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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이 검게 변한 천바이허, 지둥감옥의 약물박해로 사망 의심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2010년 5월, 4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집으로 돌아온 59세인 천바이허(陳百合)는 사람이 예전과 완전히 달랐다.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말하기 싫어했으며, 피곤하고 졸려 늘 잠에서 깨지 못했다. 그리고 대뇌반응이 무디고 기억력이 분명히 감퇴했으며, 온몸에는 기운이 없고 두 다리는 나른하여 행동이 매우 느릿느릿했다. 가슴과 등의 붉은 반점마저 검어졌다. 세상을 뜨기 2개월 전에 기억력을 아예 상실했는데 말도 조리가 없었고(시력이 남아 있는) 오른쪽 눈으로 물건을 보는 것조차도 흐릿해졌다.

2012년 9월 17일 6시경 갑자기 쓰려져 점액을 두 번이나 토했고 22시간 동안 혼수상태로 자다가 열이 오르면서 호흡을 멈추었다. 대략 2시간이 지나자 얼굴, 귀, 손톱 등 드러난 부분은 모두 청자색(드러나지 않은 곳은 보지 못했음)으로 변했고, 입안에서 검붉은 색의 묽은 피가 흘러나와 있었다. 시신을 화장할 때, 화장터에서 일하는 사람이 검은 목탄색의 골회(骨灰-유골)를 보고 깜짝 놀라며 “아이구, 이 사람의 뼈가 이렇게 검은데, 독살당한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陈百合去世时脸部都变成了青紫色
천바이허 사망 시, 얼굴 부위가 온통 청자색으로 변하다

陈百合的骨灰成黑炭色
천바이허의 골회가 검은 목탄색이 되다

천바이허는 탕산 시(唐山市) 첸시 현(遷西縣) 싱청 진(興城鎮) 사링쯔(沙嶺子) 촌민이다. 농촌 출신인 건장한 사나이는 감옥으로 납치당하기 전에 건강 상태가 매우 좋았다. 2006년 5월 13일,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해 납치됐고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당했으며 2007년 4월 16일에 지둥(冀東)감옥 5지대 7중대로 납치당했다. 그곳에 도착한 후 한동안 시간이 지난 다음, 원래 정상적이던 혈압 수치가 180-220에 달했다. 감옥 측은 고혈압을 치료해 준다며 매일 바오자(죄수 중의 감시자)에게 지키게 하며 강제로 그에게 이른바 ‘강압약(降壓藥)’을 먹였는데 온몸의 피부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가려운 증상이 빠르게 나타났다. 이어 시력이 떨어졌으며 왼쪽 눈은 더욱 심각했는데, 2009년 여름에 이르러 왼쪽 눈은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陈百合生前照片
천바이허의 생전 사진 모습

천바이허는 2005년에야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천바이허의 아내 장구이란(張桂蘭)은 원래 온몸에 병을 앓고 있는 자로서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환자이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성질은 점점 난폭하게 변해, 남편과 아이와 사소한 일로도 곧 낯을 붉히며 말다툼했다.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반년도 되지 않아 심신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다. 전신의 병이 모두 낫고 마음도 점점 넓어졌으며 정신 면모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천바이허는 매우 기뻐하며 아내가 연공하는 것을 매우 지지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장구이란은 여러 차례 불법 감금박해를 당했는데 가정도 여러 차례 교란당했으며 불법 가택수색과 납치로 평안하게 보낼 수가 없었다. 2002년 4월 하순, 장구이란이 첸시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을 때, 천바이허(당시 수련을 하지 않았음)는 아내에게 대법 경문을 전해줬다가 경찰에게 발견되어, 첸시 국가보안 주천강(朱振剛) 등 사람에게 구치소로 납치돼 보름 동안 감금 박해당했으며 4000위안의 ‘보증금’을 갈취당했다. 2005년에 천바이허 자신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2006년 5월 13일, 천바이허는 첸시 현 위후사이 향(漁戶寨鄉)에서 파룬궁자료를 배포해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언론자유의 권리를 행사하다가, 현지 파출소 및 첸시 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납치당했다. 2007년 1월, 첸시현 법원은 심각하게 법률절차를 위배한 상황에서 그에게 4년의 억울한 재판을 내렸다. 가족은 탕산 시 중급인민법원에 상소를 제출했는데 결과는 원심대로였고 지둥감옥 5지대 7중대로 납치당했다.

