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난성 통신원) 후난성 천저우(郴州)시 구이양(桂陽)현의 파룬궁수련자 왕샤오핑(王小平, 65)은 2026년 6월 30일경 경찰에 납치돼 구이양현 구치소에 감금됐으며, 현재까지 4개월이 넘었다. 소식에 따르면 현지 법원은 9월 20일 그를 상대로 부당한 재판을 열려고 시도했으나,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1. 중병에 시달리다 건강을 회복한 왕샤오핑의 수련 과정
왕샤오핑은 1961년 11월에 태어났으며, 과거 구이양현 바오산(寶山) 납·아연·은 광산 공안분국 형사대 대장을 지냈다.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기 전 그는 심각한 B형 간염을 앓았고, 이로 인해 다발성 위궤양 출혈과 신장 기능 쇠약(단백뇨)이 발생해 몸이 극도로 허약했다. 체중이 5kg 가량이나 급감했고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의사는 심지어 “이 병은 매우 치료하기 어려워 평생 낫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단언했다.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던 중, 그는 당시 유행하던 기공 요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1994년 그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이 천저우에서 개최한 학습반에 참가했고, 이때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에 들어서며 건강을 빠르게 회복했다. 직장에서 그는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했고, 내심으로부터 명예욕과 금전욕, 각종 탐욕을 자발적으로 제거했다. 사건을 처리할 때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거나 법을 어기지 않아 상사와 동료들에게 널리 인정받으며 형사대 대장으로 임명됐다.
2. 박해 시작: 강제 ‘전향’과 직위 강등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은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발동했다. 공안분국 간부는 그를 불러 면담하며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없다고 굳게 믿으며 소위 ‘전향’을 거부했다. 2000년 분국이 개편된 후, 단지 그가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에서는 그를 형사 부서에서 제외하고 바오산 납·아연·은 광산 후방지원부로 배정했다. 2007년 기관이 파산해 체제가 전환된 후 그는 갱도 식당에서 밥을 나르는 일에 배정됐고, 2010년에는 다시 채굴 구역 갱도의 차량 운송 작업으로 발령받았다.
3. 폭행과 첫 번째 부당한 감금
2001년 중반, 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주임 후윈궈(胡運國), 지도원 리주서(李九社)가 왕샤오핑을 불러 면담하며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언급했다. 왕샤오핑이 해당 사건은 파룬궁을 모함하는 조작된 사건이라고 지적하자, 후윈궈는 즉시 화를 내며 “나는 장쩌민을 대표하고 나는 아무개를 대표한다. 오늘 네가 한 이 말 때문에 널 가둬버리겠다”라며 협박했다.
이후 리주서가 사람들을 이끌고 왕샤오핑의 집을 샅샅이 뒤졌으나, 어떤 소위 ‘증거’도 찾지 못한 채 분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왕샤오핑을 현 공안국으로 데려갔고, 후윈궈는 덩샤오우(鄧小伍)라는 이름의 경찰을 찾아 심문하게 한 뒤, 자신은 감금 수속을 밟으러 갔다. 왕샤오핑은 이렇게 감금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들이 자신을 차에 태우려는 틈을 타 달아났지만 실패했다. 후윈궈와 리주서는 즉시 그에게 수갑을 채웠고, 110 출동 센터 사무실에서 모든 경찰이 보는 앞에서 번갈아 가며 그의 관자놀이를 수십 차례 강타했다. 차에 탈 때 리주서는 다시 그의 머리를 붙잡고 차 문틀에 세게 부딪히게 했다.
왕샤오핑의 정수리가 부딪혀 3cm 넘게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상처를 싸매지도 않은 채 곧바로 구치소로 보내졌으나, 소장이 사고가 날까 두려워 인수를 거부했다. 그제야 그들은 그를 현 인민병원으로 보내 상처를 꿰매게 한 뒤 다시 구치소로 보냈다. 구치소에서 그는 돼지 사료를 먹도록 강요당했고, 며칠마다 한 무더기의 색동 등을 만들어야 했다. 매일 10여 시간의 강제노동으로 인해 그의 손가락은 물집이 잡혀 피가 났고 손톱은 피가 맺혀 시퍼렇게 변했다. 등기구 다리를 조금만 비틀어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느껴졌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감방 우두머리에게 폭력적인 위협을 받았다. 왕샤오핑은 39일 동안 부당하게 감금됐고, 출소할 때 3000위안의 보증금(이후 몰수됨)까지 강제로 납부해야 했다.
