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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박해 당한 랴오닝 단둥시 장펑잉, 억울하게 세상을 떠남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장펑잉(姜鳳英. 67. 女)은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서 2년간 박해의 시달림으로 조성된 심신 상해와 그 후의 감시와 교란을 당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2012년 1월 8일 67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장펑잉은 랴오닝(遼寧) 단둥(丹東)시 출신으로, 단둥시 단결정공장(單晶廠)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사람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 것 때문에 중공에 불법적으로 납치 감금되어 박해를 받았는데,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5차례에 걸쳐 납치, 고문, 세뇌, 노동교양처분을 당하면서 독극물주사인 독침을 맞기도 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독침고문 시연 (독극물 주사하기)

장펑잉은 2005년 12월 20일부터 2007년 10월 5일까지 랴오닝성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2년 동안 감금되어 박해를 당했는데, 그곳에서 몸에 극심한상해를 입었다. 왼쪽 눈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치아는 7개나 부러지는 등 온 몸에 상해를 입어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체중은 40kg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걸을 때는 손으로 땅을 짚고 간신히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기기도 했다.

이렇게 악화된 건강상태로 집에 돌아왔으나, 돌아온 후에도 중공의 박해는 계속 됐다. 악인들은 잠시도 가만 두지 않고 감시와 교란으로 가정과 심신을 괴롭혔는데, 결국 장펑잉은 과중한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2014년 1월 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1. 야만적인 납치

장펑잉은 2005년 11월 6일 세상을 떠난 모친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타고오던 자동차가 정지당해 다오거우(七道溝)파출소로 납치되어 갔다. 파출소장 다이칭궈(代慶國) 등은 어떤 법률적인절차도 없이 장펑잉을 경찰차에 끌어올렸고, 또 강제로 가택을 수색하여 금품을 강탈한 후 구치소로 압송하였다. 구치소에 도착하여 경찰관 4명이 장펑잉을 잡아당겨 들어 올려서 안으로 끌고 갔는데, 이로 인해 장펑잉이 입은 바지의 두 무릎이 해지는 등 몸과 옷이 상할 정도였다.

2. 구치소의 학대

장펑잉은 의식을 잃고 구치소 감방에 누웠다. (얼마 후) 정신이 든 후 살펴보니, 10여 평방미터밖에 되지 않는 좁은 방안에 20여 명이 감금되어 있었다. 그 후 매일 16시간씩의 강제노역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이렇게치다오거우 파출소에 납치되고, 구치소로 압송돼 10여 일 동안 감금당했는데, 치다오거우 파출소의 왕빈(王斌) 등 몇 명의 경찰관들은 장펑잉을 사무실로 불러내 호출증서에 서명하라고 핍박했다.

구치소 교도관 왕(王) 모는 장펑잉을 1감구역에서 2감구역으로 이감시켜 방법을 바꿔가며 학대했다. 또 파출소 악경(사악한 경찰) 왕빈은 몇 차례나 장펑잉을 심문하면서, 계선조직(上線)과 상위자가 누구인지를 실토하라고 강요했다. 장펑잉은, “이미 당신에게 여러 차례 알려주었지만 나에게는 상위나 하위 등 어떤 계선조직도 조직원도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마지막에 파출소, 구치소, 공안국 등과 연합하여 장펑잉의 딸을 기만하여 서명을 받아냈다. 그들은 “서명을 하면 너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짓말로 설득하여, 그 말에 속은 장펑잉의 딸이 서명을 한 것이다. 그렇게 악경들은 거짓으로 얻어낸 딸의 서명을 들고 장펑잉을 마싼자교양원으로 이송하여 감금시켰다.

3.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작고 컴컴한 방’

장펑잉은 2005년 12월 20일 치다오거우 파출소의 경찰관 마(馬) 모와 류거(劉革)에 의해 마싼자노동교양소로 압송되었다. 마싼자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부정맥 증상, 심장박동이 너무 빠른 증상 등이 나타났다. 그래도 악경들은 장펑잉을 랴오닝 마싼자 ‘사상교육학교’(후에 마싼자 노동교양원 여공소(女工所)로 개칭)로 보냈다. 장펑잉은 그곳에서 또 고문과 핍박을 받기 시작했다. 작은 걸상에 앉히기를 당한 후 이어서 ‘작고 컴컴한 방’(1교도관 사무실)에 감금됐다. 이후부터 장펑잉이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2명의 바오자(악경의 협조자인 죄수)가 작고 컴컴한 방으로 끌고 가서 강제로 믿음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다.

장펑잉은 2006년 1월 상순경에 또다시 마싼자 노동교양원의 종합루로 옮겨졌다. 매일 새벽 5시에 기상, 오후 9시후에야 취침하게 했다. 2주 후 다시 원 3분대의 작고 컴컴한 방안으로 끌려 돌아갔다. 여전히 매일 새벽 4시 기상해서 16시간 동안 작은 걸상에 앉는 고문을 당한 후 저녁 10시에 돌아갔다. 장시간 동안 작은 걸상에 앉았던 관계로 둔부의 피부가 손상을 입었다. 그렇게 10일이 지나자, 대장은 다시 숙소를 바꿔 돌아오게 한 후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마늘 까기 노역에 종사토록 했다.

