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제자로서 우리들은 모두 구세력의 안배와 교란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어떤 사람은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고 있는가? 최근에 나는 어떤 때 우리의 사유방식이 구세력과 같기 때문에 구세력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럼 구세력은 어떠한 사유방식인가?
1. 가장 전형적인 것은 남을 개변하려고만 하고 자신을 개변하지 않는 것이다.
구세력은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기에 자신이 정법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법을 이용하여 남을 개변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키려 하며 심지어 정법을 좌우지하려 한다. 구세력은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우수한 생명이라고 여기면서 기타 생명은 모두 문제가 있기에 마땅히 정법에서 바로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훼멸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유방식이 수련인에게 반영되면 늘 자신이 수련을 잘했다고 여기면서 스스로 자신의 수련의 길을 안배하고 심지어 다른 수련인의 수련을 지도하려 한다. 남을 개변하려고만 했지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 표현되는 것은 늘 밖으로 찾고 안으로 찾지 못하며 사부님의 요구와 정반대로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가끔은 수련한다는 명의를 내거는데 마치 사부님께서 지적하신 구세력의 표현형식처럼 “정신(正神)의 표현은 물론 저층의 선하지 못한 생명처럼 그렇게 거리낌 없이 악행을 하지 않을 것인바, 그것들은 물론 모두 선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런 선(善)은 변이된 것으로 이 선의 배후에는 집착이 있는데, 바로 그 선의 표현 때문에 만들어낸 장애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기만하고 남도 속일 수 있다. 만약 정법이 아니라면 이런 일들은 정말로 돌파하기가 아주 어렵다.”[1]와 같다.
수련인이 만약 안으로 찾는데 주의하지 않는다면 구세력의 이러한 위선에 속을 수 있고 자신의 감각이 아주 좋지만 사실은 줄곧 제고하여 올라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정진해 보이는 수련생들이 마지막에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지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각이 아주 좋고 남들도 문제점을 보아내지 못하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아주 똑똑히 볼 수 있다.
2. 다른 사람에 대해 지극히 엄격하고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는다.
구세력이 스스로 자신을 구하는 수단이 바로 그것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생명을 훼멸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높은 곳에 있는 생명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훼멸시키려고 하기에 그것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려는 일체 행위는 그것들의 최종적인 자폭을 초래했다. 그래서 이번 수련 중에서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개인수련을 가장 중하게 보면서 우리 수련 중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 마음을 필사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만약 그들의 관념이나 표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우리를 훼멸시키려고 하고 바르게 고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는 마침 정반대인데 사부님께서는 한 번 또 한 번 잘하지 못한 수련생에게 기회를 주어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게 하고 바르게 고쳐 계속해 대법 중에서 수련하게 하신다.
어떠한 수련인은 구세력의 이런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아 남에게 아주 엄격한데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한 부분을 붙잡고 일방적으로 지적하거나 심지어 공격하기도 한다. 수련생의 상태가 좋지 못하거나 혹은 교란을 받았을 때 그를 도와 교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수련생은 자신에 대해 아주 엄격하고 또한 아주 잘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당연히 아주 엄격해야 한다고 여긴다. 늘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당신은 왜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사유방식 역시 구세력의 사유로서 역시 질투심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수련환경이 다르고 보이지 않는 요소(다른 공간에서의 감당) 등도 같지 않기에 비교하기 어렵다. 자신이 본 그 한 가지를 갖고 비교하는 것은 모두 정확하지 않고 일방적인 것이다. 어떠한 수련자든지 수련 중에서 모두 집착과 사람마음이 반영돼 나올 것인데 이것은 정상적이다. 자신의 관념으로 다른 수련생을 판정하거나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 그 수련생으로서 마땅히 그(그녀)가 나중에 반드시 법학습과 착실히 수련하는 가운데서 집착심을 닦아버릴 것이라고 믿어야지 수련생을 얕보거나 심지어 수련생의 수련형식을 부정하면 안 된다.
3. 자신의 집착과 문제를 은폐하고 표면만 수련할 뿐 마음을 닦지 않는다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수련생들은 이러한 사유의 교란을 받아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다. 표면적인 개변만 중시하고 표면으로 볼 때 정진하는 수련자다운 모습을 고려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집착과 사람 마음을 은폐한다. 이런 나쁜 것을 겨냥해 공을 들여 제거하지 않았다. 다만 표면적인 부분에만 공을 들였는데 예를 들면 하루에 몇 강을 읽고, 하루에 얼마만한 대법 항목을 했는지 등등이다. 본질적인 개변만이 비로소 수련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고이다.
이런 변이된 사유는 인간 세상에도 반영된다.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의 ‘여시아문(如是我聞)’에는 우도광(于道光)이 진술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예전에 저승에서 사용하던 ‘업경(業鏡)’은 한 사람이 일생 중에서 한 착한 일, 악한 일을 비추어 보여주기에 염라대왕은 이것으로 한 사람을 판정하고 그의 다음 일보를 결정한다. 송나라 이후, 사회도덕이 갈수록 떨어지고 사람들은 갈수록 위장하고 덮어 감추었기에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죄악들을 일반적인 업경으로 이미 비출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하늘의 뭇신들은 특별히 ‘심경(心鏡)’을 증설해 그러한 위선자를 비췄다.
대법제자 역시 인간세상에서 윤회하고 있는데 도덕이 떨어짐에 따라 우리의 사유방식도 오염됐다. 특히 중국인들은 갈수록 잘 은폐하고 중국에서 나온 많은 수련생들은 일에 부딪히면 즉시 자신의 집착심이 무엇인지 찾아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구실과 원인을 찾아 자신의 문제를 해석한다. 자신이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시간이 길어지면 습관화 돼 버린다. 표면만 수련하고 다른 사람이나 사부님께 형식적인 것만 보여주려 하기에 제고가 아주 느리다.
4. 스스로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여긴다
구세력은 모두 스스로 자신이 훌륭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이 일체를 좌우지 할 수 있고 심지어 정법까지 좌우지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대법제자의 일사일념을 안배했는데 이러한 사유방식은 어느 정도 대법제자에게 모두 영향을 주었다. 많은 수련자들은 아무런 능력이 없을 때에도 마음속으로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무슨 일을 해냈거나 혹은 다른 방면에서 남보다 강하면 즉시 득의양양해 한다. 이때 구세력은 일부 사람을 배치해 특별히 당신을 숭배하게 하고 지지하게 함으로서 당신이 갈수록 자심생마의 방향으로 가게하고 심지어 당신을 훼멸시키려 한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구세력에 대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들은 모두 매 층차에서 제일 뛰어난 생명들인데 훼멸됐다. 가장 능력 있는 것들이었는데 최종 그 구세력의 배치가 훼멸시킨 것으로, 구세력이 목적을 이루는 데는 바로 이 부분을 훼멸시키는 것을 대가로 했다.”[2]
대법과 사부님이 친히 구도하는 생명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사부님과 대법 앞에서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품고 착실하게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해야지 대법 중에서 자신이 명(名), 이(利), 정(情)에 대한 변형적인 집착을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이래야만 비로소 대법의 소중함과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미안하지 않게 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비록 구세력이 우리에 대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많은 방면에서 우리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디까지나 사부님과 대법이 있다. 마음속에 법을 담고 사부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반드시 구세력의 일체 안배와 교란을 철저히 부정할 수 있고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정법수련의 대원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개인수련 체득으로서 적합하지 않는 부분은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3-2003 미국 중부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문장발표: 2015년 6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6/2/3102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