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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국내에서 법을 전하실 때 기억나는 몇 가지 일화

【명혜망 2006년 8월 10일】

* 사부님께서는 너무 바쁘셔서 시간이 없으셨다

사부님께서 국내에서 법을 전하실 초기에 각종 방면에서 저애력이 매우 컸고 어려움이 많았다. 법을 전하시는 중에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습반을 꾸리는 단위와 기공과학연구회와의 연계, 대법서적들의 출판과 인쇄 등은 모두 사부님께서 친히 관심을 가지시고 직접 처리하셨다. 대법 최초의 서적인 《법륜공》을 처음 출판할 때 많은 출판사를 찾으셨으나 모두 출판에 동의하지 않았고 나중에 한 출판사에서 출판에 동의했다. 그러나 초고는 편집되고 뜯어고쳐져 모습이 전혀 달라졌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사업일꾼을 직접 출판사에 보내 타자수 옆에 지켜 서있게 하셨고 한 글자 한 구절씩 변동된 곳들을 새로 수개하셨다.

당시 대법서적의 판면은 모두 사부님께서 디자인 하신 것이며, 연공음악 테이프도 사부님께서 직접 선정하시고 구매하시어 손수 더빙하여 만드신 것이다. 당시 연공테이프와 교공(敎功) 비디오를 제작할 때도 자금이 부족해서 모두 아는 사람들을 통하고 다른 사람들의 협조를 구하여 여가 시간에 만드신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관계로 반복적으로 여러 차례 수정을 해야했다. 사부님께서는 늘 진지하고 참을성 있게 작업 실무자에게 가서 협력하셨고, 종래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사부님께서는 당시 매우 감개무량하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부는 바빠서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다.”

* 공이 다시 돌아올 때면 사부님께서 매우 피곤해 하셨다

파룬궁 학습반에서 매 차례 강의하실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사전에 많고 많은 공들을 내보내셨고 또 큰 파룬을 내보내시어 마당을 청리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많고 많은 작은 파룬을 내보내시어 수련생들의 신체를 청리하고 신체를 조절해주셨다. 또 사부님의 법신께서는 수련생들을 위하여 많은 일들을 해야했다. 내보내신 그런 공들이 되돌아올 때는 모두 오염이 되어 씻어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당시에 내보내신 그 공들이 몸에 돌아올 때면 몹시 피곤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시 이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괴로웠다. 사부님의 생활은 그렇게도 간고(艱苦)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르셨다.

* 수련생들의 수련체험을 사부님께서는 다 보셨다

사부님께서는 무량한 대지혜가 있으셔서 설법하실 때 종래로 원고를 준비하지 않으셨지만 하시는 말씀마다 좋은 문장이 되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는 모두 수련생들의 부동한 접수능력에 근거하여 이야기하셨으며 가능하면 수련생들이 알아듣고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수련생들의 사상활동을 매우 중시하셨다. 어떤 때 사부님께서는 갑자기 설법을 중단하시고 수련생들의 사상 중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석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한동안 어느 제자의 집에 머무셨는데 방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탁자 위에는 예전에 사무실에서 늘 쓰던 그런 종류의 철사로 만든 문서파일이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제출한 수련 체험이 들어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의 수련정황에 매우 관심이 있으셨고 수련생들의 수련체험을 모두 읽어보셨다. 평상시 시간이 바쁘시면 사부님께서 외출하실 때 기차 안에서 읽어 보셨다. 그 당시 국내에서 출판된 대법 서적들 중 어떤 것은 역시 사부님께서 기차 안에서 수정하신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 한걸음까지 걸어오는 동안 사부님께서는 그 속에 얼마만한 심혈을 쏟으셨을까?

사부님께서는 학습반에서 수련생들의 신체를 진일보 조절해주기 위해 모두에게 발을 구르게 하셨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시작하지도 않으셨는데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발을 구른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법공부를 그렇게 급하게 한다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저녁에 학습반에서 나올 때 모두들 지금까지 없었던 가벼운 감각을 느껴고 6·70세의 노인들도 우리와 함께 뛰고 웃으면서 버스를 따라잡았다.