2009년 7월 중순, 천바이허의 아내와 딸은 감옥으로 면회하러 갔다가 그의 눈이 일부 이상함을 발견했다. 본인에게 물어서야 그의 왼쪽 눈은 이미 실명했고, 오른쪽 눈 시력도 일부 흐릿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고혈압에 걸렸으나, 감옥 측은 여태까지 천바이허의 가족에게 이 일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가족이 옥정과장 허리즈(何立志)와 쉬쯔추(許子秋)에게 전화를 걸어서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게 해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몸이 병보석 조건에 부합되는지 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틀 후에 그들에게 감정결과를 문의하자, 상대방은 단지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이후에는 그를 다시 찾지 말라고 말하고는, 곧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8월 3일, 천바이허의 가족은 또 눙난 구(豐南區) 젠퉈쯔 진(尖坨子鎮)에 위치한 감옥 총 대대(總隊)로 가서, 형벌집행과를 찾아 온 이유를 말했다. 직원은 자오(趙) 주임이 이 일을 관할한다고 말했다. 자오 주임을 만나서 병보석을 제출했다. 자오 주임은 5지대에 통지해 천바이허에게 몸 검사를 해주겠다고 승낙했다. 일주일 후, 천바이허의 아내와 딸은 사링쯔 촌의 주임과 촌 지부 등 사람과 함께 거듭 감옥 형벌집행과로 가서 자오 주임을 찾았다. 감정 결과를 문의하고 병보석으로 치료를 받게 해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조건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두 눈이 실명해야만 됩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가족이 천바이허의 병세가 일단 악화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문의했을 때, 상대방은 병세가 그렇게 빨리 발전되지 않을 것이며, 게다가 감옥에서 수술받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치료효과를 보증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책임지기도 원하지 않았다.

2009년 12월 4일, 가족은 거듭 허베이 성 지둥감옥 5지대로 가서 면회를 요구한 동시에, 천바이허를 병보석으로 풀려나게 하여 치료받도록 하려고 했다. 감옥 측은 갑성 유행성 감기를 방지하기 위해 이미 감옥을 봉쇄했다며 일률적으로 면회를 중지한다고 말했다. 한 여경은 가족에게 5지대 대대장 리 모와 전화 통화하게 했다. 리 모는 그들은 예전에 천바이허를 데려다가 상세한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그의 눈은 확실히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천바이허 본인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그 본인이 감옥에서 수술받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이 또 한 차례 병보석을 제출하자, 리 모는 그들은 일찍이 그를 병보석으로 치료받는 범위에 끼워 넣었고, 또 이미 그에게 무거운 일을 시키지 않고 다만 건물과 방안의 무슨 위생을 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들은 이미 총 대대에 천 씨의 상황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보석 수속이 아주 복잡하다며, 파룬궁의 병보석 수속은 더욱 비준되기 어렵고 심사과정이 너무 길다고 했다. 순조롭게 비준이 될지라도, 이미 형기가 만기되어 석방하는 시간이 다 될 것이라고 했다. 가족은 그들에게 면회도 허락하지 않고, 처리해야 할 일도 당신들이 처리해 주지 않으니 만일 생명위험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며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말했다. 가족은 또 감옥 총 대대로 가서 거듭 옥정처 형벌집행과 주임 자오 모를 찾아 병보석을 요구했다. 그는 천바이허의 병세가 병보석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또 5지대로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대에서 상부에 보고해야만 그들이 심의할 수 있고 비준할 수 있다고 했다.

지둥 감옥에서는 천바이허의 병 보석에 대해, 여태껏 이렇게 책임을 미루고 얼버무렸다. 줄곧 억울한 불법 재판(형기)이 만기되어서야 석방했다.

중공의 감옥, 세뇌반 등 기구는 약물을 이용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했다. 초기에는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나쁜 짓을 하며 강제로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하는 것에서부터, 후에는 음식, 음료수에 넣어 병을 치료해 준다는 구실로 약을 투입했는데, 수단이 은폐적이고 음흉하고 악독했다. 처음에는 매우 빨리 사람을 미치고 사망하게 하였으며, 사람을 석방한 다음 몇 일만에, 몇 달 만에, 몇 년 후에 만성적으로 발작하게 하여 사망하게 하였는데, 심보가 극히 악독하여 사람도, 신도 공분(人神共憤)하게 한다!

천바이허의 사망은 또 한 차례 중공의 잔혹한 폭행을 증명했다. 희망하건대 중공에 환상을 품은 더욱 많은 민중을 각성시키며, 또 이 사령 악당을 멀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3년 4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4/29/2726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