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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이톈 박해사망, 생질녀 공정한 평가 요구에 악독한 경찰이 공갈 협박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 보도) 지린시(吉林市) 파룬궁 수련생 왕하이톈(王海田)이 납치돼 박해로 세상을 뜬 보름 뒤, 정월 대보름날이 막 지나서 지린시 즈허(致和)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또 ‘우한(武漢) 오리목왕(鴨脖王)’ 조제식품점 및 주변의 점포로 가서 왕하이톈의 생질녀 추이추이(翠翠)의 행방을 조사 심문했다.

왕하이톈은 몽골족 사람으로, 예전에 바오원쥐(包文菊)라고 불렀는데, 생질녀 아오추이추이(敖翠翠)와 함께 지린시 촨잉구(船營區) 베이지(北極) 음식점거리에서 ‘우한 오리목왕’ 조제식품점을 차렸다. 왕하이톈는 직접 쇠고기 육포를 만들었고, 오리 상품은 본사에서 들여왔다. 두 사람은 장사하는 데 있어서 신용을 지키고, 도덕을 중히 여겼다. 판매하는 식품 중에 아무런 첨가제, 방부제를 넣지 않았다. 고객들은 사는 것도 마음에 들어 했고 먹는 것도 안심되었다. 그 식품을 먹은 적이 있는 모든 고객은 모두 좋다고 하며 모두 가서 사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모두 이 때문에 단골손님으로 되었고, 장사도 매우 잘 되었다.

2013년 10월 18일, 왕하이톈은 베이지가 민족골목 8호 건물 자기 집 문밖에서, 지린시 공안국, 즈허 파출소의 한 패거리 악독한 경찰에게 사허쯔(沙河子)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당했다. 12월 5일 세뇌반에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몸이 수척해지고 얼굴색이 누렇게 떴다. 이어서 복부가 부어오르고 호흡하기가 어려워 음식을 매우 적게 먹었다. 그 후에는 누울 수 없게 되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또 그 후에는 눕지도 앉지도 못해 꿇어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대변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2014년 2월 2일(음력 정월 초사흘)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45세였다.

'王海田遗体'

왕하이톈(王海田) 시신

왕하이톈이 세상을 뜬 지 셋째 날, 입 전체는 검은 자색을 띠었고 얼굴 전체는 청색을 띠었다. 화장한 골회분에는 일부 쌀알만 한 검은색 과립이 있었다. 가족은 왕하이톈이 생전에 경찰에게 상해당한 수단을 이야기한 것에 근거해, 세뇌반에서 그가 독극물을 주사 당했는지를 강력하게 질의했다.

외삼촌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아오추이추이에 대해 말하면 정말 청천벽력이었다. 자상하고 건장하던 외삼촌이 정말 그녀를 떠났단 말인가? 그녀는 이 사실을 감히 믿지 못해, 종일 눈물로 보냈다. 그녀는 “외삼촌이 외출해 며칠 후면 곧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외삼촌과 생질녀 모두 납치, 고문으로 시달림을 당하다

2013년 10월 18일 오전, 왕하이톈과 생질녀 아오추이추이는 일 처리하러 외출하려 했다. 왕하이톈이 집 문을 나서자마자 잠복 감시하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아오추이추이가 나왔을 때는 외삼촌이 보이지 않았다. 막 핸드폰을 꺼내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가, 곧 세 명의 사복 경찰에게 납치돼 차 안에 밀쳐 들어갔다. 그중 한 사람은 탕저밍(唐哲明)이었다.

왕하이톈과 아오추이추이는 촨잉구 즈허 파출소로 납치당해,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즈허 파출소 경찰에게 두 차례나 불법 가택 수색을 당했다. 그들은 모든 파룬궁 서적, 위성 수신기의 고주파(高頻頭) 2개, 위성 수신기와 위성 설비를 설치하는 모든 공구, 전동차 1대, 현금 1만여 위안(180만 원)과 기타 물품을 강탈해갔다. 경찰은 또 왕하이톈 집의 위성 안테나를 떼 내었다.

아오추이추이는 파출소에서 불법 심문당했다. 아오추이추이가 대답한 것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경찰은 곧 수갑을 더욱 단단히 조였는데, 수갑마저 살 속까지 파고들어 가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런 다음 또 ‘호랑이 의자’ 고문을 가했다. 그 후 그날 밤에 지린시 유치장으로 보내져 열흘 동안 불법 구금당했다.

왕하이톈은 즈허 파출소로 납치당해 불법 심문당한 뒤, 악명이 극히 높은 지린시 사허쯔 세뇌반으로 보내져 박해당했다. 10월 23일 저녁 7시가 넘어서, 왕하이톈은 두 손이 거꾸로 족쇄에 채워진 채 머리 씌우개를 쓰고 강제로 승용차 안에 밀려들어 가서 어느 3층 심문실로 끌려갔다. 한 형사경찰대대의 악독한 경찰은 왕하이톈의 두 손을 등 뒤로 채우고 두 발을 쇠고랑이로 채웠다. 경찰은 수건으로 왕하이톈의 머리부위 윗면을 단단히 조인 뒤 잡아당겨 그로 하여금 머리를 들게 했다. 그리고 입은 테이프로 봉해 놓아 코로만 숨을 쉴 수 있게 했다. 다시 타고 있는 담배를 콧구멍 안에 꽂아 넣었고, 담배가 다 탄 뒤에 다시 계속 콧구멍 안에 꽂아 넣어 사레가 들어 사람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연속 기침을 하고 토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는데, 특히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또 눈을 뜨게 했다.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그들은 곧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구타했다(장갑을 끼면 흔적을 남기지 않음). 악독한 경찰은 이 고문을 ‘성뇌(醒腦)’라고 불렀는데, 만약 견뎌내지 못하게 되면 곧 함부로 말을 한다.

