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국 파룬궁수련자 박해 상황 종합

[명혜망](종합보도)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6년 9월 한 달간 823명의 중국 파룬궁수련자가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박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11명이 세상을 떠났고, 최소 55명이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됐으며, 299명이 납치됐고, 456명이 괴롭힘을 당했으며, 2명이 세뇌반에 감금됐다.

사망한 수련자 11명의 성(직할시)별 분포 상황은 허베이성 3명, 후베이성 2명, 장시성 1명, 산시(陝西)성 1명, 쓰촨성 1명, 허난성 1명, 구이저우성 1명, 신장 위구르 자치구 1명이다. 박해로 세상을 떠난 파룬궁수련자의 일부 상황은 ‘부록1’을 참조하기 바란다.

2026년 9월 중공에 박해받은 중국 파룬궁수련자 인원수 통계

9월에 55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중공에 의해 불법적으로 선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허베이성이 9명, 산둥성이 8명, 랴오닝성이 7명, 헤이룽장성이 7명으로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다. 각 지역의 불법 선고를 받은 파룬궁수련자 인원수 통계는 사진2와 같다.

2026년 9월 중공에 불법 선고를 받은 중국 파룬궁수련자 55명 통계

명혜망 9월 보도 사례 통계에 따르면, 중국 각지에서 총 299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납치됐는데, 그중 허베이성이 157명에 달해 당월 납치 사례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됐다. 또 456명의 파룬궁수련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며, 허베이성이 345명을 차지해 역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허베이성 당위원회 정법위 서기 왕루진(王陸進)은 최근 각 시, 현 공안국 국장을 소집해 소위 1년 기한의 ‘조폭 소탕 및 악행 척결 특별 행동’이라는 명목으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납치와 괴롭힘을 추진해 박해를 한층 더 가중시키고 고조시켰다.

9월에 폭로된 사례만 보더라도 허베이성에서만 502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납치되거나 괴롭힘을 당해, 그 수가 다른 성보다 월등히 높아 허베이 지역 박해 상황의 집중성과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2026년 9월 명혜망에 보도된 중공에 의해 납치 및 괴롭힘을 당한 중국 각지의 754명 파룬궁수련자 통계

일부 사례:

1. 자저우 감옥에서 기억상실 등 여러 질병으로 박해받은 덩웨이융,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

명혜망 2026년 9월 1일 소식에 따르면, 쓰촨성 청두시 진장구 파룬궁수련자 덩웨이융(鄧維勇)은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쓰촨성 자저우 감옥에서 기억상실, 뇌졸중, 간질, 당뇨병 등 16가지 질병을 얻을 정도로 박해를 받았다. 2022년 5월 10일 출소할 당시 그는 온몸이 마비돼 힘이 없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으며, 기억을 완전히 상실했고, 2025년 9월 27일 57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1) 여러 차례 납치 및 노동교양 박해를 받아

1999년 7월 중공 악당 장쩌민 일당이 광분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덩웨이융은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여러 차례 납치됐다. 2001년 초, 그는 청두시 진장구 사허푸 파출소에 납치됐다. 2002년 2월 7일에는 불법적으로 2년 6개월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쓰촨성 몐양시 신화(新華)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았는데, 그 기간 동안 가족은 어떠한 통지서나 판결서도 받지 못했으며, 2003년 5월 26일이 되어서야 풀려났다.

2017년 5월 5일부터 17일까지 덩웨이융은 청두시 진장구 스쯔산 파출소, 아파트 관리소, 경비원 등에게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했다. 5월 5일, 스쯔산 파출소 관할 경찰 리치궈(李其國)와 린(林) 씨 성을 가진 관리소 주임이 덩웨이융의 집에 찾아와 최근에 무슨 활동이 있었는지, 전단지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는지, 어떤 사람과 접촉했는지 심문하고 사진을 찍었다. 13일에는 하루 종일 아파트 입구에 두 사람이 있어 대문에서 덩웨이융의 집을 감시했다. 16일에는 아파트 전기공이 덩웨이융의 집에 5시간 동안 전기를 끊었다.

2) 부부가 부당한 선고를 받고 수감돼

2018년 5월 5일, 덩웨이융과 리슈잉(李秀英) 부부는 청두시 진장구 스쯔산 파출소에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집에 있던 대법서적, 자료, 컴퓨터 등 개인 물품을 강탈당했다. 덩웨이융 부부는 신진 세뇌반에 감금돼 열흘간 고문과 자백 강요를 당한 후, 청두시 피현 구치소로 이송돼 계속 감금 및 모함을 받았다.

2019년 12월 26일 오전, 청두시 진장구 법원은 덩웨이융과 리슈잉에 대해 재판을 열고 덩웨이융에게 부당하게 4년형과 벌금 1만 위안을, 리슈잉에게는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2020년 6월, 덩웨이융은 러산 자저우 감옥으로 이송됐다. 가족이 면회를 신청했지만 감옥 측은 허락하지 않았고, 가족에게 많은 증명서를 떼어오라고 요구했으며, 증명서를 다 떼어오자 여러 차례 핑계를 대며 미뤘다. 나중에 감옥 측은 마침내 한 달에 한 번 화상 통화를 허락했다.

3) 자저우 감옥에서 위독할 정도로 박해받아

2021년 7월, 덩웨이융은 자저우 감옥에서 딸과 화상 통화를 할 때 그녀에게 백신을 맞은 후 몸이 너무 불편하고 머리가 아프며 명치가 답답하고 토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저우 감옥은 당시 전체 수감자에게 의무적으로 두 차례 백신을 맞도록 강요했는데, 7월 1일에 1차 접종을 하고 7월 22일에 2차 접종을 했다. 덩웨이융은 2차 접종 후 구토, 어지럼증, 설사, 사지 무력, 전신 식은땀 등 뚜렷한 부작용을 보였다.

증상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감옥과 감옥경찰은 어떤 즉각적인 치료도 제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노동 강도를 더욱 높였다. 덩웨이융이 있는 감구(監區)는 전자 장비 가공을 담당해 원래 노동량이 매우 높은데도, 감옥경찰은 여전히 매일 그에게 도저히 완수할 수 없는 작업 목표를 강요했다. 완수하지 못하면 체벌을 받았는데, 저녁에 작업을 마치고 감구로 돌아온 후 그려진 원 안에 서 있도록 강요받았으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워 쉴 수 있었다.

