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선양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46명 파룬궁수련생(3)

[밍후이왕 2015년 3월12일】전편에 이어

사례22 : 왕슈샤(王秀霞, 여, 1965년 4월 12일생). 선양철도국 기무단에서 근무했으며 2006년 1월 24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王秀霞

왕슈샤 (王秀霞)

1999년 7.20 이후 왕슈샤는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2002년 2월 6일 납치되어 4년이란 불법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구타, 대화금지, 장기간 강제노역, 시멘트 바닥에서 수면 등 고문을 당했다. 사악한 자들은 심지어 그녀 몸에 찬물을 끼얹기까지 했다. 이렇게 4년 가까이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박해 후유증으로 배가 아주 크게 부풀어 올랐고, 정신이 흐려졌으며 앞니는 다 빠졌다. 가슴에는 모두 주사자국이었으며 양쪽다리도 부었다. 2005년12월 감옥측은 목숨이 위급한 그녀를 가족한테 떠넘겼다.

그녀를 진찰한 선양시 흉부외과전문병원은 박해를 당한 그녀에게 폐결핵, 심장기능 쇄약, 중증 빈혈 진단을 내렸다. 2006년 1월 24일 그녀는 잔혹한 박해를 당해 향년 41세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례 23 : 류리화(劉麗華, 여, 61세). 랴오닝 다롄 좡허시 파룬궁수련생으로 2006년 1월 27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996년 파룬궁을 수련하여 신체가 건강해졌다. 1999년 악당이 미친 듯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동안에 그녀는 수차례 불법 체포되어 박해당했다.

刘丽华

류리화(劉麗華)

2010년 7월 27일에는 납치당해 불법으로7년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5년 동안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2006년 1월 17일 감옥에서는 그녀의 가족들에게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아야”한다고 통지했지만 고향집인 좡허에는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선양여자감옥에서 석방될 때 식도는 절개되어 있었다. 다롄의 아들집으로 데려갔는데 3명의 사악한 경찰도 같이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2006년 1월 27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악독한 경찰은 화장이 끝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자리를 떳다.

사례 24 : 충페이랜(叢培蓮, 여, 64세). 랴오닝성 조양(朝陽) 파룬궁수련생으로 퇴직 후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94년 그녀는 사부님 설법에 참석한 후 남편과 같이 수련을 시작해 건강을 회복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현지 경찰은 끊임없이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워 부부는 부득이하게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다. 2002년 불법 체포되었는데 부부는 악당에게 10년이란 불법 판결을 받고 선양 다베이(大北) 감옥에 감금되었다. 2005년 그녀는 다베이감옥에서 심한 박해를 당해 온몸에 땀을 흘리고 두 손은 떠는 증상이 나타났다. 병보석으로 석방된 후 감옥에서 수차례 가족들에게 강제로 그녀의 진료기록, 병상일지 자료들을 제시하라고 했다. 경찰은 형식을 바꾸어 계속 소란을 피워 그녀의 병은 더 악화되었다. 2007년 5월 13일 그녀는 64세를 일기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남편 또한 다베이 감옥에서 심각한 박해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사례 25 : 장구이즈(張桂芝, 50대). 랴오닝성 번시 파룬궁수련생으로 2007년 3월 9일 납치되어 불법판결을 받은 후 요령성 여자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2008년 정월 초 감옥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생명이 위급한 그녀를 보고 가족들은 선양칠삼구(七三九)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2008년 2월 1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례 26 : 왕홍메이(王紅梅, 여, 나이 미상). 2008년 5월 선양여자감옥 ‘치료대대’에서 경찰의 사주를 받은 죄수 리슈란(李秀蘭)에 의해 혹독한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선양여자감옥 ‘치료대대’는 2010년에 설립되어 ‘치료’와 ‘훈련’ 두 분야로 나누어 운영된다. 2012년부터 이 대대는 카메라 감시가 없는 방에서 금방 납치돼 들어온 파룬궁 수련생들을 전향시키려고 제 마음대로 혹형을 가했다. 대대는 방한 칸씩 있었고 2명의 죄수들이 한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관리하였다. 이들은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을 속박의자에 앉히기, 수면박탈 등의 고문을 가했다. 악독한 교도관은 또 ‘전향’ 혹은 경찰의 요구에 도달할 때까지 여러 방법들을 써서 괴롭혔다. 부교도소장 리허쵸(李鶴翹)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주관하였고, 범죄자 리슈란(李秀蘭)은 파룬궁수련생 왕홍메이(王紅梅)를 잔혹하게 폭행하여 때려죽였는데도 현재까지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

사례 27 : 왕슈샤(王淑霞, 여, 45세). 댜오빙산시(調兵山市) 샤오난진(曉南鎮) 후자춘(胡家村)주민으로 딸이 두 명 있다. 2008년 6월 그녀는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에 박해를 당해 사망했다.

王淑霞生前照

왕슈샤(王淑霞) 생전 사진

그녀는 1998년 겨울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을 통하여 그녀의 몸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신체는 건강해지고 도덕이 올라가 가정은 화목해졌다.

