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베이성 파룬궁수련자 상스잉이 생전에 겪은 박해

[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허베이성 탕산(唐山)시 파룬궁수련자 상스잉(尙世瑩)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탕산 안캉(安康) 병원에 납치돼 독주사를 맞은 적이 있으며, 이후 또 부당하게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허베이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겪은 이후 음식 섭취와 수면이 심각하게 불규칙하게 됐고, 몸이 야위었으며 팔다리에 힘이 없었다. 그녀는 연금을 박탈당했고 수년간 지속적으로 현지 파출소의 괴롭힘을 받았으며, 건강 상태가 갈수록 악화돼 2026년 9월 27일 65세를 일기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상스잉

상스잉은 전 탕산시 노동자병원 간호사였다. 그녀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기 전에 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자주 혼수상태에 빠져 인사불성이 됐으나, 1995년 파룬궁 수련 이후 건강을 회복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 상스잉은 탕산시 노동자병원에 5~6차례 부당하게 감금돼 강제로 풀을 뽑고 햇볕을 쬐는 등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 기간에 상스잉은 임금과 상여금을 공제당했고, 행정 감봉 처분도 받아 임금 인상이 한 단계 보류됐다.

안캉 병원에서 정체 불명 약물 주사 맞아

1999년 9월 11일, 상스잉의 시아버지가 심장병이 발작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노동자병원은 상스잉이 집에 돌아가 조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번은 상스잉이 같은 기관의 다른 파룬궁수련자 한 명과 함께 병원 회의실로 속아서 갔는데,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원만’, ‘승천’ 등 기이한 질문을 몇 가지 하자, 상스잉은 즉각 그 질문을 한 사람이 정신병원 의사이고 또 한 사람은 본원의 심리치료사 진잉아이(金英愛)라는 것을 눈치챘다. 상스잉은 “저는 정신 장애와 심리 장애가 없으니, 당신들이 공정하게 처리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후, 병원 서기 룽구이성(榮貴勝)은 지하실에서 그녀들 두 사람에게 “당신들은 정신 장애로 진단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박해가 발생한 이후, 상스잉이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하고 뛰어나게 해도 여전히 차별을 받았다. 설령 동료들에게 ‘우수 노동자’로 추천받더라도, 병원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이를 취소했다. 나중에는 부서에서 아예 우수 직원을 뽑지 않고, 부서 책임자가 직접 지정했다. 서기는 일찍이 그녀에게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우수 직원은 당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원장 판공실 주임 류쑤팡(劉素芳)은 상스잉에게 “당신은 공산당에 반대하면서 임금이 오르길 바랍니까?! 여전히 우수 직원이 되고 싶습니까?!”라고 말했다.

2000년 10월 25일, 상스잉이 공급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부서 서기 쑨즈강(孫志剛)에게 속아 보위과로 가서 ‘조서 작성’을 한 뒤, 지하실에 만 하루 동안 감금됐다. 다음 날, 원장 리칭밍(李慶明)의 허가를 받은 보위과에 의해 탕산시 제1 구치소로 납치돼 독방에 갇히고, 족쇄를 차고 쇠의자에 앉았으며 대소변을 볼 권리를 박탈당했다.

당시 상스잉은 단식으로 항의해 탕산 안캉 병원(마약중독치료소)으로 이송돼 박해를 받았다. 상스잉은 안캉 병원에서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 맞았는데, 주사를 맞은 후 너무 고통스러워 눈빛이 멍해지고,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으며, 혀뿌리가 굳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납치 및 감금돼, 부당하게 3년형 선고받아

2008년 10월 12일, 상스잉은 탕산시 루베이(路北) 분국 순찰경찰에게 납치돼 두 차례 부당한 가택수색을 당했고, 루베이구 댜오위타이(釣魚臺) 파출소에 감금됐다.

2009년 여름, 상스잉의 온 가족이 함께 베이다이허(北戴河)로 며칠간 휴가를 가고자 했다. 상스잉은 매년 15일의 연차 휴가가 있었지만, 수간호사 리훙옌(李鴻雁)은 고의로 허락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왜 그녀를 가두지 않는 거지?!”라고까지 말했다. 그로 인해 나중에 상스잉의 어머니가 대퇴골두 치환 수술을 받을 때, 상스잉은 차마 하루 휴가를 내어 어머니를 간호하겠다고 입을 떼지 못했다. 그저 밤새 어머니를 간호한 뒤, 다음 날 낮에 평소처럼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1월 14일 오후, 상스잉은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자와 차를 몰고 외출해 진상을 알리다가, 탕산시 펑난(豊南) 구치소로 납치됐다. 1월 15일 밤, 구치소 소장 장바오차이(張寶才)는 발로 세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맹렬히 걷어찼고, 이어 상스잉의 뺨을 한 대 때렸으며, 그녀의 얼굴은 그 자리에서 부어올랐다. 이어서 장바오차이가 계속 상스잉을 쫓아가 발로 차려 하자, 정의감 있는 경찰 한 명이 이를 가로막았고, 그 결과 이 경찰은 왼쪽 눈과 얼굴을 잘못 맞아 다치고 말았다.

