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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교사 쩡하오 불법 감금, 가족과 학생들이 그의 무사 귀가 희망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광둥 보도) 광저우(廣州) 파룬궁수련생 쩡하오(曾浩)는 2017년 8월 10일 오전에 집 아래층에서 아침밥을 먹다가 광저우 하이주구(海珠區) 국가보안대대, 장난중가(江南中街) 파출소, 칭쿠이(靑葵) 주민위원회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고 아울러 가택 수색을 당했다. 지금 광저우시 하이주구 난저우(南洲)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는데, 가족이 면회함을 허락하지 않고 업무 담당 직원은 휴가라는 이유로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曾浩'
쩡하오
(曾浩)

쩡하오는 올해 43세이고 대학 강사로 정직하고 명리를 좇지 않았다. 1995년에 대학 공부를 할 때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급성 간염을 앓아 간기능이 매우 좋지 않았었는데, 대법을 수련한 후 심신이 건강하고 낙관적이며 명랑해졌다. 1997년에 광저우 궁샤오(供銷)학교에서 교사를 맡았다. 그는 단지 도서 관리원이 되려 했는데 교장은 인재를 낭비한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시장 마케팅’을 가르치게 했다. 그는 근무에서 열심히 책임져 늘 타 학교로 파견됐다.

그는 본래 인생을 평범하게 잘 보내려 했으나 1999년에 파룬궁이 박해를 당한 후 그의 인생은 더는 평온하지 않았다. 쩡하오는 2000년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고 광저우 톈허(天河) 체육센터 대연공에 참여했다가 두 차례 불법 구금을 당했고 아울러 공직에서 해고됐다. 2001년에 핍박에 못 이겨 근 2년 동안 유랑생활을 했다.

백주대낮에 강탈 납치, 경찰은 법을 알면서 법을 위반하다

8월 10일 9시가 넘어서 쩡하오는 집 아래층에서 아침밥을 먹다가 세 명의 사복 경찰에게 납치됐고, 핸드폰, 가방을 강탈당했다. 경찰은 그의 열쇠를 갖고 근 10명이 가서 가택 수색을 진행했는데 ‘신앙문제’ 라고 말하며 대법 서적, 수업 USB 등을 강탈했다. 그중 5명은 또 쩡하오 부친 집으로 가서 가택 수색을 진행했으나, 이름을 보고하지 않고 업무증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경찰복을 입지 않았다. 쩡 씨의 아버지는 사사로이 민가에 들이닥쳤다며 경찰을 제지했다.

국가보안대대의 선도자는 여성 사복 경찰인데 50여 세이고 긴 머리를 묶었다. 키는 160센티미터이고 광둥어로 말했다.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킨 적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남성 사복 경찰로 50여세였다. 키는 170센티미터이고 안경을 썼으며 광둥어로 말을 했는데 태도가 흉악했다. 그는 쩡하오에게 자백하고 서명하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 쩡자겅(曾加庚, 올해 76세로 파룬궁을 수련해 3차례 불법 구류처분을 받았고 직장에 의해 근 2년 동안 연금을 당한 적이 있음)을 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쩡하오가 보름 동안 불법 감금당한 동안 가족은 여러 차례 장난중 파출소, 국가보안대대, 하이주구(海珠區) 공안분국으로 가서 경찰로부터 사건의 상황을 파악하고 선행을 권했다. 76세인 노인은 사방으로 가서 사람을 찾았으나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첫 날, 국가보안대대의 여성 사복경찰은 자신은 법률을 따지지 않고 이것은 정치문제라면서 ‘신앙문제’를 ‘해외세력과 결탁’했다고 고쳐 말했다. 3일째 우편으로 부친 이른바 ‘형사 구류서’를 받았는데 ‘사교조직을 이용해 법률의 실시를 파괴했다’고 썼다. 다섯 번째 날, 변호사가 쩡하오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할 때 그들은 또 그가 ‘국가안전을 위해’했다고 고쳐 말했다.

지금 국가보안대대 대문은 꽉 닫았고 하이주구 분국에서는 사건 상황을 말하지 않으며 사건에 참여한 인원의 이름과 직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상에서, 이것은 사건 부서에서 전형적으로 서로 공모하고 감싸며 먼저 불법 납치, 정죄하고 다시 증거를 찾아 모함했음을 볼 수 있다. 신앙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사람에게 마음을 닦아 선을 행하도록 가르쳤다. 좋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데 경찰이 법을 알면서 법을 위반하고 좋은 사람을 박해한 것이다.

