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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대법제자 김범룡, 길림 쥬타이 노동교양소의 박해로 사망

조선족 대법제자 김범룡, 길림 쥬타이 노동교양소의 박해로 사망

[명혜망 2007년 7월 5일] 길림 조선족 대법제자 김범룡(金范龍, 진판룽)은 쥬타이(九台) 인마허(飲馬河) 노동교양소에서 2년간 박해받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2006년 5월 11일 억울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김범룡, 남, 조선족, 1954년 5월 10일 출생, 길림성 도문시 대법제자, 도문시 과학원에서 근무했다. 2002년 3월 말, 김범룡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도문시 악경에게 납치되어 독한 매를 당하고 전기곤봉 혹형을 당하는 등 비인간적인 고문의 시달림을 받았다. 그 후 불법노동교양 2년을 받고, 길림성 쥬타이시 인마허 노동굥양소에서 참혹한 박해를 당했다. 본래 노동교양의 만기가 2년이었지만 악경은 그가 파룬궁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만기를 불법 연장하여 2004년 여름에야 비로소 석방하였다.

2004년 4월 25일, 길림성 610 테러조직은 대법제자에 대한 새로운 박해명령을 하달하였다. 쥬타이 노동교양소는 4월 26일 박해계획 진행에 관한 위 명령을 전달하여 새롭게 악경들에게 박해임무를 주는 대신에 박해장려금을 늘려주었는데, 매 한명의 대법제자를 강요하여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면 악경에게 400위안의 장려금을 준다고 했다. 관리과장 정하이링(鄭海令)은 각 대대에 명령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하도록 하였으며, 4월 26일 대법제자를 작은 독방에 가두어 감금시켰다.

노동교양소에서 2년 넘게 비인간적 학대와 고문을 당하여 김범룡의 신체는 극히 허약해졌다. 원래 아무런 병 없이 건강했던 그는 노동교양소에서 집에 돌아온 후 늘 토하고 음식물을 먹기가 힘들었다. 그 후 다리가 부어오르면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2006년 5월 11일 억울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하기 얼마 전에 숭위안(松原)시 대법제자 양리둥(楊立東) 역시 쥬타이 인마허 노동교양소의 장기적인 혹형고문의 시달림을 받아 2004년 2월 22일 거의 숨이 끊길 상태에서 감옥에서 나온 후, 줄곧 침대에 누워있으며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없었고 2006년 1월 17일 역시 억울하게 사망하였다.

쥬타이 인마허 노동교양소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는 견정한 수련생에 대해 잠을 재우지 않고, 장시간 허리를 곧게 펴서 쪽걸상에 앉히고, 침대에 사지를 묶어 놓고, 수갑을 채워 거꾸로 매다는 등 혹형고문을 가한다. 또 죄수들은 손으로 어떤 파룬궁수련생의 생식기를 잡아 쥐고, 눈을 파고, 바늘로 찌르는 등 고문을 가하는데, 죽도록 맞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악경과 죄수들은 견정한 대법제자들을 강제로 침대위에 고정해 놓고 손과 발을 큰 대자형으로 벌려 수갑과 사슬로 네 침대 모서리에 고정해 놓고는 신체를 곧게 편 채로 꼼짝도 못하게 한다. 이로 하여 근육은 바짝 조여지고 고도로 긴장해진다. 이런 혹형은 끊길 줄 몰랐는데, 대소변은 침대위에서 봐야 하고 누가 상관하는 이도 없다. 밥 먹고 잠 잘 때도 풀어주지 않는다. 몸이 장시간 한 자세로 있기 때문에 피부가 팽팽하고 꼿꼿하게 늘려지는데, 그 고통은 말로 이루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완성 : 2007년 7월 4일
발표 : 2007년 7월 5일
갱신 : 2007년 7월 5일 03:11:03
영문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7/8/6/88355.html
원문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7/7/5/1582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