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판번위 박해로 사망, 경찰은 사망증명서 발급 등 수속을 거부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여섯 사람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는 의협심이 강한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치치하얼시(齊齊哈爾市) 파룬궁수련생 판번위(潘本餘)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로 중공(중국 공산당) 당국에 의해 두 차례 노동교양 처분과 두 차례 불법재판으로 감금돼 잔인한 고문박해를 받아 2011년 7월 17일 밤 1시경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후 관할 경찰에서는 ‘특수인물’ 이라는 이유로 사망증명서 발급과 공부상 사망처리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판번위는 1949년생으로,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치톄(齊鐵)환경위생소(環衞站)의 노동자였다. 그는 집안의 맏아들로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 동생들과 다툰 적이 없으며, 이웃에게도 친절하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1997년 여름, 그는 이웃사람으로부터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전해 받아 읽어본 뒤, 이 책은 사람에게 마음을 닦게 하고 착해지도록 한다는 것을 알게 돼 곧바로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수련한 뒤에는 수년 간 갖고 있던 나쁜 사상을 고치고,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의협심도 생기게 됐다.

1997년 9월 집 뒤편 철도 건널목에서 기차가 갑자기 기적을 울리는 바람에 한 남자애와 여자애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당황해서 서로 부딪혀 철로위에 쓰러져 위기일발의 순간을 맞게 되었다. 그 때 부근에 있던 판번위가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어 즉시 자전거와 아이들을 레일 밖으로 집어던졌다. 그 중 한 아이는 노인의 몸에 부딪혀 떨어지기도 했으나 무사했다. 그러나 그의 옷은 기차에 걸려 찢어졌다. 위험한 순간이 지나간 다음 가슴이 마구 뛰며 하얗게 질려있었으나 모두 무사했다.

또 한 번은 치치하얼(齊齊哈爾) 류위안(瀏園) 넌강(嫩江)에서 물에 빠진 사람 4명을 구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30대 젠화(建華)공장 직원 장(張) 씨였다. 이 사람은 강 맞은편 기슭에서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외쳤다. 근처를 지나던 판번위가 앞뒤 가리지 않고 물에 뛰어들어 그를 구하려할 때 물에 빠진 사람이 본능적으로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위험에 처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강기슭으로 끌어 올렸다. 생명의 도움을 받은 그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으나,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도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顶楼阳台及两侧房间均为潘本余的家,阳台右侧为潘本余的房间。楼后就是潘本余曾救人的铁道线。
맨 위층 베란다와 양측 방은 모두 판번위의 집이며, 베란다 오른 쪽이 판번위의 방이다. 건물 뒤편은 바로 판번위가 사람을 구했던 철로다.

이러했던 판번위가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은 톄펑구(鐵鋒區)‘610’의 악도 왕(王)대장의 혹독한 구타로 조성된 것이다. 2006년 12월 8일, 중공의 박해로 유랑생활을 시작하면서 우유 배달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결국 혹독한 박해로 사망했다.

그는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던 중에 처음으로 베이쥐자이(北局宅)파출소의 싱(邢)모모 등 악경 2명에게 납치당했다. 파출소에 끌려간 후 톄펑구 ‘610’의 악경대장 왕모모에 의해 방열기관 위에 결박되어 매달려 혹독한 고문 구타를 당했다. 혹독한 구타로 기절하자, 구둣발로 배를 밟고 걷어차서 밑으로 하혈을 하게 했다. 이후 심장, 간, 신장 등 오장육부가 모두 상해서 생명이 위독해 졌다. 이런 상황인데도 악경들은 그를 타이라이(泰來)감옥으로 이송시켰다.

판번위는 타이라이감옥에 감금된 후에도 비인간적인 학대는 계속 됐으며 이로인해 심장병, 간복수, 심근경색, 토혈, 머리부위 부종 등등의 심각한 상태로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가 몇 번이나 사경을 헤맸다. 그래도 교도관 청창(程强)은 그에게 3서(파룬궁을 모독하고, 연공을 하지 않겠다고 보증하는 성명서 등)를 쓰지 않으면 풀어주지 않을 것이며, 병보석으로 치료받게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판번위의 상태가 위중해지자 감옥 측과 치치하얼시 ‘610’은 나중의 책임문제를 우려하여 2009년 5월 22일 가족에게 통지하여 귀가조치 시켰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타이라인 감옥에 다시 감금됐다가 몸 상태가 다시 악화되자 2010년 7월 31일 두 번째 병보석 형식으로 귀가했으나, 몸 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어 전신의 가려움증과 경련을 일으켰으며, 배는 부어오르고 온몸이 모두 부어올라 고름이 흐르고 고통으로 매일 신음소리를 냈다.

2011년 2월, 베이쥐자이 파출소 악경 링전야(凌震亞)는 경찰 2명을 대동하고 판번위의 집에 들이닥쳐, 그가 대법을 수련하며 사용했던 법공부 책과 MP3를 강탈하면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그에게 다시 감옥에 잡아넣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판번위는 핍박을 견디지 못 하고 성치 않은 몸으로 집을 떠나 의지할 곳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다.

유랑생활을 하던 그는 그런 몸 상태로는 더이상 떠돌이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2011년 4월 28일 집으로돌아왔으나, 병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6월 28일 몸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어 걷지 못하고 배설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입안에까지 부종이 생겨 음식물을 먹을 수도 없었다. 오른 쪽 갈빗대 아래쪽은 살점이 문드러져 구멍이 생겼으며 종양으로 고통은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허벅지 안쪽에 큰 혹이 생겨서 손으로 그 부위를 누르면 아픔으로 큰 소리를 질렀다. 의사가 수술용 칼을 대자 피고름이 뿜어져 나왔다. 이처럼 온 몸은 부종이 생기고 썩었으며 발은 부어올라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그가 침대에서 떨어져, 연로한 모친이 부축하려다가 힘에 부치자 참혹한 몰골의 아들을 끌어나고 비통한 통곡을 그치지 못했다. 바로 그날 타이라이감옥 교도관 쭈(祝)모등 2명은 그를 다시 감옥에 감금시키기 위해 강제로 그를 병원으로 대려가 검사를 하고는 여의치 않자 그대로 두고 가버렸다.

가족들은 판번위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치치하얼시 제3병원(치치하얼 중의원)에 입원 시켰다. 그런데 입원하자마자 가족들의 핸드폰을 도청하여 입원 사실을 알게 된 베이쥐자이 파출소의 링전야 등 사복경찰 몇 명은 병원을 찾아와서 위협적 태도를 보였으며, 응급주치의(여)는 경찰의 사주대로 “판 씨의 병은 간단한 위출혈이다.” 라고 말했다. 당시 판 씨는 과다한 출혈을 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피를 보충해 주지도 않고 다만 3병원 자체에서 조제한 치질약만 발라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병원 기록에는 그 어떤 병명도 기록되지 않았다.

판번위는 이런 상태에서 그는 결국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여동생이 베이쥐자이 파출소로를 방문하여 오빠의 사망증명서 발급을 요청하자, 경찰은 뜻밖의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판번위라고? 그는 ‘특수인물’ 이기 때문에 사망증명서 같은 걸 발급할 수가 없으며, 또 공부상으로 사망처리도 할 수 없다!” 하고 소리쳤다. 판씨는 세상을 뜬지 30여 일이 되지만 지금까지 사망에 관한 행정적절차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장발표: 2011년 08월 2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27/2459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