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박해로 부모를 잃은 고아 쑨위보(孫玉博)의 현재 상황

글 / 헤이룽장성 화난 임업국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9월30일 】쑨지훙(孫繼宏, 남, 40세) 헤이룽장(黑龍江)성 화난(樺南) 임업국 선봉부대 임장(林場, 역자주:삼림 육성하는 장소)의 간부였고, 94년에 법을 얻었다. 쑨지훙은 99년 7.20박해가 시작된 후 신념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99년 11월에 불법으로 15일간 감금되었다. 석방되어 나온 후에도 밀착 감시를 당하고 인신의 자유를 제한받았으며 매일 두 차례씩 파출소에 가서 사인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위법적인 관리제도에 따르지 않아 2000년 7월에 또 불법으로 감금되었다. 그는 석방 된 후에도 계속 밀착 감시를 당하였으며 인신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001년에 집을 떠났는데, 2002년 1월 베이징에서 다시 붙잡혀 집으로 압송되던 중에 기차에서 뛰어내려 사악의 박해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 해 9월에 또 다시 불법으로 납치를 당했으며, 베이징 펑타이(丰台)구 위취안잉 입교교처(玉泉營立交橋處)에 감금된 지 나흘 후인 9월 29일 혹형과 시달림 끝에 사망했다. 시신은 10월 2일 강제로 화장당했다. (이미 명혜망에 보도됐음)

소식에 의하면, 가족들이 유골을 확인할 때 쑨지훙의 얼굴에 흰 가루를 두껍게 발라놓아 사람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족들이 강력히 요구하여 얼굴을 씻어내고 나니 비로소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는데 그 참상이 말이 아니었다. 양미간 부위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얼굴에도 구멍이 두 곳이나 뚫려 있었는데, 전신은 맞아서 성한 곳 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위안허전(袁和珍, 여, 41세, 쑨지훙의 아내)은 헤이룽장성 화난현 공상은행 화난 임업국저축소 주임이었고, 94년에 법을 얻었다. 99년 7.20 박해가 시작된 후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99년 11월에 불법으로 15일간 감금되었다. 석방된 후 계속 엄밀한 감시를 당하였으며 인신의 자유를 제한 받았다. 그녀는 2001년 1월 화난 임업국 공안이 미친 듯이 대법제자들을 체포할 때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2002년 5월에 베이징에서 붙잡혔다. 구치소에서 갖은 매를 맞아 피를 토하고 피를 배설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바,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다. 후에 정념으로 걸어 나왔으나 감금되어 있던 동안 신체가 엄중한 상해를 받고 외지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안정된 환경을 보장받지 못해 건강 상태가 갈수록 쇠약해져 2003년 7월 불행히도 사망했다.

쑨지훙, 위안허전 부부는 사망할 당시 14살 된 딸과 연로하신 조부, 그리고 어머니 한 분을 남겨놓았다.

고아 쑨위버(쑨지훙, 위안허전의 딸, 16세) 화난현 1중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1학년 3반이다. 부양가족은 수펑셴(蘇風賢, 쑨지훙의 모)이고, 원 헤이룽장 화난 임업국의 퇴직원이다.

관련전화—-6929175 샤오링퉁(小靈通)

문장완성 : 2004년 9월 29일

문장발표 : 2004년 9월 30일
문장갱신 : 2004년 9월 30일 2:19:50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9/30/854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