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2026년 6월 9일 한밤중, 허베이성 탕산(唐山)시 구예(古冶)구에 사는 63세 장슈쥐안(張秀娟)은 집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고요한 밤에 다급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장슈쥐안은 즉시 문을 열지 않았지만, 두드리는 소리가 갈수록 거세지자 그녀는 이웃의 휴식에 방해가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경찰복과 사복 차림의 여러 직원이 곧바로 집 안으로 난입해 이른바 ‘수색 영장’을 흔들어 보인 뒤 가택수색을 시작했다.
경찰은 집에서 20여 권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서적과 2천여 위안의 현금을 강탈하고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갔다. 지금까지 장슈쥐안은 탕산시 제1 구치소에 1개월 넘게 감금돼 있다.
같은 시간, 탕산시 구예구의 20명에 가까운 파룬궁수련자와 가족도 납치나 괴롭힘을 당했다(자세한 내용은 명혜망 보도 ‘탕산시 구예구 20명에 가까운 파룬궁수련자 및 가족 납치돼’ 참조).
장슈쥐안은 허베이성 탕산시 구예구 사람으로 탕산시 면방직 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였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해 가정 관계가 화목했다. 그녀의 남편은 뇌출혈로 중환자실(ICU)에 입원한 적이 있으며, 퇴원 후 장기간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장슈쥐안이 씻기고 돌보는 등 모든 뒷바라지를 도맡아 매우 수고로웠다.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그녀에게 의지해 생활해야 한다.
그러나 파룬따파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장슈쥐안은 지난 20여 년간 중국공산당(중공) 경찰에게 여러 차례 납치, 가택수색, 불법 감금 및 구타를 당했다. 다음은 그녀가 겪은 주요 박해 사실이다.
1. 두 차례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가 납치, 구타, 고문을 당함
1999년 7월 21일, 장슈쥐안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며 그저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부서에 10여 일간 불법적으로 감금됐다. 같은 해 9월과 2000년 2월, 그녀는 또 각각 1개월 넘게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1천여 위안의 벌금을 갈취당했다.
2000년 4월 24일, 그녀는 다시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다가 베이징 공안에 의해 탕산 베이징 주재 사무소로 끌려갔다. 심문실에서 베이징 주재 사무소 처장은 그녀의 뺨을 세게 두 대 때렸고, 그녀를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수갑으로 채웠다. 당일 밤 구예구 구치소로 이송됐다.
다음 날, 구예구 시신러우(西新樓) 파출소 지도원 왕궈훙(王國宏)은 심문실에서 그녀의 뺨을 연속으로 8~9대 때렸다. 오후에 부서 보안과 직원이 그녀를 공장으로 데려갔고, 부과장은 다시 그녀의 뺨을 세게 두 대 때린 뒤 그녀를 침대에 수갑으로 채웠다. 이튿날, 그녀는 탕산시 제1 구치소로 이송됐다. 과장 왕위허(王玉和)는 수감자에게 지시해 그녀에게 두 번이나 족쇄를 채웠는데, 그중 한 번은 수갑과 족쇄를 동시에 채우고 5일 연속 먹거나 마시지 못하게 했다.
2000년 9월 17일, 장슈쥐안은 공장 보안과에 의해 허베이성 제1 노동수용소(카이핑 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 노동수용소 경찰 두(杜) 씨는 수련자들의 연공을 막기 위해 흰 붕대로 그녀들의 손발을 모두 묶었고, 대법 경문을 수색한다며 수련자들에게 강제로 옷을 벗게 했다. 장슈쥐안은 모욕에 항의하며 11일간 단식했다. 2000년 10월 27일 그녀는 병보석으로 집에 돌아왔다.
2. 거리에서 잡혀가 구타, 전기충격을 당하고 다시 노동수용소로 이송돼
2001년 7월 6일 밤 9시가 넘었을 때, 장슈쥐안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구예구 시자타오(習家套) 파출소 경찰이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캐묻고는 그녀가 ‘전단지를 붙였다’고 지적하며 파출소로 가자고 요구했다. 그녀가 거절하자, 경찰은 전기봉으로 그녀의 머리를 전기 충격했다. 곧이어 또 다른 남자가 가세해 두 사람은 그녀를 때려눕히고 경찰차를 불렀다. 6~7명의 경찰이 그녀를 차에 실어 파출소로 데려갔다.
부소장 리바오톈(李保田)은 그녀의 뺨을 10여 대 때리고 쇠창살 안에 가둔 뒤, 모기약을 뿌리고 문을 잠갔다. 3~4시간 뒤, 구예구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과장 류정(劉崢)이 또 그녀의 뺨을 두 대 때리고 하룻밤 동안 수갑을 채웠다.
다음 날, 그녀는 구예구 구치소로 이송됐다. 여경 왕레이(王磊)는 고무호스로 10여 분간 그녀를 채찍질해 그녀의 오른쪽 다리 전체가 멍들게 했으며, 보름이 지나서야 호전됐다. 왕레이는 또 수감자 류옌(柳豔)에게 지시해 그녀를 구타하게 했고, 이로 인해 그녀는 5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다.
7월 13일, 류정의 지휘하에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수갑이 채워진 채 반나절 동안 조리돌림을 당했다.
