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610’이 가짜 기밀문건 조작해 첸시현 수련자 왕즈신 재판 앞둬

[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허베이성 탕산시 첸시현 파룬궁수련자 왕즈신(王志新)은 13년간 강제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2025년 7월 16일 탕산시 차오페이뎬구에서 납치됐고 9월 11일 첸시현 검찰원이 ‘국가기밀 누설죄’ 혐의로 불법 기소해 첸시현 법원에 넘겼다. 첸시현 법원은 10월 14일 재판을 열 계획을 하며 ‘기밀 관련 사건’을 구실로 비공개 재판을 진행하고 방청을 허락하지 않으며 가족도 법정에 들어갈 수 없도록 했다.

소위 ‘국가기밀’이란 상하이 세계박람회 개막 전야인 2010년 4월 22일, 해외 명혜망이 폭로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이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빌미로 파룬궁을 모함한 ‘선전 요령’ 중 3페이지 분량과 첸시현 ‘610사무실’이 이에 근거해 제정한 문건의 명칭을 가리킨다. 사실 이 문건을 본 모든 사람, 여기에는 당시 첸시현 공안국 부국장 둥쥔뱌오(董君彪)와 각 향진의 지도자들이 포함되는데 이들 모두 이 문건에는 어떤 비밀도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문건의 이름에 근거해 “‘선전 요령’은 선전하라는 요구 아닌가? 전파되면 될수록 더 문건 요구에 부합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왕즈신은 당시 대학생 촌간부에 불과했고 정식 편제도 없었다. 단지 업무능력이 뛰어나 지도자의 중용을 받아 사무실 주임 업무를 맡았을 뿐이다.

1. 선량하고 부지런한 농가 소녀

왕즈신은 1982년 2월 허베이성 탕산시 첸시현 둥롄화위안향(東蓮花院鄕) 시루좡촌(西陸莊村)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순박한 농민으로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왕즈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는 몸이 약해 아들딸 둘을 키우면서 연로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아버지는 집안 살림을 보태려고 외지로 일을 나갔다. 그의 소원은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해 괜찮은 직장을 찾아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왕즈신은 부모의 고생을 눈으로 지켜보며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빠르고 부지런했으며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다.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그녀의 마을에 전해졌을 때 14살이었던 왕즈신도 어른들을 따라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았다. 그녀는 파룬궁 사부님이 강의하신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법리에 깊이 매료됐다. 이후 그녀는 진선인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좋은 사람이 돼 매사에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가족 친척과 동급생 선생님의 눈에 그녀는 총명하고 선량하며 눈치 빠른 아이였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그녀가 받은 ‘우수 학생’ 상장만 한 더미였다. 대학 재학 중 그녀는 매번 시험에서 1등을 했기 때문에 동급생들은 더 이상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챔피언 1호’라고 불렀다.

2005년 왕즈신은 허베이 이공대학을 졸업했다. 2006년 시험을 거쳐 신좡즈향 정부에 채용됐고 일부 재무업무를 담당했다. 그녀는 늘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깨끗하게 처신했고 받아서는 안 될 이익은 절대 받지 않았다. 그녀는 2년 연속 우수 직원으로 평가받았고 사무실 주임으로 승진했다. 그녀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했으며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성과가 눈에 띄어 지도자와 동료들의 호평과 신뢰를 받았다. 그녀는 부모의 기대를 실현했고 부모도 이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겪은 일은 악몽과 같았다.

2. 15년간 지속된 모함

1) ‘610’이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빌미로 파룬궁을 모함한 문건 폭로, 미친 듯한 보복

상하이 세계박람회 개막 전야인 2010년 4월 22일, 해외 명혜망이 610이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빌미로 파룬궁을 모함한 ‘선전 요령’ 중 3페이지 분량과 첸시현 610이 이에 근거해 제정한 문건의 명칭을 폭로했다. 두 문건 모두 ‘기밀’이라는 글자가 표시돼 있었다. 문건은 당시 이미 첸시현 소속 17개 향진에 발부됐고 전체 현 소속 417개 마을에 하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건이 폭로된 후 610 전체가 분노해 미친 듯이 보복하기 시작했다. 문건은 밤새 회수됐고 당시 첸시현 방범판(防範辦, 610사무실) 주임 가오쩡차이(高增才)는 업무 실수로 해임돼 첸시현 기요국(機要局)으로 전보됐다. 성과 시에서 여러 차례 ‘독촉팀’을 파견해 첸시에 압력을 가했고 공안부는 전문팀을 파견해 첸시에 주둔시켰다. 첸시현은 더욱이 대량의 인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괴롭힘을 시작했다. 이 두 문건에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대략 백여 명이 넘는데 불법 심문을 받으며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다. 과거 파룬궁을 수련했던 수련자와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는 더욱 미친 듯이 체포하고 고문해 자백을 강요하며 직장으로 위협했다. 2010년 5월 며칠 사이에 10여 명이 불법 체포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체포에 참여한 경찰들은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거액의 상금을 받았다.

