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쑤룽, 쑨바이 기자) 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연례 수련심득교류회가 2014년 11월 9일 대만대학 종합체육관에서 개최됐다. 17년 전인 1997년 11월 16일부터 20일까지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는 대만 타이베이 싼싱(三興) 국립 초등학교와 타이중(台中) 우펑(霧峰) 농업공업학교에서 설법하셨으며 2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는 대만 파룬궁수련생에게 특별한 의의가 있으며 대법이 대만에서 널리 전해지는 기반이 됐다.
그때부터 파룬따파는 대만 각지에서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전파됐고 수련하는 사람들이 사회 각 계층에 분포됐다. 현재 대만에는 이미 수십만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으며 1천여 개 연공장이 전국 각지에 설치됐다. 거의 모든 마을에 연공장이 있으며 외딴섬인 펑후(澎湖), 진먼(金門), 마주(馬祖)에도 10여 개의 연공장이 있다. 대만은 이미 중국 본토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지역이 됐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1997년 11월 타이베이 싼싱 국립 초등학교에서 설법하셨다.
2011년 11월 대만에서 법회가 열리는 기간 파룬궁수련생들은 타이베이 자유광장(원래 중정기념당)에서 단체 대연공을 진행했다.
말씀으로 전수하시고 행동으로 가르치시다
파룬궁 전 상하이 보도소장이었던 녜수원(聶淑文) 의학박사는 1995년 남편을 따라 대만 가오슝(高雄)에 정착했다. 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만인은 매우 선량하므로 대법을 대만에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우리 몇몇 파룬궁수련생은 대만 전역을 순회하며 도시와 농촌 각지에서 9일 학습반을 열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공법을 전파했고, 많은 사람이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역량이 제한적이라고 느껴 우리는 사부님께서 직접 대만에 오시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대만 국민들이 직접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기회를 갖기를 바랐습니다.”
1997년 11월 초청을 받은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대만에 오셔서 설법하셨다. 녜 박사는 말했다. “매번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때마다 저는 늘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그 마음 깊은 곳까지의 울림이 너무나 컸고 감동과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우 감동스럽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고덕대법(高德大法)입니다. 그때 대만에서 설법하신 후 대만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녜 박사의 회상에 따르면 사부님께서는 매우 자상하고 친절하셨으며, 격식 없이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게 대하셨고 모든 일정에 정확히 시간을 지키셨다. 설법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타이베이에서 이란(宜蘭), 동부, 남부까지 대만을 한 바퀴 돌고 대만 중부에 위치한 일월담(日月潭)에서 하룻밤 머무셨다. 이동 중 차량, 식사, 숙박비는 수련생이 지불하지 못하게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대만에 일주일 체류하셨으나 소수의 몇 명 수련생만 동행하셨고 조용히 오고 가셨으며 다른 수련생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사부님의 일언일행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말씀으로 전수하고 행동으로 가르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귀감이 되셨다.
신기한 대법
전 가오슝 공무원 린산번(林善本)은 매우 운이 좋게도 타이베이 싼싱 국립초등학교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저는 교통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통이 8년간 지속되어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고, 각지의 중의사, 서양의사, 민간요법, 점술가까지 찾아다녔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습니다. 방황하고 막막하던 1997년, 사부님께서 대만에 오셔서 설법하시기 3개월 전 우연히 공원에서 녜 박사님이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따라 연마했습니다. 당시 경서가 부족해 저는 연공만 했고 법공부는 하지 못했습니다. 녜 박사님에게는 ‘전법륜(轉法輪)’이 한 권뿐이어서 복사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각자 20페이지씩 받아 돌려보았습니다. 머리 부상 때문에 글자가 잘 이해되지 않아 저는 포기했습니다.”
린산번은 사부님께서 타이베이 싼싱 국립초등학교에서 설법하시는 당일 새벽에 녜 박사로부터 사부님께서 대만에 도착하셔서 아침에 타이베이 싼싱 국립초등학교에서 설법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와 몇몇 수련생은 즉시 비행기를 타고 타이베이로 향했다.
린산번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회의장 첫 줄에 앉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정확한 시간에 입장하셨습니다. 사부님은 키가 매우 크셨고 기개와 도량이 비범하셨으며 매우 젊어 보이셨습니다. 사부님의 동작은 매우 민첩하셨고 설법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으셨으며 쉬지도 않고 오후 4시 30분까지 설법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머리 부상으로 인한 통증이 매우 심해 거의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간신히 참을 수 있었던 시간은 오후 1시부터 7시 끝날 때까지였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일종의 이끌림에 의해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집중해서 듣지 못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부님의 설법이 끝난 후 제 두통이 완화됐습니다. 사부님께서 신속히 제 신체를 정화해주신 것입니다. 제 고질병은 신기하게도 약물 없이 나아졌고 새 삶을 얻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날 밤 가오슝에 돌아온 린산번은 파룬궁을 성실히 수련하기로 결심했으며, 이전에 녜 박사가 나눠준 ‘전법륜’ 복사본을 전부 꺼내 단숨에 읽었다. 그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제 몸에서 많은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주셨고 지혜를 열어주셔서 법의 함의와 위대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심신이 혜택을 받고 파룬궁의 소중함을 깊이 깨달은 린산번은 서둘러 더 많은 사람에게 파룬궁을 소개했고, 자발적으로 공원에 연공장을 설립했으며 집에서 9일 학습반을 개설해 매월 1일을 시작일로 정했는데,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신수련생이 계속 늘어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연공을 배웠으며, 주변 마을에도 연이어 연공장이 설립됐다. 가오슝에는 원래 수십 명이었던 것이 현재는 적어도 수천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
소중한 기억과 기다림
1997년 4월 타이중에 첫 연공장을 개설한 타이중 우펑농공 교사 추톈시(邱添喜)는 대만에서 초기에 파룬궁을 수련한 수련생 중 한 명이다. 사부님께서 타이중에서 한 차례 설법하셨는데, 그는 당시 상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시간을 매우 정확히 지키셨습니다. 설법 시간은 오후 1시였고 사부님께서는 매우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입장하셨습니다. 들어오신 후 쉬지 않고 오후 3~4시까지 설법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록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휴식을 권했지만, 사부님께서는 휴식하지 않으셨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이후에 사부님께서 휴식을 취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셔서야 알게 됐는데, 그것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명확하고 완전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사부님께서는 그날 저녁 7시까지 설법하셨고, 마친 후에도 많은 사람이 리 선생님을 둘러싸고 질문했다. 추톈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이미 오랜 시간 설법하셨으니 휴식하고 식사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매우 인내심 있게,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미소를 지으며 하나하나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는 말했다. “사부님 설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부님께서 대만인은 정(情)이 특별히 중하다고 강조하시면서, 이 정은 마치 철사처럼 사람을 단단히 묶어놓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후에 저는 이 정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대할 수 있게 됐고, 사부님께서 이 정의 물질을 상당히 제거해주셨습니다.”
“이는 저에게 매우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당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지금도 단상에서 설법하시는 것처럼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저희는 여전히 사부님께서 다시 대만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설법해주시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이는 대만의 많은 수련생들의 공통된 바람입니다.”
원문발표: 2014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나의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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