1999년 7월 20일, 악당의 우두머리 장쩌민은 파룬궁 수련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차례 악당에게 잔혹한 박해를 당해 한동안 정신이상을 겪기도 했다. 2001년에는 남편 마중취안(馬忠全)과 이혼했다.

2007년 11월, 신체와 정신적인 학대를 겪을 대로 겪은 그녀는 다시 납치되어 2008년 1월 15일 비밀리에 3년의 불법판결을 받았다. 2008년 6월 3일 오후 4시경, 랴오닝성 여자감옥 8지역에 감금되었다. 악독한 교도관은 그녀의 두 손을 침대난간에 뒤집어 매달려놓았다. 6명의 악독한 범죄자들로부터 미친 듯한 구타를 당했다. 구타는 밤 12시까지 이어져 결국 세상을 떠나 다음 날 새벽4시에 감옥에서 들려나왔다. 6월 5일, 가족들이 그녀의 시신을 보았을 때 입 주변은 모두 상처투성이었고, 목과 앞가슴은 보라색 멍으로 퍼져 있었다. 범행이 드러난 감옥에서는, 가족들이 고소할까봐 19만위안을 꺼내 사사로이 처리해 이들의 악행은 이렇게 흐지부지 정리되었다. 이후 그녀를 살해한 죄수는 감형이 되고, 이일을 지시한 교도관은 승진했다.

사례 28 : 쟝슈화(蔣秀華, 여, 나이미상). 푸순(撫順) 파룬궁수련생으로 2002년 납치되어 불법판결 8년을 받았다.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뇌종양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박해를 당해 감옥에서는 가족들한테 수속을 한 후 데려가라고 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수속절차가 끝난 후에도 감옥 측은 그녀를 석방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감옥을 찾아 문의했으나 성(省)에서 허가해주지 않아 석방시킬 수 없고 만기가 되어야 풀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뇌종양이 심해져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당시 2년이란 형기가 남아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중공사당의 박해로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례 29 : 장펀쩐(張鳳珍, 여, 나이미상).랴오닝성 파룬궁수련생으로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불법판결을 받았다. 요녕성(遼寧)여자감옥에서 심한 구타를 당해 간 손상, 심폐기능 비정상 등의 박해로 반신불수가 되어 2010년 3월 9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사례 30 : 스잉춘(史迎春, 여 , 60여세). 자택은 후루다오(葫蘆島) 옌산구(連山區) 보하이가도(渤海街道)다. 2010년 3월 19일 선양여자감옥에서 교도관의 사주를 받은 8명의 범죄자들로부터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史迎春

스잉춘(史迎春)

쓰잉춘(史迎春)은 1995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시작 한 달 후 치암, 담낭염, 신경쇠약 등 각종 질병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眞.善.忍(진.선.인)’의 원칙하에 그녀는 몸과 마음이 모두 회복되었음을 느꼈다. 한집안 세 식구는 모두 파룬궁 수련을 하며 아주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그녀는 후루다오구치소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한 적이 있으며, 마싼자(馬三家)감옥에서는 극악무도한 박해를 받았다. 2008년 8월 2일 올림픽이 열리기 전 다시 한 번 납치당해 비밀리에 7년 판결을 받았다. 2008년 10월 22일 선양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다시 박해를 받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2008년 3월 18일 그녀는 요령성여자감옥의 유과장과 주어샤오옌(佐曉艷)에게 불러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협박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수련에 확고한걸 보자 두 사람은 죄수 가오란(高嵐)에게 지시해 ‘강제전향’을 시도했다. 그날 밤 11시경, 가오란은 황예칭(黃葉青)등 죄수 8명은 404호실에서 스잉춘에게 막무가내로 구타를 가했다. 구타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고, 힘이 빠지자 세면실에 끌고 가 그녀에게 물을 뿌렸다. 2시 30분경 그녀는 고통에 시달리다 의식불명상태가 되었다. 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처치를 했지만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19일 열린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은 그녀의 두 귀의 멍과 엉덩이에서 작은 상처 3곳을 확인했다. 바지에는 2군데 핏자국이 있었고, 어깨에는 이에 물린 자국도 있었다. 교도관은 부검을 할 때 주의하지 않아 부딪혀 상처가 났다고 거짓말했다. 심지어 감옥측은 가족들의 극심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위협을 가하여 시신을 강제로 신속히 화장하라고 했다. 아내가 감옥에서 억울하게 사망하자 남편 왕루이치(王瑞奇)는 통곡했다. 이후 남편도 건강이 갈수록 나빠져 2010년 6월 8일 새벽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 왕주어(王茁)는 마싼쨔교도소의 박해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사례 31 : 허우옌쐉(侯延雙 ,남, 50세). 링위안시(凌源市) 파룬궁 수련생으로 랴오닝성 링위안철강회사 직원이었다. 2011년 4월 3일 선양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侯延双

