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첫 번째는 1999년 10월에 1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두 번째는 2001년 9월에 3년 2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으며, 세 번째는 2008년 5월에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는데, 합계로 6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세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은 모두 주장시 마자룽 노동교양소에서 불법 감금당했다. 그 기간에 판루제는 줄곧 감시(包夾)당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로 가는 것마저 다른 사람이 뒤를 따랐다. 기타 파룬궁 수련생과 접촉함을 허락하지 않았고 자유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을 때, 매일 끝낼 수 없는 일을 했다. 아침에 날이 밝아 일어나서 저녁 12시가 되어도 휴식하지 못했다. 매일 강제로 10여 시간 동안 노예 노동을 진행했다. ‘전향’을 거부한 파룬궁 수련생은 정량을 완수하기 매우 어려웠다. 때문에 판루제는 거의 매일 체벌, 학대를 당했다. 체벌을 당했고 혹독한 구타를 당했는데, 어떨 땐 의자로 구타했다. 그 외 장시간 동안 허리 굽히고, 두 다리를 곧게 펴고 두 손을 발등을 가리키도록 했는데 한번 굽히면 몇 시간 동안 굽혔다. 또 ‘벽호 붙이기(貼壁虎)’고문을 당했는데, 바로 두 다리를 땅 위에 꿇고 최대한도로 벌리는 것인데, 상반신 앞면이 벽에 붙인 부위와 벽 위에 벽에 붙이기가 매우 어렵게 했다. 마치 벽호 같았다. 이처럼 두 다리를 반드시 힘껏 끼워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반신의 전체 중량은 두 다리의 사이에 눌렸는데, 두 다리의 사이의 근육은 마치 찢어지듯 참을 수 없이 극렬하게 아파 일반인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견지할 수 없다. 그러나 판루제는 한 번 붙이면 두 시간 동안 붙였다.

저녁에 잠을 잘 때 다른 사람은 침대 위에서 잠을 잤으나, 판루제는 땅 위에서 잠을 잤는데 중간에 하나의 널판을 받쳤다. 당시 판루제는 2대대 4팀에 있었다. 지붕에 비가 새어 큰비가 오면 안에도 비가 내렸다. 밖에 비가 멈추었으나 안에는 여전히 고여있던 비가 내렸다. 어떤 때는 땅 위에 물이 많이 고여 침대 널빤지 높이까지 찼다. 이렇게 잠을 잤는데, 침대에서 일어나면 이불 가장자리는 모두 축축했다.

얼마 되지 않아 판루제는 옴에 종기가 덧나 마치 하늘의 별처럼 총총했고, 목에서부터 목 이하는 살이 성한 곳이 없었고 참기 어려울 정도로 가려웠다. 몸 위는 온통 고름이었다. 겨울에 의자에 앉아 일했는데, 둔부 위의 고름은 솜바지를 뚫고 의자에 흘러내렸다. 시간이 오래되자 곧 의자 위에 붙었는데 몸을 일으키면 둔부의 살갗이 땅겨져 떨어져 몹시 아팠다. 이런 상황에도 강제 노동 강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체벌 학대는 변하지 않았다. 두 발의 복사뼈 부위가 문드러져, 각각 하나의 구멍이 생겨 핏물이 흘러나와 악취가 풍겼고, 두 다리 피부색은 진한 홍갈색을 띠었다. 이것은 세포가 썩어 형성된 것이다. 2대대 쉬(徐) 부대대장은 “내가 당신의 발은 보고 나서 일주일 동안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의무소의 판(潘) 의사는 더 치료하지 않으면 사지를 절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자룽(馬家壟) 노동교양소에서 판루제는 매우 심각한 고문 학대를 당해 몸은 극한을 감당했고, 심령의 상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두 번째 3년의 불법 노동교양 기간에 판루제는 노동교양소에 엄정 성명을 건넸다. 결국, 노동교양소 인원은 대노하며 즉시 그에게 3개월의 형기를 연장한다고 선포했다. 판루제는 불복해 단식을 진행했는데, 그들은 강제로 음식물 박해를 진행했다. 음식물 주입을 진행할 때, 네 명은 판루제의 두 손, 두 다리를 누르고 음식물 호스를 코에서 위 속에 꽂아 넣었는데 몹시 아팠다. 그들은 판루제가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곧 하루에 두 차례 주입해 박해를 가중했는데, 줄곧 그가 생명이 위험해질 때까지 박해했다.

그들은 판루제가 위험한 것을 보자, 곧 판루제가 제기한 조건에 동의했다. 그가 막 몇 끼 밥을 먹기를 기다렸다가, 즉시 그에게 대답한 조건을 부정했다. 그가 다시 단식하자, 그들은 다시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고 다시 조건에 동의했다.

판루제가 3년의 불법 노동교양 기한이 만기 된 그날은 마침 추석날이었다. 대대장 쉬리젠(徐禮堅)은 “당신이 추석날에 만기 된다고 누가 말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판루제는 세 번째로 다시 단식을 진행했고, 그들에게 다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다시 생명 위험이 나타났을 때, 판루제는 다시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감금, 고문 학대를 당하다

1999년 7월 22일, 판루제는 베이징에 들어가 청원해, 국가에서 파룬따파(大法學員) 수련생에게 합법적인 수련의 환경을 주도록 요청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할 곳이 없었다. 15일 구류가 만기 된 후, 그를 풀어주어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회사에서 직접 그를 마중해 돌아갔으며, 또 그를 이틀 동안 구류시켜 파룬궁을 포기한다는 보증을 쓰도록 핍박했다. 1999년 9월, 판루제는 거듭 베이징에 들어가 청원했다. 10월에 베이징 팡산(房山)구 현지 파출소에 의해 납치돼 보름 동안 형사 구류처분을 받았다. 팡산구 공안 분국 구치소에 5일 동안 감금당한 후, 주장시 쉰양 공안 분국의 장(張) 모 등 두 명에게 주장으로 납치돼, 싼리제(三里街)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01년 9월, 판루제는 쉰양러우(潯陽樓) 파출소에 의해 납치됐고,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해 그의 대법 서적, 대법 시디, 대법 비디오테이프를 강탈당했다. 싼리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3개월 동안 밥을 배불리 먹이지 않았다.

2006년 6월, 판루제는 거듭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주장시 구치소에서 싼리제 교통호텔 2층으로 납치돼 자백을 강요당했다. 그 중 ‘610’ 주임 리밍(李明), 쉰양러우 파출소 천강(陳剛) 등이 있었다. 2001년 9월부터 10월까지 판루제는 주장시 구치소에서 두 차례 쉰양구 공안분국 건물 심문실로 납치당해, 두 차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두 명의 악독한 경찰은 그의 목을 조이며 땅 위에 눌렀는데, 그가 반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국가보안대대 부대대장 뤼장화(呂江華)는 대나무 몽둥이를 들고 그의 몸 위를 향해 마구 구타했다. 두 차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해 폭행을 진행한 후, 수갑을 찬 채로 그곳에 서 있었는데, 매번 모두 2박 1일 동안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매번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시간은 36시간에 달했다.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날 판루제는 파룬따파 믿음을 견지해 거듭 납치돼 2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0년 10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12/4136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