2010년 5월 12일 새벽, 왕즈신과 남편이 납치됐고 경찰은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같은 날 왕즈신과 같은 마을의 파룬궁수련자 마인펑(馬銀鳳) 부부도 납치됐다. 왕즈신의 남편과 마인펑의 남편은 다음 날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들이 왕즈신의 집을 수색할 때 사진을 한 장 한 장 다 보았고 침대 밑과 찬장을 모두 뒤졌으며, 가정용 컴퓨터와 휴대폰을 가져갔지만 소위 ‘증거’는 찾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왕즈신의 친정집에 가서 가택수색을 했지만 역시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왕즈신은 첸시현 공안국으로 끌려가 밤새 불법 심문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첸시현 국보대대 경찰 쉬즈강(徐志剛)이 말했다. “나는 네 둘째이모부의 전우야(왕즈신과 마인펑은 같은 마을이고 먼 친척인데 왕즈신은 마인펑을 이모라고 불렀다). 도리상 너도 나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고 나와 너희 지도자는 동창이야. 얼른 인정해! 네가 한 거라고 인정하면 바로 출근시켜줄게.” 왕즈신은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고 일에 소심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인정하면 출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왕즈신은 그들의 유혹과 협박을 견디지 못해 마지못해 자신이 한 일이라고 인정했다. 왕즈신이 인정했지만 왕즈신이 했다는 합리적인 증거는 전혀 없었다. 경찰은 또 왕즈신의 직장인 신좡즈향 정부에 가서 증거를 찾았고 그녀의 사무용 책상을 샅샅이 뒤졌다. 이후 신좡즈향의 모든 복사 및 타자업체를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왕즈신은 첸시현 민정빈관으로 옮겨져 감시를 당했다. 낮에 심문하고 밤 후반에도 심문했다. 왕즈신은 첸시 민정호텔에 4일간 구금됐다. 4일째 후반 밤, 국보대대의 쉬즈강, 자전성(賈振生), 형사대대의 왕슈잉(王秀英) 등 몇 명의 경찰이 한마디씩 말했다. “대학 나오고 직장 갖기가 얼마나 힘든데, 태도가 좋으면 출근시켜줄게요” 등등이었다. 쉬즈강은 인쇄된 왕즈신의 휴대폰 통화기록 한 뭉치를 들고 친근하게 굴며 친척 관계를 끌어대면서 말했다. “난 완전히 너를 위한 거야. 이 통화기록은 본래 네게 알려줘서는 안 되는 건데 (지금은 너한테 알려줬어). 너는 이 통화기록에 따라 진술서를 하나 작성해.” 경찰들은 약속했다. “태도가 좋으면 관대하게 처리될 거고 너와는 관계가 크지 않아.”

쉬즈강이 말했다. “마인펑이 체포된 일은 내가 너한테 알려줘서는 안 되는 건데 다 알려줬어. 너는 직장이 있는 사람이고 이 사건은 명백히 한 사람이 한 게 아니야. 이 문건도 네 집에서 인터넷에 올린 게 아니야. 왜냐하면 네 집은 이 며칠 동안 인터넷 사용량이 없거든. 어쨌든 마인펑도 체포됐고 그녀네 집은 개인사업을 하며 직장이 없어. 너는 문건을 네가 가져다가 네 이모(마인펑)에게 줬다고 말해. 네가 잘하면 집행유예를 받을 희망이 있어.”

왕즈신은 그들에게 협조해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싶지 않았다. 경찰들은 또 그녀의 직장으로 위협하고 협박했다. 왕즈신은 계속된 심문과 강요로 이미 기진맥진해 감당하기 힘들었다. 쉬즈강은 당시 또 완전히 왕즈신을 위하는 척하며 끊임없이 왕즈신을 유혹해 책임을 마인펑에게 떠넘기게 했다. 왕즈신은 집에 가서 출근하고 싶은 소망에 마지못해 허점투성이인 진술서를 작성했다. 왕즈신은 첸시현 구치소에 구금됐다.