허우옌쐉(侯延雙)

1994년 2월 리훙쯔(李洪志)사부님께서 링위안(凌源)에서 파룬궁을 전하실 때 허우옌쐉은 운 좋게 학습반에 참가해서 수련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매사에 자발적이고 부지런했고,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낼 뿐만 아니라 남을 돕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2001년 10월 21일 납치당해 불법으로 14년의 판결을 받았다. 2002년 8월 27일선양교도소에 수감된 당일, 감옥처장 쟈커(賈軻)의 사주를 받은 죄수에게 경추와 요추를 구타당해 중상을 입었다. 이후 골질증생, 손 저림, 팔 다리 통증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는 9년 간 불법 구금상태에서 박해를 당해 3급 고혈압, 심장질환, 다발성 뇌경색 등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가족은 수차례 병 치료 요청을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2011년 4월 3일 허우옌쐉은 박해로 사망했다.

사례 32 : 딩쩐팡(丁振芳, 여, 61세). 다롄시 파룬궁수련생으로 2011년 8월 1일 박해받아 사망했다.

丁振芳

딩쩐팡(丁振芳)

딩쩐팡은 1996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는데 수련 후 보름이 채 되지 않아 위장병, 허리디스크, 치통이 완치되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2007년 8월 16일 납치되어 8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랴오닝성 여자감옥 9구역에 감금되었다. 감옥에 들어가자 사악한 교도관 류허챠오(劉鶴翹)는 감옥내 모든 형구들을 딩쩐팡에게 한 번씩 실시했다. 사악한 교도관은 감옥에서 악독한 죄수에게 지시해 매일 그녀를 구타와 욕설을 물론 벌을 세우고, 잠을 재우지 않게 했다. 2008년 11월과 12월에 사악한 교도관 류허챠오는 그녀를 스팀파이프에 매달아 놓고 혹독하게 구타했다. 이렇게 7일 간이나 매달아 놓고 사람이 숨이 끊어질 정도가 되어서야 풀어줬다. 그녀는 단식으로 일 년 간 박해에 항의했는데 이 기간에 감옥은 가족과 면회를 금지시켰다. 그녀는 박해로 고혈압, 심장병, 뇌경색 등 증상이 나타났고 치아는 겨우 3~4개만 남았다. 7월 26일 남편은 아내가 너무 야위어 뼈와 가죽만 앙상히 남아 힘겹게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선양739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8월 1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가족들은 감옥측이 그녀에게 가한 박해와 악행이 폭로될까 두려워 약물을 주입해 살해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례 33 : 왕춘샹(王春香, 여, 55세). 단둥시(丹東市) 전싱구(振興區) 수련생으로 2011년 9월 25일 요령성(遼寧省)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王春香

왕춘샹(王春香)

왕춘샹(王春香)은 1996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으며,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 친척들과 동료들의 호감을 얻었다. 2006년 10월 31일 납치당해 불법으로 8년 판결을 받았다. 랴오닝성 여자감옥 교도관은 악한 죄수에게 지시해 그녀를 창고에 가두고 신발로 머리를 혹독하게 구타하고, 하체를 걷어하는 등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당시 그녀는 병원에서 심장병, 고혈압, 뇌동맥경화, 신장기능 쇄약 등 4가지 진단을 받았다. 2010년 가족은 그녀의 병치료 수속절차를 밟았다(통상 병원에서 3가지 이상의 병을 진단받으면 감옥은 사람을 석방시킨다). 그러나 그녀가 수련을 포지하지 않자 목숨이 위급한 지경이 되어도 석방시키지 않았다.

2011년 9월 25일, 정오경 교도소에서는 먼저 가족들에게 왕춘샹의 심장병이 재발했다고 알렸으나 30분후 사망하고 말았다. 그녀의 시신은 심하게 야윈 상태였다.

사례 34 : 치우칭화(邱清華, 남, 48세). 랴오닝성 랴오중현(遼中縣) 수련생으로 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2011년 10월 12일 오후 5시경 억울하게 사망했다.

치우칭화는 박해를 당해 몹시 야윈 상태였다(밍후이왕 발표 사진).

http://big5.minghui.org/mh/article_images/2011-11-2-minghui-pohai-qiuqinghua-01.jpg

치우칭화(邱清華)는 1998년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선량한 사람이 되었다. 심장병이 완쾌됐으며 속인과 싸우는 나쁜 습관도 고쳤다. 동종업계 사람들은 모두 “치우칭화 같은 사람이 인품이 좋게 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입을 모았다. 그는 바른 수련을 견지해 장기간 현지 ‘610’에게 감시를 당했고, 수차례나 중공의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3차례나 납치당해 여러 곳에서 불법 감금되어 다양하고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2008년 올림픽 전에 다시 불법 납치되어 4년 판결을 받아 선양 다베이(大北)감옥에 감금되었다. 다베이감옥은 구타, 체벌, 욕설이 난무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2년 반 동안 박해당한 후 당뇨합병증, 폐결핵 등 증상이 나타났다. 감옥측은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가족에게 만 위안을 갈취하고 2011년 8월 석방시켰다. 당시 그는 장기간 박해로 인해 뼈만 앙상했으며 몸이 허약해서 형제자매들도 가슴 아파했다. 두 달간의 고통과 시달림 끝에 치우칭화는 2011년 10월 12일 오후 5시 30분 아내와 자녀를 두고 억울한 생을 마감했다,

사례 35 : 리신량(李新良, 남, 2세). 랴오닝성 둥강시(東港市) 파룬궁수련생으로 2012년 1월 25일 억울한 생을 마감했다.

