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남편과 남동생이 박해로 사망한 다칭시 수련자 쑹루이샹, 부당한 체포 승인돼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다칭(大慶)시 자오저우(肇州)현 파룬궁수련자 쑹루이샹(宋瑞香)이 2025년 9월 8일 자오위안(肇源)현 보허타이(薄荷台)향 시장에서 민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던 중 악인에게 고발돼 자오위안현 경찰에 납치됐고, 이후 다칭 제2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10월 14일,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해 구치소에서 쑹루이샹을 면회했는데, 그녀의 정신 상태가 매우 좋지 않고 혈압이 200mmHg 이상으로 높으며 심각한 폐기종 증상과 호흡 곤란이 있어 이미 거동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다칭시 랑후루(讓胡路) 검찰원은 쑹루이샹에게 체포 승인 처분을 내렸고 사건 기록을 다칭시 자오위안현 공안국으로 반송해 증거를 보충하라고 지시했다.

쑹루이샹은 올해 73세 전후이며, 그녀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전에 요추 디스크 세 마디, 위장병, 자궁근종 등 질병을 앓았는데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1998년, 쑹루이샹은 대법 수련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질병이 모두 감쪽같이 사라졌으며, 이후 그녀는 무병해 몸이 가벼워졌다.

1999년 7월 20일, 원흉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한 후 쑹루이샹은 여러 차례 납치, 감금됐고 불법 강제노동을 당하며 온갖 고통을 겪었다. 그녀의 남편, 딸, 남동생, 올케, 여동생 모두 파룬궁 수련으로 인해 박해를 당했고, 그중 남편 마시청(馬喜成)과 남동생 쑹루이이(宋瑞義)는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로 사망했다.

이하는 쑹루이샹이 중공 박해를 당한 사실과 가족 두 명이 박해로 사망한 사실에 대한 간략한 서술이다.

여러 차례 납치 및 노동수용소 감금 중 고문당한 쑹루이샹

2000년 1월, 쑹루이샹, 딸 마리리(馬麗麗), 남동생 쑹루이이 세 명이 베이징 청원 사무실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다 경찰에 의해 이란(依蘭)현 베이징 주재 사무소로 끌려가 감금됐다. 7일 후 쑹루이샹 등 세 사람은 이란현 구치소로 납치돼 왔다.

당시 약 100여 명의 청원 파룬궁수련자가 이란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는데, 모든 파룬궁수련자는 매일 법공부를 계속했고 그 소리가 울려 퍼져 감옥경찰이 제지할 수 없자 유행곡으로 덮어 가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검찰원에서 사람들을 데리러 오려 하자 구치소는 검찰원 사람들이 들을까 두려워 모든 파룬궁수련자를 야외 찬 바람 속에 내몰아 파룬궁수련자의 몸에 물을 뿌려 얼게 했고, 마리리 등 파룬궁수련자를 철 의자에 묶어 고문했다. 쑹루이샹과 딸은 이란현 구치소에서 매일 약 12시간 동안 노예 노동을 했으며, 구치소에 5개월 동안 감금됐고 1,500위안을 갈취당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2000년 섣달그믐날, 쑹루이샹은 자신의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중 경찰에 납치돼 이란현 구치소로 갔다. 7일째 되는 날, 쑹루이샹은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을 시작하자 이란현 구치소 부소장 정쥔(鄭軍)과 린중(林忠)은 네 명의 남자 재소자에게 쑹루이샹의 팔과 다리를 누르게 하고 위에 삽관해 그녀에게 진한 소금물을 주입하도록 지시했다. 진한 소금물 네 병을 모두 주입하자 쑹루이샹의 위는 불타는 듯이 아팠고 너무 아파서 바닥을 굴러다녔다. 부당하게 감금된 파룬궁수련자들의 단체 항의 아래 쑹루이샹은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의사조차 더는 참지 못하고 소장 정쥔에게 “몇 병을 주입했길래 사람이 이 지경이 됐습니까?”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쑹루이샹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음식조차 섭취할 수 없었다. 단식 9일째 됐을 때 쑹루이샹은 이미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됐으며, 구치소는 책임을 질까 두려워 그제야 쑹루이샹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0년 10월, 쑹루이샹의 남편 마시청, 남동생 쑹루이이와 또 다른 파룬궁수련자 한 명이 다시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다가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후 이란현 구치소로 끌려가 감금됐다. 그 당시 쑹루이샹과 딸도 구치소로 납치돼 일가족 네 명이 동시에 불법 감금됐다. 이후 남편 마시청, 남동생 쑹루이이는 창린(長林)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불법 강제노동 2년을 받았다.