감옥 내부에서 이런 체벌은 고의로 ‘학습’으로 포장돼 강제적 처벌의 본질을 은폐했고, ‘문명적인 관리’, ‘학습 개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수감자들은 소위 ‘학습’이라는 것이 노골적인 체벌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덩웨이융은 장기간 강제 벌서기를 당해 몸이 끊임없이 한계로 내몰렸고, 자주 서 있던 중에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감옥경찰은 그제야 마지못해 그를 의무실로 끌고 가 주사를 놓고 약을 먹였다. 노동 현장으로 돌아온 후에는 계속 강제노동을 시켰고 쉬지 못하게 했다.

덩웨이융의 박해를 책임진 주관 경찰 장인(張寅, 장인(張銀)으로도 불림, 경찰번호 28558656)은 노동 강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덩웨이융이 직접 구입한 영양제를 전부 압수하고 소위 ‘음식 통제’를 실시했다. 장인은 “환자는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라며 이를 핑계로 덩웨이융의 기본 영양을 박탈했다. 덩웨이융은 배가 고파 매일 밤 깨어났고 수돗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래야 했다. 8월 17일이 되어서야 감구는 압수한 물건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 기간 동안 덩웨이융은 거의 매일 체벌을 받았다. 8월 30일, 31일부터 9월 1일 이른 아침까지 그는 연속된 체벌 속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됐다.

2021년 8월과 9월 동안, 가족은 줄곧 화상 통화를 통해 덩웨이융을 볼 수 없었다. 9월 27일, 경찰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가족에게 덩웨이융이 9월 2일에 입원했다고 통보했다. 가족이 입원 원인을 캐묻자 경찰은 단지 “처음엔 머리가 몽롱하고 아프더니 나중엔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자꾸 넘어졌고, 결국 어느 날 쓰러졌어”라고만 말했다. 경찰은 전체 과정에서 감구의 장기적인 체벌, 노동량 가중, 영양제 압수 등 박해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2021년 10월 3일, 가족은 다시 자저우 감옥의 통지를 받았는데, 덩웨이융에게 위독 통지서가 발부됐으며 즉시 직계 가족 5명을 배정해 러산시 시중심병원 응급실로 와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라는 것이었다.

4) 60여 명의 경찰이 그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려

가족이 병원 병실에 도착했을 때 눈앞의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덩웨이융은 철제 침대에 고정돼 온몸이 뻣뻣하게 ‘대(大)’ 자 모양이 되어 있었고, 양손과 양발에 모두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으며 침대 틀에 묶여 있어 스스로 움직일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의 팔에는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이 투여되고 있었다.

병원에는 60여 명의 경찰이 왔다. 경찰은 가족에게 가까이 가지 말고, 만지지 말며, 사진이나 영상을 찍지 못하게 엄명했고, 가족에게 “본 것을 인터넷에 올리지 마”라고 경고했다. 가족이 병인을 묻자 감옥 의사는 그저 가볍게 덩웨이융이 “점심에 잘 때 입에 거품을 물고 전신 경련을 일으키며 안색이 새파래져서 깨어나지 못했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줄곧 장기적인 체벌, 강제노동 가중, 영양제 압수 등 어떤 진실한 상황에 대해서도 밝히기를 거부했다.

덩웨이융의 신체 상태는 더욱 끔찍했다. 양쪽 눈의 다크서클이 매우 심했고, 왼쪽 눈은 강한 타격을 받은 것처럼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이마에는 꿰맨 흔적이 뚜렷한 상처가 있었고 옆에는 마른 핏자국이 있었다. 그는 계속 혼수상태였고 가족이 오랫동안 부르고 나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깨어난 후 그는 아내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친형만 간신히 알아봤다. 그는 반복해서 ‘목마르다’고 말했는데 입술이 갈라져 검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물을 여러 잔 연거푸 마시고도 여전히 극도로 목말라해 마치 오랜 시간 물을 마시지도, 음식을 먹지도 않은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감옥 측이 말하는 ‘갑작스러운 발병’과 완전히 달랐다.

점심부터 밤 12시까지 덩웨이융에게 밥을 주지 않아 가족이 밥을 샀지만, 경찰은 그에게 먹이지 못하게 했다. 이 밖에도 그의 팔에는 마른 핏자국이 있었고, 양손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으며, 손톱 안에는 온통 까만 것들로 가득했다. 두 종아리는 매우 앙상하고 붉었으며, 바지에도 굳은 핏덩이가 몇 군데 있었다. 발바닥 피부는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전부 밖으로 까져 있었고 핏자국도 있었다!

당시 54세였던 덩웨이융은 겉보기에 마치 7~80세 노인처럼 늙어 보였다. 모든 경찰은 덩웨이융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길 기다리면서 가족이 사람을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했다. 60여 명의 경찰이 병원 전체를 겹겹이 포위했고, 20여 명의 경찰이 응급실도 빈틈없이 에워쌌으며 경찰이 전 과정을 녹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은 녹화하지 못하게 했고, 덩웨이융에게 민감한 말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귀를 대고 귓속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가족이 감옥 의사에게 상황을 묻자 그는 “수감자들은 매일 낮잠을 자는데 오늘 낮잠이 끝난 뒤 덩웨이융을 깨워도 안 일어났어. 게다가 그는 약간 경련도 있었고 입에 거품도 물었어”라고 말하며,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과 간질이 있다고 말했다.

5) 가족이 병보석 요구했으나 거부당해

당일 줄곧 3명의 감옥경찰이 덩웨이융의 가족을 따라다녔는데, 그중 한 명은 감옥과 과장 양옌강(楊彥剛)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이 일 인터넷에 올리지 마”라고 말했다. 가족은 병보석을 요구했지만 감옥 측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그의 상황이 병보석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21년 10월 4일, 덩웨이융은 청두시 솽류 항공항 수감자 병동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그곳에서 3개월 넘게 감금 치료를 받았다. 도착 후 현지 경찰은 또 가족에게 덩웨이융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서 사람을 때려”라고 단언하며, 그에게 조현병 치료 약을 복용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줄곧 어떤 의학적 근거도 제공하지 못했고, 그가 왜 이전에 심각한 신체적 손상과 의식 혼란을 겪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 후 덩웨이융은 또 진탕 수감자 병동 감옥으로 이감됐다. 출소하는 그날까지 진탕 병동 감옥에 감금되어 있었다. 장장 4년간의 불법 감금 기간이 단 하루도 줄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이 여러 차례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감옥 측은 일률적으로 거부하며 덩웨이융의 생명 위험과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건강 상태를 완전히 무시했다.