같은 해 6월과 8월, 탕산시 루베이구 법원은 상스잉에 대해 두 차례 부당하게 재판을 열었는데, 그중 두 번째는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채 비밀 재판을 열어 그녀에게 부당하게 3년형을 선고했다. 상스잉은 법에 따라 항소했지만, 그녀의 항소장은 펑난 구치소에서 경찰에게 찢기고 말았다. 9월 13일 가족이 루베이 법원에 가서 문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상스잉이 이미 부당한 판결을 받았음을 알게 됐고, 이후 그녀는 허베이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허베이성 여자감옥서 잔인한 고문 당해

상스잉은 일찍이 허베이성 여자감옥 13감구에 부당하게 감금된 적이 있는데, 이곳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이른바 ‘엄격 관리 감구’였다. 감옥경찰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자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벌을 세웠으며, 심지어 죄수를 사주해 파룬궁수련자를 구타하게 했다. 상스잉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아 매일 아침 식사 시간부터 밤 12시까지 장장 18시간 반 동안 줄곧 벌을 섰고, 조금이라도 복종하지 않거나 저항하면 악질 경찰의 구타, 질책, 욕설, 협박을 당했다. 하루 종일 서 있으면 두 다리와 양발이 막대기처럼 뻣뻣해지고 부어올랐으며, 허리와 등이 쑤시고 아프며 어지러웠다. 아울러 감옥 측은 줄곧 상스잉 가족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상스잉 가족은 몇 차례 우여곡절 끝에야 비로소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그녀는 누렇게 뜬 얼굴에 비쩍 마르고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으며, (장기간 벌을 서서) 두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가족은 즉시 감구 감옥경찰에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됐습니까? 그동안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2012년 3월 16일 오전, 허베이성 여자감옥 옥정과의 안경을 쓴 체구가 작은 남자 경찰이 흰 가운을 입은 청년 세 명을 데리고 와서, 전염병 검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각 사람에게 쪽지를 한 장씩 나눠주었는데, 그 위에는 성명, 연령, 죄명 및 가정의 상세 주소가 적혀 있었고 쪽지 맨 앞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 의사들은 채혈을 하지 않고 굵은 바늘로 각 사람의 손가락 끝을 한 번씩 찌른 뒤, 피를 미리 준비해 둔 물건에 묻히고 나서 성명, 죄명, 집 주소를 붙였다.

의료 종사자인 상스잉은 즉시 경계했다. 에이즈나 간염 검사는 정맥 채혈이 필요하고, 폐결핵 검사는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하며, 손가락 끝 채혈은 혈액형 검사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상스잉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 단정하고, 채혈하려고 줄을 서지 않았으며 쪽지를 찢어버렸다. 지도원 쿵샤오페이(孔瀟飛)는 한 무리의 죄수들을 시켜 상스잉을 작업장 사무실로 끌고 가 강제로 채혈하게 했다. 흰 가운을 입은 두 청년이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꺾어 강제로 채혈했는데, 상스잉의 손가락이 거의 부러질 뻔하고 나서야 강제로 피를 뽑았다. 상스잉이 감방으로 들려 돌아간 후, 쿵샤오페이는 죄수들에게 상스잉을 감시하라고 명령했고, 상스잉이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가족과 통화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악질 경찰들은 “전향하지 않으면 죽거나 미치게 될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2013년 1월 14일, 상스잉은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때 그녀는 이미 신체가 허약해질 대로 박해를 받아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연금을 박탈당했으며, 수년간 끊임없는 괴롭힘 겪어

조금 휴식을 취한 후, 그녀는 2013년 4월 15일 병원(탕산시 노동자병원)에 가서 책임자와 복직 문제를 협상했다. 병원 책임자들은 위아래로 책임을 떠넘기며 해결해주지 않았고, 서기 왕춘제(王春傑)는 “우리가 힘들게 당신을 내보냈는데, 또 당신을 데려오라고요?! 당신을 출근시키면 우리는 또 사람을 시켜 당신을 감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탕산시 노동자병원은 그녀의 일할 권리를 박탈했고, 구두로 해고를 통보할 뿐 아무런 절차도 없었다. 당시 53세였던 상스잉은 병원을 위해 25년간 일했지만, 그때부터 정상적인 직업과 경제적 수입원을 잃었다. 상스잉은 탕산시 청원국, 총공회, 노동중재위원회 및 위생국을 방문해 자신의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문의했으나, 이들 기관은 모두 병원에 가서 알아봐야 하며 인사 관계가 있는 기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탕산시 노동자병원은 이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8년, 상스잉은 십여 일 앞당겨 3월 1일 자 기차표를 사놓고 베이징에 가서 친척과 함께 정월 대보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2월 28일 소속 주민위원회 책임자에게 ‘양회’를 이유로 베이징 진입이 금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8년 6월 26일 밤 9시가 넘었을 때, 루베이구 댜오위타이 파출소 직원들이 문을 두드리며 상스잉을 괴롭혔고,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스잉을 촬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4년 8월 14일 오후 2시가 넘어, 댜오위타이 파출소의 남녀 경찰 두 명이 다시 상스잉을 괴롭혔는데, 여자 경찰은 몰래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고, 남자 경찰은 말로 상스잉의 파룬궁에 대한 태도를 떠보았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현지 파출소의 괴롭힘을 당하고, 연금을 박탈당해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상스잉의 건강 상태는 갈수록 악화돼 결국 2026년 9월 27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허베이성에서 중공의 각종 박해를 당한 파룬궁수련자는 최소 506명(연인원, 이하 동일)이었고, 그중 4명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12명이 부당하게 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30명이 사법적 모함을 당했고, 116명이 납치됐으며, 최소 42명이 부당한 가택수색을 당했고, 최소 314명이 괴롭힘을 당했다. 경제적 박해를 당한 사람은 13명이었고, 갈취당한 금액은 최소 7만 6천 위안(약 1400만 원)에 달했다. 6월 9일 밤부터 11일까지 탕산시 구예(古冶)구 공안 분국과 관할 파출소 경찰은 갑자기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하고, 가택수색을 해 수련자들의 대량의 개인 물품을 빼앗아 갔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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