리신량(李新良)은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수련 후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대법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후 그는 수차례 납치당해 박해를 받았다.

2001년 7월, 그는 둥강시 공안국과 화원(花園)파출소의 사악한 경찰에게 체포되어 둥강구치소로 넘겨졌다. 이곳에서 사악한 경찰 리융안(李永安)에게 40일 넘게 잔혹한 박해를 당한 후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2001년 9월 다시 세뇌반에 잡혀 들어가 보름 동안 박해받았다.

2004년 4월 5일 저녁, 그는 다시 화원파출소에 납치되어 철상자에 가둬 24시간 불법 고문당하고, 둥강구치소로 압송돼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악독한 경찰 왕모(王某)는 구치소장 니우청이(牛承義) 앞에서, 리신량에게 세 차례 채찍질을 가했다. 사악한 경찰은 그를 교육감옥으로 보낼 때 까지 구타를 계속했다. 그는 너무 많이 폭행당해 입에서 선혈을 흘리고, 피를 토하는 상황에서도 악독한 교도관은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구타를 당해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고, 교도관이 스스로 지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다.

같은 해 6월, 그는 불법7년 판결을 받아 선양제1감옥에 감금되었다. 악독한 교도관은 그에게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그는 금강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를 ‘엄격관리호’에 감금시켜 ‘침대에 올라가 잡아당기기’ 등 여러가지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악독한 교도관 류전성(劉振生)은 침을 놓을 줄 아는 형사 수감자에게 지시해 잔인하게 두손의 합곡혈(合谷穴)을 찔러 거의 실신하게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학대로 그의 폐에 기흉이생기고 피와 담즙까지 토해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 2003년 말, 교도관은 가족에게 1만 여 위안(一萬多元)을 갈취하고서야 병보석을 허가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집에서 일 년 반 있는 동안, 다시 한 번 감옥 측에 1만 여 위안을 강탈당했다. 2005년 8월, 그는 다시 감옥에 납치돼 박해받았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계속 구토를 하는 등 의식불명 상태였다. 감옥측은 또 다시 그를 ‘엄격관리실’에 가두어 놓고 구토할 때까지 박해를 했다. 그들은 그를 풀어 주사를 맞힌 후 다시 ‘엄격관리실’에 가뒀다. 박해가 반복되자 병세는 점점 더 깊어졌다. 이런 고문은 2009년 그가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지 계속되었다.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건강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생활비도 나올 곳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 공부도 파룬궁 수련생의 도움으로 하고 있어 심리적 부담이 아주 컸다. 2011년 말, 집근처에서 누가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매우 놀라 두려워했다. 결국 2012년 1월 25일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례 36 : 왕제(王杰 ,여, 48세). 선양시(瀋陽市) 선허구(沈河區) 이징(一經)가도사무처 직원으로 2012년 4월 21일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王杰遗照

왕제(王杰) 생전사진

왕제는 1997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전 각종 질병을 앓고 있어 결혼생활까지 파탄됐다. 수련 후 질병이 사라지고, 일을 한때 근면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재혼 후 가족은 다시 화목함과 행복을 되찾았다.

1999년 중공사당이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녀는 잇따라 5차례의 불법 납치와 감금을 당했으며 각 종 극악무도한 고문과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2002년 10월에는 불법 납치되어 벽에 이틀 밤낮으로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불법판결 7년을 받아 요녕성 여자감옥으로 감금되었다. 이곳에서도 그녀는 수련을 견지하여 온갖 고통을 겪었다. 7년간의 지옥 같은 불법감금과 박해로 인해 그녀의 몸은 극도로 허약해졌고 방광염까지 걸렸다. 그녀는 감옥에서 7년 동안 겪은 공포를 진술할 때, 강제로 입에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고 했다.

악독한 간수들은 번갈아가며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다. 2012년 4월 21일 오전9시 45분에 사망했다.

遭受迫害后的王杰

박해를 받은 후 왕제

그녀는 선양 룽산교양원 악당관원들이 15살도 안된 어린 파룬궁 수련생 한텐즈(韓天子)에게 전기 고문을 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악독한 교도관이 전기봉을 노인 파룬궁 수련생 입에 넣어 잔혹하게 박해를 하는 것도 보았다. 그녀는 선양지하감독병원에서 직접 마싼자(馬三家)에서 박해를 받은 파룬궁수련생 저우구이룽(鄒桂榮), 인리핑(尹麗萍), 자오쑤환(趙素娟), 저우옌퍼(周艷波)등 수련생들이 잔인하게 박해받는 처참한 사실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사례 37 : 취싼린(曲山林, 남, 나이미상). 랴오닝 펑청시(鳳城市) 수련생이다. 선양(瀋陽)교도소에서 박해로 위암이 발병해 2012년 5월 억울하게 사망했다.