4. 반복되는 납치와 세뇌: 체계적인 정신적 박해
2001년 말, 공안분국 국장 리즈창(李志强), 지도원 리추난(李楚南)이 갑자기 왕샤오핑의 사무실에 들이닥쳐 그를 천저우시 세뇌반으로 강제 압송해 30여 일간 부당하게 감금했으며, 해당 월 급여를 삭감했다. 세뇌반에서 그는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받았고, 보안 요원에게 폭력적인 위협을 당했다. 당시 파룬궁수련자들은 각자 독방에 감금돼 강제 전향을 당했으며, 순응하지 않으면 보안 요원에게 폭행을 당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 현 610 주임 후윈궈 등은 다시 그를 직장에서 납치해 천저우시 베이후(北湖)구 세뇌반으로 보냈다. 들어가자마자 그곳 610에서 고용한 보안 요원에게 의도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보안 요원이 그에게 집에 전화를 걸면서 자신들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자, 왕샤오핑이 한마디 해명했는데 그 즉시 4~5명에게 침대에 눌려 집단 구타를 당해 온몸 곳곳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시 610 책임자 펑관화(彭冠華)는 옆방에 있었으나 모른 척했다.
현 610 직원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천저우에서 세뇌반을 열 때마다 왕샤오핑을 강제로 참여하게 했다.
2011년 6월 22일 오전, 천저우 구이양현 610 부주임 후윈궈 등은 출근 중이던 왕샤오핑을 납치해 천저우 세뇌반으로 보냈다.
2011년 10월 천저우의 소위 ‘법제 학습반’에서도 왕샤오핑을 납치해 강제로 들여보냈는데, 후윈궈는 외부에 이는 상부의 명령이라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수년간 매번 소위 ‘민감한 날’마다 현 610사무실은 그를 괴롭히고 심문했으며, 심지어 여러 차례 부당하게 가택수색을 했다.
5. 2012년: 창사시 라오다오허 세뇌반으로 압송돼
2012년 10월 24일 아침 7시 반, 구이양현 610 우두머리 후윈궈는 현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바오산 파출소 및 기관 보안부 직원을 끌어모아 왕샤오핑을 직장에서 창사(長沙)시 라오다오허(撈刀河) 세뇌반으로 강제 압송해 30여 일간 부당하게 감금했다. 그동안 그는 죄수 취급을 받으며 심문과 모욕을 당했고, 협조하지 않으면 벌을 서거나 뺨을 맞고 돌돌 만 책으로 머리를 맞았으며, 파룬궁을 모함하는 CD를 강제로 시청해야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세뇌반은 하이난, 후베이 등지의 소위 ‘세뇌 고수’들로 구성됐는데, 그들은 “수련자 한 명을 성공적으로 전향시키면 고액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며 꽤 높은 급여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극도로 악착같이 굴었고 그 수법은 교묘하고 음험했다.
6. 장기적인 괴롭힘과 가정 파괴
20여 년 동안 왕샤오핑은 610사무실의 지속적인 감시하에 명절과 ‘민감한 날’마다 강제 면담을 당했으며, 그의 가족과 아이들은 장기간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견뎌야 했다.
7. 배경 데이터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최소 124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박해로 사망하거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751명이 부당한 판결을 받았으며, 최소 4803명이 납치 및 괴롭힘을 당했다. 그중 납치는 2348명, 괴롭힘은 2455명에 달했다. 이 밖에도 1306명이 부당한 가택수색을 당했고, 34명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이 신세가 됐으며, 70명이 세뇌반에 감금됐고, 101명이 강제 채혈 등의 방식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당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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