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성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쑨슈화가 겪은 잔인한 박해

[명혜망](지린성 통신원) 지린성 수란시 바이치진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자 쑨슈화(孫秀華)는 본래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결혼식 사회 업무를 하며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따파에 대한 27년간의 박해는 이 단란했던 가정을 완전히 파괴했다. 풍족했던 가세는 빈궁해졌고, 그녀 자신은 납치, 가택수색, 구타, 불법 노동수용소 수감, 불법 징역형 등 장기적인 박해를 받으며 정신과 신체가 반복해서 짓밟혔다. 결국 쑨슈화는 2026년 3월 상순 억울함을 품은 채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쑨슈화가 생전에 폭로한 지린성 여자 노동수용소에서의 비인간적인 박해 내용이다.

내 이름은 쑨슈화이고 여자이며 1962년생이다. 지린성 수란시 바이치진 바오안촌 제2사의 주민이다. 1999년 9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연공 중 납치돼 현지 수란 구류소로 압송됐으나 담을 넘어 탈출했다. 이후 다시 베이징으로 향하던 중 지린 기차역에서 납치돼 수란 구치소에 수감됐고 1년 노동수용소 처분을 받았다. 창춘 헤이쭈이쯔 여자 노동수용소로 이송됐는데, 방금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4층으로 보내졌으며 그곳을 4대대 또는 신생대라고 불렀다.

노동수용소에 도착하자 병원에서 각종 촬영, 채혈, 소변 검사 등 전신 검사를 했다. 4대대 사무실에 도착하니 마약 복용자나 성매매 종사자 같은 다른 수용자들이 다가왔다. 그들이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나와 수련자에게 강제로 허리를 굽히게 했다. 당시 나는 그것이 수련이라 생각하고 고분고분하게 아주 오랜 시간 허리를 굽히고 참았다. 그 후에야 감방 구역으로 보내져 침상을 배정받았다.

사악한 환경 속에서는 파룬따파 수련자의 대화가 금지됐기에 나는 틈을 보아 수련자에게 말을 걸었다. 수련자는 며칠 전 들어온 수련자가 연공으로 법을 실증하다가 사악한 자들에게 전기봉 등 고문 박해를 당했다고 알려주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감히 연공을 하지 못했다. 복도에는 감시 카메라가 가득했고, 형사범들은 우리가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보고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포륜 동작으로 법을 실증했다. 그러자 복도 감시병이 나를 5층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두 명의 형사범이 나를 때리고 발로 찼으며, 팔을 휘둘러 내 뺨을 때려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깨어났을 때 그녀들은 양옆에 서서 나를 이리저리 발로 찼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맞고 다시 기절했다. 언제 깨어났는지 모르겠으나, 그녀들은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일으켜 세워 다시 4층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코, 배, 발끝이 벽에 닿도록 면벽을 강요했다.

그 이후로 내가 연공만 하면 수련자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을 나선 이상 반드시 대법을 실증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결심했기에 매일 법을 외우고 연공했다. 내가 확고한 모습을 보이자 4대대 중앙 홀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법을 외우고 연공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수련자들의 정념도 올라갔다. 어느 날 중앙 홀 모임에서 한 노년 수련자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며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인 ‘논어’를 먼저 외우라고 했다. 내가 큰 소리로 ‘논어’를 낭독하자 이 감방의 수련자들이 모두 따라 외웠다. 죄수들은 당황하여 즉시 간수실에 보고했다.

모든 감옥경찰과 3명의 대대장이 전기봉을 들고 나타났으며, 파룬궁 박해 주동자인 장위메이, 생산 주관자 리샤오화, 총 관리자인 관 씨 대대장이 살기등등하게 중앙 홀로 들어왔다. 4대대는 형사범 몇 명을 제외하고 수십 명의 인원이 모두 파룬따파 수련자였기에 거의 모두가 외우고 있었다. 관 대대장이 “누가 시작했느냐?”라고 묻자 나는 즉시 손을 들고 나라고 말했다. 평소 나는 항상 맨 앞에 서 있었지만, 이날 리샤오화 대대장은 판자로 나를 밀쳐내며 네가 아니라고 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여러 수련자가 손을 들며 다들 자기라고 말했다. 결국 손을 든 수련자들은 간수실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신발을 벗긴 채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해 모두가 이리저리 쓰러졌다.