2010년 9월 5일 저녁, 량윈청(梁遠成)과 취싼린(曲山林) 등 5명은 바이치(白旗)감옥에서 손에 총기를 든 경찰과 사회 망나니들에게 같이 납치당했다. 2010년 중공의 모함으로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2011년 4월 량윈청과 취싼린은 선양감옥에 수감됐다. 감옥의 악독한 교도관은 죄수에게 지시해 두 사람의 옷을 다 벗기고 이들 옷에 들어있는 물건과 상소장 등 서류증거를 강탈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에 따르지 않자 교도관은 고압전기봉으로 고문했고, 쇠로 된 작은 공간에 가두어 구타와 박해를 했다.

작은방에는 벽에 두개의 수갑이 고정됐고 높이는 사람이 앉은키 보다 조금 높았으며 너비도 어깨보다 조금 넓었다. 두 손을 각각 2개의 수갑에 채웠고 등은 벽에 기댔으며 두발은 족쇄를 채워 차가운 바닥에 앉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이 저리고 몸도 괴로워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악독한 교도관은 죄수에게 지시해 두 사람의 옷단추를 풀고 취싼린의 바짓가랑이를 일부러 찢어 그들을 추위에 떨게 했다. 두 사람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이틀 뒤 감옥소장 장화(張華)는 죄수를 시켜 두 사람의 수갑과 족쇄를 풀어줬다. 하지만 밤에 잘 때 이불을 주지 않았다. 그 뒤 취싼린은 교도소에서 박해로 위암이 발병해 2012년 5월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사례 38 : 우슈옌(吳樹艷, 여, 47세) 선양시 다둥구 파룬궁수련생으로 2013년 6월 2일 오전 9시55분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녀는 2006년 5월 24일 납치당해 2006년 9월 5일 불법으로 7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랴오닝성 여자감옥 7구역에 수감돼 박해를 당했다. 입감 첫 주에 교도관은 바오자(包夾)에게 지시 수면박탈, 벌세우기, 엄동설한에 반바지만 입히고 용수공급실에서 맨발로 시멘트 바닥에 세우고 몸에 찬물을 퍼붓는 등 고문을 가했다. 심지어 음료수병으로 그녀의 눈을 때렸고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 문틀에 부딪쳐 두개의 앞니가 부러졌다. 그녀는 단독으로 3년간 감금당했고 누구도 그녀와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강제 노역도 시켰다.

吴树艳

우수엔(吳樹艷)

2012년 그녀는 박해로 인해 배가 부어오르는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그녀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고 가족한테 통지한 후 그녀를 병원에 내버려두고 거들먹거리며 자리를 떴다.

被中共牢狱迫害的吴树艳

중공 박해당시의 모습

그녀는 7년 동안 억울한 감옥살이로 몸과 마음이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집에 돌아온 후 가도파출소의 경찰들은 끊임없이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극도의 놀라움에 병세가 악화되고 복부는 출산을 기다리는 임산부처럼 커졌다. 이러한 상황이 거의5개월이나 지속됐으며 2013년 6월 2일 오전 9시 55분, 그녀의 심장박동이 멈췄다.

사례 39 : 둥신란(董欣然, 남, 나이 미상). 선양시 기관차차량제작소 직원으로 2013년 11월 12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被迫害得骨瘦如柴的董欣然

박해를 받아 앙상하게 뼈만 남은 둥신란(董欣然)

1999년 7월 20일 이후 그는 공직에서 불법 해고된 후 여러 차례 세뇌반, 정신병원, 교도소, 감옥 등에 감금되어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2004년 3월 1일 불법 체포되었는데 4월 중순쯤에야 어머니는 “둥신란을 선양감옥으로 압송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2004년 6월 2일 가족은랴오닝성이 관리하는 병원에서 학대를 받아 뼈가 앙상해 생명이 위독하고 정신이상이 있는 둥신란을 보았다. 그의 입안에는 검은피가 묻어있었고 수시로 경련을 일으켰다. 오른손은 구타로 골절되었고, 오른팔은 담배로 지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족은 약 1만 위안을 지불하고 그를 데려 올 수 있었다. 그는 신체가 너무 심하게 박해를 당했는데 지역사회, 파출소에서 번갈아 집으로 와 소란을 피웠다. 그의 신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2013년 11월 12일 밤 11시 37분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사례 40 : 리상스(李尚詩, 남, 65세). 전 판진시(盤錦市) 임산공업회사 경영관리책임자로 판진시 싱룽타이구(興隆台區)주민이다. 2013년 11월 22일 선양제1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그는 파룬따파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연속 두 번 납치당해 불법판결을 받았는데 형기를 합하면 총 17년 6개월이다.