쉬즈강과 자전성은 또 첸시현 구치소에 가서 왕즈신을 속여 말했다. “네 태도가 좋으니 우리 지도자가 네 태도를 보고 싶어 해. 업무에 협조해 네 진술을 다시 한번 말하면 녹화해줄게.” 왕즈신은 또다시 속았다. 나중에 왕즈신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황당한 진술서와 영상은 왕즈신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즈신과 마인펑을 박해하는 소위 ‘증거’와 빌미가 됐다.

마인펑은 줄곧 진술을 거부했다. 경찰들은 위협과 사기로 얻은 왕즈신의 진술과 영상을 갖고 마인펑을 압박했지만 여전히 마인펑에게 간파당했다. 6월 10일 오전, 쉬즈강, 루인쉐(路印學), 둥롄화위안향 파출소 소장 우허쥔(吳賀軍)이 왕즈신의 거짓 자백 영상을 가져와 마인펑에게 보여줬다. 세 사람이 큰소리로 떠들며 마인펑에게 그들이 조작한 가짜 증거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마인펑이 말했다. “당신들은 유도심문을 하고 있어요. 범죄 행위예요. 당신들은 나중에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해요. 나는 나중에 나가면 당신들 경찰이 법을 알면서 법을 어긴 것을 고소할 거예요.” 6월 12일 쉬즈강과 루인쉐가 또다시 쭌화 구치소로 가서 마인펑을 불법 심문했다. 쉬즈강은 이번에는 방식을 바꿨다. “곧 5월 명절이니 이 일을 마무리하고 빨리 돌아가요.” 그는 마인펑에게 컴퓨터는 무엇에 쓰는 것인지, 누구와 연락했는지 말하게 했고 또 말했다. “당신 집 컴퓨터는 사건 발생 기간에 사용량이 없는데 어디서 인터넷을 했나요?” 쉬즈강은 심지어 한때 마인펑에게 서명을 애걸했지만 마인펑에게 단호히 거절당했다.

왕즈신과 마인펑은 8개월 반 동안 불법 구금됐고 사건 서류는 세 차례 첸시현 공안국으로 반송됐다. 2011년 1월 27일 ‘사실이 명확하지 않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처분보류됐고, 5천 위안의 보증금을 강탈당한 후 두 사람은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2) “위에서 이 사건을 주시하는 사람이 있다”

왕즈신은 석방된 후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 계속 일했다. 1년의 ‘처분보류 기간’도 지났다. 소위 중국공산당(중공) ‘18차 당대회’ 전, 2012년 6월 7일 첸시현 검찰원이 다시 그녀를 찾아와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고 국보대대도 그녀와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왕즈신이 말했다. “제가 8개월 반 동안 불법 구금된 명예와 정신적 손실에 대한 배상은 누가 해주죠? 만약 법적 근거가 없고 단지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됐다는 이유로 저에게 압력을 가한다면 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니 저는 절대 당신들의 무리한 요구에 협조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반복되는 괴롭힘에 직면해 어쩔 수 없이 회피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왕즈신의 남편 자오훙타오(趙洪濤)도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자오훙타오가 말했다. “당신들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요? 제 아내를 찾으려고 제 지도자한테 왜 자꾸 찾아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요? 지금 우리집 아이는 돌볼 사람이 없고 집 노인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정말 처자가 뿔뿔이 흩어졌소. 제 아내가 도대체 어떤 법을 어겼기에 이렇게 끈질기게 구는 거요?” 검찰원 부원장 한궈루(韓國如)는 처음에는 “그냥 만나서 상황을 좀 알아보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위에서 이 사건을 주시하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왕즈신은 불법 ‘인터넷 수배’를 당해 유랑생활을 해야 했고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모든 어려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속 깊이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3) 세 차례 불법 수배로 가족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어머니는 압력 속에 세상 떠나

이후 왕즈신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고 경찰은 그들에게 왕즈신을 넘기라고 강요했다. 가족들은 여러 차례 경찰에게 자신들도 왕즈신의 행방을 모른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2018년 11월 중공 기율위원회가 내부 문건을 발표해 각지에 실종된 국가기관 인원을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2018년 12월 17일부터 첸시현 공안국 경찰들이 왕즈신의 모든 가족과 친구들을 괴롭히고 협박하는 것은 거의 미친 수준에 이르렀다. 왕즈신의 집, 어머니 마인춘(馬銀春)의 집, 시아버지 자오쿠이샹(趙奎祥)의 집, 남편의 직장 등이 얼마나 괴롭힘과 위협, 협박, 속임수, 사기를 당했는지는 셀 수도 없다. 명절이 되면 더욱 경찰들이 각 집마다 빠짐없이 괴롭혔다. 특히 왕즈신 어머니 집은 거의 경찰의 일일 출근지가 됐다. 어떤 증명서나 법적 서류도 제시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조회하고 불법으로 사택을 검사하며 심문했다.

