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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대법제자 왕훙빈을 찾길 바람

【명혜망 2008년 11월 13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지역에서 불법으로 감금 박해당한 대법제자의 상황을 정리할 때, 왕훙빈(王洪斌)과 아내 류쥔루(劉俊鷺), 동생 왕훙펑(王洪峰)이 박해당한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비통했다.

왕훙빈의 거주지는 헤이룽장(黑龍江)성 넌장(嫩江)현 룽쥔(榮軍) 농장으로 올해 35세이다. 96년에 다롄에서 자동차 수리하는 일을 하다가 법을 얻었다. 99년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에 왕훙빈은 2000년에서 2002년 7월까지 중공 정부 인원에 의해 세 차례나 강제노동수용소 보내져 세뇌 혹형을 당했다. 2002년 10월에 다롄 야오자(姚家) 구치소 ‘6–13’감옥에서 실종된 후에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다. 그의 아내 류쥔루는 2001년 8월에 다롄에서 납치당해 불법으로 12년을 판결 받아 랴오닝성 여자 감옥 8대대에 감금되었다. 폭력적인 세뇌로 맞아서 팔 한 쪽이 장애를 앓고 있다. 동생 왕훙펑은 2001년 8월에 형수와 동시에 납치당해 불법으로 9년을 판결 받아 선양(瀋陽)시 제 2감옥 ‘네이촹(內創) 1감구’에 보내져 강제로 세뇌 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또 판진(盤錦) 감옥으로 보내졌으며, 지금도 감금되어 박해를 당하고 있다.

나와 왕훙빈이 만난 것은 1999년 7월 20일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매우 큰 연분이 있는 것 같다. 99년 7월 20일 새벽 두, 세 시경에 사악 당 ‘610’ 사무실의 통합적인 지휘 하에 다롄시 악경들이 전 다롄시의 파룬궁 책임자들을 통일적으로 납치하기 시작했다. 다롄시의 8, 9명의 수련생들이 납치당했다. 다롄시의 많은 수련생들이 무고하게 납치당한 사실을 들은 후에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모두 7월 20일에 인민광장에 위치한 다롄시 정부 앞에서 상방, 청원하며 시(市) 신방사무실에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면서 사람을 풀어주라고 요구했다.

나는 오후에 인민광장에 도착했다. 도착할 당시에 내 앞의 사람들 중 키가 큰 대법제자가 특별하게 눈에 띄었는데, 낯이 익었다. 그는 수시로 순서를 유지시키는 것을 도왔고, 밥을 먹은 후에는 사람이 있는 앞뒤의 쓰레기를 주웠다. 나와 마주쳤을 때, 말을 해서야 알았는데, 두 사람은 고향 사람이면서(주싼관국에 함께 있었음) 동문이었다(우리 둘은 하얼빈시 헤이룽장성 공업고등학교에서 같은 과였다. 나는 90년, 그는 92년 졸업생). 그리고 같은 해에 다롄에서 법을 얻었다. 그의 아내도 동수이다. 왕훙빈은 그 당시에 오전에 왔는데, 악경들에게 악독하게 맞고 경찰차에 실려 갔다가 풀려난 후에 오후에 또 인민광장에 왔다고 나에게 말했었다.

우리는 줄곧 밤 8시까지 있었으나 아무런 결과도 없어 모두 내일 또 와서 청원하자고 하였다. 동수들이 시외의 많은 대법제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왕훙빈도 5, 6명의 대법제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며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어 가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것이 우리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의 소식은 인터넷에서 그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보아서야 알았다.

여기에서 왕훙빈과 접촉하고 그의 행방을 아는, 양심 있고 선념 있는 경찰과 죄수들에게 호소한다. 그의 상세한 상황을 제공하고, 머나 먼 헤이룽장에서 아들의 행방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의 안위를 헤아리길 바란다. 국내외 각계 정의 인사들에게도 호소한다. 이 사실에 관심을 갖고 빨리 천만(千万) 가정에 무수하게 비극적인 박해를 가하는 것을 빨리 끝내도록 하자.

왕훙빈의 가족들이 박해당한 상세한 내용은 명혜망 2007년 9월 19일에 보도되었다. ‘ 月缺月圆已八载 我的孩子可安好(图)。

문장완성 : 2008년 11월 12일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3일
문장갱신 : 2008년 11월 12일 22:28:23
문장분류 :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1/13/1896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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