첫 번째는 2000년 3월 불법판결 3년을 받았다.

두 번째는 2004년 4월 20일 오후, 중공의 악독한 경찰한테 납치당했다. 판진(盤錦)제3감옥에 감금돼 독방에 가두고 구타했으며 가혹행위도 있었다.

세 번째는 2004년 9월초 싱룽타이구법원에서 불법 판결 14년을 받았다. 불법판결후 그는 이미 판진, 푸순, 선양 등 감옥으로 불법 이감되어 각종 고문과 고통을 당했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강제노역도 뒤따랐다.

2010년 6월 선양 제1감옥에서 악독한 교도관에게 전기고문을 당한 후 장기적으로 작은방에 가둬 벌세우기, 식사금지, 가족 면회 금지 등 정신과 신체에 학대를 받았다.

2013년 11월 22일 그는 ‘고경계감시구역’으로 이감돼 박해를 당했다. 박해를 받아 피를 많이 토해 감옥병원으로 실려 갔다. 심한 박해로 인해 2013년 11월 2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례 41 : 양춘링(楊春玲, 여, 41세). 랴오닝성 다롄시 파룬궁수련생으로 랴오닝성여자감옥에서 7년 동안 감금과 박해를 당해 불치병에 걸렸다. 출소한지 겨우 일 년 만인 2014년 4월 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杨春玲和丈夫杨本亮的结婚照片

양춘링(楊春玲)과 남편 양펀량(楊本亮)의 결혼사진

양춘링(楊春玲)은 2005년 료양현 유선방송국에 ‘9평공산당’ 삽입방송에 참여해 납치되었다. 2006년 4월 불법으로 7년 판결을 받아 랴오닝성여자감옥으로 수감돼 박해를 받았다. 체포되기 전 다롄의 사악한 경찰에게 골절되었던 오른팔이 감옥에서 구타를 당해 다시 골절되었다. 두 다리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죄수들은 그녀가 비명을 지를까봐 테이프로 머리와 입을 둘둘 감았다. 수면을 박탈하고 식사와 물도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 사용도 허락하지 않았다. 2007년 신체는 박해로 인해 칼슘부족, 저혈당, 심장박동 일시 정지 등 극도로 허약해 졌다. 그녀는 2013년 3월 11일 감옥을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오른쪽 유방에 덩어리 3개가 있다고 진단을 받았다. 출소 후 그녀의 병은 계속 악화되어 일 년 만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현재 남편 양펀량(楊本亮)도 그녀와 함께 납치당해 불법 판결 11년을 받았다. 선양교도소 제1감옥에 감금되어있고 그의 몸도 심한 박해를 받았다. 장기적으로 가족들의 면회도 박탈당했다. 시어머니 차오위전(曹玉珍)은 두 사람의 행방을 찾고 있을 때 납치당해 불법으로 9년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랴오닝성여자감옥 제9지역에 감금되어 있다.

사건 42 : 류루향(劉路香, 여, 49세). 료녕성 안산시 철서구 주민으로 2014년 9월 3일 밤12시에 요녕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했다.

류루향(劉路香)

2012년 7월 12일 류루향은 당가방파출소 경찰에 납치 당해 불법으로 재산까지 몰수당했다. 이후 그녀는 안산시 여자구치소로 이감됐다. 안산 천산구 검찰원과 법원은 파룬궁탄압전문기구인 ‘610’과 정치법률위원회의 지시를 받아 그녀에게 불법으로 3년형을 선고 했다. 2012년 10월 그녀는 선양 요녕 여자감옥에 감금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2014년 7월 29일 류루향의 아들이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면회하러 갔을 때 그녀는 야위어 뼈만 앙상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9월 3일 심야에 그녀가 실신을 해서야 감옥은가족들에게 통지했다. 9월 4일 739병원에서 류루향의 시신을 봤을 때 뼈만 앙상한 시신은 움츠리고 있었고 온몸은 핏기가 없었다. 한쪽 눈은 약간 뜬 채 마치 가족에게 자기가 억울하게 사망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듯 했다. 감옥 교도관 10여명은 가족의 신분을 엄격하게 조사 했으며 사망자와의 관계까지 상세하게 물었다. 교도관은 그녀가 병으로 사망했다고 거짓말 했다. 가족들이 병력을 달라고 하자 감옥은 증거를 대지 못했다. 가족들이 따지자 감옥 책임자들은 모두 피했으며 누구도 나서지 않고, 도리어 가족들을 체포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가족들이 감옥관리 사무국 밖에서 몸에 흰 천을 두르고 감옥의 죄행을 고발하자 교도관들은 가족들을 쫓아냈다. 감옥 측에서 가족들의 서명을 받고 시신을 화장하려고 했지만 가족들은 거절했다. 류루향의 억울한 죽음은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으며 가족들은 매일 극도의 슬픔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례 43 : 리퍼이윈(李丕雲, 남, 65세). 랴오닝성 선양시 파룬궁수련생으로 1년 6개월의 불법감금과 고문박해로 2014년 10월 31일 사망했다.