장펑잉은 이렇게 오랜 기간 밤낮 없는 학대로 몸이 매우 허약해졌다. 그녀는 가슴이 답답하고 눈도 뜨지 못했으며, 몸은 아래로 가라앉았고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는데 그 후 인사불성이 되었다. 바로 그날 저녁 10시경, 2명의 파룬궁수련생에 의해 숙소로 부축되어 갔을 때, 장펑잉은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일종의 검은 그림자가 막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상태였는데도 대장은 또 장펑잉을 맞은편 교실 안으로 끌고 가서, 교실 책상으로 구석에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에워싸고 장펑잉을 그곳에 가두고 일을 시켰는데, 무덤에서 사용하는 수출용 작은 꽃을 만들게 했다. 이것 역시 바오자가 옆에서 닦달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4. 마싼자 여1소의 각종 박해

단오 날에, 장펑잉은 마싼자 노동교양소 여1소로 옮겨져 수감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제노역에 투입되었다. 3개월 넘게 노역을 한 뒤인2006년 9월 12일 또 마싼자 교양원 여2소로 옮겨져 수감되었다. 그리고 장펑잉 등 파룬궁수련생들은 반드시 소위 ‘전향서’를 써야한다는 위협을 당했다. 어느 날 장펑잉은 의무실로 끌려가 악경으로부터 심한 매질을 당했다. 그 악경은 판지 몽둥이로 장펑잉의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장펑잉은 그에게 “당신은 뭘 하는 거죠?” 하고 물었다. 이때 왜소하게 생긴 한 경찰이 “그만 둬, 그녀를 그곳에 채워두면 돼(이층으로 된 쇠침대를 가리킴).”라고 말했다. 장펑잉은 그곳으로 끌려가 두 손을 벌려서 쇠침대 위층 난간 위에 채워졌다.

酷刑演示:抻铐

늘이는 침대고문 시연

장펑잉은 매달린 시간이 한동안 지나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져 심장이 불편했고, 몸은 아래로 가라앉아 수갑이 손목에 깊이 패어 들어갔다. 땀방울은 침대 매트위로 떨어져 ‘딱, 딱’ 울려 퍼졌다. 잇달아 한 경찰관이 그녀를 연속해서 밀고 잡아당겨 옆방으로 밀어 넣은 후, 그녀의 오른 쪽 손을 쇠침대 위층 쇠기둥에 채워놓고, 왼쪽 손은 다른 한 침대 아래쪽 쇠기둥에 채워놓았으며, 두 다리는 끈으로 단단히 한데 묶어서 침대 머리 위에 고정시켰다. 두 손이 한 쪽은 높고 한 쪽은 낮게 경사져 있어서, 서있을 수도 그렇다고 쭈그려 앉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자세로 밤중까지 채워놓아 결국 몸은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장펑잉은 극한 상황을 맞게 되어 종국에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는데, 걸을 때는 손으로 땅을 짚고 앞으로 한 발작씩 옮겨야만 했다.

어느 날 3분대장 스위(石雨)는 파룬궁수련생들을 호명하여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장펑잉도 함께 나왔는데 이미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불려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각 분대에 수감된 사람들이 모두 있었는데, 말로는 그들에게 주사를 놓을 것이라고 했다. 장펑잉은 한 여의사에게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 당했다.

2006년 11월 초, 여1, 2소가 합쳐지는 바람에 장펑잉은 1대대의 노년대로 분리돼 갔다. 2007년 설을 쇠기 10여 일 전, 장펑잉은 추운 방안에서 노역을 하고 있었다. 솜으로 만든 군용 외투에 불결한 도료가 있었는데, 대장은 그녀에게 사염화탄소를 사용하게 했다.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서 이런 독성이 있는 기체를 흡입하게 되어 저녁에 일이 끝났을 때는 장펑잉은 온몸이 몹시 추웠으며, 그날 저녁 자리에 누웠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누웠을 때 너무 추워 솜이불을 두 채나 덮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부터 장펑잉은 매일 극렬하게 기침을 하였으며 밤이면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눕기만 하면 숨이 차올라 극심한 기침을 하였는데 기침을 할 때 양쪽 갈비뼈마저 아팠다. 또 대량으로 식은땀을 흘려 가슴부위는 언제나 물이 흥건했다. 상반신의 양측 갈비뼈 부위는 손으로 누를 수 없어서 조금이라도 맞히면 고통이 심해 몸을 옆으로 해서 자야만 했으며, 타액에서 피가 섞여 나왔다. 계단을 오르는 것마저 숨이 차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머리 밑은 늘 축축했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위로 쓰다듬으면 비듬과 머리카락이 함께 한 무더기씩 빠지고 떨어졌다.

2007년 10월 5일, 박해를 당해 상처투성이 된 장펑잉은 마싼자 교양소를 걸어 나왔다.

문장발표: 2014년 4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22/2903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