또 한번의 중앙 홀 모임에서 내가 즉시 포륜을 하자 수련자들도 따라 했다. 장 대대장은 우리를 복도로 보내 면벽하게 했다. 수십 명이 복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자 장 대대장은 전기봉으로 우리의 손을 지졌다. 전기가 다 닳자 금계독립(金鷄獨立, 한 발로 서는 자세) 자세를 시키고 두 팔은 등 뒤로 올리게 했다. 그런 뒤 그녀는 형사범들에게 감시를 맡기고 떠났다. 누구든 발이 땅에 닿으면 판자로 손가락, 손등, 머리를 때렸다. 시간이 지나자 많은 수련자가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땅에 부딪히며 쿵쿵 소리가 났다. 나중에 버티지 못하는 수련자가 있으면 장 대대장이 전기봉으로 머리, 얼굴, 손을 지졌고 끝까지 남은 이는 거의 없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우리를 감방으로 돌려보냈다.

한번은 몹시 추운 한겨울에 연공을 한다는 이유로 리샤오화가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세면장으로 끌고 가 얼음장 같은 물을 머리에 부었다. 그리고 옷을 다 벗게 한 뒤 맞은편 창문을 열어놓고 허리를 굽히게 했다. 날이 밝아 출근 시간이 되어서야 감방으로 보내주었다. 감옥경찰이 출근하자 밤새 화장실을 못 갔으니 보내달라고 했지만, 관 대대장은 우리 감방 사람들을 모두 불러 식당 청소를 시켰다. 정오가 되어 유리창을 다 닦았을 때 나는 이미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이 퉁퉁 부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감방 입구에서도 들여보내 주지 않고 관 대대장이 다시 나를 사무실로 불러 문초했다. ‘4·25’는 어찌 된 일이냐 묻고 사부님을 모욕했다.

나는 묵묵히 사부님 가호를 청하며 차분하게 진상을 알렸다. 관 대대장은 내가 차분한 것을 보고 마성이 발동해 전기봉으로 내 하복부를 지졌다. 그 충격으로 소변이 나오지 않게 됐다. 이어 그녀는 내 은밀한 부위, 겨드랑이, 양 손바닥, 얼굴, 목을 전기봉으로 지졌다. 분풀이를 마친 그녀가 저쪽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으라고 하자, 그 자세에서 다시 소변이 흘러나왔다. 옷을 벗긴 채 전기로 지져 사부님께 구해 주시기를 청하자 복도에서 두 명의 남자가 말하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옷을 입을 겨를도 없이 그녀는 나를 감방으로 뛰어 돌아가게 했다. 점심 배식 시간에야 화장실에 갔으나 이미 소변을 볼 수 없었고 감각도 없었다. 나는 통곡하며 모든 감방 사람이 그들의 사악한 박해 정도를 알게 했고, 대대장 세 명이 오더니 그녀들도 조금 겁을 먹은 듯했다.

관 대대장에게 전기봉으로 지져진 부위, 특히 목과 얼굴이 부어올랐다. 고개를 돌릴 때 온몸이 같이 돌아갈 정도로 목과 얼굴이 딱딱하게 부었다. 부기가 빠질 때쯤 얼굴과 온몸의 물집이 터져 고름과 피가 흘렀다. 옷에 달라붙었다가 떼어지거나 스칠 때면 정말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었다!