2001년 9월 어느 날, 쑹루이샹은 남편 마시청과 함께 도로 양쪽에 진상 현수막을 걸다가 악인의 고발로 다시 이란 구치소로 납치됐다. 보름 후 쑹루이샹과 남편은 동시에 불법 강제노동 2년을 선고받고 각각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완자(萬家) 노동수용소와 창린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박해당했다.

완자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가 매우 잔혹해 감옥경찰은 수갑, 전기봉, 철 의자, 주먹, 벌로 쪼그려 앉기, 벌로 서 있기, 잠 못 자게 하기, 대걸이(上大掛) 등 방법으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죄수복 착용, 가슴표 부착, 번호 보고, 제식 훈련, 수칙 암송,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 작성을 강요했다. 한번은 노동수용소에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단체 ‘전향(수련 포기)’ 박해를 할 때 쑹루이샹에게 대걸이를 했는데, 이는 양손을 수갑으로 묶어 사람을 매달고 발끝만 땅에 닿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6시간 넘게 매달았는데도 쑹루이샹이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남자 감옥경찰 스둥레이(石冬磊), 쉐훙보(薛洪波) 등 세 명이 각각 가장 굵은 전기봉 한 개를 들고 쑹루이샹 몸에 물을 뿌린 후 사방에서 무작위로 감전시켰고, 결국 쑹루이샹의 무릎, 머리카락이 모두 타서 눌어붙었으며 양말이 발에 달라붙었다. 감옥경찰은 쑹루이샹이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작은 크기의 다른 전기봉으로 바꿔 쑹루이샹을 더 높이 매달고 계속 박해했다. 쑹루이샹은 그 경찰들에게 “폭력은 저의 신앙을 바꿀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걸이 고문을 당한 후 쑹루이샹은 두 달 이상 팔을 들 수 없었다. 이런 고문은 수많은 파룬궁수련자를 불구로 만들었다.

2006년 7월 5일, 쑹루이샹과 마시청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악인의 고발로 또다시 이란현 구치소로 납치됐다. 쑹루이샹은 이튿날부터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13일째, 그녀는 이미 숨이 넘어갈 지경이 돼서야 현 공안국이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마시청은 다시 창린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불법 강제노동 2년을 받았다.

2013년 5월 14일 밤 9시경, 쑹루이샹과 딸 등 5명이 한 파룬궁수련자 집에서 법공부를 하던 중, 침입한 다칭 채유(採油) 10공장 차오양 공안분국 양밍제(楊明傑)가 10여 명의 경찰을 데리고 와 납치, 감금했고 쑹루이샹은 다칭시 제1구치소로 끌려갔다. 이튿날 오후, 경찰은 쑹루이샹 등을 강제로 자오저우현 병원으로 끌고 가 신체검사를 받게 했는데 쑹루이샹의 혈압 지수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경찰은 다시 그녀를 다칭 병원으로 끌고 가 검사했다. 그 결과 쑹루이샹의 혈압이 260에 달해 다칭 제1구치소는 수감을 거부했다. 경찰이 여러 차례 반복해 검사했으나 쑹루이샹은 여전히 혈압이 높았다. 하지만 그들은 쑹루이샹을 강제로 구치소에 감금해 9일 동안 박해했다. 결국 구치소는 쑹루이샹의 혈압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쑹루이샹을 집으로 돌려보내 ‘거주지 감시’를 했다.

남편 마시청이 박해로 사망하다

마시청은 수련 전 심각한 기관지염, 정맥염을 앓았다. 1998년 대법 수련 후에 질병이 완치되고 신체가 건강해졌으며 도덕이 승화됐다. 마시청은 수련 전 마을의 다른 일반인들처럼 기본적으로 토지세를 거의 내지 않았는데, 수련 후 차오양 마을 전체에서 오직 그만이 체납된 모든 토지세를 전부 납부했다.

1999년 ‘7.20’ 중공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마시청은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납치됐고 이후 불법 강제노동 1년을 받았다.

2001년 10월, 마시청 부부는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납치됐고, 같은 해 12월 말에 둘 다 불법 강제노동 2년을 받았다. 마시청은 창린쯔(長林子)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당시 집에는 70세가 넘은 장모가 네 손주를 데리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2006년 7월 4일, 마시청, 쑹루이샹 부부는 현 내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이란현 둥청(東城) 파출소 경찰 린중에게 다시 납치됐다. 병든 딸이 80세 외할머니를 모시고 사람을 데리러 가자, 경찰은 그때야 그의 아내를 돌려보냈다. 경찰은 야만적인 강제 급식으로 극도로 쇠약해진 마시청을 창린쯔 노동수용소로 끌고 가 불법 강제노동 2년을 받게 했다.