2001년 10월 15일, 그녀는 다시 허베이성 제1 노동수용소로 이송돼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속임수 등 강제 전향 수법에 시달렸다. 2002년 4월 2일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3. 집안에 난입해 납치당하고, 세뇌반에서 10개월간 고문당해
2002년 11월 2일, 탕산시 공안국, 610, 구예구 공안국 및 방직 공장 등 10여 명이 그녀의 집에 난입했다. 5~6명의 건장한 남자가 그녀가 생명의 위험에 처할 때까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으며, 남편이 “사람이 다 죽어가잖아!”라고 호통치자 폭력배들은 그제야 손을 멈췄다.
경찰은 “상황을 확인해야 해”라고 거짓말하며 그녀에게 동행을 요구했고, 그녀가 거절하자 10여 명에 의해 강제로 차에 실려 갔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죄가 없습니다! 여러분, 저들이 좋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십시오!”
장슈쥐안은 구예구 린시(林西) 파출소로 이송됐다. 탕산시 공안처 처장 류(劉) 씨는 그녀의 뺨을 10여 대 때렸고, 이로 인해 콧대가 시퍼렇게 멍들고 왼쪽 얼굴이 퉁퉁 부어 터졌다. 그녀는 쇠의자에 수갑이 채워졌고, 두 손은 쇠의자에 잠겼으며, 경찰은 수동식 전기봉의 전선을 그녀의 두 새끼손가락에 감고 찢어진 베갯잇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은 채 전기봉으로 반복해서 전기 충격했다. 전기가 통할 때마다 그녀는 온몸에서 땀을 흘렸고, 비명이 실내를 진동했다. 경찰은 옆에서 크게 웃으며 조롱했다. 세 명씩 한 조로 교대하며 이틀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기절할 때까지 고문당했고, 머리카락은 밟혀서 많이 빠졌으며, 손가락은 전기에 타서 터졌고 손발은 전부 부어올랐다.
11월 4일 밤, 그녀는 린둥(林東) 파출소로 이송됐고, 11월 6일, 공장 보안과는 그녀를 일명 ‘샤오바이러우(小白樓)’로 불리는 탕산시 ‘법제학교(방직대학 세뇌반)’로 이송했다.
이 세뇌반은 610 조직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검은 소굴로,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고 독방에 격리되며 가족 면회가 금지됐다. 타협하지 않는 자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 배신자들의 포위 공격, 잠 안 재우기, 고음 스피커 고문이 가해졌다. 납치된 자는 반드시 먼저 2천 위안을 내야 했고, 신앙을 고수하는 자의 임금은 소속 기관에서 매달 세뇌반으로 보냈다. 단식하는 자는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고, 위독한 자는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은 뒤 계속 박해받았다.
장슈쥐안은 협조를 거부하고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지 않았다. 2003년 4월 14일, 왕즈제(王志傑)와 멍톄린(孟鐵林)은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갔고, 왕즈제는 구두발로 그녀를 5~6회 걷어차고 머리를 강타했다. 그녀는 시청각실로 옮겨졌고 멍톄린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뺨을 두 대 때렸다.
2003년 9월 14일, 전향을 거부하자 왕즈제와 장야닝(張亞寧)은 그녀를 방 밖으로 밀어냈다. 면담실에서 장야닝은 그녀의 뺨을 7~8대 세게 때려 입이 두 군데나 찢어지고 피가 나게 했으며, 그녀는 이틀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들은 또 잠을 못 자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향을 강요했다. 이 기간 부서는 그녀의 10개월 치 해고 수당 3천 위안 가까이를 지급하지 않았다.
4. 쫓겨나 떠돌아다니던 중 첸안에서 다시 납치돼 중상 입어
2008년 2월 20일 정오, 신원미상의 경찰차 4대가 그녀의 집에 와서 가택수색을 벌여 컴퓨터, 프린터, 작두 등의 물품을 몰수해 갔다. 당시 외출 중이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아다녀야 했다.
2010년 8월 28일, 그녀는 다른 파룬궁수련자 한 명과 첸안(遷安)시 타이핑좡(太平莊) 시장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타이핑좡향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이 두 사람을 질질 끌고 파출소로 끌고 가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장슈쥐안은 첸안시 농업집법대대(전 종자공사) 구내 세뇌반 4층에 감금됐다. 8월 29일 새벽 1시가 넘었을 때, 그녀는 4층에서 떨어져 골반과 대퇴골을 심하게 다쳐 첸안시 인민병원 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녀의 입과 눈은 퉁퉁 부었고 치아는 빠졌으며 팔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8월 30일, 딸이 첸안으로 달려와 경찰에게 따져 물었다.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되셨어요?” 경찰은 거짓말을 했다. “그 여자가 스스로 떨어진 거야.” 딸이 반문했다. “당신들이 우리 엄마를 어떻게 대했길래요? 엄마가 왜 옥상에서 떨어지셨겠어요?”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5. 시장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다시 납치돼
2016년 6월 6일, 장슈쥐안은 시장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양류좡(楊柳莊) 파출소에 납치돼 롼(灤)현 공안국으로 넘겨졌다가 이후 석방됐다.
맺음말
지난 20여 년 동안 장슈쥐안은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견지했지만, 지속해서 중공 관계자에게 불법 구금, 구타, 전기 충격, 세뇌, 경제적 갈취 및 장기적인 정신적 고문을 당해 가정 생활에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 60세가 넘은 그녀는 다시 한 달 넘게 불법적으로 감금돼 가족과 본인이 또다시 심각한 생활 위기에 빠졌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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