첸시현 공안국은 2019년 3월 1일, 2019년 6월, 2020년 2월에 각각 세 차례에 걸쳐 왕즈신에 대한 ‘현상수배 통지’를 게시했다. 현상수배 통지는 왕즈신의 집과 어머니 집 대문에 붙었고 마을 확성기는 매일 수차례 현상수배 통지를 방송했다.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압력을 감당했다. 시어머니 리춘셴(李春賢)은 압력 속에 2012년 봄에 세상을 떠났고 남편 자오훙타오는 2013년 인질로 불법 구금돼 억울하게 1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후 또 2019년 7월부터 2020년 4월까지 10개월간 일을 중단했다. 시아버지 자오쿠이샹은 2019년 4월 29일 11일간 불법 구류됐다. 어머니 마인춘은 2019년 5월 2일 끝없는 괴롭힘과 거대한 압력 속에 세상을 떠났다. 이모할머니 리루이친(李瑞芹)은 2019년 7월 18일 11일간 불법 구류됐다.

왕즈신 가족이 박해를 받은 더욱 상세한 상황은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9년의 청춘 세월이 박해 속에 흘러가다’, ‘두 어머니가 괴롭힘 속에 세상을 떠나고, 세 가족이 산산조각 나다’, ‘선량한 여성이 8년간 집에 돌아가지 못하다. 경찰이 또 ‘현상금’으로 체포를 기도하다.’

3. 13년간 유랑생활 한 왕즈신, 다시 납치와 구금 당해

2025년 7월 16일 왕즈신은 허베이성 탕산시 차오페이뎬구의 한 주택단지 내에서 차오페이뎬구 하이강 파출소에 납치됐고 당일 첸시현 공안국으로 인계됐다. 첸시현 감찰위원회가 불법으로 그녀를 위협하고 심문하며 그들이 조작한 일련의 설명에 따라 그녀를 유인해 소위 ‘진술’을 받아냈다.

이후 중공 첸시 감찰위원회 인원 두 명,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왕즈신의 고향에 와서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 물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습까? 당신 딸이 그 두 기밀문건을 당신의 아내(이미 2019년 세상을 떠남)에게 줬을 때 당신이 그들의 대화를 들었습니까?” 왕즈신의 아버지는 이 두 사람이 자신의 딸을 모함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멍하니 그들의 말에 따라 동의했다.

감찰위원회의 이 두 사람은 동시에 마인펑의 집에도 가서 물었다. “왕즈신이 기밀문건을 당신에게 보여준 후에 그녀 어머니에게 준 거 아닙니까?” 마인펑이 말했다. “아무것도 몰라요. 당신들은 나한테 어떤 질문도 하지 마세요.”

감찰위원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은 후 공검법(公檢法)을 지시해 빠르게 왕즈신에 대한 모함을 추진했다. 7월 18일 왕즈신은 첸시현 공안국에 불법으로 형사구류됐다. 7월 25일 첸시현 기율검사위원회가 대외적으로 공개 발표한 소식에서 왕즈신이 체포돼 송환됐다고 주장했다.

7월 30일 왕즈신은 첸시현 감찰위원회에 의해 불법으로 입건조사됐다. 8월 1일 왕즈신은 불법 체포됐다. 9월 11일 왕즈신은 ‘국가기밀 누설죄’ 혐의로 첸시현 검찰원에 불법 기소됐다. 첸시현 법원은 2025년 10월 14일 왕즈신을 불법 재판 계속 할 것을 도모하고 있으며 재판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방청이 허가되지 않아 가족도 왕즈신을 만날 수 없다.

