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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속에서 성장하다

문 /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1997년 여름, 저는 다행히도 대법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는 27세였고, 대학을 졸업한 후 가정을 이루어, 이미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시기에, 매일 아침 베이징의 공원, 학교, 작은 구역 곳곳에는 모두 대법의 연공장이 있었습니다. 엄동설한을 막론하고, 더위가 심한 날에도, 대법제자들이 연공장에서 연령, 직업, 각 계층을 가리지 않고 같이 연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매번 연공 음악이 울리면, 사부님의 자비로우며 질박하고 온후한 목소리를 들을 때면, 저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저는 연공장에서 하는 단체 연공에 참석하지 못하였고, 또 단체 법공부에도 참석하지 못하였으며,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혼자 수련을 하였습니다. 그 동안, 저는 충실하고 즐거웠으며, 끝내 어릴 적 셈이 들어서부터 찾고 있던 것을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반본귀진이야 말로, 사람의 진정한 목적이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저와 아이는 약과 인연을 끊었고, 병원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저는 굶주린 사람처럼 >을 읽었고, 저의 인생은 이로부터 새로운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1999년 7.20 이 되자 사악은 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단체 연공에 참가하여 세 번째 되던 날이 생각납니다. 저와 동수 4명은 같이 천안문, 민원사무실로 갔습니다. 그때 거리에는 경계가 삼엄하였고, 곳곳에는 모두 경찰 차가 있었으며, 중요한 교통 길목은 모두 봉쇄 당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가”라는 검사질문을 거쳐야만 통과할 수 있었고, 많은 대법제자들은(또 많이는 전국 각지에서 왔다) 경찰 차에 끌려간 후, 스찡산(石景山), 광차이(光彩) 체육관 등지에 실려갔습니다. 경찰차 안에 있는 제자들은 같이 >을 읽었고, 그 산을 밀어 버리고 바다를 뒤집을 듯한 기세는 지금까지도 나의 귀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침 경찰 차에 끌려가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서, TV에서 사부님을 모욕하고, 대법을 모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흘렀고, 왜 이렇게 좋은 공법을 탄압하는가? 파룬궁은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였고, 인민들의 신체도 건강해지고, 어느 점이 틀렸단 말인가? 저는 주위에 있는 이웃들에게 진상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직장 동료들에게도 진상을 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을 지지한다고 하였습니다.

7. 20. 이후, 단체 연공과 법공부를 하는 환경은 파괴되었고, 저는 혼자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였으며, 대법을 끝까지 수련한다는 마음은 한 시각도 동요된 적이 없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하였습니다. 줄곧 2000년 말까지, 저는 끝내 한 동수와 연락하게 되었고, 저는 사부님의 경문> 등을 보았습니다. 저는 얼마나 격동이 되었는지,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끝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사부님, 제가 뒤떨어졌어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그 뒤로부터, 저는 그 동수로부터 진상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문자, 사진, 테이프 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과 사부님을 따라 정법을 하는 의무를 실행하면서, 베이징의 크고 작은 거리들을 오갔습니다. 몇 번 진상자료들을 나눠주고 있을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110에 신고하려고 할 때, 저는 정념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2001년 5월, 칭화(淸華)대학교 1백주년 학교경축의 전날 밤, 우리 열 몇 명의 동수들은 같이 칭화(淸華)대학으로 갔습니다. 거의 1천부의 진상자료를 배포하였고, 진상을 모르는 전문가, 교수, 학자들을 구도 하였으며, 동시에 또 사악에게 유력한 진섭(震?)을 주었습니다(사악의 우두머리가 학교 경축활동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나서 우리들은 안전하게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 저는 천안문으로 갔습니다. 천안문광장의 금수교(金水橋)옆에서, 정정당당하게 유람객들에게 분신진상, 진상수첩을 나눠주었으며, 옆에서는 가끔씩 대법수련생들이 “파룬따파은좋다!” “우리 사부님께 결백을 돌려달라!”라고 외쳐 경찰들에게 난폭하게 끌려갔습니다. 저는 옆에 있던 유람객들에게 “당신들이 직접 눈으로 증명 하셨죠.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의 선명한 대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갖고 다니는 “파룬따파은 좋습니다” “진선인”이 인쇄된 스티커를 광장의 전봇대, 눈에 잘 띄는 가드레일(guardrail)에 부쳐놓고, 만족스러워 하면서 떠났습니다.

정법 형세의 요구에 따라, 저와 다른 한 수련생은 자료를 만드는 곳(자료점)을 건립하였고, 온 몸과 마음을 정법의 일에 부어넣었습니다. 저는 주로 홍법의 사진을 만드는 것을 책임졌고(분신진상, 대법이 세계에서 널리 전해지다 등), 그런 사진 및 정교하고 아름다운 책갈피는 끊임없이 대법제자의 손으로 전해졌고, 또 그들의 손을 통하여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사악의 대법제자들에 대한 박해와 자료를 만드는 곳(資料点)에 대한 파괴는 언제나 끊어진 적이 없었으며, 신변에 있는 한 피 한 피의 대법제자들은(협조인도 포함)체포당했고, 자료를 만드는 곳(資料点)도 하나하나 이어서 파괴되었으며, 손실은 몹시 막대하였습니다.

매번 동수들의 그 친절하고 웃음 띈 얼굴이 나의 눈앞에 떠오르고, 또 하나하나 저의 신변에서 사라질 때, 저의 마음속은 극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한 동안 저는 심지어 아주 의기소침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가정의 즐거움을 향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바로 책임,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입니다. 불법의 무궁무진한 힘이 그들로 하여금 매 한 세인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미래가 있게 하기 위하여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떠돌아다니게 한 것입니다!

저는 항상 대법제자들이 어떠한 시기에도 모두 하나의 정체라는 것을 느꼈고, 어느 한 곳에 빈틈이 있어도 모두 사악에게 틈을 타게 됩니다. 저는 명혜망의 문장에서 제기한 “곳곳에서 꽃피듯이 자료를 만드는 곳(資料点)을 건립하자” 라는 말에 매우 찬성합니다. 이렇게 하면 비교적 안전하고, 사악의 파괴력도 작아지며, 우리의 손실도 적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중에도 아주 곤란한 한 단락의 길을 걸어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들은 지금 비록 자금에서나 설비에서나 아주 큰 어려움이 있지만, 저는 예전처럼,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대법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주: 저는 단지 대륙대법제자 중에서 아주 평범한 수련자입니다. 저는 하늘땅을 놀랠 만한 정법의 경력도 없고, 심지어 매우 평범합니다. 하지만 동수의 격려 하에서 저는 글로 써서, 여러분들과 같이 고무하려고 합니다. 타당치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문 : 2003년 3월 1일

문장분류 : 호법역정 (護法歷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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