리퍼이윈은 퇴직 전 선양시 조미료공장 직원이었다. 일을 열실히했으며 정직하고 성실했다. 마음이 착해 부모에게 효도하고 의붓아들을 친아들처럼 챙겼다. 다른 사람이 왜 이렇게 착하냐고 물으면 그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한다. 나의 사부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라고 대답했다.

2013년 6월 6일, 선양 둥령구 국가안전국은 선양 타우선(桃仙)공항에서 리퍼이윈을 납치해 그의 집을 수색했다.

2013년 말 둥령구법원은 그에게 불법으로 3년형을 선고했다. 2014년에 마싼자감옥의 ‘입감대’에 납치돼 박해를 받았다. 두 차례 구타를 당했으며 장시간 잠을 못 자게 하였다. 40여 일간의 박해로 사경에 이르렀다.

이후 다시 번시감옥으로 이감되었는데 사람이 다 죽어가자 번시병원으로 옮겼다. 가족이 봤을 때 그의 신체는 여위어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고, 호흡이 곤란하고 하체가 부어있었다. 심장기능이 쇠약해져 폐에 물이 찬 상태였고, 두발에는 무거운 철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는 결국 폐암말기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여전히 그를 풀어주지 않았고 다시 번시감옥으로 이감시켰다. 나중에 그는 다시 위독한 상황에 이르렀다. 교도관은 책임을 회피하며 가족에게 그를 데려가라고 했다. 가족은 그를 심양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치료비만 10만 위안 가까이 들었다. 이 기간에도 교도관들은 24시간 계속 감시했다. 하지만 너무 심한 박해로 리퍼이윈은 2014년 10월 31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례 44 : 왕민(王敏, 여, 60세) 선양시 선베이신(沈北新)구 파룬궁수련생. 두 차례 불법판결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받은 박해로 유방암이 발병해 2014년 11월 1일 밤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王敏

왕민

왕민은선베이신구 제1초등학교 체육교사였다. 수련하기 전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1996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건강을 되찾았다.

2001년 6월 14일, 왕민은 학교에서 경찰에게 납치당했으며 타오더쥔(陶德軍) 등 사악한 경찰에 의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당시 신청즈( 新城子) ‘610사무실’ 우두머리 퉁수량(佟樹良)은 선베이신구 법원을 통제하여 왕민에 대해 불법으로 5년이라는 중형 판결을 내리게 했다.

왕민은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압송 된 후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으며 이로 인해 그녀에게 유방암 증상이 나타났다. 2006년 왕민이 감옥에서 나올 때 흉부의 종양은 이미 아주 크게 변했고 물려터지게 되었다. 왕민은 집에 돌아온 후 직장은 불법으로 해고결정을 내렸다.

2010년 10월 1일 이틀 전, 왕민은 다시 납치당했으며 2011년 8월에 또 다시 4년 6개월이라는 불법판결 받았다. 당시 선양시감옥관리병원은 신체검사에서 그녀가 유방암을 앓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수용을 거부했다. 선베이신구 ‘610사무실’은 선베이신구 법원을 교사해 그녀에 대해 거주를 감시했으며 이 때문에 그녀의 병을 악화시켰고 2014년 11월 1일억울함을 품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왕민이 세상을 떠날 때 원래 75킬로였던 몸무게가 겨우 30킬로 밖에 안됐다. 좌측 유방 중간에 10센티미터 크기의 뼈가 삐져나왔으며 전체 종양크기가 20여 센티미터나 되었고 사람은 말라서 피골이 상접했다. 발인 당시 세 명의 낯선 사람들이 일반차량을 운전하며 줄곧 화장장과 장지까지 따라갔는데 후에 확인한 바로는 이들은 공안국에서 파견한 사람들이었다.

사례 45 : 쉬춘샤(徐春霞, 여, 58세). 랴오닝성 푸순시 수련생으로 2014년 12월 2일 박해로 사망했다.

쉬춘샤는 파룬궁 수련 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했다. 2013년 12월 8일 선양 둥령구에서 진상달력을 배포하다가 동령구 왕쟈파출소에 납치당해 불법으로 선양시 제1구치소에 감금됐다. 2014년 5월 16일 선양 둥령구법원은 그녀에게 불법판결을 내려 4년형을 선고했다. 11월에 요녕여자감옥으로 이감되어 2014년12월 박해로 사망했다. 사망 전 그녀는 선양시739병원에 수감되어있었고,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도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엄격한 감시를 당했다. 가족이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가서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려고 하자 의사는 “개복하자 장은 이미 부패했고, 장 유착으로 성한 곳이 없었으며 단단한 물건 하나가 있어서 수술을 포기하고 다시 봉합했다”고 했다. 감옥에서는 2014년 11월 6일에 그녀를 선양시구치소에서 여자감옥으로 보냈고 11월 27일 즉시 선양시739병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沈阳739医院

선양739병원 전경(瀋陽739醫院)

조사에 의하면 랴오닝여자감옥은 선양시739병원에 병실 몇 개를 임대했다고 한다. 밍후이왕의 보도에 의하면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한 후 이 병원에서 박해로 사망했다고 한다.