4. ‘610’과 그 문건의 불법성

1) ‘610사무실’의 불법성

장쩌민(江澤民)의 개인적 압력하에 중공 중앙 ‘610사무실’은 1999년 6월 10일에 설립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이것은 중앙 ‘파룬궁 문제 처리 지도자팀’ 산하의 의사결정 및 집행기구로 전칭은 ‘파룬궁 문제 처리 지도팀 사무실’이며 중공 중앙 정법위원회에 상설돼 있다. 중국 전역에서 체계적으로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해 ‘명예상 망가뜨리고 경제적으로 파산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시킨다’는 정책을 실행했다.

‘610사무실’은 설립 이래 중앙에서 지방까지 위에서 아래로 엄밀하고 독립적인 체계를 형성했으며 중국의 각급 당, 정부, 사법 체계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각지 각 업종(중국 주재 대사관과 영사관 포함)이 적극적으로 장쩌민이 발동한 이 파룬궁 박해와 진선인 비방 정치운동에 참여하도록 지시하고 감독했다. 2003년 언론과 국제사회의 시선 및 책임 추궁을 회피하기 위해 610은 ‘사교문제 방범과 처리 지도자팀 사무실’로 개명했고 약칭 ‘방범판’이다. 2018년 3월 대외적으로 이 기구가 이미 철폐됐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정법위원회와 공안부 내부에 의존하고 있다. 이 기구의 각지 명칭은 통일되지 않았는데 첸시현의 이 기구는 정법위원회 산하 ‘사교 반대 협조과’가 됐다. 겉으로는 610이 철폐됐지만 610의 실제 권력은 전혀 건드려지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특수한 지위와 초급 권력을 가지고 있다.

610은 법률 위에 군림하며 모든 공안, 검찰, 법원, 사법 체계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각급 공안, 검찰, 법원, 사법 등 체계에 파룬궁에 대한 박해 지령을 전달할 때 통상적으로 녹음, 기록, 서면 전달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러 해 동안 줄곧 비밀 상태에서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한 박해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610사무실’ 사무기구는 간판을 걸지 않고 제복을 입지 않으며 정부기구 편성에 존재한 적이 없다. 중국의 어떤 공개 기구 명단에도 보이지 않는 조직이고 어떤 공개 정부문건과 정식 법률문건에도 보이지 않는다. 설립부터 체계적으로 파룬궁 박해를 실시한 전체 과정이 모두 비밀적이고 불법적이다. ‘장쩌민 그 사람’이라는 책의 폭로에 따르면 장쩌민은 뤄간(羅幹)과 비밀 대화를 나눴는데 그중 이런 내용이 있다. “일반적으로 붉은 글씨 문건을 발부하지 않고 암호 전문이나 구두 전달만 하며 서명하지 않고 모두 ‘중앙 지시’라고 말한다!” 박해 원흉 자신도 떳떳하지 못한 일임을 알고 있었고 박해 증거가 남을까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다.

2) 폭로된 두 흑색 문건의 불법성

2010년 4월 첸시현 610이 첸시현 소속 17개 향진에 하달하고 각 마을에 하달할 준비를 하던 이 두 문건은 모두 ‘기밀’이라는 두 글자가 표시돼 있었다. 《비밀법》 제13조에 따르면 기밀급 문건의 정밀 권한은 중앙 국가기관, 성급 기관 및 그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과 단위, 그리고 단지의 시, 자치주 일급의 기관 및 그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과 단위다.

이 두 문건 중 한 건은 ‘선전 요령’이라는 제목인데 사정을 아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 문건은 첸시현 610이 영상회의에 근거해 사사로이 정리한 문자자료라고 한다. 다른 한 건은 첸시현이 이에 근거해 제정한 문건이다. 이 문건을 본 모든 사람, 여기에는 당시 첸시현 공안국 부국장 둥쥔뱌오와 각 향진 지도자들이 포함되는데, 이들 모두 이 문건에는 어떤 비밀도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둥쥔뱌오는 심지어 문건의 이름에 근거해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선전 요령’은 선전하라는 요구 아닌가? 전파되면 될수록 더 문건 요구에 부합하는 거 아닌가?”

2010년 4월 22일 명혜망이 이 두 문건을 폭로한 후 이미 하달된 문건은 모두 밤새 회수됐다. 첸시현 610사무실 주임 가오쩡차이는 이로 인해 해임돼 첸시현 기요국으로 전보돼 국장이 됐다.

