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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감옥, 진상 은폐하기 위해 친웨밍 시신 화장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지난 2011년, 중공 당국의 박해를 당해 사망한 친웨밍(秦月明)의 시신을 감옥 측이 몰래 화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6월 15일, 친웨밍(秦月明)의 아내와 두 딸은 놀랍게도 고향 산둥(山東)성 친척으로부터 자무쓰(佳木斯) 감옥의 냉동고에 보관해 둔 친웨밍의 시신이 이미 감옥 측에 의해 화장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6월 16일, 골회는 친웨밍의 고향인 산둥성으로 보내졌다.

친웨밍(남, 사망 당시 47세)은 헤이룽장성 이춘(伊春)시 진산툰(金山屯)구 파룬궁 수련자로, 2011년 2월 26일에 자무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가족은 친웨밍의 시신 온몸에 상처가 있고, 입술이 청자색을 띠었으며,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고,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이며, 목 오른쪽 뒤쪽에 크게 부은 증상이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자무쓰 감옥 측은 오히려 가족에게 ‘정상적인 사망’이라고 통지했다.

秦月明被打伤的遗体
구타로 상처가 있는 친웨밍의 시신
秦月明
친웨밍

11년간 친웨밍의 아내와 딸은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당국의 ‘사적으로 해결(당사자와의 합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납치되고 강제노동 처분 박해를 받아도 타협하지 않고 시종 자무쓰 감옥 측에 법에 근거해 사망 증명서를 내놓고 진상을 말하라고 요구했다. 감옥 무법자들은 친웨밍의 아내와 딸이 ‘사적으로 해결’에 동의할 리가 없고, 더구나 시신을 화장함에 동의할 수 없음을 알고 사사로이 사람을 파견해 몰래 산둥성 둥아(東阿)현 천지(陳集)향으로 가서 80여 세인 친웨밍의 연로하신 부친 친쉬원(秦緒文)을 ‘설득’했다. 2022년 초, 자무쓰 감옥 측은 다시 사람을 파견해 여러 차례 친쉬원을 찾아 ‘사적으로 해결’할 것과 시신 화장에 서명하는 일을 이야기했다. 노인은 처음에는 서명에 동의하지 않고 감옥 측 사람에게 친웨밍의 아내와 딸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감옥 측 사람은 고향 산둥성 현지 파출소와 결탁해 다시 친쉬원을 찾아가 기만 수단을 썼다. 노인은 각 방면의 압력을 당할 수 없어 결국 ‘사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에 서명하고, 시신 화장에 동의했다.

친웨밍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심신의 변화가 매우 컸고, B형 간염을 앓던 딸은 파룬궁을 배우고 병을 치료하지 않고 완쾌됐다. 일가족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고 전 가족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친웨밍은 대법 중에서 요구한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며, 일을 처리할 때 늘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 친웨밍은 혼자서 몇 달간 삼륜차로 모래흙을 밀어다가 움푹 팬 길을 메우기도 했다. 친웨밍의 이 같은 선행은 이웃들을 감동하게 했다. 이웃들은 “이 길은 파룬궁이 수리한 거야.”라고 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친웨밍 가족들도 심한 박해를 받았다. 부부 두 사람은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아이는 심하게 구타당한 후 감금됐다. 친웨밍은 다시 불법적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자무쓰 감옥에 감금됐다. 친웨밍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비보가 고향에 전해지자 친웨밍을 잘 알고 있는 동네 어른들과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공정한 평가를 요구하고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모녀 세 사람은 어려운 법률 소송 과정을 시작했다. 자무쓰에서부터 성 소재지 하얼빈까지, 2011년 9월에 헤이룽장성 고급법원에서 마침내 입건해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부서와 기관을 뛰어다녔는지 모른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친웨밍의 아내 왕슈칭(王秀青)과 막내딸 친하이룽(秦海龍)은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한 이유로 중공에 보복당해 납치,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하얼빈시 첸진(前進) 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강제노동 기간에 모녀는 여러 차례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성 610(파룬궁 박해 기구)의 구쑹하이(顧松海)와 성 고급법원 배상위원회의 장인펑(張印峰) 등은 노동수용소로 가서 주택 업무를 배치한다는 이유로 ‘사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모녀는 굴복하지 않고 친웨밍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동의하지 않았다. 헤이룽장 고급법원 판사 왕빈훙(王濱紅)은 여러 차례 변호사를 회피하고 책임을 미루며 사건 심리를 지연했다. 2012년 말에 헤이룽장성 고급법원에서는 황당하게도 이 배상 사건을 이춘(伊春) 중급법원에서 심사하도록 지정했다. 이춘시 법원 구전츠(谷振墀) 판사는 다시 이 사건을 2년간 미뤘다. 재판 통지를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2014년 12월 25일에 이춘시 중급법원은 친웨밍의 가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에 대해 ‘처리를 철회’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친웨밍의 아내와 두 딸은 고난을 겪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으나 호소할 길이 없었다.

二零一三年四月十三日,秦月明的妻女走出前进劳教所时的合影
2013년 4월 13일, 친웨밍의 아내와 딸이 첸진 노동수용소에서 출소할 당시 단체사진

자무쓰 감옥 냉동고에 놓아둔 친웨밍의 시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여서 줄곧 경찰들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친웨밍이 사망한 사건은 그들의 머리에 날카로운 칼날처럼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악한 중공의 세뇌 교육과 통치하에 무감각하게 상부의 명령에 따라 양심을 잃고 사실과 법률을 상관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친웨밍이 박해당해 사망한 사실을 속이고 시체를 훼손하고 증거를 없앴다. 밍후이왕에서 폭로한 악인의 악행 및 일부 악인이 응보를 당한 사례에서 보면, 죄인은 반드시 징벌받게 되어 있고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 박해에 가담한 사람은 액운을 피하기 어렵다.

친웨밍 사건에 관해 억울함을 호소한 자세한 상황 및 친웨밍 일가의 조우는 밍후이왕 문장 ‘친웨밍 가족, 헤이룽장성 여러 기관에 사법 간섭을 신고’, ‘친웨밍의 시신이 아직 식지 않았지만, 아내와 딸이 납치돼 강제노동 당해’, ‘16년간의 박해, 16년간의 시달림과 아픔’, ‘친웨밍의 억울한 사건이 6년간 결과가 없고, 불법 경찰이 여전히 발뺌해’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7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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