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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우리는 너희들을 먼 곳에 있는 비밀 수용소에 보낼테다 “

글/중국 대법제자 즈판

[명혜망 2006년 3월 16일] 2000년의 마지막 이틀을 남았을 때 나혼자 베이징으로 세 번째로 갔다가 탠안먼 광장에서 붙잡히게 되었다. 대법제자를 실은 커다란 버스가 줄줄이 탠안먼의 창안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간 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허베이성의 한 감옥이었다. 그곳은 인간 지옥으로 우리 대법제자들이 바로 그곳에 갇혀 참혹하게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우리는 강제로 수갑에 채워진채 허베이성의 각 파출소로 흩어져 보내졌다. 나와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은 뒷 날 풀려 나오게 되었다. 우리는 범의 굴에서 살아 나왔다고 기뻐했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음모였다. 산허시에 도착했을 때 곧장 경찰 몇 명이 차안으로 뛰어 올라오더니 사람들에게 대법과 사부님에 대해 욕을 하도록 강박했다. 우리는 욕할 수 없다, 파룬따파는 좋다! 라고 했더니 나와 다른 대법제자 두 사람과 함께 또 다시 범의 굴속으로 갇히게 되었다 .

그 당시 베이징으로 매일 청원하러 오는 대법제자들이 많았는데, 베이징 감옥과 노교소는 모두 그들로 넘쳐났다. 베이징 역에서 층층이 지키고 있을만큼 계엄이 삼엄하여 각지로부터 오는 대법제자들은 베이징 역에 도착하기 전에 몇 군데 앞당겨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자동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갔다. 하지만 베이징으로 가는 길목마저 모두 봉쇄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산허시는 베이징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악경들이 지키고 있었다. 내가 악경에게 잡혀서 들어왔을 때 이미 백여 명의 쓰촨 대법제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도 한무리씩 잡혀서 들어 왔다. 2000년 마지막 날, 나와 쓰촨에서 온 수십명의 여자 대법제자들은 어두컴컴한 자동차 차고에 갇혀 있었다.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는 우리가 사부님의 “논어”를 외우고 있는 목소리 사이로 울렸다. 그 당시에는 또 다른 곳에도 백여 명의 남자 대법제자들이 갇혀 있었다. 쓰촨 대법제자가 나에게 “나는 당신보다 며칠 일찍 왔어요, 여기에는 매일 몇 백명의 대법제자가 들어 왔다가 또 끌려 갑니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내가 본 대부분의 대법제자들는 모두 쓰촨에서 왔는데 그들은 홑옷을 입고 광주리를 지고 있었는데 생활이 아주 구차해 보였지만 모두가 아주 견정했다. 그들은 악경의 곤봉에 맞아도 입을 꾹 다문 채 어디서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쓰촨 주재 베이징 사무실 사람들이 와서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조사하면서 쓰촨에서 온 사람으로 보이면 모두 데려갔다. 나는 쓰촨 대법제자들이 입을 굳게 다문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

산허시의 교통경찰과 쓰촨 주재 베이징 사무실에서 온사람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우리는 너희들을 먼 곳에 있는 강제 수용소로 보낼테다. 그 곳에 가게되면 누구도 너희들이 어디있는지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고 했다. 후에 나는 또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동북과 신쟝에 너희들을 수감하는 수용소가 있다. 말하겠는가, 말하지 않겠는가?” 그 당시 나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대법제자들이 커다란 버스에 줄줄이 실려서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눈물을 떨구었다!

최근 선양시 쑤자툰에 6천명의 대법제자가 수감되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대법제자들이 아닐까 싶다. 국제 관련조직에서는 허베이성 산허시 교통대대에 와서 조사할 것을 건의한다.

문장제출 :2006년 3월 16일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3/16/12298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