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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첸시현 파룬궁 수련자 왕즈신, 불법 재판받아

[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2025년 10월 14일 오전, 탕산(唐山)시 첸시(遷西)현의 43세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왕즈신(王志新)은 첸시현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왕즈신은 탕산시 제1 구치소에서 이송될 때 수갑과 발목 족쇄가 채워져 있었으며, 재판 개정 전 족쇄를 풀려 했으나 10여 분이 지나도 풀리지 않아 법원 경찰이 소방관을 불러 큰 펜치로 발목 족쇄를 잘라냈다. 재판은 비밀리에 진행됐으며, 정오 12시경 재판이 끝났으나 판결은 선고되지 않았다.

왕즈신은 13년간 유랑생활을 하다가 2025년 7월 16일 탕산시 차오페이뎬(曹妃甸)구에서 납치됐고, 9월 11일 첸시현 검찰원에 의해 ‘국가기밀 누설죄’ 혐의로 첸시현 법원에 불법 기소됐다. ‘국가기밀’이란 상하이(上海) 세계박람회 개최 직전인 2010년 4월 22일, 해외 명혜망이 폭로한 ‘610 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이 상하이 세계박람회 때 파룬궁을 비방할 목적으로 작성한 ‘선전 요강’ 중 세 쪽과, 첸시현 610이 이를 근거로 작성한 문서의 명칭을 가리킨다. 사실 당시 첸시현 공안국 부국장 둥쥔뱌오(董君彪) 및 각 향진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이 문서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 내용이 기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문서에는 어떠한 기밀도 없었으며, 심지어 문서의 이름에 따라 “‘선전 요강’은 선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욱 널리 전파될수록 문서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왕즈신은 단지 대학생 신분으로 마을 간부로 일했을 뿐 정식 직제는 없었으며, 업무 능력이 뛰어나 지도자의 신임을 받아 사무실 주임직을 맡게 된 것이다.

왕즈신은 1982년 2월 첸시현 둥롄화위안(東蓮花院)향 시루좡(西陸莊)촌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순박한 농민으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했다. 가족, 친지, 그리고 학교 친구와 스승의 눈에 그녀는 늘 똑똑하고 착하며 사리분별이 있는 아이였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받은 ‘우수 모범 학생’ 증서만 해도 한 무더기나 된다. 왕즈신은 2005년 허베이(河北) 이공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 시험을 거쳐 신좡쯔(新莊子)향 정부에 채용돼 일하게 됐다. 그녀는 늘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며 청렴하게 처신했고, 부당한 이익을 취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2년 연속 우수 표창을 받았으며, 이후 사무실 주임으로 승진했다.

2010년 4월 22일, 해외 명혜망은 ‘610 사무실’이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이용해 파룬궁을 비방하기 위해 작성한 ‘선전 요강’ 중 세 쪽과 첸시현 ‘610 사무실’이 이를 근거로 작성한 문서의 명칭을 폭로했다. 두 문서 모두 ‘기밀’로 표시돼 있었다. 문서는 당시 첸시현의 17개 향진에 이미 배포됐고, 전 현의 417개 마을에 배포될 예정이었다. ‘610 사무실’은 격분해 미친 듯이 보복을 시작했고, 성(省)과 시(市)에서는 여러 차례 ‘감독 지도조’를 첸시현에 파견해 압력을 가했다. 첸시현은 대량의 인력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사방을 교란하기 시작했으며, 이 두 문서에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을 불법적으로 심문하고 중복 조사했다. 또 파룬궁을 수련했던 수련자와 그 가족 구성원을 미친 듯이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으며, 직장에도 압력을 가했다.

2010년 5월, 짧은 며칠 사이에 10여 명이 불법적으로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5월 12일 새벽, 왕즈신과 그녀의 남편이 납치됐고 집은 엉망이 됐다. 왕즈신은 첸시현 공안국으로 끌려가 불법적으로 하룻밤 신문을 당했고, 첸시현 민정호텔로 옮겨져 낮부터 밤늦게까지 조사받았으며, 4일간 혹독한 신문을 당한 뒤 첸시현 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왕즈신은 8개월 반 동안 감금됐다가 2011년 1월 27일 ‘사실 불분명, 증거 부족’으로 ‘처분 보류’ 결정을 받았으며, 5천 위안의 보증금을 강제로 갈취당한 후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 전인 2012년 6월 7일, 첸시현 검찰원은 다시 그녀를 찾아가 새로운 진술서를 요구했고, 국보(國保·국내안전보위국) 대대도 그녀와 가족을 계속 괴롭혔다. 왕즈신의 남편 자오훙타오(趙洪濤)도 끊임없이 괴롭힘을 받았다.

자오훙타오는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제 아내를 찾기 위해 번번이 제 상사를 귀찮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 아이는 돌볼 사람이 없고, 노부모도 보살필 수 없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제 아내가 도대체 무슨 법을 어겼다고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겁니까?” 검찰원 부원장 한궈루(韓國如)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만나서 상황을 파악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위에서 이 사건을 주시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 후 왕즈신은 불법적인 ‘지명수배’를 당해 유랑생활을 하며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첸시현 공안국은 2019년 3월 1일, 2019년 6월, 2020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왕즈신을 ‘현상금 수배’했다. 현상금 수배지는 왕즈신의 집과 그녀의 어머니 집 대문 앞에 붙였고, 마을 확성기에서는 매일 여러 차례 현상금 수배 공고를 방송했다. 왕즈신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왕즈신을 내놓으라는 압력을 받았다.

시어머니 리춘셴(李春賢)은 압력에 시달리다가 2012년 봄 세상을 떠났으며, 자오훙타오는 2013년 인질로 불법적으로 납치돼 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 후 2019년 7월부터 2020년 4월까지 10개월 동안 직장에 나가지 못했다. 시아버지 자오쿠이샹(趙奎祥)은 2019년 4월 29일 불법 구류 11일을 당했으며, 어머니 마인춘(馬銀春)은 2019년 5월 2일 끊임없는 괴롭힘과 압력 속에서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모부 리루이친(李瑞芹)은 2019년 7월 18일 불법적으로 구류 11일을 당했다.

2025년 7월 16일, 왕즈신은 허베이성 탕산시 차오페이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차오페이뎬구 하이강(海港) 파출소에 납치돼 당일 첸시현 공안국으로 이송됐다. 첸시현 공안 경찰은 그녀에게 불법적인 위협과 신문을 가했으며, 자신들이 조작한 방향대로 자백을 강요했다. 7월 25일 첸시현 기율검사위원회는 왕즈신이 검거됐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으며, 9월 11일 첸시현 검찰원은 ‘국가기밀 누설죄’라는 죄명으로 그녀를 불법 기소했다.

왕즈신이 박해당한 더 자세한 상황은 ‘610이 가짜 기밀문서 조작, 첸시현 왕즈신 재판 직면’, ‘9년간의 청춘이 박해 속에서 흘러가’, ‘두 어머니 교란 속에서 사망, 세 가정 파괴돼’, ‘선량한 여성 8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찰은 다시 현상금 수배’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迁西县法院大门'
첸시현 법원 정문

 

​원문발표: 2025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19/5016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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