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월 25일] 늘 동수들이 사이트에 올리는 문장을 보면서 나는 자신이 법공부 하는데 매우 큰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무엇 때문인지 어떤 때는 책을 본 수련생이 그 구절에는 그런 뜻이 있다고 말하면 나는 그제서야 “아, 그렇구나!” 정말 옳다고 느낀다. 그럼 왜 내 자신 스스로는 그 뜻을 보아내지 못 하는가? 돌이켜 보면 자신이 법공부를 하기 위한 법공부를 했고 이러한 것을 임무로 여기고 매일 조금씩 보게 될 때가 매우 많았다. 겨우 글자 표면의 뜻만 보고는 법공부가 끝나면 더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자신과 대조해보지도 않았는 바 일종 이야기를 보거나 소설을 보는 느낌만 들 뿐 결국 형식에 그쳤던 것이다.
또 자신의 원인을 찾아보면 법공부에 대한 중시가 부족한 것 외에도 아주 쉽게 관념에 가로막힐 때가 있다. ‘이 어구는 곧 이런 뜻이다.’라고 인정하면서 자신이 자신을 제한해 버렸다. 매번 법공부할 때 이 문제에서 그 무슨 깨달음이 있은 후에 다음 번 다시 볼 때도 그 뜻이라고 인정해버려 잠재의식 속에서도 곧 그 뜻이라고 박히면서 무의식 중에 대법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자신을 제한하다 보니, 보아도 더욱 높은 내포를 보아내지 못한다. 이제는 책을 볼 때 조용히 하고 또 무슨 목적을 지니지 않고, 관념과 자신의 원래 층차에서 깨달은 도리마저 쥐고 있지 말아야 하며 나의 고만한 법에 대한 인식으로 책을 보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종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다. 원래 있던 층차에서 법을 본다면 가늠하고 가늠해봤자 그 층차에서 뛰쳐 나올 수 없다.
그 밖에, 지금에 와서 우리 매 개인은 모두 법공부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의 이 방면에서의 체험은 다음과 같다. 생활 중에서 하루 이틀 법공부를 하지 않고 중시하지 않으면 쉽게 일부 불필요한 착오를 범하게 된다. 발견한 후 때로는 며칠이란 시간이 있어야만 비로소 심태를 잘 조정할 수 있다. 법학습을 잘 하게 되면 그 한 시기는 정념이 강해 속인사회에서 부딪치게 되는 교란, 넘길 수 없는 고비마저도 모두 대법으로 대조하게 되며 즉시 명백해져서 자신이 일체를 어떻게 잘해야 함을 알게 된다.
문장완성: 2006년 1월 23일
문장발표: 2006년 1월 25일
문장갱신: 2006년 1월 25일 10:44:23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1/25/119290.html