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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퉁난현 장잉충 여사, 노동교양 박해로 세상을 떠남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충칭 보도) 충칭시(重慶市) 파룬궁수련생 장잉충(張英瓊,여,65세)은 2009년 4월 10일 집에서 납치돼 노동교양을 당했다. 몸은 급격히 악화되어 몸무게가 70kg에서 40여kg으로 줄어들었다. 충칭시 여자 노동교양소에서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병보석으로 풀어줘 치료를 받게 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후 줄곧 설사했고 장기간 기침을 하다 각혈까지 하게 되었다. 3년 넘게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결국 2012년 5월 5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장잉충은, 퉁난현 러우롄공장(肉聯廠)에서 퇴직했다. 퉁난현 법원 가속원(家屬院)에서 살았다.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이 건강해졌다. 수련하기 전 그녀는 디스크, 고혈압, 빈혈, 당뇨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완쾌되었다.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집단은 1999년에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래 장잉충은 세 차례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박해를 당했다. 2002년 11월 25일 파룬궁 수련생 궈쑤란(郭素蘭) 등과 함께 2년 동안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는데,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200을 넘어 노동교양소의 중계 운송소에서 받지 않아 감옥 외에서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집행한다고 번복했다.

2009년 4월 9일 저녁 9시가 넘어 퉁난현 장베이구(江北區) 구이린(桂林) 파출소의 쩡즈핑(曾志平) 등 10여 명(그중에 일부는 경찰복을 안 입었음)은 이른바 ‘3.19’ 강탈사건으로 호구조사 한다는 이유로, 장잉충의 집으로 가서 조사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 7시쯤 국가보안대장 뤄융훙(羅永紅)은 10여 명(그중 다수는 사복경찰이었는데, 듣기로는 시 공안국의 사람이라고 했음)을 데리고 문밖에서 노크도 하지 않고 집안 식구들이 출근하기를 기다려 그녀의 방으로 급습 (당시 그녀는 미처 옷을 입지도 못했음). 모든 대법 책, 노트북 컴퓨터, 녹음기 등을 강탈하고 그녀를 납치했다.

장잉충은 퉁난현 유치장에 불법 감금당했다. 4월 28일, 국가보안 악한 경찰 뤄융훙(羅永紅)과 리헝이(李恆毅)는 강제로 장잉충을 충칭으로 보내 불법 노동교양을 시켰다. 그녀가 당시 박해를 저지해 차에 오르지 않자, 악한 경찰 뤄융훙과 리헝이 팔을 비틀고 다리를 잡아당겨 억지로 차에 밀어 넣었다. 그녀의 팔은 비틀려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다리도 겹질렸다. 중계 운송소로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어 충칭시 사바오(沙堡) 여자 노동교양소 4대대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충칭시 여자 노동교양소에서, 그녀가 대법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견지해,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악독한 경찰은 가족의 면회까지도 허락하지 않았다. 노동교양소에서는 강제로 그녀에게 독극물을 주사하고, 독극물을 먹도록 강박해, 그녀의 혈당(13.6)과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더욱더 높아졌고 몸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노동교양소로 들어오기 전에는 몸무게가 70kg이었는데, 노동교양소로 들어온 후 몸무게는 40여 kg로 줄어들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아들을 불러 의료비를 청구하고 병보석 절차를 밟았다. 6월 30일 집으로 돌아온 후, 장잉충은 줄곧 설사했고, 장기간 기침을 하다 각혈까지 하게 되었다. 3년 넘게 잔인한 박해를 당하고, 결국 2012년 5월 5일에 사망했다.

이 외에 2011년 12월 12일 정오 무렵 퉁난현 구이린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8명(2여6남)이 장잉충의 아들 가게에 들이닥쳐 장잉충에게 사진을 찍게 했다. 이들 경찰을 장잉충은 한 사람도 알지 못했고, 그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슬며시 사진을 찍은 뒤에 곧 떠나갔는데, 그들이 무슨 음모가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문장발표: 2012년 07월 2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27/2608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