1999년 섣달그믐날 밤, 우리 8명의 수련자는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렸다. 중앙 홀 모임 때 우리 8명은 앞줄 바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기로 약속했고 다른 모든 수련자는 의자에 앉았다. 시간이 되자 우리 8명은 매우 빠르게 동시에 가부좌를 했고 다른 수련자들도 이를 보고 따라 했다. 섣달그믐이라 감옥경찰이 적어 그녀들은 관리과에 보고했다.

롄 과장이 간부 몇 명을 데리고 4대대로 와서 우리를 앉혔는데, 자연히 우리 8명이 맨 앞줄에 앉았고 나는 왼쪽에서 첫 번째였다. 그녀들은 각자 전기봉을 들고 내 얼굴과 팔을 지졌다. 전기봉 소리가 요란했고 앞줄 수련자들의 얼굴과 팔에는 핏자국이 흐르다 검게 굳었다. 롄 과장이 연공한 사람 다 일어나라고 하자 연공하지 않은 수련자들도 정념이 올라와 함께 일어났다. 자기도 연공했다고 말한 사람이 총 27명이었는데, 나머지 인원은 감방으로 보내고 연공한 사람들은 중앙 홀에 계속 앉아 있게 했다.

악독한 경찰은 허리를 곧게 펴고 엉덩이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으며,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기울이지 못하게 강요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몽둥이찜질을 하거나 판자로 머리, 얼굴, 손등, 손가락을 때리고 두꺼운 장부 겉표지로 온몸을 때렸다. 이 기간 수련자들이 정신적, 육체적 박해를 견디다 보니 5일째 되는 날에는 5명만 남았다. 악독한 경찰들은 우리 5명을 구석으로 데려가 한 명씩 앉혔다. 당시 나만 정신이 있었고 나머지 4명은 이미 고문으로 혼미한 상태였다. 이때 죄수가 수련자를 때릴 때마다 신음만 낼 뿐 눈도 뜨지 못하고 혼미한 상태로 형사범에게 임의로 매질을 당했다. 나중에 관리과장이 와서 우리를 해산시키고 방으로 가서 자게 했다.

노동수용소는 나를 어쩌지 못했다. 전기봉으로 지져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작은 전기봉을 내 입안에 넣고 지지며 계속할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한다! 매일 한다!”라고 대답했다. 발음은 부정확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어떤 형식으로 박해해도 나는 결코 안색이 변하지 않았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대답했고 원한도 없었다. 그녀들은 속으로 매우 감탄했다. 해산할 때 나는 보내지 않았다. 장위메이 대대장이 나에게 “쑨슈화, 왜 너를 안 보냈는지 아느냐?”라고 묻기에 모른다고 답했다. 사실 그녀들은 나를 아주 좋아했다. 매일 나를 대대 세면장에 남겼는데 그 안에는 작은 방 두 개와 창고가 있었다. 작은 방 안에 좌식 책상을 놓아주고 나를 격리해 식사와 잠잘 때만 나가게 했다. 평소에 나는 마음껏 연공하고 법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재봉사였기에 감옥경찰들의 개인적인 옷 수선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들이 나를 남겨둔 것이었다.

한번은 다른 대대의 감옥경찰이 수련자 몇 명을 데리고 의무실로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은 주로 음식물 강제 주입 박해를 하는 곳이었다. 점심 배식 때 내가 속한 소대 수련자들이 단식으로 항의 했다. 이틀 만에 4소대 대장은 우리를 의무실로 데려가 수련자들의 단식 항의를 지속하지 못하게 했다. 의무실에 가니 그녀들이 우리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생옥수수 가루와 소금물을 섞은 것을 강제로 들이부었다. 당시에 나는 음식 주입을 거부하며 숨을 참았는데, 옥수수 가루 혼합물이 코로 뿜어져 나와 하마터면 질식사할 뻔했다. 이에 그녀들이 깜짝 놀랐고 다른 수련자들에 대한 박해도 중단돼 감방으로 돌아갔다.

섣달그믐 밤에 연공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노동수용소에서 3개월의 추가 구금 박해를 받았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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