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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과 “큰”일

캐나다 수련생

[명혜망] 현재 많은 수련생들은 인위적으로 정법수련 중에 참여한 일들과 봉착한 문제들을 크고 작음으로 나눈다. 동시에 일방적으로 큰 일은 더욱 중요시하고 작은 일은 가히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일부 수련생들이 수련과 정법일을 하는 관계를 잘 배치하지 못하는 것과 정법과 개인수련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실, 이런 크고 작음을 나누는 것은 모두 인간의 관념에서 온 것이다. 수련과정 중에서 수련인이 봉착하게 된 어떠한 일이든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므로, 절대로 인간의 표준으로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하고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넓은 흉금과 큰 뜻을 품은 마음, 이것은 잘못이 없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에게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원만을 향해 나아가다》)고 일깨워주셨다. 생각해 보자. 일상생활의 일부 작은 일들 중 심지어 가족과 동수들과 함께 있을 때 부딪친 모순을 만약 안으로 향해 찾지 못하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수련인을 놓고 말한다면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있겠는가? 자신의 집착심과 마성을 방임할 때 아마 당신이 장차 원만할 아름다운 세계가 거의 붕괴의 거대한 변화를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수련인을 놓고 말한다면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있겠는가? 제거하지 않은 집착과 관념 아래, 세인들에게 진상을 밝히는 것을 놓치고 세인을 구도할 기회를 놓치며 심지어 사악에게 틈을 타도록 한다면 그러면 하나의 귀한 생명과 그가 대표하는 중생들은 아마 구원받을 기회를 놓칠 수 있는데 또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

일부 수련생들 중에는 이런 종류의 인식이 있다. 마치 큰 일을 많이 많이 해야만이 비로소 정법수련에 참여한 듯하고, 오히려 개인수련·법공부 제고는 가히 부차적인 위치에 놓을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실, 어떻게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의 관계를 잘 처리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명시해 주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로지 당신이 하나의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환경, 어떠한 상황하에서든지를 막론하고 부딪치게 되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심지어 대법의 사업을 위한 것이고 당신들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한 일이라고 인정하든지를 물론하고,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며 그것을 제거하는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제고하는 것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재인식》)

“법공부를 하지 않고 대법의 일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대법제자가 대법의 일을 해야 한다. 당신들로 말한다면 곧 이처럼 요구해야 한다. 만일 속인이 도와 나아가 대법의 일을 한다면 그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가리키는 것은 대법제자로서 당신들은 반드시 일개 대법제자로서 대법의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원만이 주요한 것이며 당신들의 원만이 당신들 지금으로 말한다면 첫 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들의 원만 속에는 역시 당신들이 대법에 대한 책임과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용해되어 있다.”(《워싱턴DC 법회에서의 설법》)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은 마치 거인의 두 다리와 같다. 어느 한 쪽을 버리더라도 모두 수련에 장애를 가져다 줄 것이며 대법에 손실을 안겨줄 것이다. 오직 자아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에 정법(正法)의 전반적 국면(全局)을 품어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정념으로 정법과 수련중의 일체를 대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큰 뜻을 품고서도 사소한 일에 소홀히 하지 않노라”(《성자》)라고 말씀하셨듯이, 더욱 광활한 곳에 착안하는 동시에 수련중에 부딪치는 매 하나의 일, 심지어 매 하나의 생각마저도 모두 법으로 가늠하여 진정하게 제고되어야만 비로소 거인(巨人)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원만으로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이상은 개인의 체오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글완성시간 : 2002년 3월 3일

문장발표시간 : 2002년 3월 3일

문장분류 : 수련생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