2022년 2월 28일, 진탕 병동 감옥은 갑자기 가족에게 덩웨이융에게 또 조현병으로 위독 통지서가 내려졌다고 알렸다. 28일 오후 가족은 화상 면회를 예약하고 즉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덩웨이융은 휠체어에 앉아 다리가 너무 아파 잘 서지 못했고,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흉터를 가리려는 것으로 의심됨), 치아가 다 빠져 있었고(집에 있을 때 덩웨이융은 치아가 모두 건강해 한 개도 빠지지 않았다), 발음이 불분명하고 의식이 몽롱했다. 감옥 측은 줄곧 건장하고 건강했던 덩웨이융이 왜 위독해지고 조현병이 나타났는지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6) 억울하게 세상 떠나

2022년 5월 10일 덩웨이융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던 날, 덩웨이융의 동생이 경찰차에서 그를 업고 내렸는데, 당시 그는 온몸이 마비돼 힘이 없어 앉지도 못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으며 기억을 완전히 상실해 집안의 모든 사람과 물건을 아주 낯설어했다. 가족이 그를 병원에 데려가 건강검진을 한 결과, 뇌졸중, 간질, 당뇨병, 고혈압 등 16가지 질병이 나왔다. 덩웨이융은 1986년에 군인이었을 정도로 신체가 매우 좋았고 수년 동안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었는데 감옥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

덩웨이융이 집에 돌아온 후 가족은 그를 데리고 크고 작은 십여 군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수십만 위안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고, 경찰은 여전히 집으로 몇 번 찾아와 괴롭혔다. 그때 그는 이미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하고 온통 백발이었다! 의식도 몽롱하고 기억력은 심각하게 쇠퇴했으며 뇌졸중까지 겹쳤고 두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서지 못해 휠체어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고 가끔 헛소리를 하며 주의식이 또렷하지 않았다. 정신이 들 때면 그 자신도 초조해했지만 마음뿐 힘이 닿지 않았다. 덩웨이융은 하루 종일 머리를 숙인 채 눈을 감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휠체어에 앉아서도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운이 없었으며 눈을 계속 뜨지 못했고 두 다리로 설 수 없었다. 꿈속에서 덩웨이융은 자주 소리쳤다. “내 수갑과 족쇄를 풀어줘! 밧줄을 풀어줘! 돌로 내 무릎을 내리치지 마! 약 안 먹을 거야!”

가족의 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 덩웨이융은 3년 넘게 버티다가 결국 2025년 9월 27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 74세 할머니 차오핑, 산시(陝西)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세상을 떠나

명혜망 2026년 9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산시(陝西)성 안캉시 파룬궁수련자 차오핑(曹萍)이 2026년 4월경 산시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차오핑 생명의 마지막 시기에 감옥은 그녀를 시안 우주항공 병원으로 보내 소위 ‘치료’를 받게 했다. 그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외부와 통화할 때 갑자기 불쑥 ‘너무 잔인하다’는 말을 내뱉었는데,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감시하던 감옥경찰이 강제로 끊고 화제를 돌렸다.

영결식 전에 친척과 친구들은 그녀의 다리에 큰 멍이 든 것을 보았다. 감옥 관계자는 뜻밖에도 야만적으로 대답했다. “의심스러우면 의문점을 제출해. 시신 화장 안 해도 되니까!” 그러면서도 친척과 친구들이 시신을 가져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강압에 못 이긴 친척과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타협했고 차오핑의 시신은 서둘러 화장됐다.

1) 차오핑이 납치된 경과

2022년 9월 24일 9시경, 차오핑, 두펑잉(杜鳳英), 천쥔(陳軍) 등 3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차를 몰고 외출했다가 안캉시 한빈구 짜오양진 산길 도로에 차를 세우고 쉬면서 길을 묻던 중, 뒤따라온 란가오현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차 안에서 파룬궁 진상 소책자 몇 권을 수색해 내고 3명을 란가오현 공안국으로 끌고 갔다.

란가오현 공안국 심문실에서 3명의 파룬궁수련자는 국보 대대장 탕샤오웨이(唐曉偉, 음역)를 우두머리로 한 경찰들에게 각각 낮 동안 불법 심문을 당했고, 몇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는지, 진상 자료의 출처 등을 자백하라고 강요받았다. 밤에 3명은 심문실의 나무 벤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경찰은 3명의 파룬궁수련자를 구치소로 보냈다. 차오핑은 한빈구 구치소에, 천쥔은 란가오현 구치소에(나중에 한빈구 구치소로 이감됨) 감금됐고, 두펑잉은 혈압이 220mmHg에 달해 구치소 수감을 거부당해 집으로 돌아간 후 거주지 감시를 받았다.

2023년 4월 23일, 쉰양시 법원은 파룬궁수련자 차오핑, 두펑잉, 천쥔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다. 소위 재판에서 판사는 변호사가 법에 따라 변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차오핑이 법률을 말하는 것을 저지했으며 변호할 기회를 주지 않고 시종일관 겉치레만 했다.

2023년 9월 6일, 두펑잉은 시, 구, 현, 파출소 관할 경찰, 주민센터 직원들이 계속해서 집에 찾아와 위협하고 공갈하는 박해 속에서 돌발적인 뇌출혈로 불행히 세상을 떠났다.

2) 불법 선고를 받고 박해로 사망해

2023년 10월 25일, 차오핑은 안캉시 쉰양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벌금 5만 위안을 갈취당했으며, 가택수색으로 얻은 모든 개인 재산(그중 4만 위안의 양로 예비금이 있었음)을 불법적으로 몰수당했다. 당시 그녀는 이미 한쪽 눈이 실명됐고 다른 쪽 눈도 시력이 흐릿했다. 변호사가 1심과 2심에서 두 번이나 그녀를 위해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판사는 모두 거부했다.

2024년 4월 19일, 차오핑은 산시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8중대에 불법 감금됐다. 차오핑이 수감된 후 친척과 친구들이 여러 차례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모두 산시성 여자감옥의 거부를 당했다.