* 사부님을 따라 도처로 다니던 딸은 식사를 거를 때가 많았다

사부님 따님은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방학을 맞아 북경에 놀러오면 왕복 모두 혼자서 기차를 탔다. 사부님께서 따님을 돌볼 시간이 없으셨기 때문에 어떤 때는 한 여제자의 집에서 묶어야 했다. 그 제자는 사업일꾼인데 고기도 먹지 않고 달걀도 먹지 않으며 채소마저도 아주 적게 먹었다. 사부님 따님이 그녀를 따라 이리저리 다녀야했으니 생활상의 고생을 알만하다. 어떤 때는 사부님을 따라 도처로 다니면서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 수련생이 바른 길을 가지 않자 사부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셔서 한숨도 못 주무셨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던 초기에 일찍이 두 명의 수련생이 사부님을 따랐는데 사부님께서는 그들에게 생활상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중에 이 둘은 사부님을 배반하고 몇 사람을 데리고 병치료를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사부님께서는 이 때문에 매우 가슴 아파하시면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시지 못했다. 나중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주다가 부체를 야기하였다. 그 중 한사람이 사부님을 뵙고는 사부님이라고 부르자 사부님께서는 즉시 그의 몸에 있는 부체를 청리해 주셨다. 99년 7.20이후 이 두 사람은 텔레비전에 나와 사부님을 공격했다. 나는 당시에 이 광경을 보고 만일 사부님께서 자비하지 않으셨다면 호법신이 벌써 그들을 염라대왕에게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 수련생은 원래 낡은 세력이 법을 파괴하는 마(魔)로 배치해 내려왔는데 본인은 알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를 인도하여 수련의 길을 걷도록 하셨고 동시에 매우 신임하시어 그가 위덕을 수립할 수 있는 기연을 만들어주셨다. 그는 출신이 미미하고 생활이 곤란했지만 사부님께서는 그의 생활상의 문제마저 해결하여 걱정 없이 수련할 수 있도록 돌봐주셨다.

* 사부님께서는 말없이 나의 병을 제거해 주셨다.

93년 동방건강박람회 기간에 나는 파룬궁 전시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있었는데 몸 왼쪽이 은은하게 아파왔다. 서 있기가 곤란했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참으면서 표현하지 않았다. 이때 사부님께서 조용히 다가오시어 나를 보시고는 당신도 그들(파룬궁 사업일꾼들을 말함)처럼 저기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내가 가서 보니 빈 좌석이 없어서 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통증이 소실되었고 이후 다시는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내 병을 치료해주셨던 것이다.

한사람이 연공을 하면 온 집안이 이익을 얻는다.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친인(親人)의 병을 한 가지 생각하라고 하셨다. 나는 부친의 손을 생각했다. 아버님은 몇 년 동안 손을 떨고 계셨는데 그 후로는 더 이상 떨지 않으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괜찮으셨다.

* 한 장 또 한 장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으셨는지 모른다

박람회기간에 사부님 신변에 있던 한 사업일꾼이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사부님과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한참 후 사부님께서는 멀리서 걸어오시더니 “우리 함께 사진을 찍읍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 있던 사업일꾼들과도 사진을 찍으셨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수련생들을 위하여 밥을 짓고 밥을 가져다주었는데 그들도 모두 사부님과 사진을 찍기를 갈망했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아신 다음 주동적으로 그들과 사진을 찍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박람회가 끝나던 그 날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과 주동적으로 도와준 열정적인 사람들을 위하여 저녁에 모두를 청해 식사를 함께 하셨다. 이일을 주관한 수련생이 박람회장 근처에 조용한 식당을 골랐다. 메뉴는 신선로였는데 양고기와 배추가 있을 뿐 다른 채소는 없었다. 스스로 주식을 주문하도록 했는데 내가 물만두를 주문하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국수를 청하기에 나도 황급히 국수로 바꿨다. 모두들 아주 구수하게 먹었다. 우리가 다 먹고 난 후에 사부님께서 총망히 오셨고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부님의 식사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식사하시는 자태마저 너무나 고상하고 아름다우셨으며 속세를 초월한 것 마냥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사부님께서 일어서시기도 전에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사부님과 한 장 또 한 장씩 사진을 찍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는데 사부님께서는 시종일관 자비하게 모두를 보시면서 마음껏 찍게 하셨다. 그 자상하심과 그 아름다움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수련을 오래한 수련생들은 앞을 다투지 않았다. 99년 7.20이전에 사부님께서 수련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은 나중에 사악한 중공에 의해 마음대로 뜯어고쳐져 대법을 공격하는데 이용당했다. 이를 통해 보건대 수련인은 모든 정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륙에서 법을 전하시던 기간에 무수한 위대하고 찬란한 형상과 업적을 남기셨는데 이상은 내가 알고 있는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으셨는지 이는 우리가 영원히 알 길이 없으며 또한 불가능한 것이다

문장완성:2006년 8월 9일

문장발표 : 2006년 8월 10일
문장갱신 : 2006년 8월 10일

문장분류 : 【대륙소식】

문장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8/9/13516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