쉬춘샤가 박해로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드러나자 요녕여자감옥은 두려움에 떨면서 가족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협하여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가했다. 협조하지 않으면 가족을 구속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사례 46 : 류잔하이(劉佔海, 남, 48세). 흑룡강성 하얼빈 난강구 수련생으로 2014년 12월 5일 선양제1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그는 2013년 3월 20일 선양에서 아침연공에 참가했다가 불법감금을 당했다. 이후2014년 4월 불법판결 4년형을 받고 선양감옥으로 수감됐다.

그의 가족은 2014년 11월 18일 선양감옥에 수감된 류짠하이가 뇌혈전 증세가 나타나 상황이 위급하다는 관할 파출소의 통지를 받았다. 여러명의 친척들이 선양제1감옥에 서둘러 도착했지만 감옥 측은 류짠하이의 부인에게만 면회를 허가했다. 여위여서 피골이 상접한 남편은 들것에 실려 나왔는데 사람이 부축해서야 겨우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감옥측은 보석치료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그가 단식으로 자해를 한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부인을 위협하여 서명하라고 했다. 가족은 그가 위독하다는 선양제1감옥의 연락을 받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3일 전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사망한지 며칠이 되었는지 경찰은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에게는 머리 부분만 보여주고, 다른 신체부위는 보여주지 않았다. 가족이 부검을 요구하자 감옥측은 가족에게 강제로 화장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12월 7일 그의 시신은 선양현지에서 강제 화장되었다.

1999년 중공이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후 그는 4차례나 납치를 당했다. 그는 전기봉, 쇠의자에 앉히기, 독방 감금은 물론 밀고, 비틀고, 부러트리는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2001년 10월 그는 불법노동교양 1년 결정을 받아 창린즈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 2007년 7월 27일 류짠하이는 하얼빈시 난강구 과학기술대학 아파트단지 집 앞에서 가도사무소 및 ‘601’직원에 납치되어 강북(江北)세뇌반에 며칠 동안 감금되어 박해를 받았다. 2007년 8월 30일 그는 몇몇 파룬궁수련생과 자기 집 아파트 앞에서 아침연공을 하다가 경찰에 납치되어 불법노동교양 박해를 받았다.

맺음말

이러한 박해진상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정리과정에서 한차례 또 한 차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박해당해 세상을 떠난 파룬궁수련생들이 피로 쓴 역사와 이들이의 몸과 마음이 학살당하면서 일분일초 시달려야 했던 고통, 박해 중에서도 여전히 대법(大法)을 수호하는 그 간고하고 어려운 정도는 문자로 다 표현할 방법이 없다.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아들 딸을 잃은 부모들, 이들은 또 혈육을 잃은 고통을 감내해야 할뿐더러 사당(邪黨)의 공포적인 정책 하에 가족의 억울함을 씻어버릴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더욱이 가족이 고문으로 학살당하는 비참한 결과를 감당해야 했으며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아픈 상처를 남겨야 했다.

중국공산당이 노동교양제도를 폐지한 후, 중공 불법인원들은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판결하고 감옥에 감금해 계속 박해를 가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대량의 파룬궁수련생들이 감옥에 불법 감금되어 박해를 당하고 있으며 수시로 각양각색의 고문의 시달림을 당해야 하고 심지어 중공에 의해 산채로 장기를 적출당할 위험에 처해있다. 때문에 감옥에 불법감금되어 박해를 당하고 있는 이러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깊은 관심과 구원을 제공할 것을 각계 인사와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바이다.

▼ 랴오닝성 감옥 주소 모음:

(주소 출처: 중국 대륙 랴오닝성 감옥관리국 인터넷사이트)

부문 / 주소 / 우편번호

瀋陽監獄管理分局遼寧省瀋陽市於洪區育新路9號110145

(선양감옥관리분국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구 위신로 9호 110145)

瀋陽第一監獄遼寧省瀋陽市於洪區育新路3號110145

(선양제1감옥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구 위신로 3호 110145)

瀋陽第二監獄遼寧省瀋陽市於洪區育新路7號110145

(선양제2감옥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구 위신로 7호 110145)

瀋陽造化監獄遼寧省瀋陽市於洪區文大西路80號110148

(선양조화감옥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구 원다시로 80호 110148)

瀋陽新入監犯監獄遼寧省瀋陽市於洪區育新路4號110145

(선양신루감범감옥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구 위신로 4호 110145)

省女子監獄遼寧省瀋陽市於洪區育新路7號110145

(성여자감옥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구 위신로 7호 110145)

(전문 끝)

문장발표: 2015년 3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12/3060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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