2026년 4월, 차오핑은 산시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이로써 2022년 9월 24일 3인 납치 사건 중 두 명의 노인이 이미 중공에 의해 박해로 숨졌다.

3. 우루무치 왕추이란, 부당한 6년형 선고받고 억울하게 세상 떠나

명혜망 2026년 9월 9일 소식에 따르면, 우루무치시의 60대 파룬궁수련자 왕추이란(王翠蘭)은 2017년에 납치됐고 같은 해 9월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후 신장 여자감옥에 감금됐다. 2022년 8월 왕추이란은 박해를 받아 생명이 위독해졌고 집으로 풀려난 지 보름도 채 안 되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왕추이란의 집은 우루무치시 신스구에 있으며 2014년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2017년 민중에게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다가 신스구 공안국에 납치돼 우루무치시 제3 구치소에 감금됐다.

2017년 9월, 왕추이란은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고 그 후 신장 제2 감옥(여자감옥)에 감금됐다. 2022년 8월 그녀는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졌고, 감옥 측은 그녀가 감옥에서 죽어 책임을 질까 봐 두려워 그녀를 집으로 석방했다. 돌아온 지 반달도 채 안 되어 왕추이란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신장 생산건설병단은 국무원 직속이자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이중으로 관리하는 ‘준군사적 실체’로서 당, 정, 군, 기업 등 4개 기구가 하나로 통합돼 있으며, 독립된 공안, 검찰, 법원 체계를 갖추고 사단과 시를 통합한 관리 모델을 실행한다. 천취안궈(陳全國)가 2016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중공 당위원회 서기를 맡은 이래 매일 크고 작은 회의가 끊이지 않고 층층이 압력을 가해 소위 ‘안정 유지’라는 명목으로 파룬궁수련자에 대해 박해 정책을 실시해, 신장 지역의 상황을 줄곧 고압적인 상태에 놓이게 했다.

신장 여자감옥은 일찍이 신장 제2 감옥으로 불렸고, 수년간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검은 소굴이었으며, 수감된 모든 파룬궁수련자는 소위 5서(五書, 다섯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파룬궁수련자에게 사용한 고문으로는 사인침대 묶기, 고추물 강제 주입, 매달기(양손을 수갑에 채워 침대 틀에 매다는 것), 호랑이 의자 앉히기, 군대 자세로 벌서기, 밥을 배불리 주지 않기 등이 있다.

신장 여자감옥에서 커라마이시 시추 회사 환경평가 감리 기사이자 파룬궁수련자인 자오수위안(趙淑媛)이 2016년 7월 22일 박해로 사망했다. 우루무치시 파룬궁수련자 뤄촨메이(羅傳梅)는 2025년 10월 3일 박해로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69세였다. 감옥 측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시신을 강제로 화장했고, 더 많은 세부 사항은 여전히 은폐돼 있다.

왕추이란은 이번에 납치되기 전에는 몸이 매우 좋았는데 감옥에서 어떤 박해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4. 7년의 감옥 박해를 겪은 장시성 난창현 후미타오, 억울하게 세상 떠나

명혜망 2026년 9월 24일 소식에 따르면, 장시성 난창현 파룬궁수련자 후미타오(胡蜜桃)는 2018년 4월 16일 난창현 공안국 국보 대대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적인 가택수색과 모함을 당했고, 2019년 10월 불법적으로 7년 2개월을 선고받아 감옥 안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아 심신이 심각하게 피폐해졌으며, 2026년 7월 10일 82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후미타오는 1998년 10월 26일부터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해 관절염이 다 나았고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1999년 7월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하는 중공 정치 깡패 집단이 광분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을 때, 후미타오는 모든 중국 파룬궁수련자처럼 많은 상처를 입었고 최소 두 차례 구치소 감금, 3차례 세뇌반 감금, 4차례 가택수색을 당했다.

2018년 4월 16일, 후미타오가 파룬궁수련자들과 단체 법공부를 할 때 난창시 공안국, 난창현 공안국 국보 대대장 왕하이쥔(王海軍) 등에게 납치돼 가택수색, 감금 및 모함을 당했다. 2019년 5월 10일 오전 12시, 후미타오, 천원(陳文), 가오인펑(高銀鳳), 천위롄(陳玉蓮)은 난창시 시후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2019년 10월 말, 난창 시후구 법원은 후미타오에게 비밀리에 7년 2개월을 선고했다. 주심 판사는 류위팡(劉玉芳)이었다.

후미타오는 장시성 여자감옥 안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아 심신이 심각하게 피폐해졌고 2025년 6월 16일 형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7년여의 감옥 박해로 인해 후미타오는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2026년 7월 10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5. 장리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뇌출혈 일으켜

명혜망 2026년 9월 2일 소식에 따르면 다칭시 훙강구의 60세 파룬궁수련자 장리화(張麗華)는 2025년 6월 16일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2026년 2월 초 장리화는 감옥의 박해로 뇌출혈을 일으켰다.

장리화는 원래 다칭 유전 채유 제4공장 설계과 운전기사였다. 그녀는 심각한 부인과 질환을 앓았고 28세 때 중증 빈혈과 간 질환까지 앓아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으며 한약과 양약 모두 치료할 수 없었다. 1997년 3월 장리화는 파룬따파를 수련해 모든 병증이 신기하게도 사라졌고 신체가 건강해졌으며 혈색이 좋아졌다.

1999년 7월 이후 장리화는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견지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괴롭힘, 납치, 감금을 당했고 강제 이혼, 경제적 갈취, 징역형 박해 등을 받았다. 2020년 11월 22일, 장리화와 다른 파룬궁수련자들은 다칭시 공안국과 사얼투 톄런(鐵人) 분국 여러 사복 경찰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검은 복면이 씌워진 채 폭력적으로 납치됐는데, 장리화는 그들의 악행에 협조하지 않아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다.

2021년 11월 22일 장리화, 왕루화(王露華)는 불법적인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 기한이 만료돼 톄런 분국에 의해 거주지 감시를 받았다. 계속해서 톄런 분국, 랑후루 검찰원, 랑후루 법원의 사법 모함을 당해 랑후루 법원에서 두 차례 불법 재판을 받았고 2022년 12월 30일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장리화는 억울하게 3년 4개월형과 벌금 3만 위안을, 왕루화는 억울하게 4년형과 벌금 4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법에 따라 항소했지만 다칭시 중급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원심이 유지됐다.