일가족 노소가 곤경에 빠져, 그가 일찍 귀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다

2000년에 아들이 유랑생활을 했을 때 쩡하오의 어머니는 심장병, 심장동맥 경화증(의사가 말하기를 만약 병들어 쓰러지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했음)에 걸렸었고, 당시 쩡하오의 아버지는 대법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직장에 연금당해 있었다. 경찰은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을 진행해 쩡하오의 어머니에게 아들이 어디 있는지 말하도록 위협하며, 그녀가 교습용에 사용하는 교안을 찢어 또 다시 손으로 써야 했다. 당시 그녀는 두려워 울었다. 그녀는 낮에 또 남색 옷을 입은 낯선 사람에게 수업을 미행당했고 거주지 감시를 당했다. 밤중에 윤번으로 당직을 서는 경찰은 고의적으로 문을 걷어차며 도착을 알렸다. 어머니는 날마다 공포 속에서 생활하며 먹을 수 없고 잘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떠올려도 두렵다고 했다.

최근 쩡 모친은 또 울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들이 이렇게 성실하고 본분을 지키는데 감방에 갇혀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지나 않을는지요? 정부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혼냈는데, 왜 아직도 아들을 석방하지 않습니까?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아들이 평온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쩡하오의 어린 아들은 세 살 밖에 되지 않는다. 첫날에 가족이 석방을 요구하러 갔을 때, 파출소 로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곳에는 꽉 닫힌 철문이 있었다. 아이는 순진하게 아빠가 안에 갇혔을 것 같은 감이 들어 큰소리로 울고 소리 지르면서 뛰어들면서 “문을 열어줘요. 들어갈래요……나는 가지 않을래요! 나는 안 가요!”라고 말했다. 어른이 그를 안아가자 그는 또 되돌아 뛰어가 하소연하며 문을 열라고 하며 오래 동안 고집을 피웠다. 오늘날 이웃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곧 “아빠가 집에 돌아왔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늘 아빠한테 전화를 걸겠다고 말했다.

강의자료 USB 강탈당해, 대학생들은 개학 후 어떻게 하겠는가

쩡하오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근무해 지금 ‘광둥 기술사범대학 톈허 대학’의 강사를 맡고 있다. 그는 파룬궁에서 가르친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어 한 번도 수업을 고르지 않았다. 매주 20여 시간 수업을 했을 때 원장은 그의 전문지식이 풍부하다고 칭찬했다. 경제학, 인력 자원, 시장 마케팅, 기업 문화 등을 그는 모두 가르친 적이 있는데 여러 차례 ‘수업품질 양호’ 증명서를 받은 적이 있다. 학생은 그를 일신에 정기가 넘치고 박학다식하며 틀이 없이 친구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료로 ‘중화전통문화’ 대학생 강좌를 조직한 적이 있다.

9월 1일에 곧 개학을 하게 되고 1백여 명 학생이 그의 수업을 기다리고있다. 그가 이끄는 20개의 졸업생 논문을 아직 다 완성하지도 못했는데 강의 자료 USB는 오히려 경찰 손에 있다.

오늘날, 집안의 좋은 아들, 좋은 아버지, 대학생 마음속의 좋은 교사는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경찰에게 묻겠다. 당신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 당신이 진행한 이 납치를 당신 가족은 알고 있는가? 당신의 자손은 동의할 것인가? 집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인심이 안정되어야 사회가 안정된다. 당신에게 진상을 알림은 정치에 참여함이 아니다. 불공정함에 직면해 다른 사람이 말을 하게 허락해야 한다.

법망은 지극히 넓어 성기기는 해도 새지 않는다. 죄악의 공범자가 되지 말라. 본 사건에 참여한 경찰이 반드시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리기 바란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사상과 양심은 자신의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을 선하게 대해 박해를 멈추는 것은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박해에 참여한 장난중 파출소의 첸리파(錢力戈) 경찰은 휴가라는 이유로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13527609380, 64233314

원문발표: 2017년 8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27/3530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