2008년 2월, 마시청은 창린쯔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로 결핵성 흉막염에 걸려 온몸에 힘이 없었다. 창린쯔 노동수용소는 2008년 3월 1일에야 마시청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때 마시청은 이미 뼈만 앙상하게 말랐고 두 귀까지 멀었으며 온몸에 힘이 없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고 밥도 많이 먹지 못했다. 마시청은 2008년 12월 14일까지 버티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였다.

남동생 쑹루이이가 박해로 사망하다

쑹루이이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에 심한 요추 디스크를 앓아 산송장처럼 괴로웠으며, 그때 그는 뼈만 앙상하게 말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1998년 3월, 쑹루이이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병통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흡연, 음주와 같은 나쁜 습관도 모두 끊었으며 이전에 불같던 성격도 완전히 바뀌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나중에 가족들은 그의 이런 신기한 변화를 보고 가족 중 3명이 연이어 대법을 수련했고, 이로 인해 질병도 이 가족을 멀리하게 됐으며 온 가족이 대법을 수련하며 수련의 즐거움 속에 있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했고 한순간에 중국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졌으며, 쑹루이이는 모든 대법수련자와 마찬가지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 파룬따파의 결백을 되찾기로 결정했다.

2000년 1월 6일, 쑹루이이는 베이징 신방국에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이란현으로 돌아와 제2구치소에 감금됐다. 이 기간에 악인들은 그에게 벌로 서 있기, 악독한 구타, 온종일 변기에 머리 박게 하기, 수건으로 목 조르기, 잠을 못 자게 하기 등 각종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한번은 감옥경찰 린중이 쑹루이이를 미친 듯이 고문하며 수건으로 그의 목을 세게 조르고 걸레로 입을 막았으며 그를 창문에 매달아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등 세게 고문해 쑹루이이가 기절할 때까지 했고 그제야 그를 풀어주었다. 동시에 현 공안국, 이란진, 교통대대는 그의 가족에게서 총 6,900위안을 갈취했다.

2000년 11월 9일, 쑹루이이는 또다시 베이징으로 가서 톈안먼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그는 납치돼 이란현으로 돌아왔다. 성남 파출소에서 담당 경찰 류칭타오(劉清濤)에게 구타당한 후 이란 제2구치소에 감금됐고, 이후 하얼빈시 창린쯔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불법 강제노동 1년을 받았다.

2001년 11월 29일, 쑹루이이는 아내 징훙화(景洪花) 등 9명의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농촌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가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이란현 호텔 내에서 이란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정보과, 공안국의 경찰들이 연합해 파룬궁수련자들에게 36시간 동안 미친 듯이 고문과 심문을 가했다. 쑹루이이는 ‘배검(背劍)’ 방식(양손을 등 뒤로 돌려 한 손은 아래에서 위로, 한 손은 위에서 아래로 해 수갑을 채우는데 수갑이 살을 파고들어 극심한 고통을 가함)으로 묶여 매달리는 고문을 당했다. 결국 쑹루이이가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자 경찰은 그제야 고문을 멈췄다. 쑹루이이는 이후 이란 제2구치소에 감금됐고, 그는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했다. 3일 후 구치소장 정쥔의 지시를 받은 감옥경찰이 쑹루이이에게 강제로 진한 소금물을 주입해 그의 위장이 심각하게 손상되고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구치소는 그제야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1년 12월 29일, 이란현 경찰이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및 체포를 실시해 쑹루이이와 징훙화는 유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쑹루이이는 구치소에서 당한 잔혹한 박해로 위장이 부어올라 심하게 괴로웠고 음식을 섭취할 수가 없었으며 신체가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장기간 고문과 계속된 불법 추적을 당해 신체가 회복되기 어려웠고 병상에 누웠다가 2002년 11월 3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48세였다.

지금 쑹루이샹 노인은 민중에게 진상을 알리다 또다시 납치됐고, 다칭시 랑후루 검찰원의 불법적인 체포 승인 처분을 받아 중공의 사법 박해에 직면했다.

(쑹루이샹 노인 가족이 중공에 박해당한 더 많은 사실은 명혜망 기사 ‘두 가족이 박해로 사망, 다칭시 쑹루이샹 또다시 납치 감금되다’, ‘일가족 일곱 명이 박해당하고 두 명이 사망, 생존자가 원흉 장쩌민을 고소하다’ 참조)

 

원문발표: 2025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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