장리화와 왕루화는 감옥에 수감되기 전 다칭 구치소로 여러 차례 납치돼 강제 신체검사를 받고 ‘수감’될 뻔했지만 신체 조건이 맞지 않아 소위 ‘감외집행’을 받았다. 2025년 상반기에 중공 순시조가 다칭에 와서 다칭 공안, 검찰, 법원, 사법 부서에 불법 선고를 받고 ‘감외집행’ 중인 모든 파룬궁수련자를 일률적으로 수감하라고 지시했다. 2025년 6월 16일 장리화, 왕루화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강제 납치돼 박해받았고, 불법 형기는 ‘수감’된 날부터 누적 계산됐다.

장리화는 감옥 제8감구로 보내져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고 수감자들에게 반복적으로 구타와 욕설, 체벌 고문을 당했다. 반년 뒤 장리화는 박해로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고 혈압이 200 넘게 치솟았다. 2026년 2월 초 감옥 측은 장리화의 가족에게 뇌출혈에 걸렸다고 ‘통지’했다. 가족이 하얼빈의 한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혼수상태에 빠진 장리화가 병상에 누워 있었다. 감옥 측은 기회를 틈타 가족을 협박했다. “장리화가 뇌출혈에 걸렸는데 이 나이대엔 흔한 병이야. 머리에 출혈점이 3개 있는데 살릴 거야 말 거야? 살리려면 돈을 내. 감옥은 돈 없어. 안 그러면 결과는 우리와 무관해(대략적인 내용).” 가족은 강압에 못 이겨 십여만 위안을 냈고 병원은 그제야 장리화에게 출혈점 2개에 대한 뇌수술(비개두술)을 해줬다. 세 번째 출혈점 수술을 하려면 가족이 또 돈을 내야 했다.

2026년 5월 장리화가 수술을 받은 지 3개월 후, 가족이 감옥에 그녀를 보러 가서 보니 그녀는 아직 몸이 허약하고 수척했으며 걸음걸이가 느렸다. 면회 시간은 5분으로 제한됐다. 장리화는 수술 후 아직도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감옥은 혈육의 정으로 유혹하고 압박해 장리화가 신앙을 포기하고 파룬궁을 비방하는 ‘5서’(‘보증서’, ‘전향서’, ‘결렬서’, ‘비판서’, ‘회개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당시 장리화는 쓰지 않았다. 현재 장리화의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6. 상하이 여자감옥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작은 의자 고문

명혜망 2026년 9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 여자감옥 파룬궁수련자들이 제5감구 감구장 추민잉(仇敏穎)이 독창적으로 고안한 작은 의자에 강제로 앉혀졌고, 세 명의 흉악한 수감자가 위에서 내려다보듯 파룬궁수련자를 가운데 포위한 채 고문했다.

1) 둘러앉는 방식—수감자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파룬궁수련자를 낮은 중앙에 포위

감시 수감자는 6명으로 구성됐는데 모두 감구에서 선발한 가장 사악하고 독랄하며 변태적인 중청년 살인범, 어릴 때부터 헤로인을 주사한 자, 마약 흡입 및 밀매범들로 두 조로 나뉘었다. 감시 수감자들은 등받이가 있는 높은 의자를 각자 가져와 매 조마다 3명씩 파룬궁수련자를 겹겹이 에워쌌다. 한 명은 파룬궁수련자의 뒤에, 한 명은 왼쪽에, 한 명은 오른쪽에 앉았으며 파룬궁수련자는 가운데 앉았다. 양측의 감시 수감자는 각각 발을 뻗어 파룬궁수련자의 두 발 앞에 대고, 뒤에 있는 수감자는 양손을 마음대로 파룬궁수련자의 양쪽 어깨나 다른 부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파룬궁수련자는 높이 20여 cm, 직경 20여 cm에 의자 면 주변에 턱이 있는 작고 낮은 의자에 강제로 앉혀진 채 수감자들에게 겹겹이 포위됐고, 게다가 낮은 의자 면의 2분의 1만 앉은 채 다리를 구부려 뒤로 젖히고 발뒤꿈치를 의자 다리에 바짝 붙여야 했다(사람을 불구가 되게 하는 이 반인륜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앉는 자세는 제5감구 감구장 추민잉이 독창적으로 고안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무릎과 인대가 계속 팽팽하게 당겨진다.

두 다리를 90도 수직으로 지면에 평행하게 대고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는데, 특히 작은 의자 면은 주변에 턱이 있고 두 발을 뒤로 젖혀 의자 다리를 향하게 함으로써 양 무릎 인대가 심하게 당겨져 금세 통증을 참기 어려워진다. 양 무릎이 크게 부어오른 부상은 회복하기 매우 어려워 금세 걸을 수 없게 되며 한의학에서 말하는 소위 ‘상근동골(傷筋動骨, 힘줄과 뼈를 다침)’이 된다.

2) 로봇 같은 앉는 자세 요구—수감자에게 손찌검할 기회 만들어 줘

매일 아침 5시 반부터 밤 10시 반, 심지어 12시까지 17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앉는 자세를 마치 로봇처럼 시종일관 꼼짝하지 않도록 요구했다. 상체는 곧게 펴고 양손을 모아 손등을 허벅지에 수평으로 올려놓고 손등이 조금이라도 자연스럽게 아치형으로 굽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손가락 사이는 힘을 주어 밀착시켜 틈이 없게 해야 했다. 양 무릎과 두 발은 바짝 붙여 틈이 없게 해야 했다. 양 무릎 사이에는 딱딱한 마분지를 끼웠는데 한 번 떨어지면 두 무릎이 밀착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떨어질 때마다 감방 규정을 한 번씩 베껴 써야 했고 심야 12시에 감방에 돌아가서 베껴 써야 했다.

파룬궁수련자들은 이토록 참기 힘든 고통스러운 앉는 자세로 수감자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더없이 악랄하게 고문하는 포위 속에 매일 17~18시간씩 강제로 벽에 영사된 파룬궁을 악독하게 비방하는 영상을 주시해야 했으며, 단지 두 번의 대소변을 보는 5분 동안에 이미 서 있을 수 없게 된 두 다리를 펴고 요강 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작은 의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5분 두 번 동안에만 벽의 영상을 주시하지 않아도 됐고 나머지는 밥을 먹을 때도 똑바로 앉아 뚫어지게 보라고 했다.