酷刑演示:将两根烟同时点着插入法轮功学员的鼻孔,把嘴捂住。熏呛、窒息,极为痛苦

담배 두 대에 동시에 불을 붙여 파룬궁 수련생의 콧구멍에 꽂아 넣고 입을 막는다. 연기로 사레가 들고 질식해 극히 고통스럽다

악독한 경찰은 비닐 주머니로 왕하이톈을 에워싸고 피대로 그의 머리를 조여서, 두 사람이 힘껏 머리를 누르면서 뒤로 잡아당기고는 주사기로 고춧물, 겨자기름을 뽑아서 콧구멍 안에 주입했으며, 또 왕하이톈에게 침을 맞히려 했다. 게다가 “우리는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살려 해도 살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악독한 경찰은 또 왕하이톈의 눈까풀을 벌리면서 “당신의 안각이 좋은지를 봅시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의 왼쪽 눈 안각이 그래도 괜찮네”라고 말했다.

악독한 경찰은 계속 왕하이톈을 두 시간 넘게 괴롭힌 뒤, 그제야 또 사허쓰 세뇌반으로 끌고 돌아왔다. 세뇌반 안에서 온종일 핍박에 못 이겨 대법과 대법사부님을 모독하는 영상물을 보았다. 몇 명의 악인은 윤번으로 세뇌박해를 감행하여 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핍박했고, 대법 사부님을 욕하고 대법을 욕하도록 핍박했다. 게다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판결하겠다고 공갈 협박했다.

왕하이톈의 정신과 육체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손상과 학대를 입었다.

외삼촌을 위해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다가 악독한 경찰로부터 체포하겠다는 공갈 협박당하다

아오추이추이는 유치장에서 돌아온 뒤, ‘우한(武漢) 오리목왕(鴨脖王)’ 조제식품점을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즈허 파출소로 가서 강탈당한 현금 1만 위안(약 180만 원)과 전동차를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매일 찬바람을 무릅쓰고 길에 두껍게 내린 눈을 밟으면서 어렵게 지린시 공안국, 지린시 촨잉 공안 분국, 지린시 즈허 파출소, 지린시 구치소 사이를 분주히 뛰어다니며 석방을 요구했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하여, 지린의 악독한 경찰에게 이유 없이 납치되어 고문을 당한 외삼촌을 위해 공정한 평가를 요구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 집으로 구출해서 돌아오게 했다.

지린시 각급 불법 경찰은 매번 모두 이리저리 밀면서 그녀를 제대로 대해 주지 않았다. 즈허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마음이 켕겨 또 끊임없이 아오추이추이에게 “빨리 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또 당신을 붙잡을 겁니다.” “당신은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습니까? 그곳에 살지 마시오. 그러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또 당신을 붙잡을 겁니다.”라고 공갈 협박했다.

2013년 12월 5일에 왕하이톈은 사허쯔 샤오광촌(曉光村) 세뇌반에서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는데 몸이 수척해지고 얼굴색이 누렇게 떴다. 이어서 복부가 부어오르고 호흡하기 어려워 음식을 매우 적게 먹었다. 그 후에는 누울 수 없게 되어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는데, 또 그 후에는 눕지도 앉지도 못해 꿇어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2013년 10월 18일에 외삼촌과 생질녀 두 사람이 납치당한 이후부터 오리목 조제식품점은 영업을 중지했다. 야오추이추이가 돌아온 뒤에도 줄곧 외삼촌구출문제로 영업할 시간이 없었고, 더욱이 영업할 방법도 없었다. 악독한 경찰은 거듭 오리목 조제식품점으로 가서 교란하고 아오추이추이의 상황을 조사했기에 세 얻은 집에서도 살 수가 없었다. 외삼촌과 생질녀 두 사람은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2014년 2월 2일(음력 정월 초사흘)에 왕하이톈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중공 경찰은 비열한 수단으로 선량하고 건강한 좋은 사람을 납치해 갔는데, 바로 그들이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을 믿어 좋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기 위해, 악독한 경찰은 극히 악랄한 수단을 써 사지로 몰아넣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가족을 잃은 고독한 소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 돕기를 즐기던 소녀를, 단골손님마저 모두 그녀에게 감탄했는데, 지금 그녀는 생활 수입원을 잃었고 고정된 거주지가 없다.

아오추이추이는 여전히 가족을 잃은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익숙히 알고 있는 모든 사람마저 이 상황을 보고는 끊임없이 함께 눈물을 흘린다.

왕하이톈 살해에 참여한 모든 죄인은 모두 이 인명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이것은 천리이다. 사람이 처리하지 않으면 하늘이 처리한다(人不報天報).

왕하이텐 살해에 참여한 흉수 인원에 대한 상세정보는 아래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3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3/2882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