만약 사악한 영상회의가 누설된 책임을 추궁한다면 이 문자자료를 정리해 각 향진에 하달한 사람이 제일 먼저 책임을 추궁받아야 한다. 게다가 첸시현 610은 현 위원회 사무실 산하 과실 단위로 주급 단위여야 하지 않은가? 그것이 ‘기밀’급 문건을 제정해 하달할 권한이 있는가? 첸시현 610이 나쁜 일을 하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아 그 박해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이 두 자료에 무작정 ‘기밀’ 두 글자를 표시한 것이지 진짜 ‘기밀’ 문건이 아닌 것은 아닌가? 첸시현 보밀국, 탕산시 보밀국, 허베이성 보밀국은 모두 이 두 가짜 ‘기밀’ 문건을 위해 보증을 서주고 있는가? 《비밀법》이 마음대로 희롱하고 흑백을 전도시키며 이중 기준을 적용하는 장난이 됐는가?

이 두 가짜 ‘기밀’ 문건이 폭로된 후 15년 동안 왕즈신과 그녀의 많은 친구들이 겪은 고난은 한마디로 다 할 수 없다. 더욱이 왕즈신은 세 차례 불법 수배를 당했고 현상수배 통지가 첸시현의 시내, 농촌에 도배됐으며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전파됐다. 2025년 7월 25일 첸시현 기율검사위원회가 또 공개적으로 왕즈신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발표했고 소식은 신속하게 인터넷과 현지 주민들 사이에 전파됐다. 따라서 이 일은 첸시 주민들의 논란거리가 됐다.

왕즈신은 2025년 10월 14일 첸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비밀 재판을 받게 된다. 첸시현 법원 판사 장뤄쥔(張瑞軍)이 이 사건을 심리할 책임을 맡았다.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장뤄쥔 판사께서 공정하게 심리해 왕즈신의 결백함을 돌려주기 바란다!

이 사건의 공소인: 첸시현 검찰원 치구이량(齊桂亮)(전 첸시현 법원 부원장, 현 첸시현 검찰원 부검찰장) 18532587618 13931541062
이 사건의 판사: 첸시현 법원 장뤄쥔(張瑞軍) 17692525913 18532583108 13831562248
첸시현 정법위원회 주소: 허베이성 첸시현 징중동가(景忠東街) 23호
리성둥(李勝東) 현 위원회 상무위원, 정법위원회 서기 13932588489
루리웨이(盧立偉) 현 정법위원회 부서기
왕정(王崢) 현 기율검사위원회 감찰위원회 주재 현 위원회 정법위원회 기율검사감찰조 조장
첸시현 감찰위원회
양샤오쥔(楊笑軍) 현 위원회 상무위원, 기율위원회 서기, 감찰위원회 주임
부주임 완쉐쥔(萬學軍) 15031599188
리쯔원(李子文)(이 사건 담당) 0315-5628252
첸시현 공안국 주소: 허베이성 탕산시 첸시현 펑황동가(鳳凰東街) 8호
가오레이(高磊) 첸시현 부현장, 공안국장 18832988518
바오쓰위안(包思遠) 첸시현 공안국 부정위 13832984028 국보대대 관할 청관 파출소
왕궈쥔(王國軍) 부국장 18832509689
주궈둥(朱國棟) 지휘센터 주임 0315-5617007 13832983697 18932983697
첸시현 공안국 국보대대 0315-8616029
국보대대장 류윈보(劉雲波) 13832984130
국보대대 교도원 류리촨(劉麗川) 13832984163
부대대장 주젠잉(朱劍影) 18832983629
첸시현 검찰원 주소: 첸시현 쯔위가(紫玉街) 전화: 0315-5668569
장젠(張健) 검찰장
장아이둥(張愛東) 검사위원회 전직위원: (형사집행검찰 독촉 참여) 0315-8070780 18932513966
판원리(潘文禮) 부검찰장 겸 검사위원회 위원
류환(劉歡) 부검찰장 겸 검사위원회 위원
잉밍양(應明洋) 검사위원회 위원 15027520919
리샤오란(李效蘭) 검사위원회 위원 15032596027
쉬잉신(徐穎新) 첸시현 검찰원 검사원 15732989200
푸인솽(付印雙) 15931559958
사무실: 5668569
제1검찰부: 0315-8070798 형사범죄 사건 담당
제2검찰부: 0315-8070790 민사, 행정 사건 처리 담당
제3검찰부: 0315-8070797
정치부: 0315-8070728
첸시현 법원
장즈융(蔣志勇): 원장
왕훙성(王洪生): 당 조 부서기, 상무부원장
가오리옌(高麗艷): 당 조 구성원, 부원장 18932987688

 

원문발표: 2025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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