매일 아침 5시 반부터 밤 11시 또는 12시까지 17시간 이상의 체벌과 구타 및 욕설을 겪은 후 큰 감방으로 돌아가 4명의 감시 수감자가 교대로 감시하는 가운데 낮에 벌로 받은 베껴 쓰기를 2~3시간 심지어 더 오래 썼다. 매일 약 3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고 잠자리에 들어 막 잠이 들면 감시 수감자에게 구타당하거나 발로 차여 깼는데 매일 이랬고 매일 밤 이랬다. 특히 형집행실에서의 밤낮없는 고문으로 매일 혹독한 구타를 당하고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쳐져 기절했다.

3) 작은 의자 고문 과정—히스테리적 광기와 혹독한 박해

감시 수감자들은 두 조로 교대했다.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감시 수감자들 손에는 각각 뾰족한 펜 같은 도구가 들려 있었고 옆에는 두꺼운 단단한 상자가 준비돼 있어 박해받는 수련자가 손에 힘을 조금이라도 푸는 등 움직이기만 하면 좌우에 있는 수감자들은 펜 모양의 뾰족한 바늘로 수련자의 좌우 손등을 맹렬히 찔렀고, 뒤에 앉은 수감자는 즉시 박해받는 수련자의 뒷목을 세게 꼬집고 머리카락을 잡아 사납게 잡아당겼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해 양 무릎 사이에 끼운 딱딱한 마분지가 계속 떨어지면 양쪽에 앉은 수감자들은 폭발적으로 손을 뻗어 단단한 상자로 이미 심하게 다친 무릎을 세게 쳤다.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박해받는 수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절하는 일이 매일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런 앉는 자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어져 손가락, 양 무릎, 상체가 자연스럽게 풀리고, 양 무릎 사이에 끼운 딱딱한 마분지도 계속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두 발은 의자 다리를 향해 뒤로 젖혀 있기 때문에 무릎이 금세 아프기 시작해 점점 더 아프다가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진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무릎의 극심한 통증은 더욱 심해진다. 그 극심한 통증 정도는 감시 수감자들에게 혹독하게 구타당하고 세게 꼬집히는 것보다 더 참기 어려워 마치 끊어질 것 같았다. 만약 다리를 당장 펴서 단 10초라도 완화하지 않으면 무릎 인대의 극심한 통증을 전혀 견딜 수 없다. 박해받는 수련자가 차라리 감시 수감자들에게 한 차례 모진 구타를 당할지언정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다리를 한 번 뻗으려 할 때면 3명의 감시 수감자들은 함께 손을 써서 마구 때리고 내장을 심하게 후벼 팠다. 그들은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게 오장육부를 문드러지게 후벼 파버리겠다고 큰소리쳤고 양쪽 가슴과 전신을 세게 꼬집었으며, 뒷목 양쪽 경락과 양쪽 겨드랑이 밑의 경락을 미친 듯이 꼬집고 잡아당기면서 큰 경락을 끊어버리고 찢어버려 박해받는 수련자의 머리와 사지를 모두 못 쓰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결사적으로 가슴을 꼬집고, 내장과 겨드랑이를 후벼 파며 신장과 머리를 세게 때리고 머리카락을 사납게 잡아당겼으며, 다친 곳만 골라 찌르고 펜촉으로 손등을 세게 찔렀고 부어올라 변형된 무릎을 단단한 물건으로 세게 두드리며 한시도 쉬지 않고 고문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밥을 먹으러 교대하러 갈 때도 임시 교대자에게 “잘 감시하고, 다리는 바짝 붙이며 발뒤꿈치는 의자 다리에 붙이게 해”라고 반복해서 당부했다.

매일 오후 4~5시경이 되어 박해받는 수련자가 통증을 견디다 못해 한계에 달해 이미 생사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필사적으로 저항할 때면, 파룬궁 박해 전담 감구인 제5감구(현 제3감구) 감구장 추민잉은 몇 명의 수감자들을 사주해 박해받는 수련자를 높이 들어 올려 바닥에 사납게 내동댕이치게 했으며 박해받는 수련자는 거의 매일 몇 번씩 내동댕이쳐져 쇼크 상태에 빠졌다. 그러면 수감자들은 머리카락을 사납게 잡아당기고 주먹으로 양쪽 신장과 머리를 세게 치고 양쪽 가슴을 세게 꼬집었다. 형집행 소형 방에서 박해받는 수련자가 아파서 소리를 내기만 하면 사악한 수감자들은 화장실 닦는 수건으로 수련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매일 밤 형집행실에서 큰 감방으로 돌아오면 4명의 감시 수감자가 교대로 밤을 새우며 전담 감시했다. 우선 박해받는 수련자에게 30분에서 1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있는 벌을 준 뒤에야, 두 다리를 꽉 끼우지 못해 벌로 베껴 쓰게 한 것들을 쓰도록 허락했는데 거의 매일 밤 새벽 2~3시까지 썼다. 글을 모르는 자가 검사했는데, 이 두 악인은 고의로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했다며 다시 쓰라고 했다.

새벽 2~3시에 잠자리에 들어 막 잠이 들기만 하면 감시하는 수감자들은 즉시 박해받는 수련자를 때려 깨우거나 발로 차서 깨웠고, 추운 날씨에 이불을 한꺼번에 걷어차 버리기도 했다. 매일 밤 이랬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감시 조장(보통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마약 사범들은 모두 힘이 세진다)은 박해받는 수련자가 밤에 자신의 잠을 방해했다는 핑계로 수련자의 뺨을 세게 찰싹찰싹 때렸고 단번에 침대 밑으로 쓰러뜨렸으며 화장실을 닦는 더러운 수건을 다른 수감자와 함께 억지로 입에 쑤셔 넣었다. 이런 날들이 오래되자 박해받는 수련자의 어금니가 모두 맞아 빠져 없어졌다.

만약 일정 기간의 잔혹한 고문이 지난 후에도 파룬궁수련자가 ‘진선인’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앉은 자세의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형집행 소형 방에 밀어 넣어진 뒤 수감자 우두머리가 소리 한 번 지르기만 하면 몇 명의 수감자가 즉각 박해받는 수련자에게 덤벼들어 내장을 사납게 후벼 팠고, 다른 사람들은 덤벼들어 미친 듯이 꼬집고 세게 밟으며 광적으로 치고 세게 찌르며 미친 듯이 두드렸다.

박해받는 수련자의 뒷목, 양쪽 겨드랑이 밑, 양쪽 가슴 및 전체 상반신, 양 무릎, 양 발, 양 손등은 고문을 당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붉게 부어올랐으며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흐르는 것이 사라진 적이 없었고 매일 옛 상처 위에 새로운 상처가 더해졌다. 양쪽 겨드랑이 밑은 매일 꼬집혀 피가 났고 경락을 강제로 후벼 파고 사납게 잡아당겨 양쪽 겨드랑이에 각각 달걀만 한 혹이 생겼으며, 수감자들이 날이면 날마다 장시간 꼬집고 후벼 파서 혹은 이미 고깃덩어리가 되어 지금까지 양 겨드랑이 바깥쪽에 매달려 있어 이미 회복할 수 없게 됐다. 속옷은 핏자국이 얼룩졌고 허리는 맞아서 펴지 못했으며, 머리의 멍울과 뒷목 양쪽 큰 힘줄의 붉은 부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수감자들에게 다시 꼬집혀 붓고 터졌다. 두 발, 두 발목, 두 무릎, 두 손등, 두 손가락은 심하게 부어 변형됐다! 양 무릎은 심하게 부어 이미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정수리 머리카락은 거의 다 뽑혀 여기저기 맨 살갗이 드러났다…….

상하이 여자감옥에서 일찍이 소중하고 양심이 아직 남아 있는 의로운 경찰이 박해받는 수련자가 고문 박해를 받는 상황을 상하이 감옥관리국에 보고했지만 상하이 감옥관리국은 감옥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라고 했다. 제5감구는 마오잉(茅穎) 등 몇 명의 감옥경찰을 불러 상황을 알아보게 했고 박해받는 수련자에게 옷을 걷어 올리게 해 그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보고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가슴과 상체를 저렇게 꼬집어 놓을 수 있냐고 했다. 그 후 감구장 추민잉은 더욱 광적으로 박해받는 수련자에게 보복 박해를 가했고 상황을 보고한 의로운 감옥경찰을 대문 문지기로 내쫓았다.

상하이 여자감옥의 ‘부급(部級) 문명’ 기관이라는 간판은 바로 이렇게 얻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공의 다른 감옥보다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더욱 흉악무도하기 때문이며, 이는 상하이 여자감옥이라는 중공 부급 문명 감옥의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인성 소멸 박해 내막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7. 랴오닝 장우현 파룬궁수련자 슝수샹 감옥서 비인간적 학대당해

명혜망 2026년 9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푸신시 장우현 파룬궁수련자 슝수샹(熊淑香)이 현재 랴오닝성 여자 제2감옥에 불법 감금돼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 감옥경찰의 묵인하에 수감자들은 그녀의 머리를 변기에 누르고 더러운 화장지에 소금을 묻혀 그녀의 얼굴을 문지르고 입을 틀어막아 그녀의 호흡을 곤란하게 했다.

슝수샹[슝쑤샹(熊素香)으로도 불림]은 1958년 3월 23일생으로 올해 68세이며 1999년 초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오랫동안 낫지 않던 고질병이 뜻밖에 자신도 모르게 나았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2025년 9월 18일, 장우현 공안국 경찰이 슝수샹의 집으로 난입해 그녀를 납치했다. 2026년 3월 초순, 슝수샹은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여자 제2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최근 또 68세의 슝수샹이 감옥에서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왕샤오시(王曉溪), 리옌훙(李艷紅), 돤슈롄(段秀蓮) 등 수감자들이 감옥경찰의 묵인하에 슝수샹에게 마음대로 행패를 부려, 그녀의 머리를 변기에 누르고 더러운 화장지에 소금을 묻혀 얼굴을 문지르고 입을 틀어막아 그녀의 호흡을 곤란하게 했다.

이전에 2008년 2월 25일 슝수샹은 진상을 전하다 납치돼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작은 의자에 앉는 벌, 아오잉(熬鷹, 잠 안 재우기), 혹독한 구타, 노역 등 박해를 당한 바 있다.

8. 산시(陝西)성 시안시 파룬궁수련자 웨이하이윈 박해받아 생명 위독

명혜망 2026년 9월 10일 소식에 따르면, 산시성 시안시 서교(西郊)의 파룬궁수련자 웨이하이윈(魏海雲)은 2026년 6월 시안시 롄후구 투먼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웨이하이윈이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경찰은 그녀에게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했고 사람이 박해로 죽어가는 것을 보자 서둘러 그녀를 집으로 보냈다. 그녀의 가족이 웨이하이윈을 병원 중환자실로 보내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현재 그녀는 아직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응급처치 기간 웨이하이윈은 몇 번 의식을 회복해 경찰이 그녀에게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했다고 말한 뒤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며칠 전 그녀가 호흡이 원활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기관을 절개했고 의사는 그녀의 폐에 이미 심각한 염증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친족은 그녀의 한쪽 발뒤꿈치에 구멍이 나 뼈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웨이하이윈이 구체적으로 안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조사가 필요하다.

부록1. 9월 명혜망에 보도된 세상을 떠난 파룬궁수련자

이름
성별
나이
성, 직할시
시
직업
사망 시기
불법 감금 사망 책임 장소
차오핑(曹萍)
여
74
산시(陝西)성
안캉시
퇴직 노동자
2026년 4월
산시성 여자감옥
왕추이란(王翠蘭)
여
60여 세
신장
우루무치시
–
2022년 8월
신장 여자감옥(출소한 지 반달도 안 돼 사망)
차오아이란(曹愛蘭)
여
72
허난성
핑딩산시
퇴직 노동자
2026년 5월 20일
허난성 신샹시 여자감옥(병보석 3개월 만에 사망)
옌셴타오(嚴仙桃)
여
–
후베이성
어저우시
–
2026년 9월
–
덩웨이융(鄧維勇)
남
57
쓰촨성
청두시
–
2025년 9월 27일
–
젠퉁쿠이(鑒同魁)
남
84
구이저우성
구이양시
퇴직 노동자
2026년 4월 28일
–
후미타오(胡蜜桃)
여
82
장시성
난창시
–
2026년 7월 10일
장시성 여자감옥
양치싱(楊七星)
여
70
허베이성
헝수이시
–
미상
–
류훙광(劉宏光)
남
54
후베이성
쑤이저우시
후베이성 광수이시 상수도회사 직원
미상
–
츠위차오(池玉橋)
–
–
허베이성
싱타이시
–
미상
–
자오메이(趙梅)
여
77
허베이성
장자커우시
–
2025년 5월
–

부록2. 9월 명혜망에 보도된 불법 선고를 받은 파룬궁수련자 통계표

이름
나이
성
시
불법 선고 일자
불법 형기
법정 갈취 벌금(위안)
1
쩌우화란(鄒華蘭)
75
충칭시
–
2026.8.18
2년 3개월
–
2
진즈메이(金志梅)
49
윈난성
쿤밍시 추슝주
2026.9.
5년
–
3
판슈화(潘秀花)
72
신장
우루무치시
2025.
3년
–
4
뤄촨메이(羅傳梅)
69
신장
우루무치시
2025.
3년 8개월
–
5
왕추이란(王翠蘭)
50여 세
신장
우루무치시
2017.9.
6년
–
6
리시핑(李希平)
61
톈진시
–
2021.
2년
–
7
리위샹(李玉祥)
76
톈진시
–
2026.9.8
4년 반
–
8
쑹후이찬(宋惠嬋)
67
톈진시
–
2026.2.5
2년
5000
9
리슈옌(李秀艷)
44
톈진시
–
2020.1.
7년 반
–
10
쩡더량(鄭德亮)
60
쓰촨성
쑤이닝시
2026.7.8
2년
–
11
톈수린(田樹林)
84
산둥성
지난시
2026. 7~8월
1년 반
5000
12
리쉐어(李學娥)
84
산둥성
옌타이시
2026.9.5
2년 8개월, 감외집행, 집행유예 3년
10000
13
야오민(姚敏)
약 64
산둥성
린이시
2026.8.
3개월 구류
–
14
왕페이쥐안(王培娟)
70
산둥성
타이안시
2026.9.
2년
–
15
차오청린(喬成林)
56
산둥성
지난시
2026.
3년
–
16
리쑤쯔(李素字)
–
산둥성
칭다오시
2026.9.9
3년
–
17
왕푸싱(王富興)
61
산둥성
지난시
2026.9.
1년 2개월
–
18
리위쥐(李玉菊)
62
산둥성
칭다오시
2026.9.
4년
–
19
리위옌(李玉岩)
50
랴오닝성
선양시
2026.9.
3년
–
20
왕위제(王毓傑)
63
랴오닝성
선양시
2026.8.18
1년
–
21
판웨이(范偉)
67
랴오닝성
번시시
2026.7월 하순
4년
–
22
장쥔자(張俊嘉)
–
랴오닝성
톄링시
2026.8.13
1년 반
–
23
웨이리핑(魏麗萍)
67
랴오닝성
잉커우시
2026.7.28
5년
20000
24
류신리(劉欣麗)
69
랴오닝성
잉커우시
2026.7.28
4년
20000
25
류원화(劉文華)
–
랴오닝성
차오양시
2026. 8~9월
1년 반
–
26
쉬둥위(徐冬玉)
62
장시성
주장시
2026.9.
1년 3개월
–
27
샤오건샹(肖根祥)
76
장시성
난창시
2026.4.21
3년 3개월
10000
28
스슈룽(施秀榮)
73
장시성
난창시
2026.4.21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
1500
29
장셴메이(張賢妹)
73
장시성
난창시
2026.4.21
2년, 집행유예 2년
2000
30
옌링(嚴玲)
79
장쑤성
난퉁시
2026.
3년
–
31
차이관인(蔡觀音)
–
장쑤성
양저우시
2026.9.
3년
–
32
딩옌(丁岩)
73
지린성
퉁화시
2026.1.
3년
–
33
자오진펑(趙金鳳) 사위
–
지린성
창춘시
2026. 8~9월
1년 병보석
–
34
옌훙(言虹)
63
후난성
류양시
2026.6.5
3년 2개월
–
35
하오싼바오(郝三寶)
77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2022.
3년
–
36
위유(于友)
–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2023.8.20.~25
미상
–
37
양수광(楊樹廣)
72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2026.9.
10개월
5000
38
왕칭룽(王慶榮)
69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2026.9.
10개월
5000
39
런수링(任淑玲)
–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2026.9.
1년 6개월
10000
40
우청화(吳成華)
–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2026.9.
10개월
5000
41
우스양(吳詩洋)
–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2026.9.
10개월
5000
42
쑤리(蘇麗)
32
허난성
허비시
2026.8.31
1년 3개월
2000
43
쑹샤오리(宋曉麗)
54
허베이성
스자좡시
2026.
1년 1개월
–
44
왕칭화(王慶華)
74
허베이성
친황다오시
2026.9.17
4년 반
–
45
샤슈화(夏秀華)
83
허베이성
탕산시
2026.9.22
3년
10000
46
슝펑옌(熊鳳艷)
62
허베이성
탕산시
2026.9.22
3년 반
10000
47
야오슈룽(姚秀榮)
60
허베이성
탕산시
2026.9.22
3년 반
10000
48
탕구이옌(唐桂艷)
67
허베이성
탕산시
2026.9.22
1년 반
6000
49
쉬전궈(徐振國)
68
허베이성
탕산시
2026.9.22
2년
8000
50
자오수핑(趙淑萍)
–
허베이성
탕산시
2026.9.22
2년
8000
51
두리쿤(杜麗錕)
43
허베이성
한단시
2026.9.
5년
–
52
류더췬(劉德群)
60여 세
구이저우성
쭌이시
–
4년
–
53
장구이즈(張桂芝)
83
베이징시
–
2026.9.
1년 감외집행
–
54
양만친(楊滿琴, 芹)
–
베이징시
–
2025~2026
1년 4개월
–
55
쉬펑류(徐鳳柳)
–
안후이성
우후시
2019.8.6
–
–

 

원문발표: 2026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14/51543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14/515435.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